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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선인들의 덕담이 이번 추석엔 무참하게 무너지고 있다. 8, 9월 내내 연이은 비와 태풍으로 농촌 들녘에 채소농사가 엉망으로 뭉개졌고 낙과들이 즐비하다. 그나마 건진 사과, 배, 복숭아 등 과일의 당도가 뚝 떨어져 수요가 예전 같지 않다. 추수기를 앞둔 시중의 쌀값은 한가위 특수에 아랑곳없이 15년 전의 가마당 12만원대로 폭락하여 농민생산자들은 시나브로 넋을 잃고 있다. 유례가 없는 기괴한 현상을 두고, 갖가지 처방이 난무하고 있다. 그중에서 압권(壓卷)은 여당 지도부가 밝힌 100만톤의 북한 군량미 비축발언이다. 근거도 박약하거니와 경제정책 실패로 이제 겨우 자존심만 남은 북한이 어렵게 내민 쪽박마저 깨지나 않을지 두렵다. 우리나라 역시 밑도 끝도 없이 떨어지고 있는 쌀값 폭락 등 연이은 농사와 농정 실패로 흉흉해진 추석민심을 달래고자 관심을 안보문제로 식히려 드는 전형적인 과거의 정치공작 수법이 떠올라 자못 씁쓸하다. 지극히 명백한 인도주의적 합리적 해법을 외면하고 엉뚱한 정치 셈법으로 선량한 국민들의 민의를 밖으로 돌려대기 바쁜 모습은 차마 정시(正視)하기에 민망하다. 주지하듯 과다 재고미를 보관 관리하는데만 수천억원이 소요된다. 그런데도 사회적 비용(국민세금)이 훨씬 더 드는 방향으로 임시방편적인 처방을 남발하고 있는 작금의 정쟁의 배경이 혹시 농업, 그중에서도 쌀 농업이 골치만 아프고 재무 수익성이 없으니 그만 포기하고 농지투기나 부추키자는 의도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왜냐하면 지금도 이 정권 핵심 경제수 뇌부들의 언행이라든지 최근의 보수언론들의 보도행태를 보면 "앞으론 (쌀)농업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말자."는 속내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설사 시장에서 몇십만톤을 격리한다고 시장가격이 제대로 회복되지 않을 것 같고 항구적으로 수급 불안정 문제가 소멸되지 않을 것 같다는 점이다. 일부 정경유착 세력들이 바라는 대로 자칫 절대농지(논) 만을 훼손하는 엄청난 우와 손실이 예상된다. 논의 형상을 파괴하여 딴 용도로 전용할 경우 일조유사시 원상회복은 거의 불가능하다. OECD 회원국 중에 최하위권의 식량자급률 26.7%인 우리나라가 마치 쌀이 터무니없이 과잉 생산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한 근시안적인 처방들이 자칫 생산기반만을 망가뜨릴지 모른다. 바야흐로 21세기 들어 지구촌은 세계적인 이상기후 변화와 중국, 인도 등 신흥공업국의 등장으로 농산물 가격이 뛰어 올라 에그플레이션(agflation) 현상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으며 점차 범세계적으로 식량수요에 비하여 공급이 부족해지는 현상이 전망되고 있다. 다른 한편,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점점 떨어져 식량위기가 마침내 국가적 안보와 국민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도 절대농지를 타용도로 빼돌리려는 투기세력들의 교언영색과 백가쟁명식 여론호도 행위는 끊임없이 교묘하게 전개되고 있다. 사실을 직시해 보자. 애시당초 지금 남녘땅에 쌀이 남아도는 이유는 크게 보아 전두환 정권 초기 수년간 정치적으로 과다 수입한 쌀 재고량이 해마다 장부상 이월되어 온데서 비롯되다가, 2004년 노무현 정권 때 잘못 협상한 WTO 쌀 의무수입협정 결과 최근에는 매년 30여만톤의 외국산 쌀이 무조건 들여오고 있는데 기인한다. 위 두가지 요인을 제쳐두고, 국민들의 쌀 소비량이 매년 줄어들고 있는 현상만을 일방적으로 크게 내세우는 것은 올바른 해법 도출을 더욱 더디게 할 뿐이다. 매년 들여오는 의무수입량과 기타 자유로이 수입하고 있는 주식용 쌀수입량 만큼만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한과 저개발국가에 다시 내 보내어도 당장의 국내 쌀 수급문제는 안정시킬 수 있다. 또는 일부 쌀농사를 콩 등 타작목으로 전환하면 어렵지 않게 쌀 수급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다만 쌀 농사에 대한 정부지원금 이상의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수만 헥타의 쌀농사를 중단시키고 그 농지를 투기 세력들의 먹이감으로 내놓으려 해서는 그 저의가 지극히 위험스럽다. 더 근본적인 대안은 전국의 쌀농사를 단계적으로 친환경 무농약, 유기농법으로 전환하면 자연스레 소비량 대비 과잉공급문제를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다. 친환경 유기농업은 공급측면에선 초기 상당기간 절대생산 수량이 줄어드는 반면, 소비측면에선 자연 본연의 온전한 식품(whole food)을 공급함으로써 국민적 수요를 증가시킨다. 환경생태계도 더 좋아진다. 절대 농지면적은 단 한뼘도 줄이지 않고 수급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렇듯 친환경 유기농업으로 전환해 가면 우리나라의 쌀 수급문제를 안정시키고 환경생태계 보전과 소비자와 생산자의 잉여가치를 증대시키는 이중, 3중 효과가 기대된다. 