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세상에 떠도는 수많은 느낌과 아이디어! 같은 느낌, 비슷한 생각.... 어때요? wizysl

카테고리

전체보기 (5128)
ysl* 아이디어 (346)
ysl* 사람들 (552)
ysl* ndns 내돈내산 (134)
ysl* 맛 (278)
ysl* 건강 (34)
ysl*sports (9)
ysl* 컨텐츠 (1827)
ysl* 이미지 (124)
ysl* 디자인 (245)
ysl*book or url (395)
맛과 멋 (7)
그한마디 (158)
ysl* music (224)
개그유머 (85)
ysl* movie drama (463)
ysl*estate (13)
ysl* comics game (113)
ysl* 트래블 (543)
ysl* 랭킹 (221)
ysl* 하드웨어 (377)
ysl*mobile (316)
맥HW (93)
맥SW (198)
맥Korea (81)
ysl*admin (10)
Total
Today
Yesterday

달력

« » 2024.4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태그목록

최근에 올라온 글

Closing Ceremony, Yuna Kim, Unceremonious Silver (Olympic Poetry)" ws featured on Wall Street Journal today. It featured poet Kwame Dawes's poem about Sochi Winter Olympics and its aftermath called "Flight" on their website today.



FLIGHT


Prologue


And in the end,


for all the tears


the scandals


the national pride,


the canned narratives,


the myth of glory


all that remains


for this witness


is the poetry


of bodies risking


everything in them


to defy the yanking


pull of gravity—


the atrophy, the decay,


the sheer inevitability


of our deaths—and in this


defiance is the lasting


thing—the games, the holy


games of our splendid hubris.

 


1


Below them, their insect bodies


etched into the sky—



limbs, tentacles, and the graceful


lean forward—



from here they are doing nothing


short of the miracle


 

of flight, and we, too, rejoice in this


safe and miraculous



landing in the dust of snow—the cowbells


welcome them home.


2


There is no need


for the whisper


of slow motion



to teach us the fluid


kinesis of these


swooping


speed skaters,


balancing the world


on the thin edge



of a blade, one stroke


at a time, in constant


torque,



turning gravity


into a play thing—


this is purified speed.


3


When a woman collapses


on the unwelcome bed of snow,



her body broken by the last


painful dig and pull


 

across the shifting dust,


you know she has died


 

to everything else in her


but the will to cross



that stain of red to the anthem


of the clanging crowd.



4


for Yuna Kim


And when she said softly,


that she was happy now


that it was over, this


when she had lost the gold,


and the bedlam around


her told her she was cheated,


I believed her, believed


her relief, her sense that


the weight of it all


was now gone, that the queen


unburdened of the stone


around her to tutor


her body through pain


and to carry the flame


of envy, anger, awe and fear


inside her, stoking it


for years and years


as a flame—that this was


over now, and all she felt


was relief, gladness, and peace—


when she said, I am happy,


it is over, I believed her.


And she, skateless,


mortal, grounded, she walked,


stuttering and ordinary,


away from the arena.


 

Epilogue


Closing ceremony


There is a boat,


there is a harlequin


there are children


there is the contraption


of our vanity—


the mechanicals


have arrived


and we cheer


the flying boat—


the ritual and pomp


the presidents


and prime ministers


with the cost of blood


in their heads,


the officials


dispensing weed


to calm our nerves


and the vanquished


and triumphant,


the significant


and insignificant,


the strings, the oboes,


the flutes, and the wash


of alarums from the horns;


we land, we land, we land.          

Posted by wizysl
, |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장군은 살아 있다 !

[중앙일보] 입력 2013.11.30 00:34 / 수정 2013.11.30 00:34

정진홍 중앙일보 논설원·GIST 다산특훈교수

# 베트남 전쟁 초기에 미 제7기갑부대 1대대장 해럴드 무어 중령은 미국을 떠나 베트남으로 향하기 전에 전 부대원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귀관들 모두를 무사히 살려서 다시 데려올 수는 없겠지만 한 가지는 약속한다. 전투에 투입되면 내가 제일 먼저 적진을 밟을 것이고 가장 마지막에 적진에서 나올 것이다. 단 한 명도 내 뒤에 남겨놓지 않겠다. 우린 살아서든 죽어서든 모두 함께 고국으로 돌아올 것이다.”

 # 1965년 11월 15일 무어 중령이 이끄는 미군 450여 명이 베트남의 아이 드랑 계곡에서 2000여 명의 월맹군에 포위당하고 말았다. 베트콩 잔당을 수색해 섬멸하라는 명령을 받고 아이 드랑 계곡에 헬기로 고공침투를 감행했던 무어 중령과 그의 부대원들이 마주한 것은 베트콩 잔당이 아니라 사단급의 월맹 정규군이었다. 정말이지 몰살당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러나 되려 무어 중령과 450여 명의 부대원들은 놀랍게도 월맹 정규군 1800여 명을 섬멸하고 200여 명을 퇴각시키는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물론 항공지원과 강력한 포병의 엄호를 받은 탓도 있겠으나 완전히 고립된 지형에서 네 배가 넘는 적과 싸워 승리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다름아닌 무어 중령의 ‘약속’과 그것이 지켜지리라는 부대원들의 철석 같은 ‘믿음’이었다. 부대원들은 완전고립되어 몰살당할 것이 뻔해 보이는 극한상황에서도 “우리는 살아서든 죽어서든 함께 돌아갈 것이다”는 무어 중령의 외침을 믿었다. 그 믿음 덕분에 부대원들은 숱한 사상자를 내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으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백병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무어 중령 역시 헬기를 타고 후퇴하라는 상부의 명령마저 외면한 채 부대원들과 함께 끝까지 싸웠다. 그리고 마침내 적을 섬멸한 후 헬기로 다시 귀환할 때도 약속한 대로 단 한 명의 전사자도 뒤에 남기지 않고 거둬 후송하며 가장 마지막까지 적진에 남아 있었다. 그는 약속을 지켰던 것이다. 무어 중령은 그 약속의 무게가 곧 생명의 무게임을 알았던 리더였다. 결국 리더십이란 리더의 ‘약속’이며, 그것을 지켰을 때 확보되는 ‘믿음과 신뢰’에 다름 아니다.

 # 어제 오후,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찾았다. 쌀쌀한 날씨에 발걸음을 재촉해 초입에 있는 2번 묘역에 닿았다. 그곳엔 모두 1033명 병사의 유골이 묻혀 있다. 하지만 그제 이곳에 한 명의 장군이 더 묻혔다. 초대 주베트남 한국군 사령관이었던 예비역 중장 채명신 장군이다. 2번 묘역에 묻힌 이들은 대부분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이다. 채 장군은 살아 생전에 “전우들과 함께 묻히겠다”고 말했다. 부하장병들이라고 말하기보다 늘 ‘전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채 장군은 약속대로 그들과 함께 거기 묻혔다. 사병들과 똑같은 한 평 넓이의 묘역과 똑같은 키높이의 나무로 된 임시비문만을 갖춘 채! 하지만 초겨울 햇살에 유난히 밝게 빛나는 그의 한 평짜리 묘는 웬일인지 왕릉보다도 커 보였다. 문득 톨스토이가 쓴 “사람에겐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글이 떠올랐다. 톨스토이는 그 글의 마지막 구절을 통해 결국 사람이 죽어서 차지할 수 있는 땅의 총량은 한 평 남짓한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채 장군의 묘 앞에서 서서 새삼 그 한 평의 위력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아니 거기 담긴 진정성 덕분에 때론 한 평이 백 평, 천 평, 만 평보다 크고 위대함을 깨달았다.

 # 겨울바람이 세찼지만 나는 외투와 모자를 벗고 그 한 평짜리 장군의 묘 앞에 서서 예를 갖춘 후 마음과 혼을 담아 거수경례를 올렸다. 묘비에 또렷하게 새겨진 채·명·신이란 세 글자가 눈물 글썽이는 내 눈 속에서 어른거렸다. 그런 가운데 나도 모르게 이렇게 되뇌었다. “그가 근 반세기 전 마음에 품었던, 전우와 생사고락을 같이 하겠다는 약속을 죽어서도 끝끝내 지켜내는 정신 위에 오늘 우리 대한민국이 죽지 않고 서 있다”고!

정진홍 논설위원·GIST다산특훈교수


[참고자료]

중앙일보 2013.11.30자

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3/11/30/12864887.html?cloc=olink|article|default

Posted by wizysl
, |

박 대통령 방미때 꼭 해야될 일과 해선 안될 일
<신성대의 이제는 품격> 정격 매너위한 초치기 체크리스트

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dmspub@hanmail.net |

2013.04.28 07:04:27

출처 - 데일리언

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335625


고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 미국을 방문했다가 돌아올 때 비행기가 두어 시간이나 늦게 뜬 적이 있었다. 수행원 중 한 명이 화장실에 갔다가 그만 길을 잃어 게이트를 못 찾고 공항 안을 헤맨 때문이었다.

지 난 인수위 때 프랑스 대사 등 여러 명의 주한 대사들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축하하기 위해 예방한 적이 있었다. 헌데 이때 이들이 인수위로 갔다가 허탕을 쳤었다. 당선인 사무실은 다른 동네에 있었던 것이다. 당시 황당해하던 대사들의 사진을 보고 ‘큰일났구나!’ 싶었지만 제대로 방문 위치를 알려주지 못한 해당 실무자를 문책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옛날 같았으면 대사 소환 같은 외교분쟁 사태를 초래할 전대미문의 엄청난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럴 수도 있는 일인 양 넘어가 버렸다. 외교가 뭔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사실 그 정도의 실수면 정상적인 나라라면 해당 실무자는 그날로 해고다. 감독의무 상위 책임자들도 중징계 문책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는 인수위 최고책임자가 일일이 찾아가 진사(陳謝)를 했어야 했다. 아무렴 대한민국이 얼마나 관대한(?) 나라인지를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허나 외교상의 결례는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더욱이 프랑스와 베트남이 어떤 나라인가? 자존심이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민족이다. 보복이 없을 리가 없다. 본국에 당연히 보고했을 것이고, 그 소문은 외교가에 다 퍼져 나갔다. 그러는 동안 인수위에선 대통령 취임식엔 당선인과 친분이 있는 세계의 유력 지도자들을 구체적으로 거명하며 초청하겠다고 했었다. 헌데 결과는? 문민정부 이래 가장 초라한 외빈석이 아니었나 싶다.

참여정부 때보다 오히려 후진, 글로벌 매너는 개념조차 없는 청와대

인수위는 그랬다 치고 취임 50일이 넘어가건만 청와대에서의 실전 글로벌 매너는 정상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어떤 것은 잘못된 관행으로 굳어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가 령 취임식날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축하 사절들을 접견하는 테이블이 흰 천으로 덮여 있더니 지금도 여전히 그런 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깨끗하게 보이려고 한 것 같다. 허나 다른 나라에선 차를 마시거나 간담회를 하는 자리엔 식탁보를 깔지 않는다. 식탁보는 오직 식사할 때만 깐다. 따라서 하얀 식탁보를 깐 테이블로 초청된 외빈들은 당연히 의아해했을 것이다. 뭐야, 식사까지 주는 건가?

청와대는 5월 7일 박근혜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한미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미국 방문에서 보이는 실전 글로벌 매너 내공 수준에 따라 이후 순방국들에서의 접대 수준이 결정된다. 그러니까 박근혜 대통령의 글로벌 매너 그릇 등급이 매겨지고, 그게 곧 1조 달러 무역대국 대한민국의 향후 5년간 국격(國格)이 된다는 말이다. 나아가 그것은 다시 우리가 생산하는 모든 상품의 부가가치(마진율)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명칭부터 바로잡아야, 정상회담 아닌 정상회동이나 정상상봉

한 국에서는 부풀리기 좋아해서 ‘정상회담’이란 표현을 쓰지만 실은 ‘정상회동’이나 ‘정상상봉’이 정확한 표현이다. 대단히 심대한 협상을 하는 것도 아니고, 범세계적인 사안을 논의하러 가는 것도 아니다. 이미 사전에 합의된 사항을 재확인하고 만나 덕담 나누며 인증샷 찍기 위한 의례행사일 뿐이다. 더불어 상대가 어느 정도 소통 가능한 인물인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어떤 나라나 마찬가지이지만 대통령의 해외 순방은 ‘이미지 제시’ 외에는 사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사흘 연속 사진 찍기라 생각하면 된다. 지난날 노무현 대통령처럼 사전에 의제 채택 합의 거치지도 않은 ‘평화협정’을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그것도 기자회견하는 자리에서 불쑥 꺼내어 한 건 하려다 미숙아 취급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현장에서 뭔가 새로운 성과를 내려 하지 말고, 차라리 글로벌 정격 매너로 품격을 갖추어 미국을 움직이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호감을 사서 생각지도 않은 선물을 받아내려 힘써야 한다. 첫 여성 대통령으로서 달라진 한국의 이미지만 남겨도 더없이 큰 성과라 하겠다. 그리하여 이번 방미가 '새 품격 운동'의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첫 기착지에서의 바람몰이에 특별히 신경 써야

아주 오래 전에는 한국 대통령이 뉴욕을 방문하기 전에 국악음악인들이 먼저 건너가고,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의 예술대기자 등이 대거 사전 격찬 비평칼럼으로 지원사격한 후, 카네기홀에서 대대적인 성공을 유도한 예술 한류(?) 바람잡이를 함으로써 한국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었다. 하지만 요즘은 한국이 널리 알려져 있어서인지 그런 관행이 없어졌다.

대신 처음 발을 내딛는 순간에 어떻게 해서든 언론의 주목을 받아 미국 상류층 각 방면 오피니언 리더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중간기착지든 워싱턴 DC이든 비행기에서 처음 문을 열고 나오는 그 순간의 사진 한 장이 모든 걸 결정한다.

해서 이번 방미 중 최소한 두 명의 사진기자에게 백악관 전담 사진사인 피트 수자처럼 정치 이미지만을 전담케 해야 한다. 이들에게 지금부터 백악관 홈페이지(www.whitehouse.gov)와 유튜브를 뒤져 백악관에서의 행사는 물론 방미 일정 전반에 걸친 행사 동선을 인지하고 사진 촬영 콘티를 예습시켜 명품 정격 이미지를 만들어내도록 해야 한다.

