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과 사탄의 맷돌
ysl* 컨텐츠/그한마디 / 2010. 4. 21. 20:52
김광원 (참미디어연구소 대표)
김예슬이 책 속으로 걸어 나왔다. 지난 3월 10일 잔설(殘雪) 속의 고려대 교정에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대자보를 붙이고 떠난 그가 한달만에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책으로 다시 나타났다.
손바닥 만한 크기의 125쪽 짜리 소책자. 재생지로 된 얇은 책자의 생김생김이 교문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저자의 마음을 보는 듯하다. 그는 글을 시작하며 이렇게 한달 전의 심정을 전하고 있다.
“3월에 눈이 내렸다. 밤을 꼬박 새운 아침, 고려대학교 교정으로 들어섰다. 내 심장의 떨림으로 꾹꾹 눌러 쓴 대자보를 담벽에 붙였다. 그리고 찬 바람 부는 높고 큰 정문 앞에서 작은 피켓 하나를 들고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오늘 저는 대학을 그만 둡니다. 아니, 거부합니다! 진리도 우정도 정의도 사라진 죽은 대학이기에’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
그는 시위를 하는 한 시간 동안 오가는 학생들과 교수들의 차가운 시선을 의식하며 온 몸이 떨려오는 슬픔과 무력감을 느꼈다고 했다.
의존의 시대, 상실의 시대
시위를 한 이유도 “내가 약해서였다. 조용히 그만 둘 수도 있겠지만, 너무나 약하고 못난 나였기에 그래야만 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고려대학생의 자격증을 스스로 던져버린 내가 비겁해질까봐, 언젠가 혹시라도 다시 받아달라고 이 문을 들어설까봐…”였다고 쓰고 있다.
대학과 사회에 대한 신랄한 그의 비판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그는 이후 4개장으로 나눈 본문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때로는 도발적이고 불편하고 거칠지만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저자는 무력하고 괴로웠던 자신과의 불화시대를 대학에서 겪은 세 가지 경험적 사례에서 들고 있다. 그의 복합적인 심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중의 하나가 2005년 삼성 이건희 회장의 거액기부와 명예철학박사 학위수여에 관련한 고려대 학생들의 반대시위다. 삼성 회장의 기부금을 받는 것도, 학위수여를 반대하는 학생들에 대한 출교조치에도 그냥 지나쳤던 회한을 적고 있다.
그는 또 2006년 주변에서 아무도 관심 없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분노하는가 하면,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후 거론한 “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CEO”라는 발언에 실망을 털어놓기도 한다.
그의 이른바 ‘적들’에 대한 공격은 더욱 격렬하다.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국가는 다시 대학의 하청업체가 되어, 규격화된 인간제품을 만들어 올려 보낸다”고 비난한다. 그는 “지금 시대는 돈과 시장에 대한 완벽한 의존의 시대, 삶의 자율에 대한 완벽한 상실의 시대가 된 것”이라며 “내 삶의 결정권이 나에게 없다는 사회현실 앞에서의 두려움, 이것이 국가와 대학과 시장이 만들어 낸 우리 시대 고통과 모순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적들은 “나만의 적은 아닐 것이다”고 덧붙인다.
김예슬은 비판의 시선을 진보적 지식인과 언론에 대해서도 겨누었다. “그동안 그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온 내가 전혀 다른 꿈을 꾸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며 “우리 사회의 진보는 충분히 래디컬(radical)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그의 적들은 결국 대학을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사회 자체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결론은 현재 이 땅의 진행 중인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사탄의 맷돌(satanic mill)’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사탄의 맷돌은 헝가리 출신 비주류 경제학자 칼 폴라니가 그의 저서 ‘거대한 전환’에서 시장주의의 폐해를 설명하기 위해 차용한 용어다.
사탄의 맷돌은 윌리엄 블레이크의 ‘저 옛날 그분들의 발자취가’라는 시에 나오는 표현이라고 한다. 산업혁명으로 보통 사람들의 삶이 망가져버린 19세기 초 영국의 현실을 개탄하는 내용이다. 사탄의 맷돌은 증기기관을 장착해 세운 밀가루 공장과 연관된다.
팔아넘긴 진리·자유·정의
이 공장은 블레이크의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화재로 불탔다. 이 불은 일자리를 잃은 제분업자들이 일으킨 것으로 추정됐다. 사탄의 맷돌은 바로 이와 같은 산업혁명이 ‘인간을 통째로 갈아서 무차별의 떼거리’로 만든 공포의 상징이다.
김예슬의 글에서 보는 대학의 오늘 모습은 사탄의 맷돌에 다름 아니다.
“‘진리’는 학점에 팔아 넘겼다. ‘자유’는 두려움에 팔아 넘겼다. ‘정의’는 이익에 팔아 넘겼다. 나를 가슴 벅차게 했던 그 세 단어를 나 스스로 팔아 넘기면서, 그것들이 모두 침묵 속에 팔아 넘겨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결국 대학을 거부했다. 그가 침묵을 이기고 더 좋은 세상을 위해 도전하는 젊은이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자료출처]
내일신문
http://www.naeil.com/News/economy/ViewNews.asp?nnum=539452&sid=E&tid=8
'ysl* 컨텐츠 > 그한마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명인 주례사 (0) | 2010.08.02 |
---|---|
죽기전에 후회하는 세 가지 (0) | 2010.07.31 |
뭉클주의는 해법이 아니다. (0) | 2010.07.27 |
[New Yorker] Can the iPad topple the Kindle, and save the book business? (0) | 2010.05.16 |
[정종섭의 논형/5월 3일] 돈에 중독된 대학 (0) | 2010.05.03 |
`대학시계`의 추억 (0) | 2010.04.21 |
김예슬이 떠난 그 학교에, 저는 가고 싶습니다 (0) | 2010.04.17 |
아이폰 열풍 (0) | 2010.03.21 |
[정동칼럼]이제 대학과 자본이 답하라 (0) | 2010.03.18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0) | 2010.0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