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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이제 대학과 자본이 답하라

장덕진|서울대 교수·사회학

많이 망설여야 했다. 이 글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스스로 빠지기를 결정한, 그리하여 이 조용하지만 거대한 폭력의 구조에 “작은 균열”을 내는 “돌멩이”가 되기를 결정한 고려대생의 이야기 말이다. 그의 이야기는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많은 울림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언론 또한 어차피 그 구조의 한 부분이다. 내가 쓰는 이 글을 비롯하여 그에 대한 기사들 중 많은 것들은 그의 본래 의도와 별 상관없이 흘러갈 것이고, 그는 이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며, 그것은 이 젊은이의 또 다른 선택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러니 쓸 것인가, 말 것인가.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이 작지만 처절한 문제 제기에 대해 대학과 자본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침묵하면 잊혀질 것이고, 잊혀지면 이 거대한 구조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잘 작동할 것이라고 믿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대학이라는 오래된 석탑에서 떨어져나간 돌멩이의 빈 자리는 시멘트 땜질로 메워질 것이고, 그것은 조만간 대학을 흉측한 시멘트 덩어리로 바꾸어놓을 것이다.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변화하는 대학에 적응하지 못한 한 학생의 이야기가 아니라 청년세대 모두에게 무차별로 행해지고 있는 말 없는 폭력이 이제야 겨우 수면 위로 돌출되기 시작한 첫 번째 사례일 뿐임을 기록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퇴 고대생의 처절한 문제제기

내가 오늘의 대학을 “조용하지만 거대한 폭력의 구조”라고 부르는 이유를 설명해야겠다. 그것은 폭력적이다. 문이 닫혀 있음을 뻔히 알면서 그 문으로 들어가라고 학생들을 몰아붙이고, 그로 인해 그들의 젊은 날을 송두리째 희생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입직구는 닫혀 있고, 이미 따뜻한 문 안쪽에 들어와 있는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노동유연화를 외치고 있을 뿐이다. 그 결과는 계급적으로는 하층 서민들에게, 세대적으로는 청년들에게 돌아간다. 그것은 조용하다. 마치 그것이 구조의 폭력이 아니라 개인의 성실성의 결과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땅의 젊은이들은 벌집 고시원에서 혼자 조용히 ‘스펙’을 쌓고 혼자 조용히 좌절한다. 그것은 거대하다. 대학과 자본과 언론과 정치와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일상이 합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학은 지난 10년 동안 개혁이라는 이름을 달고 쉴 새 없이 바빴다. 대학마다 경영자형 리더십을 외쳤고 실제로 경영자 출신들이 대학을 운영하기도 한다. 우리 대학 졸업생들은 이렇게 훌륭한 스펙을 가지고 있고, 무슨 시험에 얼마나 많이 합격했고, 얼마나 취업률이 높다고 자랑하기 바빴다. 그러나 젊은이들 마음의 길이 어느 방향으로 열리고 있는지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당신들은 도대체 무슨 짓을 했나

젊은이들이 형형색색의 꿈을 현실로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기보다는 고시와 대기업이라는 양자택일의 정답 속에 더 많은 청춘들을 우겨넣는 데 성공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비인기학문일 수밖에 없는 기초학문 분야의 정원을 매년 떼어 인기학과에 넘겨주겠다고, 그러면 조만간 비인기학과는 자연스레 폐과될 것이라고 말하던 어느 대학 총장을 생각한다. 대학의 본질인 교양교육을 “잡다하다”고 말하며 취업도 못하는 졸업생을 “양심상” 내보낼 수 없다고 말하던 어느 대학 이사장을 생각한다. 이 거대한 폭력구조의 최정상 대학, 그중에서도 최고 인기학과에 다니던, 그래서 바늘구멍 같은 취업 문에 그나마 가장 가까웠던 학생조차 스스로 돌멩이가 되어 이 거대한 폭력의 구조에 작은 균열을 낼 것을 선택했다. 이제 대학과 자본이 답하라. 당신들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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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3.17

[참고자료]
경향신문 정동칼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3171808185&code=990308
Posted by wizy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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