백 악관은 사흘이 멀다 하고 해외 정상들을 맞고 있으며, 이때의 행사 사진과 동영상들이 무수히 남아 있다. 백악관 홈페이지 ▷PHOTOS & VIDEO ▷Photo Galleries ▷(매월별) Photo of the Day 및 오바마 대통령의 해외순방 사례들 및 외빈응대 사례들을 참조하면 예상 이미지들을 미리 만들어 둘 수 있다. 백악관과 청와대의 홈페이지를 비교하는 것만으로도 사진의 품격에 대한 안목이 생긴다.

때 빼고 광내야만 지구촌 리더들의 일원으로 편입 가능

엘 리자베스 영국 여왕처럼 친선 여행 다니는 것도 아니고, 물건 팔러 다니는 상사원도 아니다. 한국에서처럼 커다란 가방을 들고 나오면 바로 아웃이다. 두 손이 자유로워야 트랩을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고, 마중 나온 인사들과 포옹도 하고 편하게 악수를 나눌 수 있다. 또 화동(花童)이 주는 꽃다발을 두손으로 받고 포옹해 줄 수 있다. 옷은 바지가 아닌 치마, 어두운 색 정장이어야 한다.

지금의 박 대통령 복장은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로서의 권위를 지키기엔 무리다. 스타트렉 SF영화 우주선이나 크루즈선 승무원들 유니폼을 연상케 한다. 자칫 비행기 여승무원이 먼저 내리는 줄 착각하기 십상이다. 더구나 이번에 특별히 일정이 추가된 미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 때에는 미국 의원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는 드레스 코드로 국격 망신 사태가 초래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충언한다. 예전에 유시민 의원이 백바지 차림으로 국회 등원한 일을 기억하면 이해가 갈 것이다. 관용(톨레랑스)의 범위를 넘어설 위험을 굳이 감수할 이유 없다.

목걸이와 귀걸이를 모두 하지 않으면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오인받을 수도 있다. 가방을 직접 들고 다니는 것은 남을 믿지 못하는 심성의 반영이다. 한복, 가방, 지갑, 브로치 등 한국에서 하듯 무리하게 국산 중소기업체 제품 팔아주려다가 소탐대실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새마을 패션' 고집하다간 자칫 ‘올해 최악의 드레서’에 뽑힐지도 모른다. 검소함이 반드시 미덕은 아니다. 이왕 최고급으로 ‘사치’하는 것이 오히려 국익에 도움된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 존 케리 국무장관 등 고위직은 항상 성조기 배지를 달고 있다. 아무리 여성 대통령이라 해도 해외 정상회동에서는 메시지가 불분명한 사적 취향의 브로치 대신 태극기 배지를 달아야 한다. 특히 지금과 같이 북핵 문제에 대해 단호한 대응 메시지를 보여야 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윤병세 외교부장관과 안호영 주미대사 등 주요 인사들도 역시 태극기 배지를 달아야 한다.

박근혜는 대통령이다. 다른 나라 여성 수상을 무작정 따라 할 일이 아니다. 현재 세계의 여성 지도자들 중 치마 대신 바지를 입은 이가 꽤 있다. 이는 사실 몸매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치마로는 굵은 허리를 감출 수가 없어서 바지를 선호하는 게다. 바지 입었다고 해서 일을 더 잘하는 것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영국 대처의 이미지를 차용하려면 대처처럼 반드시 치마 정장으로 여성성을 강조해야 한다. 그래도 끝까지 유색 바지 차림을 고집하겠다면 신발과 스타킹이라도 반드시 바지색과 맞춰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헤어스타일도 문제다. 고 육영수 여사의 올림머리를 하고 있는 현재의 스타일은 권위주의적인 심리 상태를 드러내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나치게 면적이 커서 가분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측면 사진에서는 자라목과 함께 심각한 불균형을 이룬다. 부피를 줄이거나 독일 메르켈처럼 숏컷으로 하여 무게 중심을 머리에서 얼굴로 돌려야 한다.

여성 수행원들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정통 비즈니스 포멀 수트 정장을 해야 한다. 윤진숙 해양수산부장관처럼 취임식에서 가슴에 커다란 꽃을 달거나 김행 대변인처럼 정장 개념 없이 연예인 흉내내는 복장은 절대 금물이다. 화려한 블라우스나 각종 액세서리 또한 최대한 절제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대통령을 따라 튀는 유색 옷을 입거나 그보다 요란하게 치장을 했다간 당장 해임시켜야 한다.

공항에서의 첫 이미지가 가장 중요

첫 포토세션! 트랩을 내려서기 전에 손을 들어 살짝 흔든 다음 2,3초간 포즈를 취했다가 내려온다. 이때 발을 헛디딜까 염려하여 발 밑 계단을 보지 말고 시선을 수평으로 멀리 두고 바른 자세로 당당하게 내려와야 한다. 두어 번만 연습해 보면 안심하고 내려올 수 있다. 내려와서 화동의 꽃다발을 받을 적엔 언제나처럼, 불편한 무릎 관절 때문에 조금밖에 못 구부리는 엘리자베스 여왕처럼, 엉거주춤 허리를 구부리지 말고 반드시 두 무릎을 주욱 내리꺾고 앉아 화동과 같은 눈높이에서 덕담을 하고 나서 꽃을 받고 감사 포옹을 해줘야 한다.

이 대목은 수많은 환영인사들 앞에서 어글리 코리안 인증샷 위험 가능성이 너무나 큰 실정이므로 박 대통령은 아웅산 수치 여사의 최근 방한시 화동 앞 눈높이 무릎 꿇은 자세 사진을 반드시 찾아 확인하고 실제 연습해 보기 바란다. 그가 모든 나라에서 과분한 환대를 받는 이유가 반드시 군부독재에 맞선 민주투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정통 영국식 고품격 매너 때문이다.

환 영인사들과 악수할 적엔 배를 내밀어 허리선을 바로 세운 뒤 가슴을 펴고 머리까지 직립으로 세운 상태로 손만 뻗어야 한다. 이때 절대 손을 쳐다보지 말고 상대와 시선을 맞춰 ‘눈방긋’으로 인사한다. 이미 친분이 있는 사람과는 좌우 포옹도 해야 한다. 한국에서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인사법은 금기다. 서양과 중국 모두 멀쩡한 눈과 입을 놔두고 고개를 까딱거려 인사하는 사람은 인격체로 여기지 않는다.

의장대 사열시에도 반드시 고개를 살짝 돌려 도열한 병사들과 피아노 건반 쫙 훑듯 ‘눈맞춤’을 이어나가야 한다. 노무현, 이명박 전직 대통령들은 멍하니 앞만 보고 걸어갔었다. 사열의 의미도 몰랐던 게다. 이후 걷거나 서거나 시종일관 배를 내밀고 턱을 당겨 비로소 직립을 만들어 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백악관을 떠날 때 오바마 대통령의 배웅에 대한 감사 인사는 승차 후 창 내리고 ‘머리 끄덕, 입으로 땡큐’가 아니고 ‘머리 직립한 상태서 노 구두(口頭) 멘트(non-verbal) 그러나 눈방긋 미소’ 또는 두 팔을 위로 들어 깍지 끼고 흔드는 제스처 동시패션이 글로벌 정격이다.

◇ 배웅시 답례 인사법의 글로벌 모델폼. 팔 슈미트 헝가리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과 정상회동 후 청와대를 떠나면서 두 손을 높이 깍지 끼고 가볍게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

리 무진을 타고 내릴 때에도 정격 매너가 있다. 그것 하나만 보고도 그 사람의 내공을 짐작한다. 특히 여성에게는 품격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는 한국인 배우나 상류층 여성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박근혜 대통령의 평소에 차에 타고 내리는 모습은 문제가 있다. 반드시 두 다리 모아 붙이고 몸통 전체를 돌린 후 착지, 내리면서 눈 마주치는 사람에겐 반자동 방긋 스마일 자연스레 목례할 수 있도록 교정을 받고 나가야 한다.

(이 하 논평은 연이어 행해질 중국, 일본 등의 공식방문까지 염두에 두고 ‘공식방문’ 기준으로 작성하였다. 따라서 만찬은 ‘공식실무방문’상 오찬으로 규모를 축소하여 받아들이면 되겠고, 일부 행사 역시 축소해서 생각하면 되겠다. 한편 한미동맹60주년 기념만찬은 주최가 한국정부라 하더라도 절대 국내 행사의 연장선상으로 하면 안 되며 성격상 글로벌 즉, 백악관 정규 만찬에 준하여 치러져야 마땅할 것이다.)

백악관 포토세션 때 적극적 소통 가능 이미지 연기연출로 철저히 대비해야

백 악관에 도착하면 마중 나온 오바마 부부와 똑바른 자세로 악수하고, 미셸 오바마와는 양볼을 마주대는 포옹을 해야 한다. 안으로 들어서면 먼저 방명록에 서명하게 된다. 이왕이면 휴대용 붓펜을 사용하면 좋겠다. 이때 글귀는 지난날 한국을 위해 헌신한 훌륭한 미국인들(구체적으로 거명)의 은혜를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글귀를 쓰고, 그 밑에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한문 시구를 남김으로써 중국과 북한에 대한 간접적 메시지를 전달하면 좋을 것이다. 미국인들에겐 캘리그래피의 고상한 교양을 과시할 수 있다.

벽난로 앞에서의 정상회동! 바로 이 사진 한 장을 위해 세계의 정상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게다. 반드시 정격 모델폼을 고수해야 한다. 얌전한 여학생처럼 손을 다소곳이 무릎에 모으거나 엉덩이를 뒤로 물려서는 절대 안 된다. 고개만 돌리지 말고 상체까지 비틀어 오바마에게로 적극적으로 다가가면서 시선을 놓치지 말고 거의 고정시켜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 쪽의 소파 팔걸이를 책상의 가장자리로 삼아 두 손을 얹으면 자연스러운 정격 모델폼이 나온다.

해서 정말 진지하게 중차대한 일을 논의하는 듯 한 모습을 양국 국민은 물론 북한 김정은과 중국의 시진핑에게 보여야 한다. 이 대목 역시 전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였던 구 티베트 출신 달라이 라마의 오바마 대통령과의 백악관 회동 포즈 사진을 벤치마킹하기 바란다. 그런 게 프로다. 그리고 설마 여기까지 타조가죽 가방을 들고 나와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받아쓰기는 글로벌 망신

전 체 회의 때는 두 손을 책상 아래로 내려서도, 팔꿈치를 올려서도 안 된다. 두 손만 위에 올리되 습관처럼 손을 모으는 것도 안 된다. 그건 마지막으로 "제발 좀 봐주세요!" 할 때 사용하는 제스처다. 대통령 한 사람이 하면 나머지 수행원들도 우르르 그대로 따라 해서 미국 사람들이 웃음을 참기 위해 애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손목과 팔꿈치의 중간이 책상 턱에 걸치도록 좌우에 놓는다. 무엇보다 수행원들이 미국까지 가서 한국에서처럼 고개 처박고 받아쓰기해서 머리 나쁜 한국 학생들 이미지 심어 놓는 일일랑은 없었으면 한다.

또 이명박 대통령이 워싱턴 지역지와 인터뷰 때 유명환 외교장관 등이 어디 잘 받아쓰고 있나 감독하듯이 넘겨보는 제스처도 국가적인 망신이므로 각별히 재발 방지해야 한다. 아울러 수행원들은 반드시 똑바른 자세에서 화자(특히 양국 대통령)를 향해 상체를 돌려 주시해야 한다. 그렇다고 상체를 앞으로 내밀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차단시키는 무례를 범해서도 안 된다. 혹시나 한국 기자들도 거기까지 노트북 들고 들어가서 ‘타자수 대거 백악관 진입!’ 망신당하는 일 없도록 해야 한다.

정 상회동을 마치면 앞뜰에서 양국 정상이 기자회견을 하게 된다. 먼저 오바마 대통령 발언 중에는 5,6초마다 오바마를 향해 몸통을 돌려 바라보며 경청하는 자세를 잡아야 하고, 반대로 박대통령 자신이 발언을 할 때에도 중간중간 오바마 쪽으로 몸통을 돌려 눈맞춤으로 동의를 유도해야 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고개만 돌리지 말고 반드시 상체를 돌려 바라보아야 한다.

발언이 끝나면 간단한 의장대와 군악대 시연에 이어 교민 등 시민들과 만나는 행사가 있다. 이때에 악수를 나누는데 반드시 눈맞춤 방긋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발언 등 일체의 연설문은 반드시 미국인 전문 컨설턴트에게 맡겨 품격 있게 다듬어야 한다. 지난날 이명박 대통령 국빈 방문 때 의회 연설문은 그렇게 다듬었던 덕분에 수십 차례 박수를 받아냈었다. 연설문 중간 중간 박수를 유도하도록 짰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처럼 별 내용도 아닌 것으로 지나치게 박수를 유도하는 것도 넌센스이지만 네댓 차례의 중간 박수는 무난하다.

식사자리서 ‘과락 탈출’ 기본 점수 확보에 목숨을 걸어야

식 탁에 마이크까지 놓고 식사하던 널널한 청와대와는 달리 백악관 식당 테이블은 넓지가 않다. 따라서 옆사람과 겨우 주먹 하나 정도의 사이를 두고 식사를 ‘즐겨야’ 한다. 백악관의 호의적인 배려가 따른다면 미국의 각계 유력한 오피니언 리더들과 식사를 하면서 서로 사교할 수 있도록 배려할 것이다.

이 때 지난 이명박 대통령 국빈 방문 때처럼 한덕수 주미대사, 김관진 국방장관, 천영우 안보수석처럼 머리 숙이고 밥을 먹었다가는 역시나 아웃이다. 미국측 인사와 한국 수행원들이 사이사이 교대로 앉아 식담(食談)을 나누게 되어 있다. 한데 식사 시간 내내 식불언(食不言)이면 얼마나 고통스럽겠나. 이미 수없이 겪어 소문난 터라 한국인들과의 식사에 기꺼이 나오는 미국 유력 인사들 거의 없다.

