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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입력 2011.07.30 00:11 / 수정 2011.07.30 00:11
정진홍
논설위원
# 우면산 산사태로 황토뻘이 돼 버린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내 한가람미술관에서는 ‘고흐의 별밤과 화가들의 꿈’이란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반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비롯해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대여해 온 세잔, 밀레, 모네, 고갱 등의 진품 130여 점이 전시된 한가람미술관은 예술의전당 내에서 상대적으로 아래쪽에 위치해 있어 토사가 조금만 더 쏟아져 내렸으면 기념비적인 명화들이 몽땅 훼손될, 아찔한 상황이었다. 정말이지 산사태 못지않은 엄청난 문화적 재난이 발생할 뻔했던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죽어나갔는데 그깟 그림이 대수냐고 되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진품의 위력’을 알면 그런 소리 못 한다.


 # 121년 전인 1890년 7월 27일 파리에서 교외선 기차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고요한 들녘에서 적막을 깨는 총성이 울렸다. 한 사내가 자신의 가슴에 권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하지만 그 사내는 그 즉시 죽지 않았다. 오후 내내 숨이 붙어 있었다. 그날 해가 져서 어슴푸레해지자 사내는 놀랍게도 스스로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자신이 머물던 라부여인숙의 3층 다락방으로 돌아와 쓰러졌다. 평소 그를 돌봐주던 의사 가셰가 급히 달려왔다. 총알이 심장 가까운 부위에 박혀 있었다. 하지만 수술을 하기엔 너무 위험한 부위였고 당장 큰 병원으로 이송하기도 불가능했다. 결국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자기 가슴에 스스로 총상을 입혔던 사내는 하루를 꼬박 그 상태로 지내고 그 이튿날인 29일 오전 1시30분쯤 숨을 거뒀다. 유서는 없었다.

 # 그 사내의 이름은 ‘빈센트 반 고흐’다. 그는 죽기 두 달 정도 전인 5월 21일 그 여인숙에 들어와 숨을 거두기 사흘 전까지 미친 듯이 그림만 그렸다. 그는 매일 눈을 뜨고 나서 움직이는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그림 그리는 데 쏟아부었다. 그 덕분에 그는 두 달가량의 기간 동안 자그마치 53점의 그림을 그렸다. 또다시 발작을 일으키기 전까지 스스로에게 시시각각 다가오는 삶의 마감시간을 처절하리만큼 직시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리고 또 그렸던 것이다. 정말이지 놀라운 몰입이요, 투혼이었다. 그래서일까. 반 고흐의 진품 그림에는 결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묘한 힘이 있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 그의 그림이 걸려 있는 곳에서 사람들은 발길을 멈춘다. 심지어 사람들이 밀려서 병목현상마저 일으키기 일쑤다. 왜 사람들은 그의 그림 앞에서 꼼짝할 수 없는 것일까? 아마도 그의 그림에 담긴 ‘혼의 위력’ 때문이리라. 그것은 평생을 세상에 떠밀리다시피 하며 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그림세계에서만큼은 결코 떠밀리지 않고 자신의 것을 고집스럽게 밀고 간 이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조용하지만 위대한 투혼의 응결이다.


 # 이번 수마(水魔)와 우면산 일대의 산사태에서도 유독 예술의전당 건너편만은 안전했다. 예술의전당이 막아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예술의전당의 건물군이 흘러내리는 토사를 막아준 것만이 아니리라. 엉뚱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거기 전시돼 있던 명화들에 담긴 진품의 위력, 특히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지닌 위대한 투혼의 힘 앞에 토사마저 멈춰 선 것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 반 고흐의 서른일곱 생애는 비록 자살로 마감했지만 결코 절망의 대명사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절망을 뚫고 나온 또 다른 희망의 상징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자기 삶의 마지막이 다가오는 그 시간까지도 치열하게 그렸다. 화가에게 진짜 절망은 물감값이 없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그릴 것이 없다는 것이리라. 비록 그는 늘 생활고에 시달렸고 그림 그릴 재료값도 없었지만 그리고 또 그렸다. 그토록 싸우며 견뎌낸 고통 어린 삶의 위대한 흔적들이 지금 우리에겐 위로가 된다. 거듭 수마를 당한 이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빈센트의 이름으로….

정진홍 논설위원
Posted by wizy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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