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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믿음'의 반어법

[중앙일보] 입력 2010.10.24 21:19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오빠 믿지’가 화제다. 서로 동의하면 상대방의 위치를 추적해 거리와 상호까지 알려주고, 실시간 대화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사흘 만에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인기였다. 나는 ‘오빠 믿지’의 인기는 현실 관계의 불안이 반영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 나 못 믿어? 우리 사이가 이게 다야?”

 관계의 위기가 오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단호한 눈빛으로 단정적인 말투로 이런 말을 하면 “응, 미안하지만 못 믿겠어”라고 하기 참 어렵다.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기만 믿으라고 하는 사람치고 순순히 믿게 되는 사람도 드물다. 믿으라고 말을 하는 것과 정말 믿음이 생기는 것은 정확히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기에 그렇다. ‘오빠 믿지’라는 앱도 믿음이 흔들린 사람들의 항불안제 역할을 한다. 항불안제의 남용은 의존을 부른다.

 관계의 유지는 신뢰가 바탕이다. 신뢰는 양적인 측정이 어렵다. 그보다 리트머스 시험지 같아서 질적으로 색이 변하는 순간이 온다. 이때부터는 무엇을 하더라도 상대를 믿기 어려워진다. 흔들린 신뢰를 되돌리기 위해 상대에게 더 많은 요구를 하게 된다. ‘오빠 믿지’와 같은 앱도 그런 노력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자기만의 공간이 침범당한다는 근본적인 불안을 불러일으켜, 속 깊은 저항감이 발생한다.

 휴대전화로 가장 듣기 싫은 첫마디가 “지금 어디야”라고 한다. 영상통화도 단말기 회사나 통신사가 물량 공세로 홍보를 했지만 즐겨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이들이 영상통화는 왠지 부담스럽다고 기능은 있지만 쓰지 않게 된다고 토로한다. 비슷한 심리다.

  이때 저항감이 강해지면 관계 자체를 포기하는 수도 있다. 관계의 유지보다 개인의 안정감과 정체성 유지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e-메일 비밀번호를 공유하고, 일상생활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아는 것을 사랑이라 믿어서는 안 된다. 사랑이 집착이 되는 것은 순간이고, 자유롭게 숨쉴 공간을 주지 않는 지나치게 밀착된 관계는 오래가기 어렵다. 일심동체의 욕망은 환상일 뿐이다.

  아기는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자지러지게 운다. 엄마가 눈앞에 보여야만 안심을 한다. 몇 년이 지나 대상을 내재화해 마음 안에 간직할 수 있게 되면 당장 자기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사실 신뢰의 색을 쉽게 바꾸는 사람은 배신의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보다 아직 인격적으로 덜 성숙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인간의 성숙은 상대방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믿고 안심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한다. 내 자유만큼 상대의 자유공간을 배려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현대인은 자신감의 결여로 인한 불안을 상대에게 전가하며 기술적으로라도 통제하려고 애를 쓴다. 눈으로 실시간 확인을 한다고 해서 ‘오빠’를 믿게 되는 게 아니다. 도리어 더 확인하고 싶어지고, 불안해질 따름이다. 관계의 확신은 나의 자신감에서 시작한다. 확인하지 않고도 견딜 수 있을 때 믿음은 커진다. 나아가 존재의 안정감이 따른다. 그러니 못 믿겠으면 차라리 그만 만나는 게 정신건강에 낫다. 이게 믿음의 반어법이다.

하 지 현 건국대 의대 교수·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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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홍의 소프트파워] 약해지지 마 !

[중앙일보] 입력 2010.10.23 00:16 / 수정 2010.10.23 00:17

그제 동트기 한 시간 전쯤인 새벽 무렵 머리맡에 놔둔 스마트폰의 벨이 울려 잠을 깼다. 전화를 건 이의 이름이 창에 떠 있었다. 전화를 들어 내가 먼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것이 상대를 덜 무안하게 만들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되레 그의 짐짓 놀라는 표정이 보지 않아도 보이는 것 같았다. 밤새 술을 마신 듯했다. 그는 이름을 대면 알 만한 그룹의 총수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초등학교 1년 선배다. 외로웠던 것 같다. 아니 무척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런 그에게 이 한마디를 마음으로 전해주고 싶었다. “약해지지 마!”

돈 있고 권력 있고 그럴듯해 보여도 외롭고 힘들긴 다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람에겐 저마다 위로가 필요하다. 92세에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해 99세인 올해 첫 시집 『약해지지 마(くじけないで)』를 발간한 시바타 도요. 그녀의 시집은 지난 3월에 발간된 후 6개월 만에 70만 부가 넘게 팔려나가 초베스트셀러가 됐다. 아마도 그 작은 시집엔 ‘위로의 바이러스’가 묻어 있는 것 같다. 그렇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도요의 시가 가진 가장 큰 힘은 위로다. 개개인만이 아니라 이 시대에 대한 위로다. 99년의 세월을 살아온 도요가 말한다. “… 난 괴로운 일도/ 있었지만/ 살아 있어서 좋았어// 너도 약해지지 마.”

1911년 도치기시에서 부유한 가정의 외동딸로 태어난 도요는 열 살 무렵 가세가 기울어 갑자기 학교를 그만뒀다. 이후 전통 료칸과 요리점 등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더부살이를 했다. 그런 와중에 20대에 이미 결혼과 이혼의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33세에 요리사 시바타 에이키치와 다시 결혼해 이듬해 외아들 겐이치를 낳았다. 그 후 재봉일 등 부업까지 해가며 힘겹지만 정직하게 살아왔다. 1992년 남편과 사별한 후 그녀는 우쓰노미야 시내에서 20년 가까이 홀로 생활하고 있다. 그런 그녀가 말한다. “바람이 유리문을 두드려/ 안으로 들어오게 해 주었지/ 그랬더니 햇살까지 들어와/ 셋이서 수다를 떠네// “할머니 혼자서 외롭지 않아?”/ 바람과 햇살이 묻기에/ “인간은 어차피 다 혼자야.”/ 나는 대답했네.”

99세의 도요는 요즘도 새벽 5시에 일어나 몸을 단장하고 집 안 정리를 한다. 그러곤 7시30분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공과금 납부나 장보기, 병원 진료 등 그날의 소소한 일들을 챙긴다. 움직일 땐 바퀴 달린 보조기구에 의지해야 하지만 그녀는 외롭지 않다. “나 말이야,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주면/ 마음속에 저금해 두고 있어// 외롭다고 느낄 때/ 그걸 꺼내/ 힘을 내는 거야// 당신도 지금부터/ 저금해봐/ 연금보다/ 나을 테니까.”

도요도 다른 노인들처럼 “빨리 죽어야 되는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런데 시를 쓰고 나서부터 달라졌다. 그녀는 달라진 마음의 풍경을 이렇게 그렸다. “나 말이야,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어/ 그렇지만 시를 쓰면서/ 사람들에게 격려받으며// 이제는 더 이상/ 우는 소리는 하지 않아// 99세라도/ 사랑은 하는 거야/ 꿈도 꿔/ 구름도 타고 싶은 걸.”

배운 것도 없이 늘 가난했던 일생. 결혼에 한 번 실패했고 두 번째 남편과도 사별한 후 20년 가까이 혼자 살면서 너무 힘들어 죽으려고 한 적도 있었던 노파. 하지만 그 질곡(桎梏) 같은 인생을 헤쳐오며 99년을 살아온 그녀가 잔잔히 들려주는 얘기에 사람들은 감동을 먹고 저마다의 삶을 추스르는 힘을 얻는다. 비록 푸른 혈관이 다 비치는 주름지고 앙상한 손이지만 99세의 그녀가 그 손으로 써낸 평범하나 기적 같은 이야기가 지금 초고령사회의 공포에 짓눌린 일본인들을 위로하고 있다. 이제 그녀의 위로가 현해탄을 건너와 우리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온다. 귀 기울여 들어보라. “인생이란 늘 지금부터야. 그리고 아침은 반드시 찾아와. 그러니 약해지지 마!”

정진홍 소프트파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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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hish Kothari

1. What are the implications for China and India’s emerging status as economic ‘superpowers’, both in Asia and globally? What will this mean for regional solidarity or friction, and for the environment? Will these two countries behave more responsibly than previous and current superpowers, will they be stewards and leaders towards ecological sustainability and peace, or will they continue their initial steps towards being the new colonizers?

 

2. Asia’s history and traditions have elements and lessons that could help resolve the problems that the continent, and humanity in general, is facing, but will it utilize these or forget them in the mad rush towards material and technological growth? Can Asian peoples achieve a combination of wisdom and knowledge from traditional and modern systems, to move towards a saner future?