따라서 한국을 떠나기 전에 정품격 글로벌 식탁 매너 교육을 철저히 시키고, 옆사람과 가볍고 즐거운 환담을 나눌 수 있도록 사전 준비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출발하기 전에 각자가 옆사람과 나눌 대화 소재를 네댓 개씩 영어로 작성해 외우든지 커닝페이퍼라도 준비하여 두 번 다시 ‘소통 불능 짐승들과의 오찬’ 사진을 남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 개선된 진짜 ‘화기애애’한 사진을 보고 국민들은 “아, 저분들 열심히 일하는구나!” 또는 “일을 제대로 해낼 소통 능력을 갖췄구나!” 하고 안심한다. 그런 게 국민과의 소통이다. 말로만 하는 게 소통이 아니다.

아무리 배가 고프더라도 음식에 집중 말고 대화에 집중해야 한다. 음식 남긴다고 욕하지 않는다. 식탁 중앙에 촛대와 꽃장식이 있어 건너편 사람과는 대화가 불편하다. 해서 옆사람과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상체를 똑바로 세우고, 대화를 할 적엔 상대를 향해 상체를 돌려야 한다. 구부정하게 허리 굽히고 머리 처박은 자세로 고개만 돌렸다간 바로 짐승 취급당해 좌우 외면으로 혼자 밥이나 먹어야 한다. 대화 중 포크나 나이프가 앞쪽 사람의 눈을 겨누지 않도록 조심한다.

그리고 백악관 식사에는 빵이 나오지 않는다. 빵을 음식으로 먹는 이는 가난뱅이뿐이고, 잘 준비된 요리에는 ‘행주’로서의 빵 기능도 필요없기 때문에 노벨상 수상식 만찬에서도 빵은 없다! 예전에 전두환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해서 햄버거를 주문하자 뒷사람들도 모조리 "햄버거!"라고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만에 하나 다른 곳에서라도 한국에서처럼 너도나도 빵과 버터를 달라고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와인은 혼자 마시지 말고 상대가 잔을 들 때 함께 들어 조금씩 마신다. 설혹 마시지 않더라도 상대가 잔을 들 때마다 자신도 잔을 들어 눈맞춤으로 팔로 건배를 해줘야 한다. 이때 잔을 잡기 위해 상대로부터 눈을 떼면 하수다. 잔을 보지 않고 자유롭게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을 정도로 연습해야 한다. 이 용도로 와인잔의 목이 긴 것인데도 불구하고 무지한 국내 와인전문가들은 와인의 온도 유지 운운 헛소리하고 있다.

특히나 반드시 챙겨야 할 포인트

다 시 일러두지만 재미없는(밥맛없는) 한국인들과의 만찬에 어지간히 애써도 영향력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은 안 나온다. 그들을 불러내려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김용 세계은행 총재를 반드시 초청해야 한다. 만찬장 입장시 내빈 소개받을 때 박근혜 대통령은 절대 허리 구부정, 고개 내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오바마와 인사하는 한국 수행원들도 역시 마찬가지로 지난날 김장수 장관이 김정일에게 하듯 꼿꼿하게 서서 응대하되 거기에다 눈웃음만 보태면 된다.

건배시에는 취임식 만찬에서처럼 팔을 내뻗어 잔을 치켜들지 말고, 잔 윗부분이 최대 어깨 높이 정도로 가볍게 들어올린다. 이때 눈은 절대 잔을 보지 말고 오바마의 눈에 끌려 들어가듯 응시하면서 잔을 부딪쳐야 한다. 샴페인을 가득 채우지도 않을 뿐더러 잔의 구조상 웬만큼 세게 부딪쳐도 넘쳐 흘리지 않는다. 설사 흘러서 옷을 적신다 해도 당황해할 것 없다. 해서 그런 자리엔 검거나 짙고 어두운 색 옷을 입고 나가는 거다.

◇ 백악관 국빈환영만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옳지 못한' 건배 자세. 오바마의 자세와 비교하면 답이 나온다. ⓒ청와대

오 바마와의 건배 후 반대쪽 옆사람(미셸 오바마)과도 눈맞춤을 하면서 잔을 가볍게 부딪친다. 그런 다음 좌중 테이블마다 하나하나(individually) 돌아가며 앉은 사람들에게 그윽한 눈길로 일일이 리모트 건배를 보낸다. 백악관 만찬 건배에서는 오바마와 박근혜 대통령 두 사람만 서고, 다른 수행원들과 초청 인사들은 모두 자리에 앉아서 건배를 한다.

함께한 수행원들도 멀리서 잔을 들고 두 대통령과 눈으로 건배를 한 다음 옆자리 사람들과 잔을 살짝 부딪치며 덕담을 나눈다. 식탁 테이블 건너편 사람들과 잔을 부딪치기 위해 테이블 한가운데, 즉 공공영역을 침범해서 가로지르는(over-the-table) 일본 조폭 모드형 팔을 뻗는 무례도 없어야 한다. 잔을 들지만 눈맞춤으로 리모트 건배를 해야 한다. 횟수는 nC2!

대화중에는 역시나 고개만 돌리지 말고 상체도 함께 돌려 상대의 눈을 주시한다. 대화 소재가 궁해 와인에 관한 상식을 자랑한답시고 오버해서 식사 중에 제공될 미국산이 아닌 다른 나라 와인을 소재에 올리는 아닌 밤중에 창호지 뚫어대듯 한 철부지들이 있는데, 이 또한 아웃이다.

그리고 메인테이블에 앉힐 한국인 유명 인사로 제발이지 상투적으로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를 고르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테이블 매너와 교양 수준, 소통 능력을 갖춘 품격이 검증된 글로벌한 인물이어야 한다. 반기문 총장이나 김용 총재가 부부동반 참석해 준다면 굳이 다른 인물을 찾을 필요가 없겠다.

박 대통령의 만찬드레스는 제발이지 주빈답게 글로벌 정격 검정 드레스여야 하고 귀걸이까지 다 갖춰야 한다. 거기까지 가서 지난 취임식 때처럼 요란한 한복을 입고 나오는 이벤트는 제발 없기를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대통령은 연예인이 아니다. 평소 치마를 입지 않던(못했던) 독일 메르켈 총리도 백악관 만찬에는 정통 검정 드레스를 입고 나왔었다.

게다가 작금의 한국이 처한 상황을 고려하여 독일 메르켈 총리 때처럼 만찬 전후에 돌발 리셉션을 열어줄 가능성도 있으니 이에 대한 대비도 있어야 한다. 이때 수행원들이 꿀먹은 벙어리가 되지 않도록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특히 미리 도열해서 기다리는 동안 때가 때이니만큼 김장수 안보실장에게 미국인들이 몰려 질문이 집중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아마도 개인 통역이 따로 붙어야 할 것 같다.

미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문 등에 언급해야 할 에피소드들

건 국의 아버지 이승만 박사와 그의 주선으로 후일 한국 경제개발 초기 경제부총리를 맡아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을 해냈던 장기영 전 한국일보 사장 등 한인 유학생 9명이 해방 직전 캠프 데이비드에서 군사 침투훈련을 받았던 사실이나, 한국전쟁 발발시 망설이던 트루먼 대통령에게 한국을 공산주의로부터 구해 달라고 편지를 하여 미국의 참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당시 종교계에서 한참 뜨기 시작한 세계적인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 목사 이야기.

그의 부인 루스 벨 그레이엄 여사가 소녀 시절 6년간 평양외국어학교에서 공부한 사실 등 한미 간의 역사에서 감동적인 코드를 읽어내어 언급하는 기법으로 연설문을 작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특별자문단을 긴급 구성하여 공식 연설문, 건배사, 기자회견 등에 언급할 에피소드들을 찾아내어 숏스피치 문장으로 다듬는다. 만찬 건배사 마지막에 미국 유명 시인의 시구를 이용하는 것도 좋겠다.

특히, 미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을 위해 의사당에 입장할 경우 좌우 좁은 통로에 인사를 건네기 위해 운집해있는 의원들에게 인사할 때는 박 대통령 특유의 고개 끄덕이는 ‘인사법’은 절대 피해야 한다. 일일이 눈맞춤과 ‘방긋 미소’ 플러스 약간의 멘트와 더불어 가벼운 악수를 주는 조각상 모드로 풀어나가야 한다. 이 때 박 대통령의 가슴에는 태극기 배지 플러스 보스턴 마라톤대회 폭탄테러 희생자들에 대한 조의를 암시하는 듯한 리본이나 꽃이 반드시 달려져 있어야 하고, 연설 시작하기 전에 묵념 제안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미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을 위해 입장하며 의원들과 인사하는 오바마 대통령. ⓒ백악관

기타 행사

백악관에서의 정상회동과 환영만찬 외에도 여러 가지 행사가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특히 이번에는 북핵 등 한반도 정세가 예년 같지 않으므로 반드시 한국전쟁 기념공원에 들러 참전 전사자 묘소에 들러 헌화를 해야 한다. 화환은 태극기의 사색을 이미지화해서 누가 봐도 한국의 대통령이 바치는 꽃인 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한국에서처럼 온통 흰 꽃 화환을 바치다가는 국제 망신거리가 된다. 밑에 구질하게 누가 바친다는 표식 달지 말고, 의장병의 손을 빌리지 말고 대통령의 손으로 직접 들어 바친다.

묵념은 반드시 두 손을 마주 잡고 기도하듯 진심으로 해야 한다. 지난날의 한국 대통령들처럼 두 팔을 늘어뜨리고 고개만 숙여 묵념하면 미국인들은 무신론자로 여겨 악마나 김정은과 동일시할 수도 있다. 생존한 참전군인들과 유가족이 함께할 경우에는 그들에게 진정어린 감사를 표하는 제스처와 기념품도 준비해야 한다.

9.11테러나 보스턴 마라톤 참사 현장을 방문하게 될 경우에 대비해서는 사전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 지난날 외교통상부 통역담당 여성 외무관과 초록동색 아주 밝은색 의상에 아무런 예절도 갖추지 않고 9.11테러 현장을 그저 관광지 둘러보듯 찍힌 사진으로 ‘반미 심중’을 확증(?)시켜 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결례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한다. 이때 권양숙 여사의 시선이 엉뚱한 곳을 쳐다보는 사진으로 골라져 언론에 배포되었다.

9.11테러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 퍼포먼스로 9개의 파란 풍선과 10개의 빨간 풍선에 흰 장미를 매달아 하늘로 날리는 것도 고려해 보길 바란다. 파란색과 빨간색은 미국 성조기와 태극기의 색을 동시에 의미할 수 있다. 박대통령의 가슴에 꽂은 마지막 한 송이는 내 마음에 담아간다는 메시지를 남기는 거다.

그외 학교나 어린이집 등을 방문할 시에는 반드시 선물을 준비해야 하고, 두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같이해서 아이들과 어울려야 한다. 선진 사회에선 아무도 무릎 꿇는다 해서 대통령의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지 않는다. 일왕과 푸틴은 물론이고 김정은도 이를 자연스레 행한다. 외부 행사 때에는 청중을 바라보면서 손을 위로 높여 박수를 쳐야 한다. 멀리서 감사의 답례를 보낼 때에는 두 손을 머리 위로 높이 맞잡아 흔들어 줘야 한다.

혹 여 중간 기착지로 하와이를 택할 경우, 한인들의 하와이 이민사, 인천 인하대학교의 작명 근거에 대한 사전 공부가 있어야 의미 있는 기념행사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뉴욕과 LA에서 동포간담회를 가진다지만, 상투적이고 의례적인 교민들과의 만남 행사보다 우리가 그 은공을 잊어서는 안 될 미국인과 그 후손, 그의 무덤이나 생가, 그리고 그가 다니던 교회를 한 곳이라도 더 찾아야 한다. 그게 교민들에게도 오히려 더 자랑스럽고 떳떳한 선물이 될 것이다.

반드시 피드백!

그 동안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일방적인 보호와 얻어먹기로 일관해 왔다. 미국인들이 내놓고 말은 안했지만 한국이 언제 그 은혜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할지 내심 기다리고 있다. 지난날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의 각종 원조를 받아 경제개발에 성공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 옛날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원조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한국이 그 은혜에 감사를 표하고 보은을 위해 찾은 것임을 선언해야 한다.

그리해야 박근혜란 한 인물이 극동의 어느 나라 대통령이 아니라, 여성 대통령으로서 인류공동체의 성숙된 리더로서 부상할 수 있다. 그래야 중국의 시진핑이나 북한의 김정은이 정식으로 대화 상대로 인정하게 될 것이다. 하여 백악관 기자회견이나 미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 대목에서 한미 간 선순환을 위한 아젠다를 던져야 한다. “From Korea with Love and Pride!”란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한미 협력으로 특정 목적재단 설립을 제안하며 기부금을 전달하는 행사를 가질 것을 권한다.

그리고 박대통령은 백악관 정상회동 때나 만찬 전후 리셉션 등 기회를 봐서 오바마 대통령과 존 케리 국무장관을 좌우에 세워 각각 손을 다잡고 사진촬영을 해내야 한다. 굳건한 한미관계를 과시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암묵적 경고 메시지를 날리는 거다.

미국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해 방문해야 할 곳

* 구한말 미국 초대 공사 포크의 생가나 무덤, 그가 다니던 교회를 찾아 헌화.
* 구한말 대동강 셔먼호 방화로 희생당한 선장과 선원들의 후손, 동승한 토마스 선교사의 생가나 무덤, 다니던 교회 헌화. 당시 토마스 선교사가 참수 전 구경나온 조선인들에게 포교용 번역 성경책을 나눠줬는데 이를 받아가 찢어 벽지로 사용했었다. 그후 사람들이 심심해서 벽지의 글을 읽다가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 한국에 대학을 지어준 언더우드, 병원을 세운 아펜셀러의 후손, 생가, 무덤, 다니던 교회.
* 생존한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에게 훈장 수여와 기념품 전달.
* 주한 미군 복무자들을 대표하여 지난날 냉전 시기에 희생당한 휴전선 도끼만행 희생자 유가족, 북한에 납치됐다가 풀려난 푸에블로호 함장과 병사들, 그리고 그 유가족들에 대한 훈장 수여 및 보은의 선물을 준비.

