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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EMENT BY

H.E. SHEIKHA HAYA RASHED AL KHALIFA
THE PRESIDENT OF THE UNITED NATIONS GENERAL ASSEMBLY

FOR THE WORLD FOOD DAY OBSERVANCE

UNITED NATIONS HEADQUARTERS
NEW YORK, NEW YORK
18 OCTOBER 2006


Mr. Secretary-General,
Mr. Director-General of the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Excellencies,
Ladies and Gentlemen,

I am pleased to join you for this year's observance of the World Food Day. At the outset, I would like to thank Dr. Jacques Diouf for inviting me to participate in this important event.

On this day, we commemorate the founding of the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in Canada in 1945. This commemoration comes at a time when the world is in urgent need to make investment in agriculture and food security a priority.

We have made steady progress towards achieving the first Millennium Development Goal; namely, the goal of reducing by half the proportion of people living in abject poverty and hunger, by the year 2015.

Yet, the progress we have made so far is not fast enough to realize this goal. Today an estimated 850 million people are still undernourished around the world. Most of them live in rural areas, and depend on small scale agriculture.

Excellencies,
Ladies and Gentlemen,

The causes of food insecurity are complex. Investment in agriculture alone will not be enough to tackle this challenge. Rather, we need to integrate health, education and environmental concerns into our approach. This can only be achieved by establishing stronger partnerships between the private and the public sector. Only then will we be able to deliver more effective progress.

I have noted the FAO's report on the "State of Food Security in the World". It suggests that only Latin America and the Caribbean are capable of reaching the first Millennium Development Goal given their current rate of progress. The Asia-Pacific region may also achieve this goal if their rate of progress is accelerated over the next few years.

Sub-Saharan Africa, however, faces a more dire situation and requires our special attention. At their current pace, this goal will not be realized until the 22nd century. Cycles of conflict, drought and disease have spread famine and threatened the well-being of millions of people. We must work together to reverse these trends by channeling more aid for agriculture and rural development.

On this World Food Day, let us re-affirm our commitment to the eradication of poverty and hunger and invest in Agriculture for Food Security.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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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일본, 100년동안의 조작


1904년 9월 시마네현 어부 나카이 요사부로는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시켜 자신에게 대여해줄 것을 일본 정부에 청원했다. 다음 해 1월28일 일본 정부는 독도를 다케시마라는 이름으로 자국령에 편입시켰고, 이를 시마네현 현보에 고시했다. 나카이는 독도가 한국령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일본은 독도에 러시아함대 감시용 망루를 세웠다. 대한제국 정부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1년 뒤 울릉군수 심흥택의 보고로 뒤늦게 사태를 파악했으나 러-일전쟁의 와중에 일본 군대가 궁성을 점령했고, 외교권은 박탈당한 상태였다. 일본이 주장하는 무주지 영토편입론의 출발이었다.


2차대전에서 패했으나 일본은 영토욕심을 버리지 않았다. 식민지는 돌려주지만 19세기 이래 영토로 편입한 섬들은 차지하겠다는 의도였다.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발굴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은 1946~7년간 모두 8개 도서지역에 대한 자료를 만들어 연합국에 배포했다. 1947년 6월 작성된 팸플릿은 독도는 물론 울릉도까지 일본령으로 소개하고 있다. “울릉도에 대해서는 한국이름이 있지만, 다케시마에 대해서는 한국 이름도 없고 한국지도에 표시되어 있지도 않다”고 썼다. 명백한 허위정보였다. 한국은 정부수립 이전이었고, 미소·남북·좌우 대립이 치열하던 때였다.


1949년부터 미국 중심의 대일 단독강화가 예견되었다.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평화회담(1951년 9월)의 준비과정에서 미국을 상대로 가능한 모든 로비를 벌였다. 1949년 11월 주일 미 국무부 정치고문이던 윌리엄 시볼드는 독도가 일본령이며 여기에 기상관측소와 레이다기지를 설치하는 안보적 고려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시볼드는 영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일본인 2세와 결혼해 일본에서 오래 법률회사를 운영했던 ‘지일파’였다. 시볼드와 일본수상 요시다 시게루는 한국의 이익을 방해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요시다는 재일 한국인 100만명이 공산주의자·범죄자라며 추방을 주장했고, 한국의 연합국지위 부여에 반대했다. 시볼드는 한-일 관계 정상화를 한, 일 두나라에 맡기자는 일본 쪽 입장을 강조해 한국의 대일 배상·청구권 해결을 원천 봉쇄했다.


일본은 국제조약의 조약 한 구절이 국가운명·이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었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수많은 문서작업들을 진행했다. 심지어 국가차원의 조작문서 작성도 마다하지 않았다. 반면 신생 한국은 정부의 외교적 경험과 시스템이 전무했고, 외교적 자원도 부족했다. 1951년 대마도·독도·파랑도가 한국영토라는 주미 한국대사의 비망록을 접한 존 포스터 덜레스 대통령 특사는 독도와 파랑도의 위치를 문의했다. 대사는 좌표도 모른 채 독도와 파랑도가 동해상에 있다고만 답변했다. 한국 정부는 독도가 샌프란시스코 회담 과정에서 논의된다는 사실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


1952년 초반 일본 외무성은 독도를 미군 폭격연습지로 지정·해제하는 책략을 추진했다. 일본 정부와 미군이 독도를 폭격연습장으로 활용하는 협정을 맺어 독도가 일본의 영토임을 확인케 한다는 것이었다. 일본 국회의사당에서 중의원 의원과 외무성 고위관리들이 버젓이 이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해 7월26일 독도가 미 공군훈련구역으로 선정됐고, 9월15일 독도에서 고기잡이하던 한국어선 광영호가 미군기의 폭격을 받았다.


일본은 한국이 허약하고 위기에 처했을 때 독도를 강점하기 위한 수많은 국가 공문서들을 조작해왔고, 기회를 노려왔다. 5·16 이후 일본은 정통성이 없는 한국 군사정부를 상대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거나 폭파해버리자고 제안했고, 미 국무부 문서를 보면 한국의 최고 권력자들은 이에 동조했다.


독도는 역사적·현실적으로 의문의 여지없는 한국의 영토다. 문제는 한국정부가 팔짱을 끼고 국민들의 정서와 요구를 탓하며 실효적 지배만을 주장했다는 점이다. 그 사이 일본은 국가·민간차원에서 대내외적 선전·홍보는 물론 조사·연구작업을 진행해왔다. 일본이 국가차원의 조작을 시작한 1905년 이후 100년이 흘러 바로 그 시마네현 의회가 독도의 날 조례를 제정했다.