 

3. As the idea of bioregional or ecoregional governance gains ground, will the Asian nation-state become less important, its political boundaries becoming figuratively or literally dissolved and replaced by new ones comprising of ecologically defined ones? Will Asia be internally reconfigured to match more closely the boundaries of major ecological features and/or self-defined peoples, or will it become even more focused on the politically defined nation-states?
 
Dada Shambhushivananda

1. Moral dilemmas of the future in light of the historical tapestry of Chinese and Indian philosophy- the two civilizations that have lasted for thousands of years. It could be interesting to explore how these civilizations may unfold and face the challenges facing the planet. So, our first task would be to define the possible moral dilemmas & ethical imperatives of the future and then to see what is there in the Oriental philosophies of the past and the present that could aid the sketching of the future.

 

2. What alternative economic and political futures are possible inAsia in light of belief systems prevailing in Asia? Is "Asian renaissance" a possibility? What could hold Asia back ? What could be the building blocks of an Asia-led global renaissance? What are the Asian notions of world leadership ? How could scientific & technological innovations map the Asian future?

 

3. Oceans, space & bio-sphere are not the paternal property of any single nation or group. The exploration of the hidden wealth of oceans and space raises the same eternal questions of  property rights and responsibilities. Are the resolutions of United Nation sin these areas enough to charter a new chapter of east-west/north-south partnership towards building a free and just world?
 
Dato Dzulkifli

1. As Asia pushes forward into the future, how much of the current global construct could it (re-)shape to make it a more just and fair? In the previous centuries many global agenda were pursued by the industrialised countries of the Global North that invariably put their interest ahead of rest, including Asia, and perpetuating an uneven playing field. Can Asia provide a more equitable leadership?

 

2. Unlike the Western hemisphere, its Eastern counterpart has somehow been fragmented into at least “Near”, “Middle” and “Far” East that ultimately make up much of Asia. To what extend can Asia iron out the apparent differences and become a truly unified global force of the future? Asia and its rich historical, cultural and civilisational experiences can go a long way to celebrate diversity as a major platform towards a globalised world.

 

3. Given that the Confucian, Vedic and Islamic ethics are generally pervasive throughout Asia; how far can they collectively redefined the current global ethics that evolved out during the days of the Renaissance of Western Europe? Today’s global ethics which are failing as indicated by the various global crises extending the ecology, economics and also geo-politics may therefore need to be urgently revisited.
 
Julie Matthew

All questions premised on the assertion that the biggest threat to the future of life on earth is climate change, peak oil etc and the unsustainability of current social, economic and political systems and the role education might play in achieving these ends.

 

1. Alternative visions and models. What is distinctively Asian about Asia? Under globalizing industrial capitalism where can we find distinctive Asian approaches to economy, governance and sustainability? There is a dire need to identify new directions, visions and ways of living sustainably, where can we find approaches that are specifically Asian, and how do they offer distinct economic and political alternatives to what we already have? What role might education play in this task?

         

2. Trust A fundamental problem as Copenhagen demonstrated is a lack of trust between nation-states. In particular different understandings of what is fair. Colonialism established extractive trade relations between Europe and Asian and within Asia itself. These relations enabled the industrial development of the West and uneven development of the Asia. Can an Asian Union make for different economic and political relations? Is trust as significant issue for Asia as for the rest of the world. What role should education play in promoting understanding of historical conditions precursors to distrust?
 
3. Leadership. Many Asian nations are major carbon dioxide emitters. In fact Taiwan produces 1 percent of total global emission output and ranks higher than Japan, South Korea and many western countries in terms of per captia output. Even though Taiwan is not allowed to participate in international climate change organizations/accords such as UNFCCC or Kyoto it has reorientated its climate policy to voluntarily abide by international agreements. Do international accords and policy offer Asia the chance to reposition itself i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 either in terms of international leadership or through the creation of intra- Asian links operating through climate friendly industries and markets, including that of international education?
 
K. V. Kesavan

      In the post cold-war period, the focus of world attention has shifted to Asia which has emerged as the main centre of dynamic economic and technological growth. The dramatic rise of Japan as an economic super power was followed by the impressive strides made by the Asian tigers. The growth trajectories of China and India, if their current tempo is maintained, will add new dimensions to the the emerging economic and security architecture of Asia. For the first time in history, Asia witnesses the presence of three economic powers simultaneously seeking to play key roles in the continent. When one examines the current situation, it would be very difficult to miss certain glaringly contradictory trends. There are strong movements towards economic integration as clearly reflected in the conclusion of many Free Trade /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s. These trends towards closer interdependence will doubtless gather greater momentum in the coming years since there is an increasing interest among Asian countries to build an Asian community. But Asia is also home to diverse problems including those connected with territories, terrorism, ethnic and religious fundamentalism, nuclear proliferation, maritime security, and fierce competition for energy. In my opinion, Asia will face the following three most serious challenges in the coming decades:

 

1. The first serious challenge is that the continent should remain free from the threat of hegemony by any single country. In an effort to promote multipolarity, efforts to build an Asian community are on, but there are serious differences among the key players such as China, Japan and the ASEAN countries. China’s objections to the broadening of the East Asian Summit mechanism have aroused their suspicions about Beijing’s long-term strategies particularly in the Asia-Pacific region. 

 

2. Energy security will pose a major challenge to Asian countries which predominantly depend on external sources of energy for their sustenance. The world will witness an unprecedented rise in energy demands from Asia thanks to the rapidly expanding economies of China, India, Korea and the ASEAN. Energy security can be ensured only if key Asian countries agree on cooperative efforts to ensure stable flow of energy sources at reasonable prices. But so far, they have not been able to formulate any collective strategy on matters like oil pricing, energy conservation, stockpiling, oil exploration, civilian nuclear energy, use of renewable energy sources, etc. On the contrary, competition for energy seems to be intensifying in the continent. Since energy is directly linked to their economic development, it is high time for them to formulate long-term strategies for the maximum utilization of the available energy sources in a cooperative perspective.

 

3. The rise of narrow nationalism coupled with the baggage of history will be another major challenge before Asia. It has been continuously seen how relations between many Asian countries- Japan and China, Japan and Korea, China and India, and India and Pakistan have been weighed down by the lingering memories of past history. They need to come to terms with history in order to ensure their smooth economic progress. Similarly, unbridled nationalism could heighten tensions between countries. We have seen this phenomenon in Sino-Japanese relations in recent times.
 
Major General Muniruzzaman

1. The pace Asian regionalism is much slower than it's economic pace. The course of regionalism is also fragmented in some form making the path of pan Asian unity more difficult to achieve in the short to medium term. Will this stand in the way of rise of Asia and if so what can be done to integrate the continent into a cohesive geographical entity.

 

2. The strategic landscape in Asia is unstable and at time volatile. Much remains to be seen and done in the course of redesigning the role and influence of the major powers. The environment of cooperation or competition in the strategic space will have significant influence on how it shapes it's future political and economic landscape. What will be the path of a sustainable strategic shift that will be conducive to a stable future for Asia.

 

3. The extreme economic divides in Asia both internally in nation states and as a region is a worrying pattern. The massive marginalization of segments of societies is becoming even more glaring as some amass huge wealth. Even with impressive national growth in many countries in Asia the number of poor and ultra-poor continue to rise (ie India has grown at an impressive pace for the past year and yet more than 45% Indians continue to live below the poverty line). Can this imbalanced growth trajectory continue or collapse under social disorder? What can nations do to correct this gross inequality?
 
Ravinder Sidhu

1. Social and gender justice. Gandhi observed that poverty is the worst form of violence. This is not a new cause but one that seems to confound and elude states and societies - how to create opportunities and remove barriers for their most marginalised populations. Gender inequities continue to impinge on the abilities of girls and women to realise their rights to live their lives in dignity and to achieve their potential as citizens.

2. How to build a culture of wisdom and altruism in higher education?

3. The need to establish a political economy of hope without resorting to ethnonationalism, militarism and nucleurization.
 
Sreeram Chaulia

1. As Asian powerhouses are projected to become drivers of global economic growth in the next half century, the energy intensity of their modernisation becomes a central concern for the whole world. Will China, India and fast growing economies of Southeast Asia pollute their way to the status of ‘developed’ economies or is there an alternative model for national and regional rise in wealth and power that is not destructive of the environment? Allied to this problem is the specific issue of different models of industrialisation and service-driven growth, which have different carbon footprints. Also crucial here is the question of popular mobilisation in Asia for ‘green politics’ on the lines of Green Parties, which have done exceedingly well in shifting the discourse on climate change in continental Europe.

