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문학과 과학의 거리
ysl* 컨텐츠/그한마디 / 2008. 3. 29. 16:50
몇 달 전에 낯선 분이 사진을 몇 장 보내왔다. 큰오색딱따구리의 사진이라 했다. 새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딱따구리라는 말 앞에
붙은 ‘큰오색’이라는 세 음절에 귀가 솔깃해졌다. 딱따구리를 한자말로 탁목조(啄木鳥)라고 부른다는 것 외에 내가 아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분은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그렇다고 조류를 전공한 분은 아니었다. 우연한 기회에 큰오색딱따구리 암수가 둥지를 짓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들이 알을 낳아 키우고, 새끼를 떠나보내기까지 50일간을 기록한 원고가 있다는 것이었다. 큰오색딱따구리는 과연 어떤 놈일까? 그놈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왠지 내 인생이 한 발자국 앞으로 멋지게 나아갈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해서 사진과 원고를 보게 되었는데, 사진으로 본 큰오색딱따구리의 자태는 아름다웠고, 미루나무 구멍 속에 튼 둥지는 매우 신비로웠다. 사진을 들여다볼수록 큰오색딱따구리가 그 길쭉하고 앙증맞은 부리로 내 상상력을 자꾸 콕콕 찍어댔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 큰오색딱따구리가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과정을 세세하게 밝힌 연구가 이루어진 적은 없다고 한다. 전공도 아닌 새를 관찰하는 일 때문에 그분은 어슴푸레한 새벽길을 마다하지 않았고, 비바람 몰아치는 날도, 어두워 오는 저녁 시간에도 큰오색딱따구리를 찾아갔다. 끼니를 대충 때우거나 거르는 일도 잦았다. 새에 미쳐버린 남편과 아버지를 식구들이 반기고 좋아할 리가 없었다.
관찰의 대상인 큰오색딱따구리가 비를 맞는 느낌이 어떤가를 알기 위해 새와 함께 비를 맞아보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놀라웠고, 심히 부끄러웠다. 나는 비에 젖는 풀잎을 시로 노래한 적은 있어도 풀잎의 마음을 알기 위해 비를 맞아본 적이 있던가? 주체와 객체의 합일이니, 자연에의 동화니 하는 상투적인 어휘들을 끌어오는 게 여기서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되고 만다. 이성을 앞세워 체계적인 논리로 무장한 과학이 감성의 영역과 어떻게 만나는지, 어떻게 철학적인 사유와 결합할 수 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될 것 같았다.
큰오색 딱따구리 부부가 애지중지 키운 두 마리의 새끼를 떠나보내는 것으로 50일간의 대장정은 막을 내린다. 새끼가 떠나고 없는 빈 둥지를 아빠는 먹이를 물고 찾아온다. 그러나 부리에 물고 있는 먹이를 물려줄 새끼는 떠나고 없다. 아빠 새의 그 허전함을 충분히 이해하는 관찰자는 메는 가슴을 어쩌지 못해 눈물을 쏟고 만다.
“아빠 새가 첫째와 둘째를 어찌 키워냈는지 잘 아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빠 새가 더 이상 오지 않을 때까지 미루나무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뿐이었지요.”
과학자가 시인이 되는 순간이다.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몰입하고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무엇에 몰두한다는 것, 누군가에게 몰입한다는 것, 그것은 결국은 뜨겁게 사랑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멀게만 여겨졌던 과학과 문학의 거리가 결국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과학 상식에 속하는 일이지만,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소리는 물방울들이 하나하나 깨지면서 내는 소리가 모인 거라고 한다. 또 나무가 새로 잎을 피워내거나 떨어뜨릴 때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고 한다. 나무를 노끈으로 묶거나 필요 이상으로 밤에 불빛을 쪼이면 나무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지만 고금의 시인들이 시의 훌륭한 소재로 채취해 노래해온 것이기도 하다.
봄이 더 깊어지면 나도 한 과학자의 발자국을 좇아 큰오색딱따구리의 둥지를 찾아가 보고 싶어진다. 비록 오색딱따구리는 떠났지만 거기에 그들이 남겨놓은 시의 부스러기가 좀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시 그때 부쩍 자란 큰오색딱따구리 새끼가 둥지를 다시 찾아와 반겨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면서.
