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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3초마다 하나씩 볼 수 있다 하여 붙여진 ‘3초 가방’이란 명성의 이 가방과 처음 마주친 것은 1999년 프랑스 파리에 공부하러 갔을 무렵이다. 외환은행 파리 지점이 있는 몽테뉴가 근처에는 루이뷔통 매장이 있다. 은행을 가다 보면, 서울 종로통에서 앞길을 가로막는 “도를 아십니까”류의 사람들처럼 은근슬쩍 다가서는 이들이 있었다. “루이뷔통 가방을 대신 사주면 10만원을 주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다는 호랑이도 아니고, 이 이상야릇한 제안은 도대체 뭐지? 갑자기 딛고 있는 땅이 물컹해지면서 묘한 구역질이 엄습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알고 보니 그건 당시 유학생들 사이에 대유행이던 ‘루이뷔통 알바’였다. 파리에서 루이뷔통 가방을 사서 중국·일본·한국 등에서 다시 고가에 판매하는 중간 판매상들이 극성을 부리자, 파리 매장에서는 1인당 2개 이상의 가방을 구입할 수 없게 제한했다. 그러자 중간 판매상들로부터 대가를 받고 구매를 대행해주는 아르바이트가 생겨났고, 이후 거리에서 사람들을 헌팅해 구매 대행을 종용하는 중간 ‘삐끼’ 알바들이 탄생했다. 유학생들 사이에선 파리 시내 루이뷔통 매장을 한 바퀴 돌며 가방 2개씩 구입하면 한 달치 반찬값이 나오는 이 알바가 급부상 중이었다. 어느 날 가난한 내 룸메이트가 작심하고 이 알바를 나섰다가, 가방 1개도 사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녀의 초라한 행색에 매장에선 한눈에 알바인 것을 알아보고 판매를 거부했던 것이다. 뾰족한 매력을 찾아볼 길 없는, 오로지 루이뷔통일 뿐인 이 가방에 대한 열광과 그것을 둘러싸고 빚어지는 다단계 알바의 현장, 고객의 행색을 보고 판매를 거부하는 매장의 태도는 이 가방에 대한 내 인상을 결정지었다. 그것은 ‘구역질’이었다.

루이뷔통과의 두 번째 만남은 2008년 촛불을 견인한 한 주요 세력으로 <조선일보>로부터 지명되는 영광을 누렸던 요리·생활정보 사이트 ‘82쿡닷컴’에서 이뤄졌다. 삶의 모든 지점에서 ‘정치’를 발견해나가던, 순도 95%로 불꽃같이 정치로 점화돼가던 당시 82쿡의 자유게시판에 드나들던 어느 날, 뜬금없이 루이뷔통 가방 구매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글이 떡하니 올라온다. “이거 살까요, 저거 살까요?” 본인의 나이를 얘기하며 어떤 게 더 나은지를 물어보는, 알고 보니 그 동네에선 익숙히 행해지던 여론조사였다. 왜 이 가방을 사려는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살피기보다 남의 의견을 물어가며 가방을 결정하는지 알 수 없지만…. 1999년의 아찔함이 상기되면서, 나는 “마치 촛불 정국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 일부러 쓴 것 같다”는, 신입회원의 촌티를 내는 댓글을 달고 말았다. 잠시 뒤 목격한 것은 자유게시판의 ‘자유’의 의미를 망각한 이 몰지각한 신입을 질타하는 무수한 댓글들이었다. 나의 지적은 상당히 심각한 대다수 회원들의 반발을 산 것은 물론, 운영진의 긴급회의까지 소집시켰고, 운영진은 이 사태를 계기로 정치방 분리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운영진의 정치방 분리 선언은 이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정치방을 결코 분리시키지 말아달라는 수많은 회원들의 열렬한 항명으로 저지되고, 나는 내 ‘몰지각’으로 정치가 생활로부터 분리될 뻔한 아찔한 사건 앞에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이 울렁거리는 경험 이후, 루이뷔통은 구역질을 넘어 하나의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이후 ‘너는 십자수, 나는 명품백’이란 우리 시대의 씁쓸한 격언이 증명하듯, 루이뷔통 가방은 자신의 위대한 사랑을 입증하려는 남성들의 여친에 대한 최고의 선물이 되고, 대학에 입학한 딸이 기죽지 않게 부모가 마련해주는 기초 학용품이 되었다. “이 나이에 명품백 하나 없이 살아왔다”는 말은 청빈하고 검소하기 이를 데 없는 삶을 표상하는 명백한 경구가 되고, 남편의 불륜을 발견하고 울분을 토하는 주부에게 건네는 위로의 댓글 속에는, 남편 카드 들고 나가 당장 명품백부터 하나 지르라는 충동이 설득력 있게 매달리는 현상들이 차곡차곡 밀려왔다.

마지막으로 루이뷔통과 정면으로 마주친 것은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의 청문회장. 그 흔한 명품백 하나 없이 고생만 해온 아내에게 선물로 루이뷔통을 바친 게 뭐가 잘못이냐고 울분에 찬 목소리로 항변하는 총리 후보. 80%의 사다리 아래로 몰락한 계층의 낙인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빼앗을 수 없는 로망으로 자리잡은 이 ‘3초 가방’이 한국 사회에서 지니는 종교와도 같은 의미를 야당 의원은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사랑을 입증하려 여친에게 12개월 카드 할부로 루이뷔통 가방을 바친 청년은 이 장면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김태호로 인해 이뤄진 피할 수 없는 루이뷔통 가방과의 세 번째 만남에서 난 웃을까 울까 망설였다는.

목수정 작가
한겨레 21[2010.09.03 제826호]

[참고자료]
한겨레 21[2010.09.03 제826호]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8029.html
Posted by wizy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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