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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럼] 수능을 치른 딸에게

모처럼 늦잠을 자는 너를 보니 비로소 수능을 마쳤다는 것이 실감난다. 아직 대학의 논술이나 면접고사가 남아있긴 하지만 대학으로 가는 가장 높은 고개는 넘어선 것 같구나. 네 휴대전화의 수능일 카운트다운도 사라졌고, 아파트며 인터넷 게시판을 달구던 수능 격려문들도 자취를 감추었다.

주식시장 개장 시간까지 늦출 정도로 수능은 전국적인 거사가 됐다. 직장에 매달리느라 절이나 교회를 찾아 고득점을 기원하는 정성마저 들이지 못한 어미인지라 유난히 시끄러웠던 올 대입시에 더욱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너 또한 7차교육과정 개편의 첫 학년으로 수험과목도 달라진데다 2학기 수시전형을 앞두고 고교등급제 회오리까지 몰아쳐 고3 내내 불안감과 싸워야 했지. 고질병이 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편가르기가 특목고, 서울 강남과 기타학교 등으로 분파돼 너희들에게까지 갈등과 혼란을 불러온 것은 어른들의 커다란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수능과 함께 너희들의 상처도 아물었으면 좋겠구나.



따 져보면 이는 대학으로 대표되는 학벌이 장차 미래를 담보하는 교두보가 되는 서글픈 현실 탓이다. 대학을 나온 젊은이들 가운데에도 실업자가 속출하고 있고, 대학간판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던 시대가 지나갔다고는 해도 여전히 대학은 보통 사람들이 기대어 꿈을 펼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아니겠니.

"세계 150위 안에 드는 대학조차 찾기 어려우면서도 정작 세계 유수의 대학행 티켓을 따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너는 곧잘 나에게 불평하곤 했지.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수험생들을 한 줄로 세워 당락을 결정짓는 기막힌 현실 속에서 너 못지않게 나 역시 일찌감치 대학 입학이 결정된 수시합격생들이나 외국대학 합격생들이 부럽기만 했다.

운동부족과 스트레스로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 몇번씩 교복 단추를 옮겨달면서도 안쓰러워 했던 것은 그때뿐, 아침마다 "엄마, 손이 부어 쥐기가 힘들어"하면서도 학교수업이 끝나면 독서실로 향하는 네게 성적에 신경 쓰지 말고 집에 와서 쉬라는 말 한마디 못한 나였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 오르지 않는 성적 때문에 내심 초조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구나. 단 1분이라도 더 잠자기를 소원하는 너를 모질게 일으켜 세우며 "아침을 먹지 않으면 머리가 맑아지지 않는다"고 야단만 친 나를 용서하렴.

기억나니? 네가 모처럼 TV를 보거나, 밤늦게 음악파일을 내려받느라 컴퓨터에 매달려 있을 때 공연히 다른 식구들에게 짜증을 내던 나를. 나 역시 '고3 엄마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구나. 사실 지천명의 나이에 하루 서너시간밖에 못 자며 네 뒷바라지를 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낮에는 직장, 밤에는 너를 쫓아 독서실로 이어지는 일상에서 피로에 지쳐 차 안에서 새우잠에 빠져든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지. 되풀이하기엔 겁이 나지만, 그러나 결코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은 추억들이다.

어젯밤 수능 답안지를 맞춰보며 너는 때로 웃고, 때론 한숨 지었지. 이제 한 달 후면 등급이 정해진 수능결과가 네게 전달될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렴. 결과보다도 더 소중한 것은 과정이라는 사실을. 수험생으로 지난 시간들은 네가 주체적으로 삶을 운용하는 훈련의 기회였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 네 모습에서 나는 어리광을 떨쳐버린 새로운 너를 보았다. 비록 수능결과가 흡족하지 않아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는 일이 생길지라도, 네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기억하기를. 지난 1년이 우리에게 서로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해준 값진 시간이었다는 것도.

홍은희 논설위원

중앙일보 2004.11.17 18:32 입력 / 2004.11.18 09:31 수정
Posted by wizy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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