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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식 선배님!

어찌 이렇게 허무하게 가십니까?

미디어산업에 닥친 변화의 물결을 헤쳐가야 할 한겨레신문사 후배들에게는 오랜 경륜의 도움말이 더욱 절실합니다. 아직 어린 당신의 손자손녀들에게는 재롱을 지켜봐 줄 할아버지의 인자한 미소가 여전히 필요합니다. 그런데 무슨 급한 일이 있으시다고 모두 뿌리 치고 이리 서둘러 떠나십니까? 한겨레신문사의 기초를 세우신 또 한 분 선배님을 오늘 영원히 떠나보내야 하는 이 비통한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김두식 선배님!

이제 선배님을 영결하는 자리에 서고 보니 선배님이 신문사에서 편집위원에서 시작해 대표이사까지 지내는 동안 실천으로 보여주셨던 가르침이 새삼 그리워집니다. 선배님은 기자로서 또 경영자로서 지켜야할 원칙에 대해서는 어떤 양보도 없으셨습니다. 창간 초기 많은 후배들은 그것을 때로 불편해하기도 했지요. 그래서 선배님을 ‘곰바우’라 부르곤 했습니다. 하지만 선배님은 후배들의 그런 지칭에 꿈쩍도 않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렇게 불리는 것을 즐기고 있었던 듯도 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렇게 원칙을 지키는 길이 한겨레신문사가 살아남는 길이라는 확신 때문이었지요?

선배님!

창간 초 선배님께서 사회교육부 편집위원으로 일하던 시절, 불충분한 팩트를 근거로 어떤 기업체를 비판한 기사가 사회면 머리기사로 나간 적이 있었지요. 가판을 보고 비상이 걸린 해당 기업에서 편집국으로 선배님을 찾아와 기사 내용이 사실과 다르니 기사 크기를 조금만 줄여달라고 부탁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때만 해도 잘못된 경영 관행으로 약점이 많았던 대다수 기업들은 신문에 오보가 나가도 항의 보다는 선처를 호소하는 것이 일반적이던 시절이었지요.

다음날 배달된 신문에서 문제의 기사를 찾아보던 해당 기업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고 합니다. 2~3단 정도로 줄어 있기만 해도 다행으로 생각할 터인데, 신문에서 기사가 아예 빠져있었기 때문이지요. 사회면 머리기사를 통째로 들어내게 만든 것은 기업 사람들이 하지도 않은 부탁이 아니라 팩트의 정확성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선배님의 우직한 소신이었습니다. 당시 언론계 관행에서는 쉽지 않은 이때의 일화는 ‘한겨레신문은 친노동-반자본 성향이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기업체 홍보실 관계자들 사이에 회자되며 이들이 한겨레를 다시 보게 만든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그랬습니다. 의욕에 넘쳐 사실 전달보다는 주장을 앞세우려는 젊은 후배들에게 언제나 ‘곰바우’처럼 팩트를 외치는 선배님은 정말로 통과하기가 어려운 관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후배들에게 “나를 보수 반동으로 불러도 좋다. 그런 나를 납득시킬 수 있는 기사를 써와라”고 하며 팩트에 대해서만은 결코 양보를 하지 않은 곰바우 선배님이 있었기에 창간 초기 이념과잉이던 한겨레신문 편집국은 중심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우직한 곰바우 정신이 오늘의 신뢰도 1위 신문 한겨레의 주춧돌이 됐습니다.

편집국을 떠나 경영으로 옮겨간 뒤로도 선배님의 곰바우 정신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감정과 이념에 앞서 팩트를 확인하라”고 후배들을 다그치던 선배님은 이번엔 “논의와 추측만으로 경영을 할 수는 없다”고 외쳤습니다. 정확한 팩트라는 보도의 원칙에 양보 없던 곰바우 선배님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조직 운영이라는 경영의 원칙에 양보가 없는 곰바우 선배님이 됐습니다. 1992년 근시안적 경영 관행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로 회사발전기획위원회 활동을 지휘해, 경영권 창출, 경영과 편집의 관계 설정, 신규 사업 진출, 각종 사규의 신설과 정비 등이 포함된 한겨레신문사의 중장기 발전전략을 만들어낸 것이 바로 당시 상무이사이던 선배님이셨습니다.

창간 때부터 꿈꾸었던 주간지 창간이 <한겨레21>과 <씨네21>로 연이어 열매를 맺은 것도 선배님의 추진력 없이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1994년 말 임원회에 국내외에 전례가 없는 영상주간지 창간을 제안하는 보고서가 제출됐습니다. 그때 한겨레가 영상을 다루는 매체를 내면 창간정신에 어긋난다는 등의 이유로 다른 모든 참석자가 반대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창간에 찬성한 단 한 사람이 바로 선배님이셨습니다. 또한 그 뒤로도 수그러들지 않은 반대론을 무릅쓴 채 과학적인 시장분석보고서를 믿고 영상매체준비팀 발령을 낸 분이 바로 당시 대표이사 선배님이셨습니다.

이처럼 일에 있어서는 양보 없고 엄격한 선배님이셨지만, 근무시간 뒤 회사 주변 허름한 술집들에서 만나는 선배님은 너무나 소탈하고 격의 없어 참 좋았습니다. 대표이사가 되어서도 늘 허름한 점퍼차림에 스스로 ‘굴러다니는 술병’이라고 자처하며 후배 임직원들과 친 형님처럼 격의 없이 술잔을 나누던 모습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김두식 선배님!

퇴사로 몸이 회사를 떠나있던 동안에도 마음만은 늘 한겨레신문사와 후배들 걱정에 어지러우셨으리란 걸 잘 압니다. 하지만 선배님 이제 마음마저 비우고 편히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선배님이 주춧돌을 놓은 한겨레신문사를 저희들이 더욱 신뢰받는 언론으로 지키고 키워나가는 것을 지켜봐주십시오.

선배님, 부디 안녕히 가십시오.

 

한겨레신문사 대표이사 고광헌

Posted by wizy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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