선물 준비

선 진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거의 예외없이 미술에 조예가 깊거나 관심이 많다. 해서 전통기법으로 만든 한국의 닥지인 100호짜리 대형 장지(將紙)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달리 그림을 그릴 필요 없이 그대로 말아서 선물하면 외국인들이 무척 신기해하고 좋아한다. 그리고 북핵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국방관계자들에겐 우리 고유의 국궁(國弓)을 선물하는 것이 의미도 있고, 동이족, 올림픽 양궁 등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데 꽤 도움이 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붓글씨에 자신이 있다면 곧 여름이 다가오니 자신의 이름과 낙관이 찍힌 전통 합죽선(合竹扇)도 더없이 좋겠다. 더하여 아름다운 글귀까지 몇 자 써넣으면 금상첨화겠다. 인격적 체취가 물씬한 부채를 평소 교분이 있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존 케리 현 국무장관 등 워싱턴 정가의 유력인사들에게 돌렸으면 한다. 글씨가 자신 없으면 그냥 완제품을 돌려도 괜찮을 것이다.

‘달라진 대한민국’ 이미지를 던져줄 수 있기 위해서는

첫 해외 방문이다. 대통령으로선 글로벌 무대 첫 데뷔다. 글로벌 경험이 없는 인사들은 이번엔 절대 데려가지 말아야 한다. 특히 ‘좌빵 우물’ 수준으로 오찬이나 만찬 때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맹물 인사들은 완전 배제시키고, 미숙한 수행원들은 지금부터 철저하게 글로벌 매너로 훈련시켜야 한다. 하여 사흘 연속 포토세션에 선다는 계산을 염두에 두고, 한 순간이라도 방심해서 허튼 사진 찍혀서는 안 된다.

지난 이명박 대통령 국빈 방문 때 의회 연설에서 기록적인 박수를 받는 등 다채로운 활동을 하였음에도 워싱턴의 어느 신문에서도 기사 한 줄 안 난 전철을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에도 되밟지 않도록 ‘미국인들에게 진짜 의미 있는(significant)’, 대언론 이미지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치길 바라는 애절한 심정에서 방문 일정에 따라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점검해 보았다. 물론 이상의 지적 사항 외의 수행의전 매뉴얼에도 없는 수많은 복병들이 기다리고 있다. 경험 많은 베테랑이 대통령을 밀착수행하면서 그때마다 임기응변으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

명색이 국가 최고 기관인데 어련히 알아서 잘할까?

그 랬다면 굳이 이런 글을 쓸 필요도 없겠다. 허나 이 나라의 권력체제 속성상 대통령 직무 수행에 필요한 글로벌 매너 필드 매뉴얼이 다음 정권으로 제대로 승계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 분야에 관한 마땅한 교재도 없는 실정이다. 유일하게 서대원 전 유엔 차석대사의 '글로벌파워매너'가 있지만, 이 책은 그 빙산의 일각만을 다루고 있어 이미 일정 수준은 넘어서고 있는 외교관이나 기업인들에게나 도움이 될 뿐이다.

정작 수면 아래에 있는 빙산의 구각인 기저 플랫폼 부분, 즉 전인적인 시각에서 필요한 소통 매너에 관한 지식과 노하우 출판물은 전무한 실정이다. 다행히 국내에서 거의 유일하게 사진분석 칼럼을 통해 온라인 블로그 방식으로 이 분야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글로벌리더십아카데미'(http://mrahn.kr) 안경환 와인대사와 함께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서 예상되는 실전 글로벌 매너 충돌 현장의 예상 시나리오에 대한 주의점들을 점검해 보았다.

부디 이번에는 달라진 대한민국, 위대해진 코리아(Greater Korea)의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비록 초치기 시험준비로라도 최선을 다해, 글로벌 선진 매너로 보여주고 오길 빈다. 국민들도 위와 같은 관전 포인트로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방문 모습 진짜 실체를 들여다보고, 각국 정상들과의 내공 겨루기를 지켜보는 것도 새로운 재미가 될 것이다.

[참고자료]
데일리언 2013.4.
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335625


Posted by wizysl
, |

공로패(공로상)예문


예문 1 귀하께서는 축구에 대한 깊은 애착을 가지고 지역 축구발전에 이바지하여 왔을 뿐만 아니라 특히 00축구단 회장을 역임하시면서 본 축구단 발전에 기여한 공이 크므로 회원들의 뜻을 모아 이 패를 드립니다.


예문 2 귀하께서는 '07~'09 회기중 본 클럽 회장으로 재임하시는 동안 회의 발전과 회원 상호간의 인화단결에 헌신봉사하셨고 특히 지구와 지방 우수 및 모범클럽상을 수상하시고 00 발전에 남기신 높은 업적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전회원의 정성을 모아 이 패를 드립니다.


예문 3 귀하께서는 평소 투철한 사명감으로 당 조합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기에 금번 제0차년도 정기총회에 즈음하여 그 공로를 높이 치하하는 뜻으로 이 패를 드립니다.


예문 4 귀하께서는 노동조합 설립에서부터 지금까지 다사다난했던 역경속에서도 오직 노동조합 발전만을 위해 몸들 던져온 그 뜨거웠던 희생정신을 노동조합 전 조합원이 감사의 뜻을 모아 이 패에 담아 드립니다.


예문 5 귀하께서는 중앙연구소 00( )연구실에 재직중 연구개발을 위한 헌신적 노고와 연구원들의 화합과 우정을 위하여 노력해 주신데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리며 앞날의 무궁한 발전과 행운을 기원하며 이 공로패를 드립니다.


예문 6 위 사람은 본 클럽 초대 사무장으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여 클럽 발전에 크게 이바지함은 물론 각종 봉사 활동에 참여하여 사회에 기여한 업적이 크므로 본 클럽 이, 취임식에 이 패를 드립니다.


예문 7 귀하는 한 평생을 오직 2세 교육에 헌신하시면서 조국근대화에 초석이 되셨을 뿐만 아니라 특히 사도의 햇불을 크게 밝히신 교육자로서의 그 거룩함을 기리고자 회원의 뜻을 모아 영광된 정년퇴임에 즈음하여 이 패를 드립니다.


예문 8 귀하께서는 평소 스카우트이념에 동참하시어 청소년들의 건전한 육성 활동을 몸소 실천하시면서 본 금강지역단을 육성, 수년간 헌신하신 공로의 뜻을 기리고자 이 패를 드립니다


예문 9 위 사람은 ( )年 ( )月에 (株)아카데미 科學敎材社에 入社하여 ( )年餘 동안 勤務하면서 熱과 誠意를 다하여 會社 發展에 支大한 공勞가 있었으므로 깊은 感謝를 드리며 貴下의 앞날에 많은 발전이 있기를 祈願하면서 全 職員의 마음을 모아 功勞牌를 드립니다.


예문10 귀하는 본 재단 산하 ( )기독교 00관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 ) 기독교정신에 입각한 사회복지 사업에 뜻을 갖고 봉사하였으며 특히 복지관의 신관 건축과 구관의 보수 등 재산의 보존 관리에 헌신적인 노력을 경주하여 복지사업의 기반을 굳건히 세우신 공로가 지대하므로 이 패를 드립니다.


예문11 貴下는 平素 明朗한 市民 精神으로 防犯에 對한 特別의 心을 傾注하여 왔으며 特히 00警찰署 00派出所 防犯 委員會 委員長으로서 犯罪 없는 마을 만들기를 爲하여 物心兩面으로 貢獻한 勞力이 顯著하여 그 功을 이 牌에 담아 00爲員會一同의 이름으로 드립니다.


예문12 貴下는 ( )年 ( )月 ( )日부터 ( )年 ( )月 ( )日까지 ( )00長으로 在職하면서 온갖 어려운 與件 속에서도 住民和合과 透徹한 使命感으로 地域 發展에 寄與한 功이 크므로 그 功勞를 이 牌에 새겨 드립니다.


예문13 귀하께서는 중앙연구소 000 ( ) 연구실에 재직중 연구개발을 위한 헌신적 노고와 연구원들의 화합과 우정을 위하여 노력해 주시어 깊은 감사를 드리며 앞날의 무궁한 발전과 행운을 기원하며 이 공로패를 드립니다.


예문14 귀하께서는 '08-'09회기중 본 클럽 회장으로 재임하시는 동안 회의 발전과 회원 상호간의 인화단결에 헌신봉사하셨고 특히 지구와 지방 우수 및 모범클럽상을 수상하시고 00발전에 남기신 높은 업적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전회원의 정성을 모아 이 패를 드립니다.


예문15 위 사람은 본 클럽 초대 사무장으로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하여 클럽 발전에 크게 이바지함은 물론 각종 봉사 활동에 참여하여 지역사회에 기여한 업적이 크므로 본 클럽 이. 취임식에 이 패를 드립니다.


예문16 위 사람은 본 조합 이사장직을 역임하면서 창립이래 10여년간을 신협정신에 입각하여 당 조합 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을뿐아니라 평소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다한 공로가 지대하므로 금번 본 조합 신축준공에 즈음하여 그 뜻을 기리고저 이 패를 드립니다


예문17 貴下께서는 평소 스카우트理念에 同參하시어 靑少年들의 健全한 育成 活動을 몸소 實踐하시면서 本 00地域團을 育成하는데 6年間 獻身하신 功勞의 뜻을 기리고자 이 牌를 드립니다.



마이파인더 " 공로상 " 프리미엄링크

www.spgallery.co.kr 상패갤러리
www.gamsadream.com 감사패드림
ww.spoutlet.co.kr 상패아울렛
www.sell2.co.kr 상패만드는사람들

[참고자료]

다음 카페 장기농원

http://cafe.daum.net/JanggiNongwon/MpmW/19?docid=1I7P4%7CMpmW%7C19%7C20100626114120&q=%BB%F3%C0%E5%B9%AE%B1%B8


마이파인더 "공로상" 관련 링크

http://www.myfinder.kr/s.php?q=%B0%F8%B7%CE%BB%F3

Posted by wizysl
, |

[서소문 포럼] 미국발 온라인 대학 교육의 침범

[중앙일보] 입력 2012.07.20 00:59 / 수정 2012.07.20 00:06
강홍준
논설위원
서배스천 스런(Sebastian Thrun)을 알게 된 건 행운이었다. 그는 지난해까지 미국 명문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과 교수였다가 그 좋다는 교수직을 때려쳤다. 세상 밖으로 나와 ‘유대시티’(www.udacity.com)라는 무료 온라인 대학 교육과정을 열었고, 나는 그의 학생이 됐다. 그의 강의를 들어본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이수지 연구원이 “‘교육은 무료여야 한다’는 철학에 매료됐다”며 이곳을 강력히 추천한 덕분이었다.

 공짜 강의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 스런은 이미 스탠퍼드대 재직 때 자신의 전공인 인공지능 강의를 인터넷에 개방했고, 전 세계 190개 국가 16만 명이 이 강의에 열광했다. 여기에 자신감을 얻어 아예 전 세계 학생들을 상대로 대학을 차렸다고 한다.

 교육은 무료라는 말이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에서 무슨 의미일까. 그는 사이트를 통해 “스탠퍼드대 캠퍼스 울타리 안에 있는 소수의 학생들만 교육의 혜택을 누려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라고 했다. 모두가 교육의 혜택을 누릴 동등한 권리를 의미했다. 그래서 외부에서 투자도 받고, 자신의 돈도 털어넣어 온라인 대학에서 무료 공개강좌를 전파하고 있다. 한국 국립대 교수들이 총장 직선제를 사수하는 걸 민주화로 여기는 수준과는 달라도 한참 다르지 않나. 유대시티가 대학(University)의 ‘유(U)’와 담대함(Audacity)에서 따왔을 정도로 담대한 교육실험이라 할 만하다.

 유대시티 학생은 영어 실력이 약해도 괜찮다. 자막이 있는 동영상 강의를 보며 질문도 할 수 있다. 시험도 치르며, 숙제도 제출한다. 7주 정도의 과정이 끝나면 성적표와 이수 자격증도 받는다. 어떤 학생은 이 과정을 이수한 덕분에 구글에 입사하게 됐다는 글도 올렸다.

  캠퍼스 벽을 부수고 교육의 혜택을 밀물처럼 곳곳에 퍼지게 하려는 시도는 요즘 미국에서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인도 출신 살만 칸의 수학 강의를 유튜브로 보고 탄성을 질러본 경험이 있다면 올 2학기 하버드대와 메사추세츠공대(MIT)가 공동으로 내놓은 ‘EDx(www.edxonline.org)’라는 온라인 과정을 기대해도 좋다. 두 대학이 각각 3000만 달러를 투자해 오프라인 강의 수준의 공개 강좌를 전 세계에 뿌려준다. 미국 교육부는 한술 더 뜨기로 했다. 대학 강의의 온라인 공개를 위해 사립대에도 재정지원을 하겠다고 최근 선언했다.

 미국의 힘은 빼어난 강의를 공개해 전 세계 대학교육의 표준을 구축하려는 데에서 나온다. 마치 전 세계 수십억 개의 PC가 윈도로 구동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대학교육에서 내겠다는 의도는 느낄수록 무섭게 다가온다.

  표준화의 위력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서남표 KAIST 총장이 교수들의 강의는 MIT대 등의 온라인 강의로 대체하고, 수업은 학생들과 교수 사이의 토론으로 바꾸자고 제안한 건 이런 맥락과 맞닿아 있다. 이러다가는 마치 시골 고교가 수업시간에 서울 대치동 학원 강사가 출연하는 EBS 인터넷 강의를 틀어주는 것처럼 우리의 대학 강의실이 바뀔지 모른다. 물론 우리 대학 교수들은 자존심 때문에 절대로 그걸 허용하진 않겠지만.