 

2. Is it conceivable that the loosely spread out geographical landmass called ‘Asia’ develops a continental identity which breaks down the regionalisation so prevalent in today’s parlance (East Asia, Southeast Asia, South Asia, Central Asia & West Asia)? In the 19th century, Kakuzo Okakura of Japan, Rabindranath Tagore of India, and Sun Yat-Sen of China championed a pan-Asianism that never fructified. Notions that Asians are somehow more spiritual and other-worldly, as well as authority-loving rather than individualistic (‘Asian Values’), have circulated from time to time but  fell by the wayside to nationalistic antagonisms and materialistic ideologies like communism and capitalism. Will Asia remain a geographical monstrosity in the coming half century or will accelerated adoption of capitalism generate a common-market based identity?

 

3. Can Asian states ever arrive at a collective security-like arrangement that can manage intra-Asian conflicts and prevent recurrent cycles of warfare and territorial disputes? Will it take a major Asian war for a ‘Concert of Europe’ (post-Napoleonic Wars)-like security architecture to emerge? With three major powers (China, Japan and India) coexisting uneasily in Asia, and a fourth one likely to emerge if the two Koreas reunite, will Asia become a fiercely competitive terrain in which states ally with others to contain more powerful rivals? Is intense balance of power politics with possible Cold War-like division of Asia into two camps a likelihood? What kind of accommodative international structures need to be constructed to prevent this disastrous outcome?
 
Shin-Eui Park

1. “I’m a Vietnamese American – Colored Woman – Feminist… (Trinh T. Minh-ha, Filmmaker, Post-colonial theorist, Prof.,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

“I’m a Korean resident in Japan – Nationality is South Korea – educated in a Joseon School (National education under the influence of North Korea) – a member of National Football Team of North Korea – Plays for VfL Bochum of Germany 's Bundesliga… (Jong Tae-Se, Football Player)

“I’m a Burmese – Representative of The Migrant Workers Television (MWTV)) in Seoul – Secretary of ‘Burma Action’ in Korea – Vocalist & Guitarist of Stop Crackdown, a Migrant Workers Band in Korea… (Soe Moe Thu, Worker)

 

Globalization, Diaspora, Transnational Phenomena, Multiple Self-Identity, Identity by ‘Location’, Transborder or Transitional Existence, the Question of Identity by asking “Where am I?” rather than “Who am I?”, “What historical, social conflicts surround me?”, “Is it possible to talk about Asian Identities?”, “How are Asian Values presented?”

 

2. In a certain sense, globalization makes it easier for Asian people to share experiences and understanding of cultural differences and diversity, and suggests the possibility of solidarity. In fact, local networks among Asian countries became a frequent phenomenon, due to the decline of nation-state and nationalism. And also this condition can provide a dynamic and plural context in thinking about cultural identity. In particular, ‘Pan-Asianism movement’ is going on a new level through the mass culture, for example with ‘Han (Korean) Wave’ or ‘Il (Japan) Wave’. Dance music brings together Asian youth, and also trendy dramas and pop stars seem to facilitate Asian cultural cohesion. However, can it be enough to represent new Asian cultural identity? Even though it can be said in a discourse of politically neutral cultural exchange, in reality it functioned as an instrument to expand culture market by the notion of a 'cultural dominant'. So how can we be freed from cultural imperialism regenerated by multi-national cultural capitalism? And also how can we develop the autonomy and diversity in the cultural territory, fostered by globalization?

 

3. Culture becomes an object of exchange, naturally, in the globalizing process. The unilateral and ruling relationship between 'colonialism vs. post-colonial' and 'core nation vs. periphery nation' declines, and instead what appears is the interpretation of the variety of lives that people lead. However, what is the true meaning of ‘exchange’?

 

Let's bring up the issue of cultural exchange as 'transversality’ or transversing. Above all things, this concept is rooted in different context from that of the cultural exchange mediated by the concept of 'dominance' and neutrality. While taking full advantages of cultural potential that follows the shifting transnational boundaries of globalization, it is necessary, at the same time, to practice the twofold task overcoming the globalized neo-liberal system. Cultural exchange as ‘transversality’ or transversing can involve not only cultural difference but also the coexistence of cultural imbalance and even cultural contradiction. That's why the phenomena of cultural exchange are multilayered and cannot be explained by one single reason.

 

’Amusing Culture Clash’, ’Difference without Conflict’, ‘Creative Difference Subsisting in/between Plurality’; Could we suggest some of these ‘politics of difference’ for the reflection on Cultural Identity and Asian Values in the future?
 
Talal Al-Balushi

1. In the face of high uncertainty in the extent of the impact and likely multi-dimensional consequences associated with climate change, the concept of green growth becomes all the more important. The concept of green growth has long been discussed in relation to general economic growth and decoupling environmental damage from economic activity. How is the balance achieved between having a successful industrial economy while keeping green growth sustained in Asia?

 

2. Water connects us in the most fundamental way. We cannot survive without it. Moreover, water is intrinsically linked to the most immediate challenges we face today, including food security, health, climate change, economic growth, and poverty alleviation. Water problems in Asia today are severe—one out of five people (700 million) does not have access to safe drinking water and half of the region’s population (1.8 billion people) lacks access to basic sanitation. As population growth and urbanization rates in Asia rise rapidly, stress on the region’s water resources is intensifying. How will Asian government’s coupe and share these issues together?

 

3. The role of healthcare as an important part of the economic infrastructure and is often overlooked. Almost every industrialized country has undertaken some approaches to healthcare reform; few Asian countries have tackled the fundamental economic questions about healthcare, the healthcare workforce, and healthcare investment. This issue needs to be contextualized to the other societal investments that need to be made in education, sustainability and infrastructure. We are dealing with a world that is older, sicker and fatter than it has ever been; and, at the same time, determining the “right” amount of healthcare spend as a percentage of GDP, we have some pretty substantial challenges to address. Therefore, what are the best path forward and the best alternative available?
 
Vahid V. Motlagh

1. Is the GDP growth mentality a sure path toward a desirable future for Asia? Will the future Asians be able to remove the constraint and biases of the shining past and struggling present to open up new worldviews and horizons? Can the East imitate the West and its indicators of development and progress to eventually take over the position of leaders from the West and dominate the new millennium? What could be the relevant metaphors? What are the most underlying and implicit assumptions that we tend to make with regard to the current and future West vs. East dichotomy.

 

2. Will the Eastern languages and cultures be able to nourish and support the emergence of a new kind of intelligence infrastructure and interface system and realize a paradigm shift with regard to the future developments of science and technology? What could be the form and content of such changes? Do we need to invest in alternative R&D projects in research centers, universities, and industries to help realize such a vision?

 

3. If Asia will become the center of global power in the near future which possibilities may emerge from the cultural acceptability of biotechnology applications such as germ line gene therapy, cosmetic manipulations, designer babies, human cloning, and inexpensive genome sequencing among Asian nations. Will there be any relationship between the field of genetics which studies the building blocks of human bodies on the one hand and the field of memetics which studies the building blocks of human cultures?
 
Woo Sung Huh

1. Is there any measure to reduce violences closely connected with 'sensual' pleasures (k?ma), which we often get through our habits of buying, having, and wasting (too much, Affluenza: The All-Consuming Epidemic, 2005)? If there is, is this measure to pose the ethical/political dilemma between "an inalienable right to the pursuit of happiness (or of pleasure/enjoyment) protected under today's democracy" and "being less violent"?

 

2. Is it possible to transform the present UN system into an improved United Nations without any veto power for privileged countries, which is, as Galtung argues, one of preconditions for true globalization and global democracy?

 

3. How do we cope with the seduction of the object or with the Baudrillardian anti-humanism formed through his observation of today's consumer society? Can Indian practices such as meditation recover the subject as a 'peace actor' who assumes full responsibility for what humans see, and what humans enjoy?

 

4. Will all these issues become obsolete by 2060?
 
Young Sik Lee

1. As the climate changes go on, the species that cannot adapt quickly enough will face extinction. We may face one of the greatest periods of mass extinction of species in Earth's entire history. In Asia, the natural resources and biological diversity is ruined at the cost of development. What is proper model for the development and economic growth in Asia and in the world?

 

2. Are the human beings ready to challenge the change?  Unfortunately, everybody's responsibility becomes nobody's. What should we do first to adapt ourselves to survive? In the area of K-12 education, our textbooks can include more environmental issues and topics. However, what is the practical teaching subjects and method for the future generation in Asia?

 

3. The greenhouse gases (especially carbon dioxide) are used to measure the green growth. The concentration of carbon dioxide and several greenhouse gases have increased. Many individuals and countries are taking actions to reduce the production of carbon dioxide. Is there any other (or more directly related) alternative index for the same purp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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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타 오르는 빛의 성전이
                                              정 희 성

그 누가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冠岳)을 보게 하라.
이마가 시원한 봉우리
기슭이마다 어린 예지의 서기(瑞氣)가
오랜 주라기의 지층(地層)을 씻어 내린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리듯이
관악의 이마에 흐르는 보배로운 기름이여
영원한 생명의 터전이여.

