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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l* 맛/식품상식 / 2008. 4. 3. 08:27
K씨는 휴가를 하루 내서 병원을 찾았다. 처음 간 곳은 알코올 증상을 다루는 정신과. 곰곰히 생각해보니 자주 과음한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의사가 평소 술 마시다 ‘필름 끊긴’ 경우가 있었냐고 묻자, K씨는 전에 비해 요즘 자주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의사는 술을 마시다 필름이 끊긴 횟수가 며칠 간격으로 3-4회 발생했다면, 이미 뇌가 어느 정도 손상돼 평소에도 5-10분 내에 있었던 일을 깜빡 잊어버리는 ‘단기기억상실’ 증상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알코올이 뇌에 어떤 영향을 미쳤기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뇌에서 기억 기능을 담당하는 주요 장소는 대뇌피질 측두엽에 위치한 해마(hippo-campus) 부위다. 오동열과장(국립정신병원 정신위생과)은 “몸에 흡수된 알코올이 해마를 일시적으로 마비시켜 단기적인 기억상실을 일으킨다”고 설명한다.

알코올 중독자의 뇌를 자기공명장치(MRI)로 촬영해 정상인의 뇌와 비교하면 이 사실이 보다 명확해진다. 알코올 중독자의 뇌는 측두엽 부위를 비롯해 전반적으로 크게 오므라들어 있다. 이런 상태에서 기억 기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다.

이때 생리적으로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뇌는 수많은 신경세포로 구성되며, 신경세포 간 정보 교류는 신경전달물질에 의해 이루어진다. 알코올은 바로 이 물질의 정상적인 작용을 방해한다.
오동열과장은 “알코올 중독자의 해마 부위에서 학습이나 기억에 관계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과 글루타민산의 농도가 떨어진다”고 말한다. 또 서유헌교수(서울대 의대 약리학교실)는 “글루타민산이 다른 신경의 세포막에 접합하려고 할 때 알코올이 이를 방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아직 정확한 메커니즘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과음한 경험이 많을수록 건망증이 심해진다. 이때 걸리는 건망증은 급성(Wernic-ke 병)과 만성(Korsakoff 병)으로 구분되는데, 두가지 모두 어떤 시점 이후의 일뿐 아니라 이전에 있었던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자신의 병실에서 매점까지 가는 길을 기억하는데 몇주가 걸리기도 한다.

건망증이 발생하는 이유는 필수비타민인 티아민(thiamine)이 결핍됐기 때문이다. 티아민은 뇌세포의 각종 대사 과정에 관여하며, 몸에서 직접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음식을 통해 체내에 섭취돼야 한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자는 보통 며칠 동안 음식을 안먹고 술로 세월을 보내기 일쑤다. 또한 알코올은 소화기관에서 비타민이 흡수되는 과정을 방해한다. 그 결과 티아민이 부족해져 뇌의 기억 기능이 심하게 손상되는 것이다.

의사는 K씨에게 또다른 원인을 찾았다. K씨는 평소 몸이 조금만 이상해도 약을 먹는 습관이 있었다. 재채기가 나면 당장 감기약을 사먹었고, 술먹고 난 뒤 머리가 아프면 두통약, 술깨는 약, 간장약을 먹어야 직성이 풀렸다.

오동열과장은 “어떤 약물에는 몇초간 멍하니 ‘살짝 뜨는’(high) 기분을 느끼게 하는 성분이 있다”고 말하면서 “이를 장기간 복용하면 알코올로 인한 기억상실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콧물을 마르게 하는 항히스타민제. 감기약을 먹었을 때 머리가 잠시 몽롱해지는 것은 이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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