 만일 유대시티, 또는 EDx 등이 학위와 동등한 자격증을 주고, 구글이나 삼성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채용 때 이런 자격증을 본다면 어떤 변화가 나타날까. 섣부른 예측일지 모르나 우리 대학의 졸업장 또는 간판의 가치는 분명 지금보다 하락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대학은 졸업장 발급 기관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싶다. 또 하나 우리의 대학 교수들께 알려드릴 게 있다. MIT 공개 강좌(OCW)를 지켜보는 학생들의 국적은 한국이 중국에 이어 2위라는 사실이다. 이미 외국 교수들과 비교당하고 있음을 알았으면 한다.

 우리의 대학은 고비용, 저효율의 길로 들어섰다. 매년 1000만원씩 드는 가격과 졸업해도 취업이 잘 안 되는 실적이다. 그렇다면 대학 간판 또는 졸업장의 가격은 앞으로 더 떨어져야 맞다. 그래야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학벌의 문제도 해결의 가닥을 발견할 수 있다.


Posted by wizysl
, |
[박 철 칼럼] 교육과 과학은 나라의 힘


  • 인류 역사는 과학교육의 발전을 통해 전개됐고 삶의 질 역시 이에 따라 획기적으로 변화됐다. 예를 들어 페니실린, 아스피린 등 의약품 발명으로부터 로켓과 인공위성 등 첨단기기를 만들어낸 배경에는 항상 과학과 교육의 힘이 있었다. 인간세계에 과학과 교육이 없었더라면 다른 동물의 세계와 비슷한 삶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과학과 교육의 가치와 역할이 인간의 삶과 역사에 끼친 영향은 크다. 과학과 교육은 끊임없이 인류 공영에 기여했으며, 앞으로도 그것은 변할 수 없는 법칙으로서 모든 이의 흥망의 조건이 될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 인류는 세 가지 심각하고도 중요한 문제에 직면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에너지, 물, 그리고 환경이다. 여기에도 물론 과학과 교육의 영향력은 절대적일 것이다.

    먼 저, 에너지 문제는 자원전쟁이라는 말까지 생길 정도로 치열한 각축전의 대상이 됐다. 따라서 그것은 한 분야의 전문가만이 접근하기에는 너무 큰 주제가 돼 버렸다. 당장 생각나는 것이 기름값이다. 바야흐로 자동차가 생활의 필수품이 되었는데 유가는 갈수록 올라만 가는 상황에서 대체에너지의 필요성이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마침 일본의 닛산자동차가 13년 만에 전기자동차를 서둘러 내놓았고, 도요타는 이미 하이브리드 자동차, 즉 반은 전기로 반은 휘발유로 가는 자동차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 이에 미국과 독일 등 전통적인 자동차 강국도 마음이 급해졌다. 마침 우리나라 삼성SDI가 BMW의 전기차에 쓰일 배터리를 독점 생산해 공급한다는 신문기사를 읽었다. 세계적인 명차를 생산하는 독일 BMW에 한국의 배터리가 공급된다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클린 자동차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세계 자동차시장 판도에서 노조와의 대립으로 인해 영일이 없는 한국 자동차 업계의 상황을 돌아보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물은 에너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다른 에너지가 주로 국가 경제를 움직이는 동력이라면 물은 우리 몸을 움직이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정치란 치산치수에 치인(治人), 즉 리더십을 더한 예술이라 할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치산의 일환으로 그린벨트를 만들어 우리 강산을 지켰다. 당시 그린벨트를 풀어야 된다, 안 된다로 시비가 컸으나 박 전 대통령은 치인을 통해 치산을 이루었다. 현 정부는 4대강 개발을 통해 치수를 계획하고 있고, 예와 마찬가지로 이를 놓고 벌써 환경파괴다 아니다 하며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치인을 통해 치수를 할 수 있을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다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4대강 개발이 정녕 한국 역사와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고 높이는 데 도움이 되도록 거시적으로 주시하면서 감독하는 것이다. 정치적 시각으로는 아무리 여야가 싸워 봐도 판가름나지 않는 평행선을 달릴 뿐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21세기는 환경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환경문제는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우리의 소중한 지구를 자연 그대로 보전해야 한다는 말은 당연한 말이다. 환경보전은 생명과 균형적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 생명의 연장을 위해서도 의약에 의존하는 것보다 환경 자원의 보전에 의지하는 편이 더욱 효과적이다. 따라서 환경주의와 개발주의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은 환경과 개발이 상생의 법칙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은 무분별한 에너지 소비를 통한 환경 훼손의 도구가 아니라 이제는 유익한 에너지를 창출하고 환경을 보전하는 도구로 전향돼야 한다. 그리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교육을 통해 인간 이성과 과학기술의 발전이 궁극적인 인류 행복과 합치되는 길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해야 한다. 결국 과학과 교육이 나라의 힘이다.

    한국외국어대 총장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  
  • 기사입력 2009.08.30 (일) 20:27, 최종수정 2009.08.30 (일) 20:25

  •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Posted by wizysl
, |
[지평선/11월 23일] 남북탁구 단일팀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꼭 20년 전이다. 1991년 5월 6일 일본 지바(千葉)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단체 결승전. 사상 최초 남북 단일팀이 중국과 맞붙었다. 누가 봐도 세계 최강 덩야핑을 앞세운 중국이 우승할 것 같았다. 그러나 한반도 깃발 아래 뭉친 남북단일팀은 그 예상을 보기 좋게 깨면서 극적인 드라마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결과는 3-2의 짜릿한 승리. 1973년 이에리사와 정현숙이 이끈 한국의 우승 이후, 18년 만에 남북한이 손잡고 중국의 아성을 다시 한번 무너뜨린 순간이었다. 남북한 선수와 코치들은 얼싸안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 남북단일팀은 시작부터 매서웠다. 1번 단식에서 이분희가 야무진 스매싱으로 덩야핑을 꺾으며 여자단식 결승 패배를 설욕하자, 현정화도 뒤질세라 가오준을 이겼다. 그러나 중국은 역시 세계 최강다웠다. 막판으로 물리면서도 복식에 이어 덩야핑이 세 번째 단식을 잡아 2-2, 승부를 막판으로 끌고 갔다. 그러나 남북단일팀에는 복병 유순복이 있었다. 초반부터 가오준을 몰아 붙여 3시간 40분의 접전을 마감했다. 북한도 그날의 순간이 얼마나 자랑스러웠으면 기념 주화까지 만들었을까. 북한에서 김일성 부자(父子) 말고 사람 얼굴을 넣은 화폐는 처음이었다.
■ 현정화와 이분희는 1986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처음 만났다. 둘은 같은 동포라는 사실에 금세 친해졌다. 현정화는 한 살 많은 이분희를 "언니"라고 불렀고, 이분희는 "정화야"하면서 자신의 신랑감(북한 남자대표 김석만)까지 털어놓기도 했다. 짧은 훈련기간에도 남북단일팀이 똘똘 뭉쳐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작고 가벼운 탁구공 하나가 남북한 동포를 한마음으로 묶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후 남북스포츠 교류의 새로운 이정표이자 감격인 탁구단일팀을 구성하려는 시도가 몇 차례 있었지만 실패했다.
■ 그런 남북탁구가 20년 만에 다시 하나가 됐다. 카타르 도하에서 어제 폐막한'피스 앤드 스포츠컵'에서 유승민은 북한의 김혁봉, 김경아는 북한의 김혜성과 한 조가 돼 경기를 펼쳤다. 비록 국제친선대회이고, 세계 강호들이 빠졌지만 우리로서는 감회가 새롭다. 더구나 현정화씨가 코치로 나서 의미를 더해 주었다. 때마침 1991년의 남북한이 '아리랑'을 함께 부르던 감격의 우승 순간을 재연하는 영화 <코리아>도 제작 중이다. 직접 코치로도 출연하는 현씨의 말대로 이런 일들이 통일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남북한 모두.


[참고자료]

한국일보 2011.11.23일자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111/h2011112221020724440.htm

Posted by wizysl
, |

아빠의 30대 여친에게 20대 딸이 보내는 편지

등록 : 2012.03.16 19:05 수정 : 2012.03.16 21:18

[토요판] 가족
덤덤했죠 의심했죠 미안해요 고마워요

▶ 아빠의 여자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사랑엔 나이도, 국경도 없다고들 해요. 그런데 이런 얘긴 ‘내 사랑’을 주장할 때만 써먹는 말인 것 같아요. 어느날 문득 내 엄마, 아빠가 “새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하는 순간을 상상해 보세요. 어때요, 일단 좀 당혹스럽진 않으셨나요? 따지고 보면 엄마도, 아빠도 ‘○○○의 부모’이기 전에 사랑에 목마른 XX, XY 염색체를 지닌 ‘인간’일 뿐인데 말이죠. 자, 이번 주말에는 ‘○○○의 부모’란 이름표는 떼고 ‘한 쌍의 남녀’로 부모님을 보는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20대 초반인 나와 50대 초반인 아버지, 그리고 30대 초반인 아빠의 여자친구. 나는 그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도 두 분이 잘 만나는지, 아니면 진즉에 헤어졌는지 알지 못한다. 일상적인 대화도 자주 나누지 않는 아빠에게 “아빠, 스무 살 어린 여자친구랑은 아직 만나?”라고 묻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지금은 만나는지도 모르는 아빠의 어린 여자친구에게 편지를 쓰게 된 동기는 어린 날의 반항도, 아빠를 뺏긴 데서 오는 질투도, 두 사람의 관계를 받아들일 수 없는 혼란스러운 심경을 한탄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는 그 ‘언니’에게 진심으로 말하고 싶다. 고맙다고.

50대의 두 번 돌싱남과
그녀는 무려 스무살 차

반항적인 사춘기 시절
엄마의 빈자리 채워준 분
진짜 가족이 됐더라면…

부모님의 이혼, 아버지의 재혼과 두 번째 이혼으로 사랑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학창시절 6년 동안 변함없는 모습으로 사랑을 깨우쳐준 아빠의 여자친구였다. 사람들이 들으면 ‘아빠의 여자친구에게 고마울 일이 뭐가 있느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건 내가 열여섯 살쯤 되었을 때다. 중학생밖에 되지 않았던 내가 부모님의 이혼과 아빠의 재혼, 그리고 두 번째 이혼까지 불과 4~5년 사이에 너무 많은 일들을 보고 겪고, 또다시 아빠가 여자를 데려왔을 때의 기분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빠의 여자친구라고 소개 받은 사람이 그야말로 ‘언니’라고 부를 나이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랬던 사실’이 되어 감정이 아닌 기억으로 자리할 뿐이다.

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내가 당시 상황들을 이해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녀(아빠의 여자친구)에게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중학교 때부터 내가 성인이 되어서까지, 알고 지낸 세월로만 따져도 6년 이상 아빠의 곁에 머무르며, 반복된 결혼의 실패로 많이 지쳤을 아빠에게 진심 어린 사랑을 주었다. 부모님의 불행한 행보를 지켜보며 내 안에는 사람과 사랑에 대한 불신이 쌓여갔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쉽게 마음을 열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사랑과 관심을 받기 위해 뭐든 스스로 잘하는 아이로 자라났다. 아빠보다 훨씬 어린, 전문직에 종사하는 그녀가 아빠를 만나는 데에도 분명 어떤 이유(예를 들면 금전적인 대가 등)가 있을 거라며 두 사람의 사랑을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빠에게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는 건 내가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녀를 알게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아빠를 왜 좋아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내 질문에 그녀는 명확한 대답 대신 수줍은 미소만 건넸다. 시간이 지나 그녀에 대해 더 알게 되고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아버지가 없다는 것과 아빠는 똑똑하고 다정한, 그녀의 이상형에 맞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녀가 아빠에게 끌리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고. 두 사람은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사랑했다. 여전히 서로에게 간절했고, 서로를 존중했고, 사랑했다.

그녀는 돼지띠인 아빠를 ‘울 돼지’라 불렀다. 음치로 소문 나 있는 50대의 아빠는 그녀가 좋아하는 김동률의 노래를 열심히 연습해서 불러주곤 했다. 조금은 이질적이고 낯선 모습들이었지만 그런 두 사람을 6년 넘게 지켜보면서 사랑을 불신했던 나도 결국 ‘사랑이 있구나’라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열아홉 살 때였나, 아빠와 그녀의 3주년에 커플 열쇠고리를 선물한 적이 있다. 하굣길에 3주년이라는 말이 문득 생각나 근처 팬시점에서 구입한 싸구려 열쇠고리에 두 사람은 내가 당황할 만큼 크게 감동했다. 그때도, 그 후에도 그 일에 대해 물어본 적은 없지만 나에게 ‘인정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녀는 아빠의 여자친구인 동시에 내게는 또 다른 가족이었다. 어린 나를 두고 집을 나간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준 것은 두 번째 엄마(난 단 한 번도 엄마라고 불러본 적 없었다)가 아니라 아빠의 그녀였다. 고등학교 때, 우울증이 있던 내가 한번은 죽고 싶다며 난동을 부린 적이 있었다. 집에는 가장 친한 친구와 그녀가 있었다. 아빠에게도 힘들다는 말 한마디 해본 적 없는 내가 그녀 앞에서 물건들을 집어던지며 오열했다는 건 지금 생각해봐도 현실 같지 않다. 하지만 그랬다. 그녀는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던 나를 묵묵히 받아주었다. 내가 진정이 된 뒤에는 자신도 그런 적이 있다고,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위로해주었다. 참 고마웠지만 지금까지 그 일에 대한 인사를 하지 못했다. 이렇게 뒤늦게 용기 없이 인사를 건넨다. 참 고맙습니다.

그 외에도 그녀는 아빠와 내가 사는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집안일을 도와주기도 하고 사춘기 시절에 학생으로서, 여자로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일에 대한 얘기들을 해주기도 했다. 어디가 아플 때면 꼬박꼬박 약을 챙겨주는 것도 그녀였다. 내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나는 나를 위해 용돈을 직접 은행에서 환전해 작은 메시지와 함께 챙겨주기도 했다. 그때 나는 ‘어차피 여행경비 환전하러 내가 은행에 갈 텐데 뭐하러 바쁜 시간 쪼개 환전까지 해 왔을까’라고 다소 퉁명스럽게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정성’이었다.