겨레의 염염으로 기약한 이 날
헤어졌던 이마를 비로소 마주대고
여기 새로 땅을 열어
한 얼의 슬기를 불 밝히니
"진리는 나의 빛"

온갖 불의와 사악과
어둠의 검은 손이 눈을 가릴 때에도
그 어두움의 정수리를 가르며 빛나던 예지여
역사의 갈피마다 슬기롭던
아 우리의 서울대학교.

만년 웅비(雄飛)의 새 터전
이 영봉(靈峯)과 저 기슭에 어린 서기(瑞氣)들
가슴에 서리담은 민족의 대학
불처럼 일어서는 세계의 대학
이 충만한 빛 기둥을 보아라.

겨레의 뜻으로 기약한 이 날
누가 조국으로 가는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민족의 위대한 상속자
아 기리 빛날 서울대학교
타오르는 빛의 성전(聖殿)에 있으니
누가 길을 묻거든
눈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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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편지가 피싱 메일이군요.

From Mrs Rita Williams

N?[38 Rue Des Martyrs Cocody
Abidjan, Cote d'Ivoire

ATTN:
DEAREST   ONE  OF GOD
I am the above named person from Kuwait . I am married to Mr David Williams, who worked with Kuwait embassy in Ivory Coast for nine years before he died in the year 2004. We were married for eleven years without a child. He died after a brief illness that lasted for only four days.

Before his death we were both born again Christian. Since his death I decided not to remarry or get a child outside my matrimonial home which the Bible is against. When my late husband was alive he deposited the sum of $2. 5 Million (Two Million Five Hundred U.S. Dollars) in the bank here in Abidjan in suspense account.

Presently, the fund is still with the bank. Recently, my Doctor told me that i have serious sickness which is cancer problem. The one that disturbs me most is my stroke sickness. Having known my condition I decided to donate this fund to a church or individual that will utilize this mone y the way I am going to instruct herein. I want a church that will use this fund for orphanages, widows, propagating the word of God and to endeavour that the house of God is maintained.

The Bible made us to understand that blessed is the hand that giveth. I took this decision because I don’t have any child that will inherit this money and my husband relatives are not Christians and I don’t want my husband’s efforts to be used by unbelievers. I don’t want a situation where this money will be used in an ungodly way. This is why I am taking this decision. I am not afraid of death hence i know where I am going. I know that I am going to be in the bosom of the Lord. Exodus 14 VS 14 says that the Lord will fight my case and I shall hold my peace.

I don’t need any telephone communication in this regard because of my health hence the presence of my husband’s relatives is around me always I don't want them to know about this developmen t. With God all things are possible. As soon as I receive your reply I shall give you the contact of the bank here in Abidjan . I want you and the church to always pray for me because the Lord is my shepherd. My happiness is that I lived a life of a worthy Christian. Whoever that wants to serve the Lord must serve him in spirit and Truth. Please always be prayerful all through your life.

Contact me on the above e-mail address for more information’s, any delay in your reply will give me room in sourcing another church or individual for this same purpose. Please assure me that you will act accordingly as I Stated herein. Hoping to receive your reply.

Remain blessed in the Lord.
Yours in Christ,
Mrs Rita Willi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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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學’ 강의하며 다른 학교 폄훼부터 한 이기수 총장에게
고려대 출신 기자가 던지는 고려대 정체성에 대한 질문


나, 고대 나온 남자다. 아내는 고대 나온 것으로 부족해, 그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장인과 장모는 고대에서 함께 공부하다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대학 입학 때부터 지난 18년 동안 나는 고대 근처를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다. 가끔 조깅을 해도 고대 운동장에서 뛴다. 초등학교 5학년인 우리 딸은 세상에 대학교라곤 고대밖에 없는 줄 안다.

제국대, 미션스쿨 그러나 고대는 민족대?

이 글을 쓰고 있는 9월10일, 출근길 지하철에서 붉은 티셔츠의 무리를 보았다. 붉은 악마는 아니고 고대생들이다. 이틀간 열리는 ‘고연전’(어떤 이는 ‘연고전’이라 한다)의 첫날이었다. 저 신촌에서는 푸른 티셔츠의 무리들이 달려오고 있을 테다. 그들을 따라 잠실 야구장, 목동 아이스링크에 가버릴까? 문득 나는 옛 정체성이 그리워졌다.

고연전은 고대생의 집단 정체성이 형성되는 최고의 ‘의례’다. 1993년 가을 고연전을 앞두고, 고대 축구팀 스위퍼 이임생은 국가대표팀 합숙소를 무단 이탈했다. 미국 월드컵 예선전이 코앞이었다. 국가대표 감독은 나가지 말라 했고, 고대 감독은 나오라 했다. 이임생은 태극마크와 월드컵을 포기하고, 붉은 줄무늬 유니폼과 고연전을 택했다. 곧바로 그는 국가대표팀에서 제명됐다. 1-0으로 고대가 이겼다. 이임생은 고대 총장과 함께 연단에 올라 모든 고대생의 환호를 받았다. “고대, 만세!” 그렇게 연호했던 것 같다. 고대의 정체성은 대한민국보다 우선한다.

그 정체성을 포함해 여러 집단 정체성의 융합이 바로 ‘나’다. 나는 집안의 장손이고, 대구에서 자랐으며, PD(방송국 직군 말고 운동권 말이다)들과 어울렸고, 한겨레신문사 기자고, 결국 한국인이다. 각 집단의 정체성을 섞으면 나를 얼추 설명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맘에 쏙 드는 것은 하나도 없다. 막내딸이었다면, 고향이 광주였다면, NL이었다면, 핀란드인이었다면,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이기수 고대 총장은 지난 9월6일 혼란스런 내 정체성의 일부를 설명해주었다. “국립대학(서울대)은 일본이 침략의 방편으로 만든 관립대학이었고, 연세대·이화여대는 기독교 전파의 수단으로 만든 대학이었다. 고려대는 ‘교육을 통해 나라를 구하자’는 건학이념으로 만들었다.” 총장이 직접 강의하는 이른바 ‘고려대學’ 첫 수업의 내용이었다. 서울대·연세대·이화여대 등이 제국대학·미션스쿨의 후신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 총장의 강의에 두 가지 잘못이 있다. 남의 흠을 들춰낸다 하여 내가 잘나지는 것은 아니다. 과거를 치장한다 하여 오늘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다.

고대 설립자 김성수는 가난한 선비 집안 출신이다. 19세기 말, 그의 증조부가 전북 고부의 대지주에게 장가가면서 가세가 폈다. 김씨 집안이 전북 고부 대지주와 연을 맺던 시기, 바로 그 고장에서 관리·지주의 착취에 견디다 못해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다. 김성수 아버지대에 이르러 이 집안은 다시 한번 크게 일어섰다. 일본에 쌀을 수출하고, 경성방직을 세워 만주에 물건을 팔았다. 절대다수의 조선인이 경제적 궁핍의 밑바닥을 체험하던 1910~30년대의 일이다. 1943년 김성수는 이런 말도 했다. “대의에 죽을 때에 황민의 책무는 크다.” “나는 교육자의 양심에서 말한다. 제군아, 의무에 죽으라.” 그가 “교육을 통해 나라를 구하자”는 뜻으로 고대를 세운 것이 맞다 해도, 그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는 제대로 밝힐 필요가 있다.(<오마이뉴스> ‘김성수 집안 재산 축적기’ 참조)

교수는 영어 능력 필수, 와인 마시기 운동…

지난 2009년 11월,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는 김성수의 이름도 올라 있다. 책에 나온 친일 행적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중일전쟁의 의미를 알리는 경성방송국 라디오 시국강좌 참여 △총독부 학무국 주최 전 조선 시국강연대회 참여 △경성군사후원연맹에 1천원 국방헌금 헌납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발기에 참여 △학도지원병 참가를 독려하는 다수의 글 발표…. “민족자본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불가항력’의 논리로 그를 변호하는 이도 적지 않다. 한때의 잘못을 근거로 평생을 매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전과자라 하여 사회에서 영원히 추방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저지른 잘못의 대가는 치러야 한다. 반성하거나 처벌받아야 ‘사회적 갱생’이 가능하다. 김성수는 그런 일 없이 해방 이후 대한민국 부통령까지 지냈다.

경성방직·고려대·동아일보 등을 건립한 김성수가 일제 시기 ‘토착자본가’였던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 하여 곧장 민족자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조선 땅에서 돈을 번 자 가운데는 민중의 고혈을 빨아 일제에 부역하며 일신의 출세를 도모한 ‘매판자본’도 있다. 식민지 조선의 최고 부자였던 그가 독립운동가에게 자금을 댔다는 게 사실이라 해도, 그가 일제에 침략전쟁의 자금을 쾌척한 것 역시 사실이다. 백번 양보해도 김성수는 ‘친일 논란’의 대상이 될지언정, 순수무구한 민족자본가는 아니다. 그 대목을 빼놓고, 제국대학과 미션스쿨을 험담하면, 남들이 코웃음치기 마련이다.