물론 이때 정부의 전방위적 친환경 유기농법 지원조치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예컨대, 2002년부터 WTO 협정의 규범에 맞추어 세계 최초로 시행되고 있는 논농업직불제도(rice-farm direct payment)를 강화하면 된다. 즉, 쌀농사의 다원적 공익기능을 살릴 논의 형상유지보전과 농약 등 화학물질 사용감소를 조건으로 도입 실시되어 온 '논농업 고정직불제'를 '친환경농업 직불제'와 병합하여, 친환경 유기쌀농업 농가에 대한 지원을 배가해 주면 된다. 그럴 경우 전통적인 관행 화학농법이 친환경 무농약 또는 유기농업으로 전환될 것이고 거기에 적절한 판로 및 유통대책이 추가된다면 전체 쌀 수급시장은 튼실하게 안정될 것이 확실하다. 그런 면에서 전남도의 제2차 유기농발전 5개년계획은 아주 바람직한 본보기이다. 순수 유기농산물의 비중을 선진국 수준인 전체 생산량의 10% 이상 까지 끌어 올리겠다는 의욕에 찬 계획은 지금 생산자 소비자 모두로부터 크게 환영을 받으며 착실히 추진되고 있다. 수해 북녘 주민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거창한 명분을 내걸고도 낯간지럽게 겨우 5000톤의 쌀을 북쪽으로 보내면서 이산가족 만남을 정례화 하자느니 뭐니 떠들기 민망하다. 기왕에 '인도주의와 박애정신'의 깃발을 올릴 바에야 제대로 지원해야 옳다. 군량미 운운의 국민관심돌리기 정치행위는 속이 너무 들여다보인다. 유치하다 못해 가련하다. 국내 사정만 보더라도 적어도 올해 도입될 외국산 쌀 수량만큼(약 33만톤 이상)이라도 북한이 아니라도 아시아 아프리카 등 빈국들의 영양실조, 기아선상에 있는 노약자, 어린이. 임산부들에게 일본처럼 공적원조(ODA) 현물지원 방식으로 또는 차관형식으로 내보낼 일이다. 궁여지책이긴 하지만 언젠가 미국 잉여농산물 처분사례처럼 바다 속에 그냥 내다버리는 것이 국가적 비용을 덜 들게 할지 모른다. 그 덕분에 국내 쌀 시장가격이라도 안정되어 국내 생산농민들을 살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물며 관행농법을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전환하는 정책이 항구적으로 쌀수급을 안정시키는 해법인데도 이를 외면 부정하는 자 누구인가! 사람도 살리고 하늘과 땅과 물, 자연도 살리고 다가오는 자자손손 이 나라 겨레를 살리는 길이 아니던가. 필자가 유기농업 이론과 실제를 공부하고 돌아 온 캐나다에서는 사람이 먹는 음식(food)을 가지고 규범에 어긋나게 장난치는 개인 또는 기업에 대하여는 유괴범에 준하는 엄한 `형사처벌`을 받도록 한다. 이것이 선진국들의 국민감정이며 법 정신이다. 그래서 생산농민 소비자 정부는 땅과 물을 살리고 하늘(공기)을 살리며 사람의 건강과 생명을 살리는 유기농업 보급에 정성을 다 한다. 그 뿐만 아니라 국가와 국민 너나할 것 없이 굶주리고 취약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식품에 대한 접근을 용이하게 만드는 각종 지원활동에 적극적이다. 일부 도시소비자들은 한 걸음 더나아가 농약 등 화학물질을 쓰지 않고 땅과 하늘의 기운으로 농사짓는 올바른 친환경 유기농업을 지원하는데 팔을 걷고 나서고 있다. 도시지역사회가 지원하는 친환경 유기농업(CSA) 운동이라든지 도시주택과 학교등 빈터를 활용하는 텃밭농업이 지금 요원의 불길처럼 미국 캐나다 유럽대륙을 달구고 있다. 생 명을 존중하는 만큼 배고파 굶어 죽는 사람을 방치 외면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수치스러운 일이다. 정당이나 종교 사회집단 그리고 국가가 이웃의 빈곤과 기아를 외면하는 것은 죄악이다. 그것이 기독교 박애주의 전통 때문인지 또는 선순환을 강조하는 부처님의 대자대비 정신일지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제대로 된 온전한 식품을 인간들에게 허락하고 베풀어 주신 하늘과 땅의 섭리인 것만은 확실하다. 우리는 지금 과다도입한 농산물과 쌀이 남아돌아 흥청망청 소비하고 술을 빚고 가공용으로 사용하면서 매년 15조원어치나 음식쓰레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양곡 관리비도 연간 4000억원이 넘는다. 다른 한편, 한 하늘 아래 같은 땅 위에 같은 핏줄로 태어난 북녘의 동포들은 지금 먹을 쌀이 없어 영유아들과 노약자들이 영양실조와 지적 부진아, 각종 질병 그리고 궁핍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친 예수 그리스도를 받드는 신자들과 대자대비 사상을 따르는 불자들이 이 나라 남녘땅에 가득한데도 느닷없이 전쟁미 운운하며 이런 반인도적 상황이 방치되고 있다. 아, 이 천형(天刑), 이 업보(業報)를 어찌할거나. 세상에 쌀이 '웬수'가 되다니.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 사단법인 환경정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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