그렇게 내게 ‘가족 같던’ 그녀는 끝내 ‘진짜 가족’이 되지는 못했다. 두 사람의 만남엔 암묵적으로 언젠가는 헤어진다는 전제가 있었던 것 같다. 어리고 미래에 대한 가짓수가 무한한 그녀에게 아빠뻘 되는 사람과의 결혼은 너무 많은 제약과 사회적 규탄을 가져오기에 충분했다. 두 집안의 어르신들 역시 두 사람의 만남을 못마땅해한 이유도 있었다. 말했다시피 지금 나는 그녀와 아빠가 계속 만나고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 엄마의 자리를 채워주고 다정한 언니가 되어주고 삶의 선배가 되어주었던 그녀가 끝내 가족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큰 아쉬움은 없다.

그녀가 가족이 되는 게 부담스러워서는 아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에게 감사한다. 그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긴 세월을 사랑하고도 헤어질 수 있다. 20년을 넘도록 함께 살아온 부부도 헤어지는데, 긴 시간을 곁에 있었다고 해서, 가족의 역할을 해주었다고 해서 꼭 가족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그녀가 아빠와 지금도 연애를 하고 있든, 훗날 결혼을 한다고 하든, 아니면 이미 헤어졌다고 하든 선택에 달린 문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이혼을, 아빠와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부모도 행복할 권리가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자녀의 입장에서는 그런 부모가 무책임해 보이고, 큰 상처를 받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자녀의 행복을 위해 한 명의 여자이고 한 명의 남자인 그들을 평생 불행 속에 가둬두는 건 너무한 일 아닌가.

20대 초반의 늦봄


[참고자료]

한겨레 신문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23878.html

Posted by wizysl
, |
입력: 2012-01-02 17:37 / 수정: 2012-01-03 07:16
잘 나가는 자들이 거짓말 더 해…언제고 인생이 쉬웠던 적 없었다

정규재 논설실장 jkj@hankyung.com


거리에는 역겨운 장면도 많다. “이 차에는 아이가 타고 있어요”라는 글귀도 그렇다. 제 자식을 가지고 남들에게 어쩌라는 말인지…, 짜증을 돋운다. “이 차에는 광어와 도다리가 타고 있어요”라는 수족관 차량의 패러디가 차라리 애교스럽다. “영어 잘하는 내 자식이 왜 국내 영업부에 배치되었는지”를 인사부장에게 따지는 신입사원의 부모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살려면 이혼하라든가, 그 월급이면 집에서 용돈 줄 테니 그냥 놀아라는 철없는 부모도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과보호 신드롬이 넘쳐난다. 안철수 교수가 청춘 콘서트로 인기를 끌고 지방선거에서 2040이 집단투표를 던진 이후에는 더욱 그렇다. 언론조차 예외가 아니어서 소위 청춘들의 분노에 동정공감한 다는 기사가 지면을 도배질한다. 청춘 콘서트 복제품도 대유행이다. 말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바야흐로 청춘이 위로받는 시대다. 이런 엉터리 콘서트일수록 가짜 멘토들이 목청을 돋운다. 가짜들은 일자리가 없어 청년 백수가 늘어나는 것이나 자기 집 갖기 어려운 주택사정이나 다락같이 높은 등록금이 모두 기성세대의 잘못이라며 송구스러워한다. 세상의 거친 풍파도 어른들의 잘못이고 결혼을 늦추는 것이나 저출산도 모두 사회의 잘못이라며 어쩔 줄을 몰라한다. 가짜 멘토들은 철부지 부모처럼 세상의 모든 일을 자신이 대신해주지 못해 안달이다.

그러나 대부분 거짓말이다. “우리가 대학 졸업할 땐 일자리가 널렸었다”는 말부터가 지어낸 말이다. 당연하지만 주로 명문대를 졸업한 정치인이나 의사나 교수 출신이라는 멘토들이 이런 거짓말을 한다. 어느 때고 명문대 졸업자에게 일자리가 없어본 적이 없고 대부분 청춘들에게는 일자리가 충분히 있어본 적이 없다. 20,30년 전에는 일자리가 더 적었다. 아니 일자리 자체가 없었다. 독일 파견 광부나 간호사 모집에는 대졸자들이 몰렸다. (물론 비명문대다) 이들은 남의 나라 지하 2000m 막장에서 땀을 흘렸고 간호사들은 병원에서 백인들의 사체를 씻었다. 70년대 초에는 월남에 나가 피값으로 돈을 벌었고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에는 20만명 이상의 청춘들이 숨막히는 중동의 공사장에서 일했다. 그게 삶의 진면목이다. 사법시험에 합격하거나 의사가 되어 잘나갔던 인간들이 지금 멘토랍시고 있지도 않은 말을 허황하게 지어내면서 애들에게 설레발을 치고 있다.

그나마 일자리가 있었던 시대는 386이 대학을 졸업하던 80년대 후반 잠시였다. 386은 아직 구조조정 대상도 아니다. 그래서 이들은 지금도 세상을 우습게 보고 있다. 이게 소위 세대 문제의 본질이다. 일자리는 정부 아닌 기업이 만든다는 것도 이들 가짜 멘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지금도 중소기업 현장에는 사람이 모자란다고 아우성이다. 공무원이나 공기업에 취직 안 된다고 남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런 일자리는 다른 사람 세금으로 먹고 산다. 잘나가는 멘토라는 인간들은 대부분 정부가 주는 자격증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이들은 세상 일을 너무 쉽게 말한다.

1% 에게 세금 더 걷어 무얼 해보자고 너무도 쉽게 말하는 인간들을 강도라고 부르지 않으면 달리 부를 적당한 말이 없다. 남의 돈 가볍게 아는 이들도 청춘들에게 마약을 먹이는 자들이다. 2030 세대가 절망 끝에 결혼도 안 하고 집도 구하기 어려워졌단 말도 지어낸 말이다. 언제고 자기 집 갖고 결혼한 청춘은 없다. 반지하방에 세들어 살아도 뜨거운 사랑으로 좋은 것이 젊음이다. 자기 집 구입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70년대 평균 30년에서 지금은 14년으로 내려왔다. 왜 새파란 청춘이 강남에 제 집을 갖고 있어야 하나. 아니 그런 세상은 있어 본 적이 없다. 그게 오히려 비정상 아닌가. 과도한 물질주의가 청춘을 망치고 있다고 말해주어야 하지 않나. 좋은 대학 나와 교수며 의사며 정치인이요 종교인으로 출세깨나 한 자들이 지금 청년들에게 인기까지 얻으려고 거짓말을 해대는 모습이 실로 역겹다. 지식의 마약상일 뿐이다.

정규재 논설실장  jkj@hankyung.com


Posted by wizysl
, |
11.12.31 16:08 ㅣ최종 업데이트 11.12.31 19:29 이인영 (jdh87)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빈소를 찾아 조문을 마친뒤 장례위원을 맡은 이인영 전 민주당 최고위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이인영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64세로 별세한 가운데,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찾은 임수경씨가 눈물을 흘리며 빈소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임수경
 

선배님! 정녕 이렇게 그냥 가시는 건가요? 초조한 마음으로 시작한 민주통합당 대표 경선 TV 토론을 하는 중 결국 문자메시지를 받고야 말았습니다.

 

"올라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민영이의 메시지에 정신이 멍멍해지고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TV 토론 중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걷잡을 수 없는 심정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참아야 한다, 의연하고자 했지만 마음이 먼저 울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서울로 가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창하가 울먹이며 "형, 이상해. 의사들이 가족들을 대기하래. 어제밤 사이에 갑자기 안 좋아 지셨어" 하고 전화했을 때만 해도,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라고 대답할 뿐 이리도 빠르게 현실이 될 것이라 믿지 않았던 일이었습니다. 혹시나 모를까봐 켜놓았던 스마트폰이 원망스러웠습니다.

 

1988년 저는 감옥에 있는 동안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임종을 함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저에게서 오랫동안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해 가을 감옥에서 나와 좌표를 잃고 방황하던 저를 김성환(현 서울 노원구청장) 형이 재근 형수를 통해 근래 출소한 '근태 형'에게로 소개했습니다.

 

굳이 혼자 가라 해서 서울 수유리 어디 광산슈퍼를 돌아 찾아간 집이었습니다. 제 얘기를 들은 후 첫 마디를 잊을 수 없습니다.

 

"선배들이 잘못해서 후배들을 고생시켜 미안하다."

 

나이 차도 제법 나는데 왜 당신이 형인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당신의 위로를 잊을 수 없습니다. 1987년을 온전히 감옥에서 보냈던 당신은 차분하게 1987년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가고 있었으며 누구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삶으로 역사를 다시 감당해나가고 계셨습니다.

 

  
1988년 6월 30일 김천교도소 앞에서 석방의 기쁨에 만세를 외치는 김근태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김근태

 

파래져가는 그의 마지막 얼굴... 나는 절망했다

 

조금은 더 버티실 것 같다고 해 많은 사람들을 돌려보내드린 뒤였습니다. 새벽 어스름에 중환자실 모퉁이 의자에서 뒤숭숭한 마음을 붙잡고 있는데, 기다리지 않은 소식이 왔습니다. 우리가 기다린 기적은 아니었습니다.

 

두 배 세 배 지금보다 깊은 암흑의 시대를 강철 같은 웃음으로 날려버렸던 재근 형수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깊이 울었고, 그리고 고문을 폭로하고, 수사관의 정강이를 차고, 민가협을 만드느라 밖을 돌았던 엄마를 챙기던 병준이, 병민이가 그 순한 울음을 토해냈습니다.

 

혈색이 사라지며 파래져가는 얼굴에 저는 절망했습니다. 우리들 '근태 형'의 맑은 웃음을 이제 더는 못 보는 것일까요? 생떼 같은 저 아이들을 두고 선배님, 어디로 그리 바삐 가십니까?

 

정신을 차려야 했습니다. 당신을 잘 보내드리는 일도 저희들이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동민이게도 인사드리라 했고 상명이도, 효경 선배도, 기헌이도, 은영이도, 종걸이 형도 당신을 배웅하기 시작했습니다.

 

형수님께, 병준이와 병민이에게 이제 그만 보내드리자고, 잘 보내드리자고 했습니다. 누님께서는 우리 좋은 얘기만 하자며 고통 없는 세상에서 편안하라고 고별하셨습니다. 그러나 형수님의 말씀처럼 우리 모두는 아직 당신을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잘 가시라, 우리가 잘 하겠다 했지만 당신을 지켜주지 못해 죄송했기 때문입니다.

 

그 발표는 정말 하기가 어려웠고 하기도 싫었습니다. 고문 없는 세상에서 편히 쉬시라 했지만 원망이 솟구쳤습니다. 병의 진전을 알렸을 때 선숙 누나는 그렇게 서럽게 울 수가 없었답니다. 회한 같은 것이었을 겁니다. 여느 드라마와 비교할 수 없는 참혹한 오버랩이 스쳐갔을 겁니다.

 

누군가 입을 열고 손가락을 들어 김근태를 비틀었을 때 저는 고통스러웠습니다. 피눈물을 삼켰을 당신은 참 무던히도 참았습니다. 잔인한 시선과 비겁한 칼날이 당신의 마음을 갉아먹고 정신을 파괴하고 있을 때 저는 우리는 당신을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외로웠을까? 오직 마지막까지도 당신을 지켜낸 것은 당신의 영혼과 정신이었습니다. 재근 형수님 이었습니다. 마지막 투병기간 동안 굳어가는 정신과 딱딱해지는 몸을 두고도 재근 형수는 절대로 낙망하지 않았습니다.

 

예비경선을 하던 날, 재근 형수는 선배님의 손을 부여잡고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하며 앞 소절을 부르면 근태 형이 "으으으, 으으으"로 뒷 소절을 불렀다며 또 일주일 전의 희망을 얘기했습니다. "일어나실 거야. 형수 걱정하지 마" 하고 그저 큰소리 한 번 치고는 서둘러 병원을 나왔습니다.

 

중환자실에서, 당신의 그 모습을 거기서 보며 차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왜 당신이 그토록 지독한 싸움을 해야 하는지, 불쌍해서 미칠 것 같았습니다. 당신과 형수가 그렇게 싸우고 있는데 같이 울고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마음 속에 무상함이 밀려들어 한동안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민주주의자 김근태'... 어떤 수식도 필요없는 까닭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64세로 별세한 가운데,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구'라고 직접 쓴 명정을 취재기자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명정은 장사 지낼 때 고인의 관직과 이름 등을 기재하고 관 위에 씌워서 묻는 붉은 천이다.
ⓒ 유성호
김근태

누구보다 인간의 존엄을 위해 싸웠고, 인간에 대한 깊은 예의를 지켰던 한 사람이 가고 있습니다. 평화로운 사람, 정의로운 사람, 지혜로운 사람이고자 했던 그가 이제 우리 곁을 떠나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제 안의 것을 과장하고 포장하려고 할 때 그는 놀라운 성찰과 절제로 자신을 지켜냈습니다. 스스로를 먼저 부족했다고 했고 상처보다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순정의 사람이었습니다. 속절없이 정직과 진실의 세계를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내에게도 딸에게도 아들에게도 끔찍한 사랑이 많은 좋은 남편 좋은 아빠 였습니다.

 

우리가 그에게 마음으로부터 빚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더 근원적인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생각해 보면 '누가 김근태에게 돌을 던질 수 있단 말입니까'는 단순하게 그가 치열하게 한 시대를 살았고, 민주화운동을 했고 고문을 당했고 감옥에 갔다는 것에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현실의 세계에서 이상과 희망을 부정할 때마다 그는 항상 민주주의로 구성된 새로운 세계를 꿈꾸었습니다. 정직, 진실, 희망의 가치는 그 안에서 항상 인간의 철학으로 거듭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자꾸 포기하면서 살았고 그는 더욱 더 깊은 해답을 찾기 위해 살았던 것이 아닐까요?