한 세기 전의 ‘친일 여부’를 길게 논할 것 없이 세간의 비웃음을 사는 이유는 오늘에도 있다. 한국사·국문학을 포함해 모든 학과의 신규 교수 임용 때, ‘영어 강의 능력’을 요구하는 대학이 있다. 사석에서 만난 그 대학 인문계열 교수들은 “한국 학생에게 국문학을 가르치는데 왜 영어로 수업해야 하느냐”고 개탄한다. 느닷없이 와인 마시기 운동을 펼치다, 막걸리 열풍이 불자 슬그머니 와인 행사를 접어버린 대학이 있다. 사석에서 만난 그 대학 학생들은 “아무리 부잣집 자제들이 득시글대는 학교라도 어떻게 학생이 와인을 사마시겠느냐”고 개탄한다.

국내에서 최고로 비싼 공대·의대 등록금을 필두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등록금 인상률을 선도한 대학이 있다. 특목고 출신 학생을 집중적으로 입학시키고, 총장이 나서 “기부입학을 찬성한다”고 말하는 대학이 있다. 사석에서 만난 고향 후배들은 “강남 부자들만 가는 대학이 됐으니, 지방 출신은 명함도 못 내밀게 생겼다”고 개탄한다. 이 대학은 지난 10여 년간 가장 ‘탈민족적’이고 ‘탈서민적’인 행보를 최선봉에서 걸어왔다. 권력자의 지배 논리를 관철시키는 게 제국대학이고, 자본주의적 서구 논리를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게 미션스쿨이라면, 고려대는 이들의 ‘건학이념’을 오래전에 끌어안아버렸다.

고려대 교우회는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지지하는 교우회보를 배포했다. 교우회 간부들이 벌금형을 받았다. 그러고도 지난 6·2 지방선거 때는 이 대학 출신 후보들의 지지를 요청하는 전자우편을 교우들에게 보냈다. 이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권력에 줄을 댈 수 없다 하여 ‘고·소·영’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 자기들끼리 권력을 독점하려는 ‘패거리 대학’이라는 비난이 먹혀들 자양분을 쉼 없이 제공하고 있다. 민족 고대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서)民(의)敵’ 고대로 변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정권의 제적 요구를 따르지 않았던 그때

고연전이 치러지지 못한 적이 있다. 1983년 가을이었다. 당시 고연전은 수만 명의 학생이 ‘합법적으로’ 거리에 나설 기회였다. 경기가 끝나면 학생들이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이를 염려한 전두환 정권이 행사를 취소시켰다. 고대생들이 학생회관에서 철야농성을 벌였다. 경찰의 학내 진입과 연행이 불 보듯 뻔했다. 고대 총장이 경찰의 진입을 막았다. 대신 총장은 학내 방송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학생 제군들, 몸을 다치지 마라.” 다음날 학생들은 무사히 학교 밖으로 나갔다. 총장이 나서 당국과 협상한 결과였다.

이듬해 가을 고연전 무렵, 전두환 정권은 총학생회 간부를 제적시키라고 전국 대학에 명령했다. 모든 대학이 그 명령을 따랐다. 오직 고대 총장만 꿈쩍하지 않았다. 그러다 총장직에서 쫓겨났다. 이후 정권마다 총리직 제안이 있었지만 번번이 거절했다. 장준하와 함께 광복군을 이끌었던 그는 김준엽 총장이었다. 그 여파가 남아 있던 1990년대, 고연전이 끝나면 본관 앞 잔디밭에서 퍽퍽 소리가 났다. 만취한 학생이 김성수 동상에 술병을 던지는 소리였다. 치기를 섞어 동상에 올라 볼일을 보는 이도 있었는데, 동상 주변의 깨진 술병 조각에 손을 다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 시절의 고대를 일컬어 머리 나쁘고 가난한 시골 학생만 입학하는 친일 대학이라고 욕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가진 집 자식들의 질펀한 잔치가 돼버린 고연전을 보고, 어떤 이는 축제를 빌려 데모했던 20년 전이 그리울 것이다. 그런 학생들이야말로 고대 정체성의 정수라고 아껴주던 총장도 그리울 것이다. 과거가 아닌 오늘에서, 힘있는 자가 아닌 소외된 자의 편에서, 집단 정체성을 새롭게 가꾸지 못하는 대학을 졸업한 탓에, 나는 내 정체성이 많이 부끄럽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참고자료]
한겨레21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817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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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식 사장, 이렇게 일찍 황망히 떠나야 했나. 자네가 세상 떴다는 말을 전해 듣고 당황스럽고 어쩔 줄 모르겠더군. 몸이 편치 않아 자네의 도움이 절실한 부인 이윤정 여사가 못잊혀 어찌 눈을 감을 수 있었나. 아직 출가를 기다리는 딸이 안타까워 눈이나 제대로 감을 수 있었나. 사람의 운명이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고는 하지만 자네의 뜻하지 않은 별세는 우리 모두를 처연하게 만들었네. 지난 40여년 동안 자네를 비롯한 우리의 삶은 시대의 어두운 광풍과 우리들의 격렬한 맞대응이 씨줄-날줄로 엮여서 우리 시대의 조그만 이정표를 만들어왔네. 그러자니 우리들 자신이야 당사자들이라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내들, 자식들이 겪은 고통스럽고 스산한 삶은 어쩐단 말인가. 우리 자신들이 무능한 고집불통이어서 그랬을까. 자네와 나는 같은 해에 같은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 만났지. 중앙일보라는 재벌신문에 수습기자로 입사해서 처음 만났지. 수습 초기 교육시간에 “당신들 이 기자이기에 앞서 ‘삼성맨’이라는 사실을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편집간부의 강의를 듣고 정신이 들어서 그만두기로 마음먹었었지. 4명이 함께 동아일보로 의기양양하게 옮겼는데 그 가운데 동아자유언론운동으로 자네와 나, 그리고 정영일 변호사가 동아투위원이 되었지. 우리는 뜻이 맞는 여러 선후배 동료들을 만나 함께 뒹굴면서 한없이 사나워지는 독재정권의 자유언론 억압에 맞서 동지애를 일궈나갔지. 귀찮고 어려운 일은 언제나 자네가 자원해서 맡았네. 72년 초겨울이었던가. 신혼 초 자네는 수유리에 단간 방 신혼살림을 차렸었지. 저녁에 벌이던 논의가 부족했던 11기 총각 동기생 몇이 자네 신혼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통금 시간을 넘겨 수줍어하는 새댁과 자네와 함께 한 이불을 덮고 잤었지. 우리들의 무례를 자네는 너그럽게 용서했나. 그런 논의가 무르익어 74년 초봄 33명의 발기인들이 자네의 약수동 집 좁은 방에 무릎을 맞대고 모여 동아언론노동조합을 결성할 때도 자네는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 많은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지 않았던가. 자네의 중학 동기생이자 나의 친구인 김정남은 내가 바깥 세상을 비운 사이에, 지금은 꽤나 유명한 야당 정치인이 된 후배를 자네 집에 숨겨주었다고 했지. 그때 부인 이윤정 여사가 몹시 힘들어 했다는 이야기를 자네가 아닌 정남이에게서 들었네. 남들이 꺼리고 힘들어하는 일을 자네는 표나지 않게 감당했지.
우리 친구들이 모여 토론할 때면 자네는 언제나 악당 역할을 자임하곤 했네. 동아노조 안에서 정부의 의도를 놓고 논의할 때면 자네는 중앙정보부 입장에서 생각하고 주장하는 역할을 해냈지. 해직된 뒤에는 김상만 사장 입장에서 생각하고 주장하는 역할을 했네. 위악적(爲惡的)이라고 보일 만큼 우리를 탄압하고 괴롭히는 정권과 사주의 입장을 세세히 검토함으로써 자네는 우리의 입장을 누가 봐도 설득력 있는 것으로 만들려고 충실히 노력했지. 나는 자네의 그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저 친구는 이 자리보다는 판사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할 사람인데 라고 생각하곤 했네. 자네와 투위의 많은 선배 동료들이 한겨레신문에 가서 열심히 새언론을 만들어 가고 있을 때, 나는 외로운 감정으로 때로는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지. 자네는 편집 책임자로, 때로는 경영 책임자로 예의 그 정열과 진지함으로 밀고 나가더군. 아직 부족하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그때도 얼마나 힘들었겠나. 자네의 헌신과 정열이 헛되지 않아서 한겨레신문은 가장 신뢰받는 신문으로 성장했다네. 자네의 피땀이 배어든 결과물이네. 두식이, 이제 고단한 삶의 무게 모두 내려놓고 편히 가시게나. 어찌 부인과 아이들이 자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러나 이승의 일은 이승 사람들에게 맡기고 발걸음 옮겨 가시게. 아이들도 모두 장성했으니 어머니 잘 모시고 형제자매 사이에도 우애 지키면서 살아갈 것이네. 김두식 사장, 김진지(眞摯) 우리 친구, 자네를 알게 되어 보람 있었네. 자네를 친구 삼아 어렵지만 값있는 한 시절을 살았네. 고맙고 고마웠네. 잘 가시게. 그리고 내세에서는 이승보다는 평안한 삶을 누리시기를 기원드리네. 이부영 전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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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식 선배님!