한국은 더 이상 허약했던 몰락 왕조가 아니다. 합리적이지만 단호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적극적인 정부의 조처가 필요하다. 국가이익은 ‘외교’로만 지켜지지 않는다. 국제사회의 정의가 재판정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학계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일본 주장의 근거와 논리를 비판하는 한편 한국의 입장을 증명·강화할 수 있는 제3자적 증거의 발굴과 논리개발에 힘쓸 책임이 있다. 나아가 이를 국제사회에 설득시키는 장기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얼마 전 독도가 한국령임을 표시한 영국 외무성 지도를 찾았을 때, 기쁨과 함께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 바로 이렇게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자료를 한국 정부·학자들이 모르고 있었다는 자괴감 때문이었다. 한편으로 두려움이 일었다. 과연 한국 외교부와 일본 정부·학자 중 누가 먼저 문의할 것인가? 두려움은 현실로 바뀌었다. 일본학자는 자료를 보자고 했지만, 한국정부로부터는 어떠한 문의도 없었다. 부디 한국 외교부가 1905년, 1951년 한국관리들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정병준/목포대 교수(한국 현대사)


[자료출처]
한겨레
http://www.hani.co.kr/section-001000000/2005/03/0010000002005031618472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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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에서 남중국해로 드나드는 길목에 ‘페드라 브랑카’란 이름의 무인도가 있다. 옛 문헌에는 풍랑을 만난 배가 잠시 쉬어가는 곳이란 기록과 심심찮게 배들이 이 섬을 들이받아 좌초했다는 기록이 함께 나온다. 그만큼 통항로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얘기다. 이 섬은 물이 빠져 몸집이 커져봤자 길이 130m, 폭 60m, 면적 8560㎡로 독도의 2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이 작은 섬을 놓고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28년 동안 영유권 분쟁을 벌였다. 이 섬은 19세기 싱가포르 일대를 지배하던 영국의 관리하에 있었고, 식민 지배가 끝난 뒤에는 그 승계자인 싱가포르가 ‘실효 지배’를 계속해 왔다. 분쟁이 시작된 건 1979년 말레이시아 정부가 발간한 공식 지도에 이 섬을 자국 영토로 표시하면서부터였다. 싱가포르는 공식 항의와 함께 섬 주변에서 말레이시아 어선들의 조업활동을 금지시켰다.

협상에서 해결점을 찾지 못한 양국 정부는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단을 따르기로 합의했다. 싱가포르는 영국이 1847년부터 등대 공사를 시작함으로써 그때까지 무주지(無主地)였던 이 섬의 영유권이 처음 확립됐다고 주장했다. 말레이시아는 옛 문헌들을 제시하며 영국이 관할하기 이전부터 조호르 술탄(이슬람 군주)의 지배를 받아온 고유 영토란 주장을 폈다.

ICJ는 지난 5월 판결에서 역사적으로 말레이시아의 고유 영토였다는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유권은 실효지배를 주장해 온 싱가포르에 있다고 판결했다. 결정적 이유는 말레이시아의 묵인이었다. 1953년 말레이시아 정부가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서신을 보낸 이래 79년까지는 단 한번도 싱가포르의 실효지배에 반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토 분쟁에 관한 ICJ의 최근 판례들을 보면 실효지배를 존중하는 추세가 강하다. 그렇다고 이를 독도의 경우에 그대로 적용해 안심할 일은 아니다. 일본은 말레이시아와 달리 52년의 ‘이승만 라인’ 선포 이후 한 해도 빠짐없이 독도가 일본 영토라며 항의해 왔다. 더구나 분쟁의 핵심 쟁점이 구체화된 ‘결정적 기일’ 이후(페드라 브랑카의 경우 79년 이후)에 취한 조치들은 영유권 판단에 효력이 없다는 게 ICJ의 판례다. 독도에 호텔을 짓고 해병대를 파견하자는 발상보다는 냉철한 자세로 국제법적 논리 확립과 사료 연구에 주력하는 게 더욱 절실한 이유다. 물론 제아무리 일본이 ICJ에 의한 해결을 요구해도 우리가 동의하지 않으면 재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국제여론이 언제 어떻게 우리 등을 떠밀지 아무도 모른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

[자료출처]
중앙일보 분수대 2008.7.28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20&Total_ID=3239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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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때 희생된 호주 군인은 2만3400여 명이다. 미군 희생자의 10%도 안 되고 중국군과 비교하면 1% 남짓하다. 그러나 일본 전범을 가장 엄격하게 추궁한 나라는 호주다. 물렁했던 도쿄 전범재판과 달랐다. 호주는 ‘전범’ 외에도 ‘식인 행위’ ‘사체 절단’ 등 35개 항목의 범죄를 모두 처단했다. 일본군의 반인륜적 죄악이 발가벗겨졌다. 전범들은 무더기로 교수형을 당했다. 여기에는 한 장의 사진이 결정적이었다. 뉴기니를 점령한 일본군이 전쟁포로의 목을 참혹하게 자르는 장면이 잡혔다. 끝까지 추적한 호주 정부는 참수된 희생자가 호주군의 레오나르드 시프릿 상사로 밝혀냈다. 이 명백한 물증 앞에 일본은 아무 소리도 못했다.

반 면 도쿄에선 일본 전범들이 한사코 버텼다. 1938년의 난징(南京)대학살이 대표적이다. 현장에 남았던 미국인 의사 로버터 윌슨은 “단테가 말한 지옥이 피와 강간으로 재현되고 있다”는 일기를 남겼다. 재판정도 판결문을 통해 20만 명 이상이 희생됐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전범들은 “민간복으로 위장하고 게릴라전을 벌인 장제스(蔣介石) 군대와 민간인을 혼동해 빚어진 불상사”라고 우겼다. 이후 일본 극우세력은 이 발언을 맹신했다. 중국이 제시한 사진들은 “출처가 의심스럽다”며 외면했고 “애당초 학살은 없었다”고도 했다. 적어도 한 권의 사진첩이 발간되기 전까지는. 일본군 운전병으로 난징에 투입된 무라세 모리야스의 『나의 종군, 중국 전선(私の從軍 中國戰線)』이 그것이다. 그가 직접 찍은 살육 현장 사진들에는 생생한 현장 메모까지 붙어 있다.

독 도 문제는 오랜 싸움이 될 게 뻔하다. 명백한 물증이 나올 때까지 일본은 일단 우기고 본다. 한국이 실효적 지배를 단단히 하면서 차곡차곡 물증을 쌓아가는 게 최선이다. 문제는 외교 라인이다. 미국 지명위원회가 독도 명칭을 리앙쿠르암으로, 한국령에서 아예 주권 미지정 지역으로 변경한 것도 까맣게 몰랐다. 이런 한심한 외교 라인이 집요한 일본을 이길 수 있을까.

참고로 일본은 패전 뒤 혼란 속에서도 외교정보 수집에는 목숨을 걸었다. 맥아더 사령관이 히로히토 일왕과 처음 만나는 사진은 유명하다. 허리에 손을 얹은 맥아더 옆에 긴장된 표정의 일왕이 어깨를 숙이고 있다. 맥아더가 히로히토에 대해 워싱턴에 어떤 보고를 보내느냐는 중요했다. 왕실의 운명이 걸린 문제였다. 일 외무성은 이 비밀서류에 접근하기 위해 혈안이었다. 결국 미 국무부의 기밀문서철을 훔쳐보다 들켰다. 그 대가는 비쌌다. 맥아더는 일왕의 통역관을 해고하고, 곧바로 일왕의 신년사에서 ‘신성(神聖)’이라는 표현을 삭제했다. <에드워드 베르,『히로히토』>

이철호 논설위원

[자료 출처]
중앙일보 2008.7.29 분수대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ctg=20&Total_ID=3240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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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결 인생 ㅋ
[매거진 Esc] 여기자 K의 숨기고 싶은 이야기


한겨레

솔직히 1997년 아이엠에프 위기가 고마울 때가 있다. 98년 대학 졸업반 때 입사시험 봤다 하면 떨어지는 게 일이었다. “이게 다 그 망할 놈의 외환위기 때문이야!”라고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 아이엠에프가 없었다면 아마 남들은 “걔가 좀 그렇지… 쯧쯧” 그랬을 테고, 나 자신도 자괴감 땅굴에 은거해 개구리 잡아먹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단지 피해망상이 아니라는 데는 나름 근거도 있다. 10년 전, 나의 구직 행태를 보면 지금 밥 벌어 먹는 자신이 기특하고 영특하다.

