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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천재만으론 안된다

권경훈
기초과학지원연구원 프로테옴분석팀 책임연구원


어느새 마흔을 훌쩍 넘는 나이에, 함께 일하던 동료 연구원들도 마흔 전후의 연배들이 되어가면서 대화의 많은 부분이 나이 듦에 대한 얘기가 되어버렸다. 기초과학지원연구원은 다른 연구소에 비해 평균연령이 낮아서 상대적으로 사십대 연구원들이 벌써 나이가 많게 느껴지는 주위 환경 탓도 있겠지만, 다른 연구소의 경우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십이라는 나이에 익숙해지고 보니 요즘은 차라리 이를 즐기는 여유를 발견하게 된다. 나이가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갈 때에는 이십대의 싱싱한 젊음이 좋아 보이고 길에서 만나는 여고생들의 솜털난 뽀얀 얼굴이 유난히 눈에 띄었으나, 이제는 사십대 동료 연구원들의 자신감과 삶에 대한 성찰이 돋보인다.

오랜만에 만나는 대학 동창들에게서도 이제는 세상 구경 뒤에 얻은 은은한 향기가 느껴진다. 젊은 패기 뒤에 숨어있던 서툴음과 어색함들을 벗어버리고 신중함과 넓은 안목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이십대, 삼십대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화려한 꽃을 피우는 시절이라면, 사십대는 꽃이 시들면서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위해 열매를 만들어가는 계절이라 하겠다.

과학자로서 노벨상을 탈 아이디어는 이십 대에 만들어야 한다면서, 세상은 나이든 과학자의 무능력함을 내세우려하지만, 묵묵히 연구실에서 자신의 꿈을 위해 한발 한발씩 앞으로 나아가는 백발의 과학자가 더욱 부러워지는 때이다. 얼마전 미국 출장에서 만난, 나이 팔십의 한 노교수님이 자신의 몸속에는 나이테가 많을 거라고 하신 농담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 나이테 하나하나에는 일생을 자연에 대한 관찰과 탐구로 일관해온 과학자의 연륜이 배어있음을 이제는 알게 됐다.

아직 내 나이 사십. 앞으로 사십 년을 연구에 몰두하며 자연의 비밀을 조금씩 조금씩 캐어내는 기쁨을 계속 누릴 수 있도록 건강한 몸과 맑은 정신을 가질 수 있다면 이보다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

연구소들마다 책임연구원의 비중이 늘어나서 연구할 인력은 없고 연구 과제를 따기 위해 돌아다니는 사람들만 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기사의 초점은 연구할 젊은 인력이 없다는 내용이었지만, 반대 입장에서 보면 책임연구원은 연구보다는 과제 수주 및 연구소 운영에 치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우리들의 상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후배들이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역할도 물론 중요하지만, 과학기술 연구에 전념하여 후배들을 지도하고 함께 연구를 추진하는 과학자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노벨상을 탈 젊은 과학자가 나오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노벨상은 외국에 유학가서 그곳의 대가들로부터 첨단과학을 배우고 그들과 함께 연구하여 얻은 성과로 개인이 받는 노벨상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영국 맨체스터의 박물관에 전시되어진 산업혁명 당시에 사용하던 기계들을 구경한 적이 있다. 그 박물관에는 많은 영국 학생들이 견학을 하며,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영국의 어린이들은 조상들의 과학기술에 대한 열정을 보고 배우며 자신이 세계의 과학기술을 주도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그들은 과학이 몇몇 젊은 천재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는 듯 했다. 영국이 세계 최고의 첨단과학기술들을 이루어낸 것은 우리가 역사 속에서 기억하고 있는 유명한 과학자들만의 공이 아니다. 수백 년간 과학을 중시하고 역사와 전통을 이어간 국민 전체의 공인 것이다.

작년 봄 월드컵 경기에서 온 국민을 환호케 한 우리 팀의 승리는 골을 넣은 스타플레이어 혼자서 만든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경기를 면밀히 분석하여 작전을 지시한 감독이 있었고, 자신의 위치에서 맡은 역할을 다하는 수비수가 있었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을 도운 수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있었다. 과학기술계도 마찬가지다. 연구성과는 경륜을 갖춘 사람들과 패기에 넘치는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나가야 한다. 팔순의 노인이 후학들을 가르치는 가운데 빛나는 열매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이 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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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izy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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