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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식 사장, 이렇게 일찍 황망히 떠나야 했나. 자네가 세상 떴다는 말을 전해 듣고 당황스럽고 어쩔 줄 모르겠더군. 몸이 편치 않아 자네의 도움이 절실한 부인 이윤정 여사가 못잊혀 어찌 눈을 감을 수 있었나. 아직 출가를 기다리는 딸이 안타까워 눈이나 제대로 감을 수 있었나. 사람의 운명이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고는 하지만 자네의 뜻하지 않은 별세는 우리 모두를 처연하게 만들었네. 지난 40여년 동안 자네를 비롯한 우리의 삶은 시대의 어두운 광풍과 우리들의 격렬한 맞대응이 씨줄-날줄로 엮여서 우리 시대의 조그만 이정표를 만들어왔네. 그러자니 우리들 자신이야 당사자들이라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내들, 자식들이 겪은 고통스럽고 스산한 삶은 어쩐단 말인가. 우리 자신들이 무능한 고집불통이어서 그랬을까. 자네와 나는 같은 해에 같은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 만났지. 중앙일보라는 재벌신문에 수습기자로 입사해서 처음 만났지. 수습 초기 교육시간에 “당신들 이 기자이기에 앞서 ‘삼성맨’이라는 사실을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편집간부의 강의를 듣고 정신이 들어서 그만두기로 마음먹었었지. 4명이 함께 동아일보로 의기양양하게 옮겼는데 그 가운데 동아자유언론운동으로 자네와 나, 그리고 정영일 변호사가 동아투위원이 되었지. 우리는 뜻이 맞는 여러 선후배 동료들을 만나 함께 뒹굴면서 한없이 사나워지는 독재정권의 자유언론 억압에 맞서 동지애를 일궈나갔지. 귀찮고 어려운 일은 언제나 자네가 자원해서 맡았네. 72년 초겨울이었던가. 신혼 초 자네는 수유리에 단간 방 신혼살림을 차렸었지. 저녁에 벌이던 논의가 부족했던 11기 총각 동기생 몇이 자네 신혼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통금 시간을 넘겨 수줍어하는 새댁과 자네와 함께 한 이불을 덮고 잤었지. 우리들의 무례를 자네는 너그럽게 용서했나. 그런 논의가 무르익어 74년 초봄 33명의 발기인들이 자네의 약수동 집 좁은 방에 무릎을 맞대고 모여 동아언론노동조합을 결성할 때도 자네는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 많은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지 않았던가. 자네의 중학 동기생이자 나의 친구인 김정남은 내가 바깥 세상을 비운 사이에, 지금은 꽤나 유명한 야당 정치인이 된 후배를 자네 집에 숨겨주었다고 했지. 그때 부인 이윤정 여사가 몹시 힘들어 했다는 이야기를 자네가 아닌 정남이에게서 들었네. 남들이 꺼리고 힘들어하는 일을 자네는 표나지 않게 감당했지.
우리 친구들이 모여 토론할 때면 자네는 언제나 악당 역할을 자임하곤 했네. 동아노조 안에서 정부의 의도를 놓고 논의할 때면 자네는 중앙정보부 입장에서 생각하고 주장하는 역할을 해냈지. 해직된 뒤에는 김상만 사장 입장에서 생각하고 주장하는 역할을 했네. 위악적(爲惡的)이라고 보일 만큼 우리를 탄압하고 괴롭히는 정권과 사주의 입장을 세세히 검토함으로써 자네는 우리의 입장을 누가 봐도 설득력 있는 것으로 만들려고 충실히 노력했지. 나는 자네의 그런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면서 저 친구는 이 자리보다는 판사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할 사람인데 라고 생각하곤 했네. 자네와 투위의 많은 선배 동료들이 한겨레신문에 가서 열심히 새언론을 만들어 가고 있을 때, 나는 외로운 감정으로 때로는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지. 자네는 편집 책임자로, 때로는 경영 책임자로 예의 그 정열과 진지함으로 밀고 나가더군. 아직 부족하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그때도 얼마나 힘들었겠나. 자네의 헌신과 정열이 헛되지 않아서 한겨레신문은 가장 신뢰받는 신문으로 성장했다네. 자네의 피땀이 배어든 결과물이네. 두식이, 이제 고단한 삶의 무게 모두 내려놓고 편히 가시게나. 어찌 부인과 아이들이 자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러나 이승의 일은 이승 사람들에게 맡기고 발걸음 옮겨 가시게. 아이들도 모두 장성했으니 어머니 잘 모시고 형제자매 사이에도 우애 지키면서 살아갈 것이네. 김두식 사장, 김진지(眞摯) 우리 친구, 자네를 알게 되어 보람 있었네. 자네를 친구 삼아 어렵지만 값있는 한 시절을 살았네. 고맙고 고마웠네. 잘 가시게. 그리고 내세에서는 이승보다는 평안한 삶을 누리시기를 기원드리네. 이부영 전 의원
Posted by wizy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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