자아실현? 내가 누군지 나도 모르는데 실현은 또 웬말이냐. 늘 뱃속은 헝그리하지만 헝그리 정신은 없는 나에게 ‘기자 아니면 안 돼’라는 포부도 있을 리가 없었다. 일단 밥은 먹고살아야 할 거 아닌가. 원서 접수와 탈락을 반복하다가 드.디.어 서류전형, 필기시험, 험난한 고비를 넘어 임원 면접 보는 날, 정장 좍 빼입고 대기하자니 오금이 저렸다. 면접 임원의 첫 질문. “왜 우리 회사를 지원했어요?” 100가지 예상 질문을 준비하면서 어쩐지 뭔가 빠진 게 하나 있다 싶더라니. 순발력을 발휘해 내가 생각해도 기특한 급답변을 제출했다. “사보 만들려고요.” 순간 정적. 임원도 안됐다는 듯 “우리 사보 안 만드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어느 방송사 시사·교양프로그램 작가로도 지원했다. “어떤 시사·교양프로그램 좋아해요?”(피디들) 아뿔싸. 나는 드라마, 오락 프로그램이 아니면 보지 않아 왔다는 걸 시사·교양프로그램 작가 면접 보며 깨달았다. 우물쭈물하니까 한 피디가 “그냥 좋아하는 프로그램 말해 보세요” 한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순풍산부인과요.” 아예~, 이후 변변한 질문을 받지 못했다.

한 언론사 면접시험장. “뉴스가 뭐라고 생각해요?” “아…, 음…, 그게, 새로운 거요.”(맞지 않나요?) 그 임원, 냉소적으로 묻는다. “그럼 *씨 면접 보는 것도 새로운 건데 국민들한테 뉴스에요?” 그래, 나의 부모님한테나 뉴스겠지. 고개를 주억거리는데 똑같은 질문을 내 옆에 앉은, 이미 우주의 비밀을 깨달았을 듯이 보이는 지원자에게 한다. “네, 뉴스는 세상을 보는 창입니다.” 우악! 뉴스가 바로 저거였구나.

사실 지금 다니는 언론사에서도 처음엔 낙방했다. 다른 지원자들,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고 “그 의견에 반대합니다”라고 말할 때 목소리는 또 어쩌면 그리 청아한지, 반해버렸다. 토론 시험 시간, 다른 지원자들은 눈치 못챘을지 모르는데 사실 나는 토론시험 보는 지원자가 아니라 "이분 말도 맞고 저분 말도 맞다"고 중재하는 사회자가 돼갔다. 떨어질 줄 알고 있었지만, 인간은 죽게 돼 있는 걸 알면서도 사람 죽으면 슬프듯이 불행을 준비한다고 아프지 않다더냐. 낙방 날, 창경궁 돌담 밑에서 똥색깔 낙엽을 비처럼 맞으며 꺼이꺼이 울었더랬다. 그래도 신은 있는지,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데다 마음도 고운 합격자 두 명이 그만두는 바람에 보결로 들어오게 됐다. 그렇게 떨어질 듯 붙으며 시작한 기자 인생은 그만둘 듯 잘릴 듯 또 출근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그러고 보면 매일 아슬아슬 죽을 듯 살아남는 ‘보결 인생’도 보결복이라고 아무나 받겠나 싶으니 내 자신, 이뻐 죽겠다.

기사등록 : 2008-06-18 오후 11:4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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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천재만으론 안된다

권경훈
기초과학지원연구원 프로테옴분석팀 책임연구원


어느새 마흔을 훌쩍 넘는 나이에, 함께 일하던 동료 연구원들도 마흔 전후의 연배들이 되어가면서 대화의 많은 부분이 나이 듦에 대한 얘기가 되어버렸다. 기초과학지원연구원은 다른 연구소에 비해 평균연령이 낮아서 상대적으로 사십대 연구원들이 벌써 나이가 많게 느껴지는 주위 환경 탓도 있겠지만, 다른 연구소의 경우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십이라는 나이에 익숙해지고 보니 요즘은 차라리 이를 즐기는 여유를 발견하게 된다. 나이가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갈 때에는 이십대의 싱싱한 젊음이 좋아 보이고 길에서 만나는 여고생들의 솜털난 뽀얀 얼굴이 유난히 눈에 띄었으나, 이제는 사십대 동료 연구원들의 자신감과 삶에 대한 성찰이 돋보인다.

오랜만에 만나는 대학 동창들에게서도 이제는 세상 구경 뒤에 얻은 은은한 향기가 느껴진다. 젊은 패기 뒤에 숨어있던 서툴음과 어색함들을 벗어버리고 신중함과 넓은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이십대, 삼십대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화려한 꽃을 피우는 시절이라면, 사십대는 꽃이 시들면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위해 열매를 만들어가는 계절이라 하겠다.

과학자로서 노벨상을 탈 아이디어는 이십 대에 만들어야 한다면서, 세상은 나이든 과학자의 무능력함을 내세우려하지만, 묵묵히 연구실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 한발 한발씩 앞으로 나아가는 백발의 과학자가 더욱 부러워지는 때이다. 얼마전 미국 출장에서 만난, 나이 팔십의 한 노교수님이 자신의 몸속에는 나이테가 많을 거라고 하신 농담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나이테 하나하나에는 일생을 자연에 대한 관찰과 탐구로 일관해온 과학자의 연륜이 배어있음을 이제는 알게 됐다.

아직 내 나이 사십. 앞으로 사십 년을 연구에 몰두하며 자연의 비밀을 조금씩 조금씩 캐어내는 기쁨을 계속 누릴 수 있도록 건강한 몸과 맑은 정신을 가질 수 있다면 이보다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연구소들마다 책임연구원의 비중이 늘어나서 연구할 인력은 없고 연구 과제를 따기 위해 돌아다니는 사람들만 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기사의 초점은 연구할 젊은 인력이 없다는 내용이었지만, 반대 입장에서 보면 책임연구원은 연구보다는 과제 수주 및 연구소 운영에 치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들의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후배들이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역할도 물론 중요하지만, 과학기술 연구에 전념하여 후배들을 지도하고 함께 연구를 추진하는 과학자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노벨상을 탈 젊은 과학자가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노벨상은 외국에 유학가서 그곳의 대가들로부터 첨단과학을 배우고 그들과 함께 연구하여 얻은 성과로 개인이 받는 노벨상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영국 맨체스터의 박물관에 전시되어진 산업혁명 당시에 사용하던 기계들을 구경한 적이 있다. 그 박물관에는 많은 영국 학생들이 견학을 하며,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영국의 어린이들은 조상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열정을 보고 배우며 자신이 세계의 과학기술을 주도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그들은 과학이 몇몇 젊은 천재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영국이 세계 최고의 첨단과학기술들을 이루어낸 것은 우리가 역사 속에서 기억하고 있는 유명한 과학자들만의 공이 아니다. 수백 년간 과학을 중시하고 역사와 전통을 이어간 국민 전체의 공인 것이다.