어찌 이렇게 허무하게 가십니까?

미디어산업에 닥친 변화의 물결을 헤쳐가야 할 한겨레신문사 후배들에게는 오랜 경륜의 도움말이 더욱 절실합니다. 아직 어린 당신의 손자손녀들에게는 재롱을 지켜봐 줄 할아버지의 인자한 미소가 여전히 필요합니다. 그런데 무슨 급한 일이 있으시다고 모두 뿌리 치고 이리 서둘러 떠나십니까? 한겨레신문사의 기초를 세우신 또 한 분 선배님을 오늘 영원히 떠나보내야 하는 이 비통한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김두식 선배님!

이제 선배님을 영결하는 자리에 서고 보니 선배님이 신문사에서 편집위원에서 시작해 대표이사까지 지내는 동안 실천으로 보여주셨던 가르침이 새삼 그리워집니다. 선배님은 기자로서 또 경영자로서 지켜야할 원칙에 대해서는 어떤 양보도 없으셨습니다. 창간 초기 많은 후배들은 그것을 때로 불편해하기도 했지요. 그래서 선배님을 ‘곰바우’라 부르곤 했습니다. 하지만 선배님은 후배들의 그런 지칭에 꿈쩍도 않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렇게 불리는 것을 즐기고 있었던 듯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렇게 원칙을 지키는 길이 한겨레신문사가 살아남는 길이라는 확신 때문이었지요?

선배님!

창간 초 선배님께서 사회교육부 편집위원으로 일하던 시절, 불충분한 팩트를 근거로 어떤 기업체를 비판한 기사가 사회면 머리기사로 나간 적이 있었지요. 가판을 보고 비상이 걸린 해당 기업에서 편집국으로 선배님을 찾아와 기사 내용이 사실과 다르니 기사 크기를 조금만 줄여달라고 부탁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때만 해도 잘못된 경영 관행으로 약점이 많았던 대다수 기업들은 신문에 오보가 나가도 항의 보다는 선처를 호소하는 것이 일반적이던 시절이었지요.

다음날 배달된 신문에서 문제의 기사를 찾아보던 해당 기업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고 합니다. 2~3단 정도로 줄어 있기만 해도 다행으로 생각할 터인데, 신문에서 기사가 아예 빠져있었기 때문이지요. 사회면 머리기사를 통째로 들어내게 만든 것은 기업 사람들이 하지도 않은 부탁이 아니라 팩트의 정확성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선배님의 우직한 소신이었습니다. 당시 언론계 관행에서는 쉽지 않은 이때의 일화는 ‘한겨레신문은 친노동-반자본 성향이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기업체 홍보실 관계자들 사이에 회자되며 이들이 한겨레를 다시 보게 만든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그랬습니다. 의욕에 넘쳐 사실 전달보다는 주장을 앞세우려는 젊은 후배들에게 언제나 ‘곰바우’처럼 팩트를 외치는 선배님은 정말로 통과하기가 어려운 관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후배들에게 “나를 보수 반동으로 불러도 좋다. 그런 나를 납득시킬 수 있는 기사를 써와라”고 하며 팩트에 대해서만은 결코 양보를 하지 않은 곰바우 선배님이 있었기에 창간 초기 이념과잉이던 한겨레신문 편집국은 중심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우직한 곰바우 정신이 오늘의 신뢰도 1위 신문 한겨레의 주춧돌이 됐습니다.

편집국을 떠나 경영으로 옮겨간 뒤로도 선배님의 곰바우 정신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감정과 이념에 앞서 팩트를 확인하라”고 후배들을 다그치던 선배님은 이번엔 “논의와 추측만으로 경영을 할 수는 없다”고 외쳤습니다. 정확한 팩트라는 보도의 원칙에 양보 없던 곰바우 선배님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조직 운영이라는 경영의 원칙에 양보가 없는 곰바우 선배님이 됐습니다. 1992년 근시안적 경영 관행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로 회사발전기획위원회 활동을 지휘해, 경영권 창출, 경영과 편집의 관계 설정, 신규 사업 진출, 각종 사규의 신설과 정비 등이 포함된 한겨레신문사의 중장기 발전전략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당시 상무이사이던 선배님이셨습니다.

창간 때부터 꿈꾸었던 주간지 창간이 <한겨레21>과 <씨네21>로 연이어 열매를 맺은 것도 선배님의 추진력 없이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1994년 말 임원회에 국내외에 전례가 없는 영상주간지 창간을 제안하는 보고서가 제출됐습니다. 그때 한겨레가 영상을 다루는 매체를 내면 창간정신에 어긋난다는 등의 이유로 다른 모든 참석자가 반대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창간에 찬성한 단 한 사람이 바로 선배님이셨습니다. 또한 그 뒤로도 수그러들지 않은 반대론을 무릅쓴 채 과학적인 시장분석보고서를 믿고 영상매체준비팀 발령을 낸 분이 바로 당시 대표이사 선배님이셨습니다.

이처럼 일에 있어서는 양보 없고 엄격한 선배님이셨지만, 근무시간 뒤 회사 주변 허름한 술집들에서 만나는 선배님은 너무나 소탈하고 격의 없어 참 좋았습니다. 대표이사가 되어서도 늘 허름한 점퍼차림에 스스로 ‘굴러다니는 술병’이라고 자처하며 후배 임직원들과 친 형님처럼 격의 없이 술잔을 나누던 모습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김두식 선배님!

퇴사로 몸이 회사를 떠나있던 동안에도 마음만은 늘 한겨레신문사와 후배들 걱정에 어지러우셨으리란 걸 잘 압니다. 하지만 선배님 이제 마음마저 비우고 편히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선배님이 주춧돌을 놓은 한겨레신문사를 저희들이 더욱 신뢰받는 언론으로 지키고 키워나가는 것을 지켜봐주십시오.

선배님, 부디 안녕히 가십시오.

 

한겨레신문사 대표이사 고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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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3초마다 하나씩 볼 수 있다 하여 붙여진 ‘3초 가방’이란 명성의 이 가방과 처음 마주친 것은 1999년 프랑스 파리에 공부하러 갔을 무렵이다. 외환은행 파리 지점이 있는 몽테뉴가 근처에는 루이뷔통 매장이 있다. 은행을 가다 보면, 서울 종로통에서 앞길을 가로막는 “도를 아십니까”류의 사람들처럼 은근슬쩍 다가서는 이들이 있었다. “루이뷔통 가방을 대신 사주면 10만원을 주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다는 호랑이도 아니고, 이 이상야릇한 제안은 도대체 뭐지? 갑자기 딛고 있는 땅이 물컹해지면서 묘한 구역질이 엄습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알고 보니 그건 당시 유학생들 사이에 대유행이던 ‘루이뷔통 알바’였다. 파리에서 루이뷔통 가방을 사서 중국·일본·한국 등에서 다시 고가에 판매하는 중간 판매상들이 극성을 부리자, 파리 매장에서는 1인당 2개 이상의 가방을 구입할 수 없게 제한했다. 그러자 중간 판매상들로부터 대가를 받고 구매를 대행해주는 아르바이트가 생겨났고, 이후 거리에서 사람들을 헌팅해 구매 대행을 종용하는 중간 ‘삐끼’ 알바들이 탄생했다. 유학생들 사이에선 파리 시내 루이뷔통 매장을 한 바퀴 돌며 가방 2개씩 구입하면 한 달치 반찬값이 나오는 이 알바가 급부상 중이었다. 어느 날 가난한 내 룸메이트가 작심하고 이 알바를 나섰다가, 가방 1개도 사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녀의 초라한 행색에 매장에선 한눈에 알바인 것을 알아보고 판매를 거부했던 것이다. 뾰족한 매력을 찾아볼 길 없는, 오로지 루이뷔통일 뿐인 이 가방에 대한 열광과 그것을 둘러싸고 빚어지는 다단계 알바의 현장, 고객의 행색을 보고 판매를 거부하는 매장의 태도는 이 가방에 대한 내 인상을 결정지었다. 그것은 ‘구역질’이었다.

