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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중독의 공통점/커피

강인선

사 랑과 중독은 비슷하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지만, 누군가를 사랑할 때 마음은 오로지 한 사람을 향해 움직인다. 중독도 마찬가지다. 일단 어딘가에 중독되면, 백약이 무효하다. 내가 중독된 대상, 그것이 아니면 안된다. 나와 커피와의 관계가 그렇다. 홍차도, 녹차도 아니고 꼭 커피여야 한다.

커피 중독자라 하루에 몇잔씩 커피를 마시는데, 몇년 전부터 불어닥친 에스프레스 음료의 유행을 따라 나도 라테(latte)에 열광해왔다. 그러나 ‘라테 효과(latte effect)’라는 말을 들은 후부터는 자제하고 있다. 라테 효과란 매일 마시는 3-4달러짜리 라테값을 20년 동안 저축하면 2만6000달러는 너끈히 모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곰곰 생각해보니 20년까지 갈 것도 없었다. 하루에 3달러짜리 라테 한잔을 30일 동안 마시면 90달러다. 내 주제에 한달에 커피값으로 10만원을 써? 그래서 당장 샌드위치 가게에서 파는 75센트짜리 커피로 전향(?)하고, 특별히 사치를 부리고 싶은 날에만 라테를 마시러 간다. 하지만 내 친구는 20년 후의 2만6000달러를 위해 하루의 기쁨을 포기할 수 없다며 여전히 라테를 마신다.

여기까지 글을 써놓고 나서,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장례식을 취재하러 나갔다가 우연히 시애틀의 스타벅스 본사에서 출장나온 중역을 만나게 됐다. 거리에 몰려든 수많은 인파 중 한명을 ‘찍었을’ 뿐인데, 운도 좋지. 마침 커피 이야기를 쓰고 있던 참이 아닌가.

레이건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화제는 커피로 넘어갔고, 내가 스타벅스 커피가 너무 비싸서 안마신다고 하자 그는 당장 명함을 내놓으라고 난리다. “공짜 쿠폰을 잔뜩 보내줄테니까 걱정말고 마셔요.” 몇번은 공짜지만 결국은 내 돈 내고 마시는 날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한국에 서 스타벅스를 비롯한 커피전문점들은 유명 브랜드의 비싼 커피를 파는, 약간 다른 종류의 카페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국에서 스타벅스는 문화의 변화였다. 뉴욕 등 몇몇 도시를 제외하면, 미국에는 커피만 마시기 위한 장소인 카페가 거의 없었다. 물처럼 아무데서나 마시는 커피가 따로 마실 장소를 마련해 줄 정도로 특별한 존재도 아니거니와, 한국이나 유럽에서처럼 카페에서 차 마시며 시간 보내는 문화가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식사하고 커피 마시러 갈 데가 없어서 참 허전했다. 한국사람들이 이렇게 카페를 그리워하기 때문인지, 워싱턴 인근의 한인타운에서 한국식 카페가 번창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미국사람들에게 비싼 커피를 마시게 만들었고, 앉아서 커피 마시는 법도 가르쳤다. 미국의 커피 전문점 풍경이 한국과 다른 점은 신문을 판다는 것, 그리고 혼자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와 같이 있기 위해 카페에 간다면, 미국 사람들은 혼자 있기 위해 간다. 혼자 커피 마시면서 책 읽거나 노트북 컴퓨터 펼쳐놓고 일하거나 글쓰는 사람들이 참 많다.

한 정치 컬럼니스트는 아예 워싱턴시내의 한 스타벅스에 죽치고 앉아 글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커피 전문점들이 미국인들에게 앉을 공간을 주었더니, 이 사람들은 이 장소를 커피 마시고 사람 만나는 일을 넘어서 뭔가 딴 일을 위해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날 사무실에 가는 길에 스타벅스에 들렀는데, 푹신한 소파에 앉아 신문과 취재자료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다섯시간을 보냈다. 휴대폰으로 전화걸고 받고 하다보니 거기서 일을 다 해버렸다. 옆 자리에서 앉아 있던 60대의 남자는 은퇴한 후 스타벅스에 매일 출근(?)해서 썼던 첫 장편소설을 곧 출간할 예정이라고 했다.

일을 다 했으니 굳이 사무실에 갈 이유가 없어 집으로 돌아가는데, 바로 이 커피 전문점들이 휴대폰과 무선 인터넷서비스와 힘을 합쳐 우리들을 아예 유목민으로 만들어버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을 커피전문점에 중독시키는 것은 때로는 카페인이며, 때로는 커피맛이기도 하지만, 바로 이렇게 라이프 스타일이기도 하다.

주말에도 가끔 두툼한 신문뭉치와 잡지를 싸들고 커피전문점에 간다. 커피 가게의 소파를 기분전환용 서재로 사용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라테값이 아깝지 않다. 커피가 아니라 시설이용료를 지불하는 셈이므로. 그러고 보면 공짜쿠폰이나 카페인 중독보다 더 무서운 것은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다.

<주간조선에 연재하는 '워싱턴라이프'의 5편입니다.>
2004/06/19 11:25 입력 ㅣ 2004/06/19 11:30 최종수정
Posted by wizy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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