작년 봄 월드컵 경기에서 온 국민을 환호케 한 우리 팀의 승리는 골을 넣은 스타플레이어 혼자서 만든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경기를 면밀히 분석하여 작전을 지시한 감독이 있었고, 자신의 위치에서 맡은 역할을 다하는 수비수가 있었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을 도운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있었다. 과학기술계도 마찬가지다. 연구성과는 경륜을 갖춘 사람들과 패기에 넘치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나가야 한다. 팔순의 노인이 후학들을 가르치는 가운데 빛나는 열매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이 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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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승리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그날 박지성은 필드에 없었다. 박지성 대신 낙점된 선수는 오언 하그리브스. 그는 경기 후 평점 8점을 받았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이 아직 ‘승리를 위해 뺄 수 없는 선수’는 아니라고 판단했고 그 판단은 옳았던 것이다. 직장생활이라고 다르지 않다. 이코노미스트가 ‘직장인이 새겨야 할 박지성 결장의 교훈’을 정리했다.


CEO가 절대 뺄 수 없는 ‘선수’ 되려면

■ 진정으로 한 분야에 프로가 되어야 한다
■ 성과와 평판이 이를 입증해야 한다
■ 자신을 적절히 PR하라
■ 한 사람이라도 영향력 있는 아군을 만들어라
■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라
■ 안정성이 느껴져야 한다(수신제가 치국평천하)
■ 인격적으로 성숙하라
■ 남다른 아이디어 쏟아내고, 문제의 정곡 찔러라
■ 상사와 같이 성장하라
■ 팀 플레이어가 돼라

http://news.joins.com/article/3172457.html?ctg=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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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도 시민 - 사회적 책임 적극 수행해야


최근 ‘대기업사태’를 보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 CSR), 투명경영, 윤리경영, 지속가능경영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된다. 하버드경영대학원의 포터 교수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에 대해 수동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마이크로소프트(MS)가 미국 커뮤니티 대학 연합회(AACC)와 협력해서 수행한 IT인력개발 프로젝트이다. MS는 5년간 매해 5000만 달러를 투자해서 대학의 교육필요를 파악하고 커리큘럼 개발을 도와주는 동시에 교수개발원을 설립했다.

이를 통해 MS는 IT전문인력의 부족문제를 돌파할 수 있었다. 또 매리옷은 실업자들을 위해 지역사회단체와 함께 함께 현장교육과정을 개설하고 훈련한 사람들 90%를 채용했는데 1년 후 이들의 이직률은 여타 직원들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사회의 압력 때문에 마지못해 눈가림식으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사회의 필요를 채워주고 사회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사회와 기업이 공동의 가치를 구현하는 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기업은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가진 법적인 인격체로서 지역공동체의 구성원이자 시민이다.

2003 년 세계경제포럼의 주요주제 가운데 하나가 ‘기업시민정신’(corporate citizenship)이었다. 기업시민정신이란 기업이 기업의 핵심적인 사업 활동, 사회적 투자와 사회공헌 프로그램, 그리고 공공정책에의 참여를 통해서 사회와 환경에 기여하는 것이다. 과연 우리나라는 기업시민정신이 어느 수준일까?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반기업정서’가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기업시민정신을 고취하고 기업과 사회의 통합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생각해 본다.

첫째로, 기업의 CSR에 대한 인식변화와 공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우선 기업은 CSR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또 사회는 기업과 공동의 가치를 실현해가는 파트너라는 인식 아래 활발한 소통이 있어야 한다.

둘째로, 기업은 전략적 CSR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기업이 CSR 투자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사회의 필요를 정확히 분석하고 그에 알맞은 사업 및 프로그램을 디자인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실행해야 할 것이다.

셋째로, 기업과 사회가 CSR의 파트너로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 앞의 사례에서 보듯이 CSR의 기획에서 실행에 이르기까지 기업이 사회와 협의하고 공동으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기업시민정신이 확산하고 기업과 사회가 통합을 이루고 신뢰하고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어 대한민국의 기업들이 세계에서 존경받는 기업시민이 되길 바란다.


기업시민소사이어티 위원장
이장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조인스닷컴(Joins.com)

중앙일보 2008.5.28일자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3164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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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낯선 분이 사진을 몇 장 보내왔다. 큰오색딱따구리의 사진이라 했다. 새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딱따구리라는 말 앞에 붙은 ‘큰오색’이라는 세 음절에 귀가 솔깃해졌다. 딱따구리를 한자말로 탁목조(啄木鳥)라고 부른다는 것 외에 내가 아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분은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그렇다고 조류를 전공한 분은 아니었다. 우연한 기회에 큰오색딱따구리 암수가 둥지를 짓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들이 알을 낳아 키우고, 새끼를 떠나보내기까지 50일간을 기록한 원고가 있다는 것이었다. 큰오색딱따구리는 과연 어떤 놈일까? 그놈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왠지 내 인생이 한 발자국 앞으로 멋지게 나아갈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해서 사진과 원고를 보게 되었는데, 사진으로 본 큰오색딱따구리의 자태는 아름다웠고, 미루나무 구멍 속에 튼 둥지는 매우 신비로웠다. 사진을 들여다볼수록 큰오색딱따구리가 그 길쭉하고 앙증맞은 부리로 내 상상력을 자꾸 콕콕 찍어댔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 큰오색딱따구리가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과정을 세세하게 밝힌 연구가 이루어진 적은 없다고 한다. 전공도 아닌 새를 관찰하는 일 때문에 그분은 어슴푸레한 새벽길을 마다하지 않았고, 비바람 몰아치는 날도, 어두워 오는 저녁 시간에도 큰오색딱따구리를 찾아갔다. 끼니를 대충 때우거나 거르는 일도 잦았다. 새에 미쳐버린 남편과 아버지를 식구들이 반기고 좋아할 리가 없었다.

관찰의 대상인 큰오색딱따구리가 비를 맞는 느낌이 어떤가를 알기 위해 새와 함께 비를 맞아보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놀라웠고, 심히 부끄러웠다. 나는 비에 젖는 풀잎을 시로 노래한 적은 있어도 풀잎의 마음을 알기 위해 비를 맞아본 적이 있던가? 주체와 객체의 합일이니, 자연에의 동화니 하는 상투적인 어휘들을 끌어오는 게 여기서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되고 만다. 이성을 앞세워 체계적인 논리로 무장한 과학이 감성의 영역과 어떻게 만나는지, 어떻게 철학적인 사유와 결합할 수 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될 것 같았다.

큰오색 딱따구리 부부가 애지중지 키운 두 마리의 새끼를 떠나보내는 것으로 50일간의 대장정은 막을 내린다. 새끼가 떠나고 없는 빈 둥지를 아빠는 먹이를 물고 찾아온다. 그러나 부리에 물고 있는 먹이를 물려줄 새끼는 떠나고 없다. 아빠 새의 그 허전함을 충분히 이해하는 관찰자는 메는 가슴을 어쩌지 못해 눈물을 쏟고 만다.

“아빠 새가 첫째와 둘째를 어찌 키워냈는지 잘 아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빠 새가 더 이상 오지 않을 때까지 미루나무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뿐이었지요.”