루이뷔통과의 두 번째 만남은 2008년 촛불을 견인한 한 주요 세력으로 <조선일보>로부터 지명되는 영광을 누렸던 요리·생활정보 사이트 ‘82쿡닷컴’에서 이뤄졌다. 삶의 모든 지점에서 ‘정치’를 발견해나가던, 순도 95%로 불꽃같이 정치로 점화돼가던 당시 82쿡의 자유게시판에 드나들던 어느 날, 뜬금없이 루이뷔통 가방 구매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글이 떡하니 올라온다. “이거 살까요, 저거 살까요?” 본인의 나이를 얘기하며 어떤 게 더 나은지를 물어보는, 알고 보니 그 동네에선 익숙히 행해지던 여론조사였다. 왜 이 가방을 사려는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살피기보다 남의 의견을 물어가며 가방을 결정하는지 알 수 없지만…. 1999년의 아찔함이 상기되면서, 나는 “마치 촛불 정국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 일부러 쓴 것 같다”는, 신입회원의 촌티를 내는 댓글을 달고 말았다. 잠시 뒤 목격한 것은 자유게시판의 ‘자유’의 의미를 망각한 이 몰지각한 신입을 질타하는 무수한 댓글들이었다. 나의 지적은 상당히 심각한 대다수 회원들의 반발을 산 것은 물론, 운영진의 긴급회의까지 소집시켰고, 운영진은 이 사태를 계기로 정치방 분리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운영진의 정치방 분리 선언은 이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정치방을 결코 분리시키지 말아달라는 수많은 회원들의 열렬한 항명으로 저지되고, 나는 내 ‘몰지각’으로 정치가 생활로부터 분리될 뻔한 아찔한 사건 앞에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이 울렁거리는 경험 이후, 루이뷔통은 구역질을 넘어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이후 ‘너는 십자수, 나는 명품백’이란 우리 시대의 씁쓸한 격언이 증명하듯, 루이뷔통 가방은 자신의 위대한 사랑을 입증하려는 남성들의 여친에 대한 최고의 선물이 되고, 대학에 입학한 딸이 기죽지 않게 부모가 마련해주는 기초 학용품이 되었다. “이 나이에 명품백 하나 없이 살아왔다”는 말은 청빈하고 검소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을 표상하는 명백한 경구가 되고, 남편의 불륜을 발견하고 울분을 토하는 주부에게 건네는 위로의 댓글 속에는, 남편 카드 들고 나가 당장 명품백부터 하나 지르라는 충동이 설득력 있게 매달리는 현상들이 차곡차곡 밀려왔다.

마지막으로 루이뷔통과 정면으로 마주친 것은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의 청문회장. 그 흔한 명품백 하나 없이 고생만 해온 아내에게 선물로 루이뷔통을 바친 게 뭐가 잘못이냐고 울분에 찬 목소리로 항변하는 총리 후보. 80%의 사다리 아래로 몰락한 계층의 낙인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빼앗을 수 없는 로망으로 자리잡은 이 ‘3초 가방’이 한국 사회에서 지니는 종교와도 같은 의미를 야당 의원은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사랑을 입증하려 여친에게 12개월 카드 할부로 루이뷔통 가방을 바친 청년은 이 장면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김태호로 인해 이뤄진 피할 수 없는 루이뷔통 가방과의 세 번째 만남에서 난 웃을까 울까 망설였다는.

목수정 작가
한겨레 21[2010.09.03 제826호]

[참고자료]
한겨레 21[2010.09.03 제826호]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80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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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삿포로시에는 홋카이도대학 초대 학장을 지낸 윌리엄 클라크의 동상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그는 1876년 당시 황무지였던 홋카이도를 개척하는 데 필요한 농업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미국에서 초빙됐다. 클라크 박사가 삿포로농업학교(현 홋카이도대학의 전신)의 기틀을 세우고 일본을 떠나며 남긴 명언 `젊은이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Boys, be ambitious!)`는 지금까지도 많은 일본인의 금언이 되고 있다. 그가 말한 야망은 돈이나 덧없는 명성을 얻기 위함이 아닌, 참다운 사람이 되기 위한 성취를 말한다.

요즈음 많은 대학교수가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고민에 빠지는 것은 대학의 사명이 시류에 맞게 직업인을 양성하는 것인지, 아니면 대학 본연의 뜻대로 자유인을 키워내는 것인지 하는 것이다. 상아탑은 원래 여유롭게 사고하는 자유인을 길러내는 곳으로 출발했다. 오늘 우리 눈에 비치는 학생들은 학점, 외모, 경력 등 그 어느 면에서나 모자람이 없지만 130여 년 전 황무지를 앞에 두고 클라크 박사가 외쳤던 야망, 호연지기(浩然之氣)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어 안타까울 뿐이다. 물론 시대가 달라졌으니 그래도 괜찮다고 반론을 펼 수도 있겠다.

2009년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은 81.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그러나 대졸자 고용률은 50% 전후에 머물고 있다.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취업 준비생들은 일명 `스펙` 쌓기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인격 형성이나 진정한 자신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실력을 쌓을 여유도 없이 불안한 마음에 스펙만 쫓아다닌다. 이런 스펙 쌓기 열풍은 비단 대학생들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소위 `좋은` 직장을 구하기 위한 대학생들의 다양한 `스펙 업` 활동이, `좋은` 대학에 입학하려는 중ㆍ고등학생은 물론 초등학생에게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직장인들도 일과 후 학원에서 어학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봉사활동을 다니며 스펙을 쌓아야 낙오하지 않는다.

요즈음은 고등학생이 졸업 전부터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기도 한다니 캠퍼스에서 낭만을 즐기며 진리를 논하고 함께 민족의 미래를 고민하던 과거의 대학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물론 스펙을 쌓는 일은 자신의 능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것으로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학생들이 진리를 좇고 자신의 지식을 쌓아 자아를 발견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목표를 두지 않고 자신을 멋들어지게 포장하는 일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데 있다.

포장도 문제지만 그 방법이 더 큰 문제다. 스펙 6종 세트(외국어 점수, 갖가지 자격증, 인턴 경력, 봉사활동, 어학연수, 외모)를 갖추기 위해 봉사도 안 하면서 확인도장이나 받고 돈으로 자격증을 사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하기야 교육을 위한 위장전입은 용서가 된다는 반교육적이고 반법리적 논리가 통하는 사회니 뭔들 못하겠는가.

그러나 책을 보는 것, 봉사활동을 하는 것, 체력을 단련하는 것 등은 목적이어야지 수단이 돼서는 본질이 왜곡되고 만다. "도서관이 신을 대체한다"고 말하는 석학이 있을 정도로 도서관과 책은 한 인간을 완성하는 뿌리인 것을 학생들이 잘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실력은 없으면서 요령과 실속 없는 과대 포장만 남지 않길 바란다.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도 자격증만 있고 문제해결 능력은 부족한 인재를 키워서는 안 된다.

진정한 자기계발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개성과 전문성을 살린 창의적인 스펙 쌓기를 하자. 속은 싸구려이면서 겉만 번지르르한 도금 제품이 아니라 겉은 투박하지만 갈고 닦을수록 빛이 나는 원석을 닮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때 비로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추구하는 능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강태진 객원논설위원 / 서울대 공과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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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사람을 만든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궁금하다면 이것만은 명심해주기 바란다.
지금 당신이 일하는 것은 스스로를 단련하고, 마음을 갈고 닦으며,
삶의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행위라는 것을...
- 이나모리 가즈오(교세라 명예회장), '왜 일하는가‘에서
촌철활인:한치의 혀로 사람을 살린다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던 독일 영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노동은 맡은 일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내적 완성을 위한 과정입니다.
일은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의 마음을 연마하고 인간성을 키워줍니다.”
일본 에도시대 이시다 바이간(石田梅岩)의 제업즉수행(諸業修行) 개념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즉 일류국가 국민들은 일은 필요악이자,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닌,
“기술을 갈고 닦아 연마할 뿐 아니라 마음을 수행하는 과정이며,
자아를 실현하고 인격을 높이는 수단”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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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은 21일에, 80% 이상 출근시 15일 연차유급휴가 등 공지

대졸 신입사원들의 하반기 채용이 임박한 가운데 국내 최고 직장으로 꼽히는 삼성전자에 입사한 신입사원들의 근로계약서가 공개돼 눈길을 끌고 있다.

삼성전자는 그룹 채용사이트인 디어삼성을 통해 하반기 입사가 확정된 직원들에게 '근로계약서 및 서약서'를 오는 19일까지 제출토록 했다. 이것이 마무리돼야 사실상 고용계약이 끝나는 셈이다.

디어삼성에 공개된 이 계약서는 근로계약 8개항, 서약 사항 6개항으로 구성돼 있다. 근로계약 사항에는 △근무지 △근로 및 휴식시간 △휴일 및 연차 유급휴가 △근로의 성실 △임금 △입사후 3개월 시용(試用)기간 적용 △근로계약기간 △기타 등 8개항이 들어있다.