 

'만약 우리에게 김근태가 없었다면' 하는 가정을 해 봅니다. 우리는 그로 인해 가장 치열하면서도 가장 인간적이었던 한 시대와 세계를 만날 수 있었던 것 아닐까요? 그것이 한 사람 안에서 공존할 수 있었다는 것은 저는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옥 같은 압박을 견뎌내는 인간의 존엄와 정의, 인간 본성의 파괴를 딛고 맞서 나오는 선량한 웃음.

 

우리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이 이름을 붙이지 못할 것입니다. 영구결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자 김근태'! 우리가 더 어떤 수식어도 어떤 수사도 붙이지 않은 이유입니다.

 

유언을 하지 못한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들

 

  
1987년 열린 김근태 케네디인권상 수상기념 구속자석방 촉구대회 모습. 문익환 목사와 함께 김근태씨의 아내 인재근씨(오른쪽)가 앉아 있다.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
김근태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64세로 별세한 가운데,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 고인을 추모하는 대형현수막이 걸려있자, 한 시민이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다.
ⓒ 유성호
김근태

 

그는 유언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에게 선각자로서 실천가로서 많은 것을 남겼습니다.그는 수십 번을 잡혀갔지만 철권통치시대에도 사무실을 구해 간판을 내걸고 대중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실천해낸 사람입니다. 역사는 민청련을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실형을 받았지만 고문을 받고도 철인 같은 기억력을 갖고 증거를 지켜 재판의 결과를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 사람입니다. 세계의 양심세력이 그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누구도 사용할 것으로 판단하지 못하던 '모두진술'을 처음으로 수인의 권리로 요구해 법정에서 처음 사용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모두진술을 한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그는 모두가 조직동원, 금권정치에 갇혀 있을 때 국민경선제를 주장해 관철시켜 정당정치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우리는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을 조금 더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한 걸음 앞서 시대를 통찰하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분양가 원가 공개, 국민연금 투자 등에서 그의 원칙은 현실에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양극화와 신자유주의 시대에 맞서는 김근태의 깃발은 많은 것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FTA를 하려거든 나를 밟고 가라'는 그의 절박했던 외침을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가 2012년을 앞두고 하고 싶었던 마지막 말은 '분노하라, 투표하라'였습니다.

 

"2012년에 두 번의 기회가 있다. 참여하자. 참여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만들고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멋진 지도자를 꿈꾸지 않았습니다. 그는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진실의 눈으로 세계를 정확히 바라보고 정확한 해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투사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정치가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생명과 걸고 싸워야 했으며 타인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걸고 싸웠습니다. 그것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스스로에게 무한히 정직했던 한 인간, 김근태 진실과 정의가 비로소 그 안에서 하나의 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을 가슴에 담습니다... '혁명가 김근태' 

 



그는 언제나 시대가 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상과 일생을 그 안에 두었습니다. 정의롭지 않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고, 정직하지 않은 세상과 타협하지 못했습니다.

 

그를 만나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기억할 것입니다. 자신이 먼저 말하기보다 누가 되었든 먼저 말을 듣고 의견을 구했던 사람입니다. 개인보다는 조직을, 부분보다는 전체를, 명망보다는 신의를, 민주주의자 김근태가 앞세운 정치였습니다.

 

빠르기보다 바르기를 추구했던 생각의 사람 김근태를 보냅니다. 고맙습니다, 형! 선배들의 고백도 이어집니다. 민주와 진보의 길에서 만인의 선배였던 만인의 형이었던 근태 형, 잘 가세요.

 

그래도 이 말은 꼭 하고 싶었습니다. 사랑했다고 존경했다고 감사했다고 잊지 않겠다고 당신을 가슴에 담는다고 역사의 심장에 묻는다고 그 끝에 당신은 혁명가였다고.

 

김근태와 함께 동시대를 살았던 모든 분들께 한 말씀만 더 드립니다. 김근태와 함께 고스란히 고난의 한 시대를 살았던 인재근, 김병준, 김병민을 꼭 기억해 주십시오. 그들은 우리의 가족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인영 전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현재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장례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78331&CMPT_CD=P0000

Posted by wizysl
, |
[김영희 칼럼]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
[중앙일보] 입력 2011.12.16 00:00 / 수정 2011.12.16 00:02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영하 4도의 추위 속에 13세 소녀는 길 건너편의 일본대사관을 응시하고 있었다. 입을 꼭 다물고, 주먹 쥔 두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꼿꼿이 앉아 꿈 많은 자신의 인생을 산산조각으로 파괴해 버린 나라의 대사관을 향해 수평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절망과 분노를 속으로 지그시 삼킨 얼굴이었다. 소녀의 왼쪽 어깨에는 새가 한 마리 앉아 있다.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새다. 가슴의 나비는 환생을 의미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와 자유가 짓밟히지 않는 새로운 생명으로 환생하는 것은 모든 위안부 출신 여성들의 피맺힌 소망이다. 소녀상을 제작한 조각가 김운성씨의 제작의도대로 그것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소녀의 두 발 위에는 털목도리가 둘러지고 오른편 빈 의자에는 꽃묶음이 하나 놓여 있었다. 초현실 같지만 어김없는 현실이었다. 1992년에 시작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 1000회를 맞아 시민모금으로 제작된 청동 소녀상의 이름은 ‘평화비’다.



 소녀상 의 메시지를 정확히 읽어야 할 일본 정부는 소녀상의 철거를 한국 정부에 요구한다. 빈협약에 주재국은 외국 공관의 안전과 품위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규정을 들어 그런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고 있다. 소녀상 어디에도 일본제국의 천인공노할 만행 어쩌고 하는 규탄의 말 한마디가 없음에도 일본 사람들은 위안부들의 인간적 존엄성이 짓밟힌 사실보다는 그들 대사관의 안전과 품위를 먼저 생각한다.

 한국 정부가 소녀상이 거기 서 있다는 것 말고는 일본대사관의 안전을 위협하지도, 그 품위를 떨어뜨리지도 않는 소녀상의 철거 요구를 거절한 것은 당연하다. 소녀상은 정부의 참여 없이 순수 시민모금으로 건립된 것이어서 정부가 철거를 요구할 수 없다는 게 한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지만 그런 외교적 수사(修辭)를 떠나서, 평화비를 거기 세운 것은 위안부 할머니와 시민들의 합당한 권리요, 의사표시다. 전혀 정부가 끼어들 자리가 없는 문제다.

 이미 세상을 떠난 위안부 출신 할머니와 생존자들이 일본 정부에 요구하는 것은 세 가지다. 일본 정부가 한국 여성들에게 저지른 인류에 대한 범죄를 인정하고, 공식 사과하고, 법적 배상을 하라는 것이다. 그것뿐이다. 그런데도 속이 좁아터진 일본 사람들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때 두 나라 간의 청구권협정 체결로 식민 지배의 모든 문제가 청산되었다는 입장에서 요지부동이다. 그러나 일본을 제외한 세계 여론은 일본 정부가 아직도 위안부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 국제노동기구(ILO)가 96년 일본의 배상을 촉구한 것, 미국과 유럽 의회들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한 것은 위안부 문제가 아직도 미해결로 남아 있고, 한국과 대만과 필리핀 등 아시아 여성들에게 일본제국주의가 저지른 만행이 아직도 청산되지 않았다는 준엄한 심판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보편적인 인권의 모체가 되는 자연법에 근거한 인류의 양심의 법정이 내린 판정이다.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 중에서 생존자는 이제 63명밖에 안 된다. 그들 모두 초고령이다. 시간이 촉박하다. 이제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금전적 배상보다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다. 사과 한마디 듣고 상징적으로라도 전쟁터의 성노예로 짓밟힌 여성의 존엄성을 되찾고 한 많은 생을 마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 요구를 거절하는 나라가 어찌 선진 문화국가, 경제대국, 아시아의 강자 대접을 받겠는가.

 한국 정부는 65년의 청구권협정 3조 1항에 따라 일본에 위안부 문제에 관한 협의를 제안했다. 일본이 거부하면 3조 2항에 명시된 제3자 중재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그러나 그것도 일본이 응하지 않으면 성사가 안 된다. 최선의 길은 주말에 일본을 방문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일본 총리에게 할 대승적인 결단의 요구가 결실을 보는 것이다. 정부는 위안부 배상 문제 해결에 정부가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것을 위헌이라고 판결한 헌법재판소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

 일본으로서도 이 문제에 대한 아시아인들의 감정의 응어리를 풀고 도덕적인 짐을 내려놓는 게 국가 이익에 합당할 것이다. 그것이 경제대국의 도덕적 책임이다. 종전(終戰) 이후 90년대 초까지의 냉전기간 중에는 위안부 같은 인간의 문제는 안보의 무게에 밀려 제대로 논의되지 않았다. 그러나 냉전 이후의 세계는 생활의 질과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을 가치와 정책과 담론의 우위에 둔다. 일본이 이런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면 지금같이 고립 속의 침몰과 표류를 계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Posted by wizysl
, |

[노트북을 열며] 알파벳도 몰랐던 그녀가

[중앙일보] 입력 2011.11.23 00:23 / 수정 2011.11.23 09:28
예영준
중앙SUNDAY 차장
처음엔 동명이인이려니 했다. 14억 인구 중에 같은 이름인 사람들로 줄을 세워도 끝이 안 보일 테니 말이다. 그러면서도 나의 손은 모바일 기기를 꺼내 키보드를 누르고 있었다. 미처 검색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사회자는 단상에 선 연사를 “검색엔진 기업 지커(卽刻)닷컴의 CEO이자 중국의 올림픽 영웅”이라고 소개했다. 바로 그녀, 올림픽과 세계 대회에서 무려 18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탁구 마녀 덩야핑(鄧亞萍)이었다. 얼마 전 중국 인민일보 주최로 열린 ‘아시아 미디어 협력 포럼’에서 덩야핑은 주최 측을 대표해 기조연설을 했다.

 옆에 앉았던 그의 부하직원이 혀를 내두르며 인생 스토리를 들려줬다. “대학 입학 때만 해도 영어 알파벳을 몰랐대요. 그런 그가 영국의 최고 명문대학에 유학을 가 박사학위를 따왔으니….” 탁구선수로서 더 이상 오를 나무가 없던 1997년, 그는 라켓을 내려놓고 영어 사전을 잡았다. 스물넷 나이에 칭화대(淸華)대 영문과에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것이다. 당시 덩야핑은 알파벳의 A부터 Z까지, 대문자와 소문자를 온전하게 알지 못했다.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다섯 살 때 라켓을 쥐었고 열세 살에 국가 대표가 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것도 설렁설렁한 게 아니라 남들 1년 신는 운동화를 한 달 만에 갈아치울 정도였다.

 그런 그가 4년 뒤 베이징 올림픽 유치 대사로 나서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어연설을 했다. 평창 올림픽을 딸 때의 김연아처럼 말이다. 그는 하루 14시간 학업에 매달렸다. ‘빨래집게 옆에 놓고 A자도 몰랐던’ 그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박사가 된 것은 선수 시절 몸에 밴 집념과 노력과 도전정신의 결과일 것이다.

 회의 일정 마지막 날 그의 사무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인민일보의 뉴스 검색 사이트를 중국에서 속도가 가장 빠른 범용 검색 엔진으로 탈바꿈시켰다. 엔지니어가 대다수인 직원 190여 명을 이끄는 CEO가 된 지 일 년 만이다. 네티즌의 눈동자 움직임을 감지해 사이트의 어떤 항목을 보고 있는지를 자동으로 집계하는 기술을 그는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만하면 덩야핑의 변신에 합격점을 줄 수 있을 듯했다.

  불현듯 한국의 젊은이들이 떠올랐다. 청춘의 꿈과 희망과 도전이 사라지고 ‘아픔’만이 남았다고들 걱정하는 세대다. 덩야핑이야말로 그런 젊은이들의 롤 모델로 적합하지 않을까. 그를 불러 청춘콘서트라도 여는 셈치고 물어보았다. 당신과 겨뤘던 한국의 젊은이들은 어땠느냐고. “그때 한국 선수들은 기술보다는 정신력과 투지가 대단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그런 게 어찌 탁구뿐이랴. 다시 물었다. “탁구와 박사학위, 그리고 비즈니스 가운데 무엇이 당신에게 가장 쉽고, 무엇이 가장 어려운 일인가.” 그랬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평범한 대답이었지만 나는 감동했다.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안 되는 일도 없다.”