과학자가 시인이 되는 순간이다.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몰입하고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무엇에 몰두한다는 것, 누군가에게 몰입한다는 것, 그것은 결국은 뜨겁게 사랑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멀게만 여겨졌던 과학과 문학의 거리가 결국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과학 상식에 속하는 일이지만,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소리는 물방울들이 하나하나 깨지면서 내는 소리가 모인 거라고 한다. 또 나무가 새로 잎을 피워내거나 떨어뜨릴 때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고 한다. 나무를 노끈으로 묶거나 필요 이상으로 밤에 불빛을 쪼이면 나무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지만 고금의 시인들이 시의 훌륭한 소재로 채취해 노래해온 것이기도 하다.

봄이 더 깊어지면 나도 한 과학자의 발자국을 좇아 큰오색딱따구리의 둥지를 찾아가 보고 싶어진다. 비록 오색딱따구리는 떠났지만 거기에 그들이 남겨놓은 시의 부스러기가 좀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시 그때 부쩍 자란 큰오색딱따구리 새끼가 둥지를 다시 찾아와 반겨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면서.


안도현 시인·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

[자료출처]
중앙일보 2008.3.29
http://news.joins.com/article/3091117.html?ctg=20

사진출처
경북자연보호협회
http://www.kbccn.co.kr/Community/bbs/list.asp?etcname=board_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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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들이 답한 성공의 제 1요인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MBA 과정에서

우수 기업 CEO를 대상으로

“당신이 성공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요인은 무엇인가?”

라고 질문한 적이 있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93%가

능력, 기회, 운(運)등이 아닌 ‘매너’를 꼽았다.

- 정진홍 중앙일보 논설위원 저,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에서



리더십은 마음을 사는 것입니다.
좋은 매너는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프랑스에서는 매너를
‘삶을 멋지고 성공적으로 영위할 줄 아는 방법’
이라고 정의한다고 합니다.

매너는 배려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로 생각할줄 아는 것이야 말로
매너의 기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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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수집의 왕이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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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영 (트레이스존 대표)   2006/05/30  
    

정 보가 힘이다. 국내에 정보화 사회에 대한 담론이 본격화된 19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한 천 번은 넘게 들었던 이야기다. 그 전에도 여전히 정보는 힘이었고 권력이었지만 지금은 일상 생활까지 그 범주가 확대되어 흔하고 흔하게 정보가 힘이며 권력이며 또한 돈이라는 소리를 한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에게 정보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데 어떤 경우엔 생존과 직결되기도 한다. 훌륭한 정보통이 되는 것은 더 오래, 더 안정적으로, 더 윤택하게 회사 생활을 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엔 정보 수집의 왕이 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정보 수집을 잘 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책도 여러 권 나와 있고 여러분도 나름대로 노하우를 갖고 있을 것이다. 지금 소개하는 방법도 그런 노하우 중 하나다. 솔직히 너무 뻔해서 이쯤이야 나도 안다고 성토해도 무방할 정도로 상식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내 경험"이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이렇게 정보를 수집하고 분류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왔다. 여러분에게 전수하는 이 노하우는 보편적인 충고나 노하우가 아니라 매우 개인적이며 주관적이며 실증적이다. 필자에게는 이 방법이 매우 유용했기에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뉴스 읽기
나 는 많은 정보를 뉴스를 통해 취득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클리핑 도구를 사용하거나 좋은 뉴스만 취합하여 제공하는 그룹의 도움을 받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뉴스를 읽으며 구글이나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뉴스 클리핑 서비스를 이용한다. 그것 외에 특별한 프로그램은 사용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뉴스를 읽을 때 흐름과 관계에 집중하는 편이다. 대개의 사람들도 그렇게 뉴스를 읽는다고 말한다. 많은 뉴스를 반복해서 읽다 보면 어느 고비를 넘어서면서 뉴스가 반복되는 것을 알게 된다. 반복되는 것을 걸러 내며 읽기 시작하면 점차 뉴스를 읽는 속도가 빨라 진다. 점점 더 많은 뉴스를 읽게 되고 생각의 속도도 함께 증가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느끼게 된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

정보 수집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겐 막무가내로 많은 뉴스를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많은 뉴스를 별 생각 없이 읽고 있다면 문제가 있다. 시간을 투자했지만 넘어야 할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뉴스를 재미 삼아 읽는 사람이 아니라 정보 수집을 위해 읽는다면 목표나 목적이 있을 것이다. 그 목표가 무엇이든 아래 다섯 가지 규칙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규칙을 따른다면 더 빠르게 뉴스를 읽을 수 있고 시간 낭비를 줄이며 목표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다..

1. 뉴스를 외워라
어떤 뉴스를 읽은 후 그것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 "NHN의 주가가 떨어졌대요" 그리고 뉴스의 내용을 그대로 주워 섬기거나 아니면 대충 이야기한다. 이런 사례는 뉴스를 읽기는 했지만 외우지 않았을 때 발생한다. 어떤 뉴스는 반드시 내용을 외워야 한다. 대충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뉴스의 논지와 주장, 사실(fact)을 정확히 외워야 한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익 환수를 위해 100억 원 가량의 주식을 매도했고 이에 따라 NHN의 주식이 4포인트 하락했다."라고 외워야 한다.

모든 뉴스를 외울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오늘의 이슈라고 생각하는 뉴스는 대충 읽지 말고 외우겠다는 각오로 읽어야 한다. 여러분에게 세상의 모든 뉴스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 하루에 한 개의 뉴스는 중요하다. 하루에 하나씩 정말 자신에게 중요한 뉴스를 외워라. 이렇게 몇 달이 지나면 여러분은 어떤 업체의 흐름에 대해 뉴스를 읽지 않아도 흐름을 외울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직 그 뉴스에 대한 통찰력은 확보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외움으로써 쌓인 지식은 해당 뉴스의 흐름과 개연성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NHN-다음-네이트닷컴, 이런 식으로 업계의 뉴스를 개연성 있는 정보로 기억하게 된다. 단지 읽기만 한다면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가십거리에 대한 잡다한 정보만 알고 있게 될 것이다.

2. 관련 기사를 읽어라
포 탈이나 뉴스 사이트는 거의 대부분 어떤 기사에 대한 관련 기사 목록을 제공한다. 만약 외워야 할 기사를 발견한다면 반드시 관련 기사를 읽어야 한다. 관련 기사는 외워야 할 기사의 배경 설명이나 관련 업체, 관련 사건을 알려 준다. 관련 기사를 읽음으로써 좀 더 쉽게 핵심 기사를 이해하고 외울 수 있다. 관련 기사를 읽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수집한 정보를 다각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사는 어떤 하나의 사건에 대해 다룬다. 모든 기사가 어떤 사건에 대해 종합 보도를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하나의 사건 당 하나의 기사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하나의 기사만 읽는 것은 어떤 사건에 대해 단편적인 지식을 제공할 뿐 사건의 본말을 알기에는 부족하다. 사건의 시작과 끝을 아는 것은 정보 수집의 핵심 요건 중 하나다. 파편화된 정보는 의미를 갖지 못하며 연관성 있는 정보만 의미가 있다. 어떤 기사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 정보의 가치가 없는 경우가 있다. 또 다른 기사는 매우 짧게 구성되어 있지만 다른 사건과 연계되는 중요 키워드를 포함하고 있을 수 있다. 관련 기사는 여러분이 외워야 할 기사의 연관 키워드를 찾을 수 있도록 한다.