여기에는 하루 8시간의 근무 조건과 8시간 이내 근무시 30분, 8시간 이상 근무시 1시간의 휴식시간을 부여한다고 돼 있다. '근로 및 휴식시간'의 항목에는 근로 기준법 내에서 시간외 근무, 휴일근무, 야근 등을 회사가 명할 수 있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또 주 1회 유급 주휴일을 부여하고, 근로자의 날,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의한 공휴일 중 일요일을 제외한 휴일 및 창립기념일을 유급휴일로 한다고 돼 있다.

1년간 8할 이상을 출근할 경우에는 15일의 연차 유급휴가를 부여하고, 3년 이상 근속한 경우 최초 1년을 초과하는 계속근로연수 2년에 대해 1일간 유급휴가를 가산한다고 적혀 있다.

또 임금은 급여, 설날 및 추석 귀성 여비, 상여(비연봉제에 한해) 등으로 구성돼 있고, 월급은 매월 21일 지급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입사 후 3개월간은 시용(試用) 기간으로 정해 놓고 이 기간 중 실무능력과 태도, 자질, 기타 취업규칙에 정한 사유를 고려해 부적합하다고 판단될 경우 고용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물론 3개월 시용기간 후 고용계약 해지에 대해 어떠한 사실상 법률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서약 사항은 △회사의 규칙과 명령, 지시 준수 △성실 근무 △출장 등의 지시 이행 △사내외 기밀 유지 △사리(私利) 도모 금지 △명예 유지 등 여섯 가지다.


[참고자료]
머니투데이 2010.8.7
http://news.mt.co.kr/mtview.php?no=2010080411385500408&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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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활동사진으로부터 시작하여 입체 영화로 발전해갔지만, 거꾸로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로 시작해 채플린 시대의 흑백 무성영화로 끝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젊음의 현란한 색채는 하나둘 사라지고 수입은 반 토막 나고 자유롭던 생활은 가정이라는 굴레를 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늙은 노부부에게는 흑백 무성영화의 침묵만이 흐른다는 것이지요. 신랑이 영화인이니 묻겠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그렇게생각한다면 오늘 이 자리에 서 있지 않았을 겁니다. (중략) 지금까지 누구의 아들, 누구의 딸로 불리던 내가 결혼을 하면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내로 불리게 되고 아이를 낳게 되면 또 누구의 아빠, 누구의 엄마로 호칭이 바뀝니다. 인간은 이렇게 아들 딸로 3분의 1을 살고, 남편 아내로 3분의 1을 살고, 나머지 3분의 1은 아버지와 어머니로 세상을 삽니다. 인간의 총체적인 삶은 이 세 조각을 각각 다 맞춰야 온전한 모양의 그림이 되는, 퍼즐 게임과도 같은 것이지요. 이제 시간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한 지붕 아래 새살림을 할 수 있는 사회적인 공인과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시들해지는 일상의 반복을 다시 일깨워 살려내는 것. 그것이 바로 살림이라는 말입니다. 새살림으로 부디 행복하세요. 그러면 부모님들 친척들, 그리고 친구와 여러 팬들 모두가 행복해지니까요. 남들이 바라보고 있는 별이니까. 두 별이 하나 되어 더욱 밝아진 별이니까요.”  장동건·고소영 결혼식 이어령

덕담가 주 철 환
MBC 방송국 PD 시절, 후배에게 농담 삼아 주례를 서주겠다고 한 말이 화근(!)이 되어 지금까지 2백 쌍이 넘는 커플 앞에 섰다. 박명수, 유세윤, 박경림 등 친한 후배 연예인들이 그에게 주례를 부탁한 이유는, 평소 그가 보여준 ‘선배’로서의 이상적인 모습 덕분일 터. 지혜로 아랫사람을 보듬어주는 그의 넉넉한 인품에 다들 감동한다. 

“저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신랑은 제가 예전에 함께 일하면서 ‘정말 괜찮은 젊은이다’라고 확신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몇 해 전 저는 지나가는 말로 다음에 주례를 서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예비 신랑에게는 지나가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삶에 대해 엄숙했고 약속을 신뢰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저를 통해 가장 아름다운 맹세를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결혼은 세상을 향해 띄우는 가장 소중한 약속입니다. 제가 결국 약속을 지켰듯, 이 두 젊은 남녀 또한 사랑의 약속을 굳게 지키리라 믿습니다.”  방송국 후배 결혼식

일상 예찬론자 김 창 완
그의 온기가 그대로 묻어나는 목소리는 결혼식을 포근한 기운으로 가득 채운다. 상상만 해도 소박함과 훈훈함이 감돈다. 시간이 더할수록 따스해지는 그의 품성은, 결혼식 주인공들이 나이 먹을수록 닮고 싶어 하는 모습 그대로다.

“오늘 이 두 주인공한테 무슨 좋은 말을 할까는 차치하고 그냥 곰곰이 저의 지난날을 되짚어봤습니다. 결혼식 날은 눈 온 것밖엔 기억이 안 나고, 10평 아파트에 살던 신혼 시절, 아기 돌날, 그리고 갑작스러운 병으로 입원했을 때 마스카라가 번진 채 웃고 있던 아내의 모습이 기억났습니다. 내내 울고 있었던 거지요. 그런 모습들이 제게는 아내의 모습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젯밤 유난히 아내와 아들이 참 소중하고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혼이 제게 가져다준 선물들이 마치 기적 같았습니다. 그 기적은 이렇게 성대하고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치러진 혼례식마저 희미해질 정도로 오랜 세월을 기다려야 열매를 맺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두 분의 결혼을 축하드리고 ‘오늘’이 ‘내일’을 가르쳐줄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말씀드리면서 주례사를 마치겠습니다.”  방송국 후배 결혼식

촌철살인식 재밌는 축사

 “준만큼 받는다” 이 경 규 
강 호동의 결혼식에서 생애 첫 주례에 도전한 이경규. 주례사는 인터넷에서 찾은 자료를 엮었다고 한다. 평소 귀찮은 걸 싫어하는 그의 성향을 보건대 성의 있다고도, 그렇다고 성의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짜깁기’ 주례사. “결혼은 거친 바다다. 행복의 곶감을 빼 먹는 게 아니라 노력해서 곶감을 만들어가는 것이며, 적당한 짝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짝이 되어주는 것이다. (중략) 신혼여행 다녀와 하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꼭 전해야 하며, 나한테는 안 해도 된다. 다만, 이 양복이 좀 오래됐다.”  2006년 강호동 결혼식 “면세점을 지날 땐, 나를 꼭 떠올려라.”  2008년 이윤석 결혼식

“주례는 축구 응원단 모집용일 뿐” 김 흥 국
“가 발을 쓰려다 흑채를 뿌리고 나왔다”며 첫 주례를 맡아 설레는 마음을 표현한 김흥국. 올 초 개그맨 김주철의 결혼식에 선 그는 갑자기 축구 얘기를 꺼냈다. “설마 주례에서까지?”라며 마음 놓고 있는 하객들의 허를 통렬히 찌른 것. 다음은 엉뚱함과 솔직함으로 무장한 김흥국표 유쾌 주례. “2010년도는 나의 해다. 이번엔 남아공 월드컵이 있으니, 신랑 신부가 나와 같이 응원해야 한다. 그 조건으로 주례 보는 거다. 기쁨은 더하고 슬픔은 빼고 행복은 곱하고 사랑은 나누자. 어젯밤 이거 외우느라 애먹었다. (중략) 내 주례가 기분 나빴다면 손을 들고, 괜찮았다면 박수를 쳐라.” (하객들은 열렬한 박수로 화답했다.)  2010년 1월 개그맨 김주철 결혼식

“효자손에 담긴 솔로의 애환이 보이시나요?” 조 영 남
이 경실 재혼 당시, 두 번 이혼한 조영남이 주례를 선다는 소식이 장안의 화젯거리였다. 그런 관심을 의식한 듯, 그는 ‘오케이’ 대답을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주례를 서기 바로 직전까지도 망설였다고 한다. 주례를 서기 전에 나도 간략하게나마 결혼식을 올려야 하는 게 아닌지 고민했다. 하지만 나를 교훈으로 삼으라는 뜻으로 주례를 수락했다. (효자손에 낡은 팬티 천을 감아 만들었다는 ‘솔로용 로션 바르기 기구’를 들어 보이며) 이런 발명품이 필요 없도록 함께 오래 살길 바란다.(중략) 타의 모범이 되지 않는 나한테 다시는 주례를 맡기지 말라.”  2007년 이경실 재혼식

[참고자료]
/출처: 우먼센스
취재 정은혜 기자, 배현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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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386C의 황중환 작가 - 그의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honeypa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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