예영준 중앙SUNDAY 차장
Posted by wizysl
, |
삼성과 네이버가 함께 하는 강연 시리즈


[참고자료]
네이버 카페
http://cafe.naver.com/passiontalk.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064&
Posted by wizysl
, |
알다시피 '인문학의 위기'는 500년도 더 된 얘기이다. 고·중세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학문들 사이에 이렇다 할 구분이 없었기 때문에 과학기술의 혁명과 인문학의 등장은 때를 같이 한다. 무협지의 플롯을 빌려 비유하자면, 현대 인문학은 동문수학하던 사형 중 하나인 과학이 어느 날 출중한 실력을 앞세워 기술이라는 추종 세력을 규합하고 종국에는 새로운 문파를 형성하여 독립함에 따라, 어느새 몰락 직전에 처한 문중을 충직하게 지키는 어딘지 우직한 제자와 흡사하다. (인문학의 정의, 역사, 위상 등에 대해서는 한국학술협의회에서 발간한 <지식의 지평> 제2호 특집 "인문정신과 인문학" 참조.) 하지만 이들에게도 희망이 있다. 비록 과학기술이 다방면에서 탁월하지만 모든 면에서 그러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다시 무협지에 비유하자면, 과학기술은 외공에는 출중한 반면 내공에는 서툴다. 인문학자들이 부단히 인성과 교양, 규범과 실천, 이해와 해석을 전문 분야로 내세우는 데에도 나름 절절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에 더해 경쟁력이 약한 분야에서의 격차도 줄이려고 애써야 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인문학의 '과학화' 바람이다. 실증주의의 등장과 인문학의 학문분화도 과학화의 일환이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이 여전히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과연 위기 극복이 가능한가? 위기 극복을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이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무엇인가? 먼저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생각해보자. 그 이유와 경과가 어찌되었든 과학기술은 모든 면에서 지배적이다. 해마다 시집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몇 안 되는 나라인 우리나라에서도 연구재단 연구비 중 인문학이 차지하는 비율은 10%에 불과하다. 이 같은 격차가 지식의 양과 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우둔하다. 일종의 '음모설', 즉 위기의 원인을 시장과 자본 탓으로 돌리는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과학기술과 자본주의는 같은 부모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기술과 인문학을 학문적으로 '대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사한 스승이 같으니 제자들의 실력도 비슷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비록 완전치 않을지는 몰라도 과학이 현재 가용한 지식체계 중 가장 신뢰할만하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인문학이 하지 말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도 과학기술을 예사롭게 여기는 것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아직 특정 분야에서 인문학의 '비교우위'를 주장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특히 문학의 경우, 학문의 영역에서 축출되지 않는 한 남다른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인문학이 특정 분야에 대한 독점적 영유권을 주장하면 곤란하다. 흔히 과학기술을 자연과 짝지우고 가치나 인성을 인문학 고유의 영역인 것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인문학자들 사이에서나 통하는 그들만의 약속에 불과하다. 이미 '인문'에 관심 있는 과학자들이 인문학자의 '독단과 전횡'에 반기를 들고 '제3의 문화'(The Third Culture) 건립에 나선지 오래다. 이제 '인문학의 성역'조차 안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아마 이 상황에서 인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들보다 더 잘하는 것뿐일 것이다. 반면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은 지금처럼 "사람은 인문학 소관이다"라고 강변하는 일이다. 아무 소용없을 뿐만 아니라, 애처롭고 무기력해보이기 때문이다. ('제3의 문화'를 위해서는 웹 사이트 Edge(http://www.edge.org/) 참조.) 이제 인문학이 해야 하는 일 두 가지를 생각해보자. 합종연횡(合從連衡)이라는 말이 있다. 알다시피, 중국 전국시대에 소진(蘇秦)이 제창한 합종설(合從說)과 장의(張儀)가 제안한 연횡설(連衡說)을 합쳐 대국에 맞서 소국이 취할 수 있는 군사, 외교정책이나 정치적 전략을 통칭할 때 사용한다. 구체적으로 합종은 한위조연초제(韓魏趙燕楚齊)의 여섯 나라가 군사동맹을 맺어서 진(秦)나라에 맞서는 방법을 의미하고, 연횡은 위의 여섯 나라가 진나라와 화해하고 복종하는 정책을 이른다. 비유가 적합할지 모르지만, 인문학이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는 합종하여 과학기술과 '경합'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핵심은 과학기술이 아닌 다른 분야와 힘을 합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연횡'하여 과학기술과 공존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일은 (유사)과학 분야와 연계하는 것이다. (인문학 진흥을 위한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대책에 대해서는 김여수 등이 작성한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연구총서 2005-03" 참조.) 먼저 '합종'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자. 아직 인문학이 과학기술에 비해 비교우위에 있는 분야가 있다면 아마도 '사랑', '행복', '자유', '정의', '의미' 등과 같은 가치에 대한 논의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언급했듯이 이 상태로 가다가는 조만간 가치에 대한 논의에서조차 과학기술에 뒤쳐질 것이 뻔하다. 가용한 대항 전략 중 하나는 예술과 체육 등 과학기술이 아닌 분야와 '합종'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문적 탐구의 결과를 예술로 승화시키거나 신체단련을 통해 인문을 탐구하는 융복합적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다. 사실 인문주간 사업을 포함한 상당수의 인문학 진흥정책이 이미 이러한 발상에 착안하여 추진되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근원적인 대책일 수는 없겠지만, 한시적으로나마 유효한 것은 분명하다. 다음은 '연횡'하는 방안이다. 인문학이 과학기술에 비해 학문적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누적 발전이 어렵고 과학기술과 상충하는 결과를 배태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인문학 분야는 학문적 특성상 누적 발전을 도모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과학기술과의 상충을 피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유사과학 분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과학 분야와 '소통'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일례로 1920년대 옥스퍼드대학이 창안하여 이제 어엿한 전공교육과정으로 정착한 '철학, 정치, 경제 융합전공'(Philosophy, Politics and Economics Degree; 약칭 'PPE')은 이러한 방안이 지닌 경쟁력을 잘 보여준다. 개중에는 아예 더 나아가 인문학과 자연과학과 융합해서 다루어보려는 시도도 있다. 장한나가 택해서 유명해진 하버드 대학 학부의 부전공 과정인 "마음, 뇌, 행동"(Mind, Brain, Behavior; 약칭 'MBB')이 대표적인 예이다. PPE와 MBB 모두 인문학이 과학 또는 유사과학 분야와 연계함으로써 공영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나, 길게 보면 자칫 과학기술에 포섭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한 전략인 것도 사실이다. 과연 인문학의 위기는 극복 가능한가? 알다시피 합종연횡에도 불구하고 진나라는 6국을 멸망시킨 후 중국을 통일했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겠지만, 종국에는 과학기술이 기반하고 있는 지식체계가 이제까지 인문학이 담당해왔던 영역을 완전히 '잠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개탄하기에 앞서 그로 인해 발생하는 득과 실을 인류 복리의 관점에서 냉철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특히 지금 당장 인문학도에게 유리한 일이 향후 인류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하지만 다행히도 지금 우리가 인문학도로서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가늠하는 일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우선 현실을 직시하고 당장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그에 더해 과거 과학이 그러했듯이 주류 담론의 맹점과 한계를 노정하고 이를 발판 삼아 '인문학 혁명'을 일으킬 학문적 대안을 암중모색해야 한다. 인문학이 상아탑에 안주하거나 알량한 텃밭 고수의 덫에 빠지면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더 이상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종가에 남아 전통제례를 고집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도리어 이제까지는 상대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다가가서 그들과 연대할 방법을 모색하고 때로는 과감하게 자신을 버려야만 새것을 창출할 수 있다. 그래서 체험이든, 실천이든, 연합이든 시비하기보다는 무엇이라도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문주간을 맞아 전국 인문학도들의 거침없는 행보가 난장처럼 펼쳐지길 기대해본다.

[참고자료]
한국연구재단 e-알리미
http://webzine.nrf.re.kr/epage_1109_2/html/epage1.html
Posted by wizysl
, |

[최장집칼럼]‘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감춰진 상처
최장집 | 고려대 명예교수

평소 나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를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의 중요 특징으로 생각했다. 민주주의는 정치참여와 결사의 자유에 힘입어 사회 여러 세력과 집단들이 정당의 형태로 조직되고, 이들이 제도화된 정치과정 내에서 갈등을 해결하려 경쟁적으로 노력하는 것을 중심 내용으로 한다. 그래야 사회경제적으로 약한 사회집단으로서 노동자들과 소외세력들이 그들 스스로의 요구와 이익을 정치과정에 투입하고 이를 통해 취약한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노동을 대표하는 정당이 존재한다면 그것이 비록 작은 정당이라 해도 전체 정당체제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큰 것이 될 수 있다.

반대로 노동이 민주주의의 정치과정으로 들어와 집단적 주체로서 역할을 못한다면, 정치 전반에 걸쳐 심대하게 부정적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치가 권위주의 시대와 다를 바 없는 구태를 탈각하지 못하고 시민들로부터 냉소와 불만의 대상이 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며칠 전 신문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이 좌절되고 노회찬, 심상정씨 등이 탈당한 것을 보면서 노동의 정치세력화를 위해 분투노력했던 한국 민주주의의 한 중요한 실험이 사실상 종결된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무엇이 잘못되었나? 진보는 무엇이고, 그들은 왜 실패했나?

며칠 전 나는 일용직 건설 노동자들의 인력시장이 열리는 성남시 수진리 고개 일원과 그 인근을 찾아갔다. 세계화가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가져온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 가운데서도 가장 열악한 한계 계층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된 이들의 문제에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벽 4시, 가을 공기가 차가운 그곳 인력 시장은 전국적으로 약 57만 명에 이르는 이들의 삶의 조건과 생활 현실뿐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감춰진 뒷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일용직 건설노동은 야외 공사가 갖는 여러 가지 어려움은 제쳐두고라도, 잦은 산재와 인명 사고에서 보듯 노동 강도와 위험이 가장 높은 직종의 하나이다. 거기에 날마다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는 불안정성의 문제도 덧붙여야겠다. 전국 안 가는 곳이 없는 현장에 도달하는 데 서너 시간도 보통인 먼 이동거리로 인해 그들의 가정생활에서 여가를 갖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다.

그들 대부분은 성남시나 서울 인근의 작은 공동주택이나 지하단칸방에 사는 사람들이다. 일일 노임이 보통 14만원인 형편에도 자식들은 모두 대학에 보냈다는데, 그들의 수입으로는 서울의 유수 대학에 보낼 만큼의 과외와 학원비를 감당할 수 없었고, 그래서 주로 수도권의 지방대학에 다녔다고 한다. 이날 새벽 내가 만났던 사람들 가운데는 길게는 13년이나 중동의 “모래 바람 속에서 모래 섞인 밥 먹으며” 일했고 그 후 일본의 건설 현장에서 일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여럿이었다. 이들이 외국과 국내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해온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하여 세계의 주요 경제 강국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눈부신 경제성장에 기여한 대표적인 생산자집단이자 30대에서 60대에 이르기까지 넓은 연령층을 가진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의 생활조건과 삶의 질은 답보상태였거나 더 나빠졌다. 고용기회는 줄었고, 노임은 적어졌고, 주거조건은 나빠졌고, 자식세대의 사회적 상향이동도 열어줄 수 없는 막힌 현실을 대면하게 된 것이다. 지금 그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중국동포들이 중심인 외국인 노동자들의 대거 유입으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문제였다. 자국민의 노동 조건에 대한 고려 없는 정부의 외국인노동자 정책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날카로웠다. 몇 사람은 건설노조가 주관하는 외국인노동자고용정책 반대집회 때문에 수원으로 간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남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옛날보다 더 살기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대화 도중 한 사람이 “할 수만 있으면 이민가고 싶어요. 이 나라에서 살기 싫어요”라고 말했을 때, 희망의 상실과 감춰진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이들에게서 민주주의는 무엇이었나? 나는 새벽의 인력시장에서 정치와 정당 일반의 부재는 물론이고,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진보정당의 부재 역시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 그리고 여러 운동 단체에서 내세웠던 화려하고 추상적인 진보적 구호들과 담론들이 이 현장에서는 아무 흔적도 갖지 못했다. 이들 노동자들의 존재를 의식한 산업-고용정책, 외국인 노동자정책, 주택정책, 교육정책은 없었다. 지난 20년간 무서운 기세로 밀어닥친 세계화의 물결이 아무런 여과 없이 이들의 삶에 커다란 충격을 가하는 동안, 한국 민주주의는 무엇을 했던 것일까?

최근 안철수, 박원순 현상은 정치권에 몰아닥친 가장 극적인 사건이다. 여러 요인이 다 중요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 혹은 실재하는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다루지 못했던 한국 정당체제의 무기력함이 가져온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의 다른 모습은 바로 여론조사가 지배하는 정치다. 이미 시민, 시민사회라는 포괄적인 말이 정치를 지배하면서 예견된 현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말은 정당정치가 사회적 기초를 갖기 위해 필요한 것, 즉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사회집단의 존재와 그들 간의 갈등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부정하는 추상화된 개념으로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결과가 공직 후보 선출을 지배한다면, 정당이란 여론조사 기관 이상 다른 역할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거관리위원회가 공인된 여론조사 기관을 통해 대표를 선출하고 정부를 구성하면 될 것이다.

나는 한국 민주주의가 이렇게까지 나빠진 중요한 원인의 하나는, 민주화이후 한국 정치와 사회운동이 학생 운동 출신 엘리트들에 의해 지배된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한국 민주화에서 학생운동의 중심적 역할을 부정하려는 데 있지 않다. 그러나 이들이 그 뒤 정치인이 되고 진보 정당을 하고 사회 운동을 주도한 것이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에게 어떠한 실체적 혜택을 주었고, 이들을 위한 정치의 세계를 확장하는 데 무엇을 기여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에 관한 한 내 대답은 부정적이다. 나는 학생운동의 역사적 역할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실제의 현실 삶과 유리된 조건에서 의식화되면서 갖게 된 과잉 이념화된 사고방식과 도덕적 우월의식은 그것이 지속되는 시간에 비례해 부정적 효과를 더 크게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곳 일용직 인력시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대졸자가 아니다. 더욱이 서울의 좋은 대학 출신, 즉 엘리트집단이 아니다. 이 두 집단을 연결하는 접점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동정심을 감정이입(empathy)과 공감(sympathy)의 두 종류로 나누었다. 앞의 것은 스스로 경험하지 않았지만 가치와 이념의 도움으로 다른 사람의 사정에 공감을 갖는 것이고, 뒤의 것은 사실의 구체적인 접촉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사정에 동정을 느끼는 것을 지칭한다. 여기에서 인간 행위의 급진성을 불러오는 감정 형태는 앞의 것, 즉 감정이입이다. 현실의 삶에 기초하지 않은 학생운동의 전통이 정치행위나 사회운동을 추동하는 힘으로 과도하게 크게 작용할 때, 진보의 행동정향 역시 그런 형태를 띠게 된다.

그러한 정조와 감정은, 베버의 개념을 빌려 말하면, 강한 신념윤리를 격발하고 추동하는 반면 그것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책임윤리의 부재 내지는 약화를 가져온다. 사실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이 어떠한 정책을 필요로 하는가 하는 문제는 그들이 처한 조건을 직접 대면할 때 상당 정도는 저절로 드러난다. 그렇지 못했다는 것, 그것 말고 한국 진보정당의 몰락 내지 주변화의 원인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공허한 담론과 추상적 이념의 언어가 지배하는 곳에서 민주주의의 실체적 성과는 만들어질 수 없다. 새벽의 인력시장은 그 어떤 거창한 것이 아닌 이 지극히 단순하고 명백한 진실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참고자료]
경향신문 2011.9.26 오피니언 칼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9262112215&code=990000
Posted by wizysl
, |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