3. 숫자를 외워라
만약 중요한 숫자가 나온다면 반드시 외워라. 2005년 12월 기준 통계청에서 발표한 한국 인터넷 사용자의 총 숫자는 몇 명인가? 3천만 명과 2천만 명의 사이? 국내 포탈의 마켓 사이즈는 얼마인가? 대략 1조원? 야후!가 딜리셔스를 몇 백억 원에 샀다는 걸 외우는 사람은 흔히 본다. 그래서 뭘 어쩌겠다고. 이런 건 외울 필요가 없다. "야후 딜리셔스 인수"라고 뉴스 사이트에서 입력하면 금새 나온다, 3500만 달러라고. 어쩌면 4천만 달러일 수도 있다. 그게 뭐 중요한가. 여러분이 딜리셔스 인수 금액을 반드시 알아야 하는 직업이 아니라면 이런 숫자를 외울 필요는 없다. 대충 알아도 된다.

그러나 여러분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숫자를 모르고 있다면 상당히 문제가 있다. 왜냐면 숫자는 정보 수집의 기준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숫자를 알아야 수집한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여 재 정렬할 수 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넘어서는 웹 서비스를 개발하고 싶다면 그들이 확보하고 있는 사용자 숫자와 하루 방문자 정도는 외우고 있어야 한다. 이런 정보도 뉴스에 나와 있다. "싸이월드 방문자"라고 입력해서 뉴스를 검색해 보라. 이런 숫자는 자신의 업무와 직결되므로 외우고 있어야지 필요할 때 찾아봐서는 안 된다. 한 가지 경계해야 할 점은 숫자가 뉴스마다 다른 경우가 있으며 거짓 숫자인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다른 정보를 교차 분석해서 근접 숫자를 추론해야 한다. 머리 속에 그 숫자가 추론한 숫자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추론한 숫자를 두고 누가 옳다고 싸우는 것만큼 멍청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4. 정보원을 함께 외워라
뉴스는 누가 쓰는가? 분명 사람이 쓴다. 만약 여러분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 기사를 발견했다면 그것을 쓴 사람의 이름을 외워 둬라. 아마 그 사람은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 그런 류의 기사를 또 쓸 가능성이 있다. 가끔 그 기자의 이름으로 뉴스를 검색해서 한 번에 살펴 보는 것도 좋다.

사람의 이름을 외우지 않고 뉴스의 공급처만 외우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 사람들의 즐겨 찾기엔 IT 관련 외신을 보기 위해 ZDNet Korea의 링크가 등록되어 있다. ZDNet Korea의 뉴스는 매우 훌륭하지만 여러분이 늘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ZDNet Korea의 홍길동 기자가 쓴 기사는 여러분에게 늘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럼 그 링크를 만들어라. RSS를 그렇게 이용할 수 있다. 정보는 웹 사이트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다. 웹 사이트는 정보를 쌓아 두는 창고일 뿐이다. 창고 앞에 서서 드나드는 모든 물건을 체크하지 말라. 누가 좋은 물건을 들고 다니는 지 알고 있으면 된다.

5. 써라
매 일 100 개의 뉴스를 읽는 것보다 하나의 기사에 대해 논평하고 정리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 왜냐고? 여러분이 읽는 100 개의 기사는 여러분 혼자가 아니라 적게는 수천 명, 많게는 수백만 명이 읽는다. 포탈이나 신문이나 잡지에서 읽은 기사는 결코 여러분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 기사를 잔뜩 읽고 정보를 수집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냥 많이 읽었을 뿐이다.

외워야 할 정도로 가치 있는 기사를 발견했다면 단순히 외우지 말고 그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써라. 스크랩만 하는 건 의미가 없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그것을 나중에 다시 읽을 것 같은가? 처음엔 매우 힘들겠지만 자주 쓰고 오래 쓰면 점차 쓰기 쉬워진다. 어떤 사람은 짧게 쓸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매우 길게 쓸 것이다. 길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늘 발견한 기사에 대한 글을 오늘 쓰는 게 더 중요하다. 오늘 발견한 기사에 대한 글을 내일 쓰려고 하지 말라. 내일엔 또 다시 내일의 뉴스가 떠 오르는 법이다.


* 흔하게 저지르는 실수
이 다섯 가지 규칙을 외워라. 단지 외우지 말고 실천하라. 오래지 않아 뉴스를 읽는 습관이 바뀌게 되면 스스로 똑똑해 지고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정보 수집의 왕도에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 규칙에 따라 행동했음에도 여전히 과거와 비슷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면 다음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실수는 정말 흔하고 흔하다.

1. 나중에 읽고자 스크랩부터 해 둔다
나중에 읽기 위해 스크랩해 둔 뉴스나 문서는 결코 읽지 못한다. 그래도 스크랩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면 정기적으로 삭제하라. 스크랩한 정보는 집안 구석구석에 쌓여 있는 쓸모 없는 고물과 같다. 완전히 쓸모 없지는 않으므로 언젠가 쓰려니 생각하며 물건을 쌓아 둔다. 그런 물건 중 대부분은 결코 다시 쓰지 못한다. 2GB의 업무 관련 문서를 수집해 두었다며 그걸 읽을 시간이 없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아마 그는 정보 수집과 우표 수집이 헷갈렸나 보다.

2. 외우는 것보다 Know where가 더 중요하다
언 제부터인가 정보를 외우는 것보다 정보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것 즉 know where이 더 중요하다는 막말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80억 개의 웹 문서를 저장하고 있는 구글 조차 당신이 적절한 키워드를 입력하지 않으면 답을 찾지 못한다. 그 키워드를 찾기 위해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찾고자 하는 정보에 대한 정확한 키워드를 외우는 것이다. 그건 기본이다. 기본도 없이 “내겐 검색 엔진만 있으면 되요” 라고 외치는 사람들은 저 바다에 물고기가 가득하니 잡기만 하면 된다고 자신하는 어부와 같다. 일단 외워야 할 것은 외워야 한다. 그런 후에 know where를 외쳐도 상관없다.

3. 매일 새로운 정보를 읽는 것도 벅차다
새 로운 정보는 끝없이 나온다. 아무리 여러분이 명석하다 해도 새로운 정보를 따라 잡을 방법은 없다. 새로운 정보를 따라 잡으려 노력하는 대신 "새로운 정보는 어디서 출발하는가?" 를 생각하라. 그곳을 알게 되고 정보가 터져 나오는 방식을 깨닫게 되면 이제 당신이 새로운 정보를 생산하라. 그러면 더 이상 새로운 정보를 쫓아 다니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다. 정보 수집의 왕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은 스스로 정보를 생산하는 것이다.

정보의 수집, 가공과 응용에 대한 오피스 정글의 법칙은 이러하다,

"좋은 먹이 감이 널려 있는 사냥터를 알고 있다는 것과 사냥을 잘 하는 것은 거의 관계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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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의 독점을 꿈꾸는 대학

이덕환의 과학문화 확대경 (127)

2008년 03월 11일(화)


과학문화 확대경 요즘 대학에도 광풍(狂風)이 불어닥치고 있다. ‘세계적 수준’의 대학을 만든다는 핑계로 대학들이 ‘교수 몰아내기’에 혈안이 되고 있다. 몇몇 이공계 대학에서 경쟁적으로 시작된 교수 몰아내기가 이제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초대형 태풍으로 변해 가고 있다.

