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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믿음'의 반어법

[중앙일보] 입력 2010.10.24 21:19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오빠 믿지’가 화제다. 서로 동의하면 상대방의 위치를 추적해 거리와 상호까지 알려주고, 실시간 대화도 할 수 있다고 한다. 사흘 만에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인기였다. 나는 ‘오빠 믿지’의 인기는 현실 관계의 불안이 반영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 나 못 믿어? 우리 사이가 이게 다야?”

 관계의 위기가 오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단호한 눈빛으로 단정적인 말투로 이런 말을 하면 “응, 미안하지만 못 믿겠어”라고 하기 참 어렵다.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기만 믿으라고 하는 사람치고 순순히 믿게 되는 사람도 드물다. 믿으라고 말을 하는 것과 정말 믿음이 생기는 것은 정확히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기에 그렇다. ‘오빠 믿지’라는 앱도 믿음이 흔들린 사람들의 항불안제 역할을 한다. 항불안제의 남용은 의존을 부른다.

 관계의 유지는 신뢰가 바탕이다. 신뢰는 양적인 측정이 어렵다. 그보다 리트머스 시험지 같아서 질적으로 색이 변하는 순간이 온다. 이때부터는 무엇을 하더라도 상대를 믿기 어려워진다. 흔들린 신뢰를 되돌리기 위해 상대에게 더 많은 요구를 하게 된다. ‘오빠 믿지’와 같은 앱도 그런 노력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자기만의 공간이 침범당한다는 근본적인 불안을 불러일으켜, 속 깊은 저항감이 발생한다.

 휴대전화로 가장 듣기 싫은 첫마디가 “지금 어디야”라고 한다. 영상통화도 단말기 회사나 통신사가 물량 공세로 홍보를 했지만 즐겨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이들이 영상통화는 왠지 부담스럽다고 기능은 있지만 쓰지 않게 된다고 토로한다. 비슷한 심리다.

  이때 저항감이 강해지면 관계 자체를 포기하는 수도 있다. 관계의 유지보다 개인의 안정감과 정체성 유지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e-메일 비밀번호를 공유하고, 일상생활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아는 것을 사랑이라 믿어서는 안 된다. 사랑이 집착이 되는 것은 순간이고, 자유롭게 숨쉴 공간을 주지 않는 지나치게 밀착된 관계는 오래가기 어렵다. 일심동체의 욕망은 환상일 뿐이다.

  아기는 엄마가 보이지 않으면 자지러지게 운다. 엄마가 눈앞에 보여야만 안심을 한다. 몇 년이 지나 대상을 내재화해 마음 안에 간직할 수 있게 되면 당장 자기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사실 신뢰의 색을 쉽게 바꾸는 사람은 배신의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보다 아직 인격적으로 덜 성숙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인간의 성숙은 상대방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믿고 안심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한다. 내 자유만큼 상대의 자유공간을 배려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현대인은 자신감의 결여로 인한 불안을 상대에게 전가하며 기술적으로라도 통제하려고 애를 쓴다. 눈으로 실시간 확인을 한다고 해서 ‘오빠’를 믿게 되는 게 아니다. 도리어 더 확인하고 싶어지고, 불안해질 따름이다. 관계의 확신은 나의 자신감에서 시작한다. 확인하지 않고도 견딜 수 있을 때 믿음은 커진다. 나아가 존재의 안정감이 따른다. 그러니 못 믿겠으면 차라리 그만 만나는 게 정신건강에 낫다. 이게 믿음의 반어법이다.

하 지 현 건국대 의대 교수·정신과



Posted by wizy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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