안도현 시인·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
[자료출처]
중앙일보 2008.3.29
http://news.joins.com/article/3091117.html?ctg=20
사진출처
경북자연보호협회
http://www.kbccn.co.kr/Community/bbs/list.asp?etcname=board_gallery
그분은 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였다. 그렇다고 조류를 전공한 분은 아니었다. 우연한 기회에 큰오색딱따구리 암수가 둥지를 짓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들이 알을 낳아 키우고, 새끼를 떠나보내기까지 50일간을 기록한 원고가 있다는 것이었다. 큰오색딱따구리는 과연 어떤 놈일까? 그놈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왠지 내 인생이 한 발자국 앞으로 멋지게 나아갈 것만 같았다.
그렇게 해서 사진과 원고를 보게 되었는데, 사진으로 본 큰오색딱따구리의 자태는 아름다웠고, 미루나무 구멍 속에 튼 둥지는 매우 신비로웠다. 사진을 들여다볼수록 큰오색딱따구리가 그 길쭉하고 앙증맞은 부리로 내 상상력을 자꾸 콕콕 찍어댔다.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 큰오색딱따구리가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과정을 세세하게 밝힌 연구가 이루어진 적은 없다고 한다. 전공도 아닌 새를 관찰하는 일 때문에 그분은 어슴푸레한 새벽길을 마다하지 않았고, 비바람 몰아치는 날도, 어두워 오는 저녁 시간에도 큰오색딱따구리를 찾아갔다. 끼니를 대충 때우거나 거르는 일도 잦았다. 새에 미쳐버린 남편과 아버지를 식구들이 반기고 좋아할 리가 없었다.
관찰의 대상인 큰오색딱따구리가 비를 맞는 느낌이 어떤가를 알기 위해 새와 함께 비를 맞아보았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놀라웠고, 심히 부끄러웠다. 나는 비에 젖는 풀잎을 시로 노래한 적은 있어도 풀잎의 마음을 알기 위해 비를 맞아본 적이 있던가? 주체와 객체의 합일이니, 자연에의 동화니 하는 상투적인 어휘들을 끌어오는 게 여기서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되고 만다. 이성을 앞세워 체계적인 논리로 무장한 과학이 감성의 영역과 어떻게 만나는지, 어떻게 철학적인 사유와 결합할 수 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될 것 같았다.
큰오색 딱따구리 부부가 애지중지 키운 두 마리의 새끼를 떠나보내는 것으로 50일간의 대장정은 막을 내린다. 새끼가 떠나고 없는 빈 둥지를 아빠는 먹이를 물고 찾아온다. 그러나 부리에 물고 있는 먹이를 물려줄 새끼는 떠나고 없다. 아빠 새의 그 허전함을 충분히 이해하는 관찰자는 메는 가슴을 어쩌지 못해 눈물을 쏟고 만다.
“아빠 새가 첫째와 둘째를 어찌 키워냈는지 잘 아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빠 새가 더 이상 오지 않을 때까지 미루나무 곁에 함께 있어주는 것뿐이었지요.”
과학자가 시인이 되는 순간이다.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몰입하고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지 않을 수 없다. 무엇에 몰두한다는 것, 누군가에게 몰입한다는 것, 그것은 결국은 뜨겁게 사랑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멀게만 여겨졌던 과학과 문학의 거리가 결국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과학 상식에 속하는 일이지만,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소리는 물방울들이 하나하나 깨지면서 내는 소리가 모인 거라고 한다. 또 나무가 새로 잎을 피워내거나 떨어뜨릴 때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고 한다. 나무를 노끈으로 묶거나 필요 이상으로 밤에 불빛을 쪼이면 나무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지만 고금의 시인들이 시의 훌륭한 소재로 채취해 노래해온 것이기도 하다.
봄이 더 깊어지면 나도 한 과학자의 발자국을 좇아 큰오색딱따구리의 둥지를 찾아가 보고 싶어진다. 비록 오색딱따구리는 떠났지만 거기에 그들이 남겨놓은 시의 부스러기가 좀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혹시 그때 부쩍 자란 큰오색딱따구리 새끼가 둥지를 다시 찾아와 반겨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면서.
안도현 시인·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
[자료출처]
중앙일보 2008.3.29
http://news.joins.com/article/3091117.html?ctg=20
사진출처
경북자연보호협회
http://www.kbccn.co.kr/Community/bbs/list.asp?etcname=board_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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