물 론 아직도 교수 몰아내기는 이공계에만 한정된 일이고, 퇴출의 근거는 아직도 논문뿐이다. 교수 몰아내기에 이어서 ‘외국인 교수 모셔오기’ 경쟁도 시작될 모양이다. 이제는 무차별적인 교수 몰아내기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잦아들고 있다. 그런 지적은 변화를 거부하면서 현실에 안주하려는 무능한 ‘수구골통’의 몸부림으로 비난을 받는 형편이다.

물론 대학이 변해야 한다

우 리 대학이 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단순히 변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야말로 혁명이 필요한 형편이다. 대학 입시에서 제도, 운영, 관리에 이르는 모든 것이 문제다. 심지어 우리 사회에서 대학의 진정한 존재 이유도 분명하지 않다. 대학의 존재 이유에 대한 해석은 그야말로 백인백색(百人百色)이다. 정부, 대학 운영자, 교수, 학생, 직원들이 모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교수의 연구 성과 부족이 문제의 핵심이 돼버렸다.

최근에는 우리에게 ‘세계적 대학’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세계적 대학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외국 언론사의 평가 순위에 올라가야 한다는 정도가 고작이다.

우 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대학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없다. 더욱이 교수 몰아내기와 외국인 교수 모셔오기로 그런 대학을 만들 수 있을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그저 다른 대학이 그렇게 하니까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을 뿐이다. 정말 위험한 상황이다.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마구 몰려가고 있는 기막힌 형국이다.

대학의 조직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경우도 있다. 연구 성과를 강조하는 개혁을 추진하면서 정작 대학 연구의 핵심인 대학원 조직을 해체해버린 대학도 있다. 인재를 길러내는 대학의 ‘운영’을 이익을 추구하는 ‘경영’과 혼동하는 경우도 있다. 개혁을 핑계로 대학을 마구 휘저어 놓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면서 대학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역량을 가진 총장이 필요하다.

대학의 교육 기능도 중요하다

대학의 연구력은 중요하다. 연구를 외면한 대학은 진정한 대학이라고 할 수 없다. 대학의 연구력은 교수의 능력과 노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의 경우에는 사정이 더욱 절박하다. 이공계 박사급 인력의 80퍼센트가 대학에 집중되어 있는 형편에 이공계 교수가 연구를 외면하면 우리나라 과학기술 전체가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다고 대학이 연구 기능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대학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갈 고급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대학에서의 연구도 궁극적으로 학생을 교육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현재의 상황이 걱정스러운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어느 대학이나 교수의 성과 평가는 연구 성과에만 집중되어 있고, 그 중에서도 연구 논문의 양(量)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결국 연구에 게으른 교수의 퇴출 압력은 교수들에게 교육을 외면하게 만들고 있다. 공연한 걱정이 아니다. 실제로 우리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명백한 현실이다.

인재의 독점은 경계해야

현 재의 교수 몰아내기 바람이 걱정스러운 이유는 또 있다. 사실 교수의 퇴출 바람에 앞서 지난 몇 년 동안 일부 상위권 대학들은 중하위권 대학에서 애써 길러놓은 유능한 교수들을 싹쓸이해왔다. 지극히 이기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정부가 소속 교수들의 평균 연구 업적을 기준으로 대규모 지원을 해주었기 때문에 나타난 일이었다.

결국 상위권 대학들은 자신들의 연구 업적을 향상시키거나 유능한 젊은 교수들을 발굴하려는 노력 대신 중하위권 대학에서 능력이 검증된 교수들을 싹쓸이 해버리는 길을 선택했다. 중하위권 대학이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이 제 유능한 교수 인력을 독점해버린 일부 대학이 정말 분통 터지는 주문을 하고 있다. 중하위권 대학이 자신들의 학교에서 몰아낸 교수들을 받아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하위권 대학을 직접 찾아가서 그런 주문을 하는 총장도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일이다. 세계적 대학을 핑계로 모든 것을 독점해야 한다는 뜻일 뿐이다. 그동안 정부와 사회로부터의 지원을 독점한 것으로도 부족해서 이제는 남이 길러놓은 인재까지 독점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위권 대학의 인재 독점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필요하다. 상위권 대학은 젊은 인재의 발굴 기능을 포기해버리고 있다. 결국 젊은 과학자가 원하는 직장을 얻기는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유학 중인 우리 인재들 중에서 절반 이상이 귀국을 포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단순히 자녀 교육 때문에 귀국을 포기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더욱이 중하위권 대학이 언제까지나 젊은 과학자들의 능력 검증 기관 역할을 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젠가는 그런 대학들 자체가 퇴출될 것이 분명하다. 교수 퇴출의 바람이 이공계 대학만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도 심각하다. 외환위기 이후에 시작되었던 이공계 기피 현상이 되살아날 수도 있는 일이다.

대학의 변화는 꼭 필요하다. 그렇다고 모든 변화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일본을 흉내낸 법학전문대학원의 경우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남이 장에 간다고 거름을 지고 따라가는 식의 개혁으로는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변화가 불가능하다. ‘교수 몰아내기’와 ‘외국인 모셔오기’는 인재가 턱없이 부족한 우리 사회에는 맞지 않는 남의 전통이다. 변화의 방향과 방법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 사이언스타임즈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 duckhwan@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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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인의가 있을 뿐이다 亦有仁義而已矣!



“맹자가 양혜왕(위나라 혜왕)을 만나 뵈었다. 왕이 말했다. “노인께서 천리를 멀다하지 않고 오셨으니, 역시 장차 내 나라를 이롭게 할 방도가 있으십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하필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역시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무엇이 내 나라를 이롭게 할 것인가’라고 하면 대부들은 ‘무엇이 내 집안을 이롭게 할 것인가’라 하고 사와 서민들은 ‘무엇이 내 몸을 이롭게 할 것인가’라고 하게 될 것이니, 위아래가 서로 이로움을 취하려 들면 나라가 위태로워지게 됩니다.

만승의 나라(병거 만 대를 낼만한 영지의 대국)에서 그 임금을 죽이는 자는 반드시 천승의 나라입니다. 천승의 나라에서 그 공경을 죽이는 자는 반드시 백승의 집입니다. 만승의 나라에서 신하로서 천승을 취하고 천승의 나라에서 신하로서 백승을 취하는 것은 결코 많지 않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의를 뒤로하고 이익을 앞세운다면 빼앗지 않으면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의 마음이 있는데도 자기 부모를 버리는 일은 없으며, 의의 마음이 있는데도 그 군주를 뒷전으로 돌리는 법은 없습니다. 왕께서는 역시 인의를 말씀하셔야 할 것입니다. 하필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孟子見梁惠王. 王曰: “(?)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 孟子對曰: “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王曰: ‘何以利吾國?’ 大夫曰: ‘何以利吾家?’ 士庶人曰: ‘何以利吾身?’ 上下交征利而國危矣. 萬乘之國弑其君者, 必千乘之家, 千乘之國, 弑其君者, 必百乘之家. 萬取千焉, 千取百焉, 不爲不多矣, 苟爲後義而先利, 不奪不?. 未有仁而遺其親者也, 未有義而後其君者也. 王亦曰仁義而已矣, 何必曰利?)(<梁惠王, 上>)




[참고자료]
- 신완역 한글판 맹자, 맹자 지음, 차주환 옮김, 명문당 펴냄 (주자의 주와 한대의 주, 근현대의 연구성과를 종합)
- 맹자, 박경환 옮김, 홍익출판사 펴냄 (읽기 쉬운 현대어 풀이)
- 맹자강설, 이기동 옮김, 성균관대출판부 펴냄 (읽기 쉬운 현대어 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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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사진 - 중앙일보 2000년 10월 16일자 스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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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조선일보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입력 : 2007.12.17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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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연합뉴스 입력 : 2007.12.18 15:44 / 수정 : 2007.12.18 16:09


신문방송은 혼란스러워 하는 국민들에게 항상 분명하게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와인은 이렇게 마시는 거요, 이 영화는 이래서 예술이요.. 하는 태도도 필요할지 모르지만
할 말을 해야할 때에 제대로 하는 것이 언론이다.
언젠가 읽은 이야기 한 토막.

이차대전이 끝난후 독일의 어느 교회에서 히틀러 시대의 사회 고위층이었던 사람이
"우리는 그때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었지만, 말하지 못했습니다." 식의 참회성 발언을 하였다. 예배가 끝난후 한 독일인이 그에게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
"...그걸 알았더라면 이야기를 했었어야지... 난 정말로 히틀러를 믿었단 말이요...
내가 저지를 모든 일을 이제 어쩌란 말이요!"

그런 점에서 중앙일보 송희영 실장의 칼럼도 한 10년은 늦게 발표된 것 같다.
선거 5일전에 대세가 이명박일 때  이런 글을 쓰기는 쉬울테니까.

[송희영 칼럼] 김경준씨와 '검은 머리 외국인'들

송희영 논설실장
입력 : 2007.12.14 19:10 / 수정 : 2007.12.14 22:49

국내 금융계로서는 BBK 김경준씨가 구속 기소된 사건이야말로 한 시대의 마감이다. 대선 판의 정치적 싸움과 법률적 다툼은 별개로 치더라도, 지난 10년간 금융계에 더러운 흙탕물을 일으켜 온 사악한 ‘검은 머리 외국인들’에 대한 시끄러운 장례식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요 즘 증권가에서 ‘검은 머리 외국인’이란 한국의 기관 투자가나 대주주, 그리고 큰손 투자자들이 버진 아일랜드나 말레이시아 라부안처럼 세금을 내지 않는 곳에 역외(域外)펀드를 만들어 국내 증권에 투자하는 가짜 외국인 투자자를 통칭한다.

하지만 원조(元祖)격 검은 머리 외국인은 외환 위기로 온 나라가 헐떡거리던 10년 전, 산타클로스처럼 위장해 서울에 들어와 온갖 금융 비리를 저질렀던 교포 2세나 유학파 MBA(경영대학원 학위) 소지자들이다.

김경준씨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들어왔던 원조 검은 머리 외국인들은 월 스트리트 경력이나 명문대 MBA를 앞세워 달러 부족에 허덕이던 은행과 대기업에 접근했었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많았다.

교포 2세든, 유학파든 그럴듯한 월 스트리트 금융 회사의 명함을 갖고 귀국했다. 거기에는 ‘바이스 프레지던트(Vice President)’나 ‘컨설턴트’, ‘디렉터(Director)’라고 국내 금융계에는 낯선 직책이 찍혀 있었다.

바 이스 프레지던트라면 미국 은행에서는 대리부터 과장, 차장, 부장, 부행장까지도 붙일 수 있는 직책이지만, 그들은 그렇게 겸손하게 처신하지 않았다. 학력과 능력이 출중해 젊은 나이에 큰 권한을 가진 고위직에 고속 승진한 듯 행세했다.

번쩍이는 명함이 없었던 인물은 홍콩이나 싱가포르에서 들어왔다. 어느 유명 연예인의 남편은 홍콩에서 어마어마한 달러 자산을 굴리는 선진 금융의 달인(達人)으로 홍보했다. 실은 국내 부자들이 빼내간 돈을 관리했건만, 기자들에게는 월 스트리트 경험을 배경으로 홍콩에 자리잡은 국제적인 금융인인 듯 으스댔다.

그들은 대개 하얏트나 힐튼, 신라 같은 특급 호텔의 값비싼 스위트 룸에 장기간 투숙했다. 아니면 월 임대료 1000만원 안팎의 고급 빌라를 썼다. 어수룩한 한국 고객에게 마치 조지 소로스나 워런 버핏의 직계 후손인 듯한 신뢰감을 주려는 계산이었다.

그들 중 누군가는 당시 ‘왕처럼 살고 있소’라며 고급 위스키와 미인, 최고급 승용차로 호강하는 서울 생활을 적은 이메일을 미국 본사 동료들에게 돌리기도 했었다.

일하는 방식이나 협상법도 특이했다. 실무자를 생략한 채 곧바로 은행장을 상대했고, 총수를 직접 공략하는 일이 잦았다. 장관실에 들락거리던 인물도 있었고, 거래 당사자보다 청와대 고위 관료나 권력 실세와 담판 짓는 사람도 있었다.

내일 부도날지 모를 다급한 처지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이런 게 미국식 스피드 경영이고, 월 스트리트 방식인가’라며 끌려가는 형국이었다.

그 들이 소개한 ‘선진 금융 기법’ 중에는 야릇한 불법 거래가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외국에 페이퍼 컴퍼니(가공 회사)를 세우고, 국내에서 돈을 빼내 역외(域外)펀드를 만들고 나면 전환사채(CB)나 신주 인수권부 채권(BW)이라는 이름으로 재포장했다. 대기업, 금융회사가 외자 유치했다고 홍보한 발표 중 상당수는 이런 세탁 공정을 거쳐 원화가 달러화로 둔갑해 다시 들어왔었다.

그 러다 5 년 전 큰 사기 사건이 홍콩에서 터졌다. 어느 한국인이 홍콩에서 LG투자증권에 12개 계좌를 터놓고 삼성전자 주식 1700억원어치를 대거 사들였다. 외국인 투자자로 행세하던 그는 매수 후 주식대금을 내지 않고 사라졌다. 전형적인 주가 조작이었다.

스티브 리라는 론스타 한국법인 사장도 검은 머리 외국인 중 악덕의 전형(典型)으로 꼽힌다. 하버드 MBA 출신인 그는 주가 조작 혐의는 물론 가족 명의로 적지 않은 회사 돈을 빼돌렸다가 검찰이 추적하자 미국으로 도망쳤다.

교 포 2세나 유학파 MBA 출신 대다수는 서울에서 건전한 금융 활동을 해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홍콩, 뉴욕에서 역량을 과시 중인 한국계 금융인이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달러에 목말랐던 그 시절, 김경준씨의 동지들은 월 스트리트의 무법자들이 써먹었던 기발한 범죄 기법을 한국 땅에 부활시켰다.

산전수전 다 겪은 한국 금융계는 이제 웬만한 외국인 투자자나 역외펀드에는 속지 않을 만큼 컸다. 하지만 BBK 사건은 다시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결산서다. 정치권과 검찰, 사기꾼 가족, 변호사들이 아옹다옹 다투는 속에서 금융인들은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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