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쟁이는 쿠페를 좋아해
ysl* 컨텐츠/그한마디 / 2010. 12. 24. 07:01
멋쟁이는 쿠페를 좋아해
[중앙일보]
입력 2010년 12월 18일
우리 나라엔 1700만 대가 넘는 자동차가 등록돼 있다. 그 많은 차 중에 멋지게 운전을 하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비싼 차를 소유했거나, 기사가 달린 큰 차의 뒷좌석에 앉아 타고 다닌다거나, 스포츠카의 지붕을 내리고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질주한다면 남들이 멋지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차주가 멋있어서가 아니라 명품 차가 폼을 내는 것이고 또 돈이 연출한 멋일 뿐이다.
어느 주말 서울 삼청동길에서 마주 오던 롤스로이스 팬텀 한 대를 비켜 가는데 그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볼 수 있었다. 정장을 한 기사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롤스로이스의 핸들을 잡은 사람은 의외로 젊은 여성이었다. 쿠페라면 몰라도 문짝이 넷이나 달린 팬텀 세단을 그것도 어리게 보이는 여자가 몰고 가는 것이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큰 차라면 기사가 당연히 운전할 것 같은데 또 그래야 롤스로이스의 격에 맞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
쿠페란 문짝이 둘 달린 화려한 차를 일컫는데 원래는 마차(馬車)에 사용되던 용어다. 19세기 프랑스에선 바퀴 4개 달린 4인승 마차에 벤치 의자가 서로 마주 보게 설치돼 있었다. 그러다 어느 시기에 그중 하나를 잘라내어 2인승으로 만들었다. 쿠페(Coupe)는 프랑스어로 자른다는 말인데, 의자 하나를 잘라 2인승을 만들었다고 해서 쿠페라고 이름 붙여졌던 것이다. 훗날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차 문이 둘 달린 차를 2인용 마차처럼 쿠페라고 부르게 됐다. 스포츠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멋을 내고 싶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차가 쿠페다. 그래서 쿠페에 장착된 엔진은 세단보다 성능이 더 좋고 차의 내부도 고급스럽고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세단(Sedan)이라는 단어는 원래 이탈리아어로 두 사람이 드는 손가마에 설치된 의자를 뜻했는데, 지금은 지붕이 있고 문이 넷인 평범한 모델의 승용차를 뜻한다. 어쨌거나 쿠페의 문은 두 짝밖에 없지만 차 값은 문 넷 달린 세단보다 비싸다. 벤츠는 SLK, 롤스로이스는 팬텀2, 벤틀리는 콘티넨털2, BMW는 BMW 650 등의 쿠페 모델을 판매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진정한 멋쟁이들은 투 도어 쿠페(Two Door Coupe)를 좋아한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 멋쟁이가 많은가를 가늠해 보려면 그 나라에 쿠페가 몇 대나 되는지를 알아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참에 국내에는 쿠페가 몇 대나 굴러다니는지 알아봤다. 1996년 현대자동차는 티뷰론이라는 이름으로 쿠페를 내놓았다가 2001년 리모델링해서 투스카니를 출시했다. 2008년 제네시스 쿠페가 선보일 때까지 투스카니는 리모델링 없이 7년 동안 한 가지 모델로 꾸준히 판매돼 왔는데, 그동안 판매된 쿠페의 수가 2만2000대밖에 안 된다. 국내에선 쿠페가 잘 팔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엔 멋쟁이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과연 맞는 말일까.
현대자 동차의 쿠페 티뷰론이 1996년 출시됐을 때 필자는 남성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월간지 ‘에스콰이어’를 발행하고 있었다. 국내 최초로 남성 라이프스타일 잡지를 창간했는데 시사지에 익숙한 독자에겐 라이프스타일 잡지가 낯설었다. 창간호엔 그래도 캔맥주 4개를 부록으로 붙여 8만 부 전량을 매진시켰지만 그 후엔 1만 부도 채 팔리지 않았다. 당시에는 남성을 위한 화장품, 패션 제품도 별로 없어 광고 매출도 매우 낮았다. 그런 남성지가 2002년에 들어오면서 잡지 판매 부수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남성용 패션 제품, 화장품의 등장으로 광고 매출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쿠페 자동차도 남성 잡지와 마찬가지로 주변 문화가 성숙해야 구입하는 사람이 늘어난다고 본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자동차는 부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배기량 몇 ㏄짜리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으며, 외국산이냐 국내산이냐에 따라 차주의 인격과 대우가 달라지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대리주차를 할 때 차종에 따라 차별을 받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도 그렇거니와 차주 자신도 경차일 경우 계면쩍어하기도 한다.
옛 도심의 좁은 도로가 많은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경차에서부터 쿠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종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형편과 사정에 맞게 또는 취향과 멋에 따라 차를 선택할 수 있는 그 나라의 풍토가 부러울 따름이다. 우리나라 자동차 문화가 선진화될 때까지는 비싼 차 또는 덩치 큰 고급차를 타는 것으로 멋을 부릴 수밖에 없는 걸까.
김영철 가야미디어 회장 (에스콰이어·바자·모터트렌드 발행인)
현대 자동차 쿠페 ‘투스카니’?
우리 나라엔 1700만 대가 넘는 자동차가 등록돼 있다. 그 많은 차 중에 멋지게 운전을 하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비싼 차를 소유했거나, 기사가 달린 큰 차의 뒷좌석에 앉아 타고 다닌다거나, 스포츠카의 지붕을 내리고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질주한다면 남들이 멋지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울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차주가 멋있어서가 아니라 명품 차가 폼을 내는 것이고 또 돈이 연출한 멋일 뿐이다.
어느 주말 서울 삼청동길에서 마주 오던 롤스로이스 팬텀 한 대를 비켜 가는데 그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볼 수 있었다. 정장을 한 기사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롤스로이스의 핸들을 잡은 사람은 의외로 젊은 여성이었다. 쿠페라면 몰라도 문짝이 넷이나 달린 팬텀 세단을 그것도 어리게 보이는 여자가 몰고 가는 것이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큰 차라면 기사가 당연히 운전할 것 같은데 또 그래야 롤스로이스의 격에 맞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았다.
쿠페란 문짝이 둘 달린 화려한 차를 일컫는데 원래는 마차(馬車)에 사용되던 용어다. 19세기 프랑스에선 바퀴 4개 달린 4인승 마차에 벤치 의자가 서로 마주 보게 설치돼 있었다. 그러다 어느 시기에 그중 하나를 잘라내어 2인승으로 만들었다. 쿠페(Coupe)는 프랑스어로 자른다는 말인데, 의자 하나를 잘라 2인승을 만들었다고 해서 쿠페라고 이름 붙여졌던 것이다. 훗날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차 문이 둘 달린 차를 2인용 마차처럼 쿠페라고 부르게 됐다. 스포츠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멋을 내고 싶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차가 쿠페다. 그래서 쿠페에 장착된 엔진은 세단보다 성능이 더 좋고 차의 내부도 고급스럽고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세단(Sedan)이라는 단어는 원래 이탈리아어로 두 사람이 드는 손가마에 설치된 의자를 뜻했는데, 지금은 지붕이 있고 문이 넷인 평범한 모델의 승용차를 뜻한다. 어쨌거나 쿠페의 문은 두 짝밖에 없지만 차 값은 문 넷 달린 세단보다 비싸다. 벤츠는 SLK, 롤스로이스는 팬텀2, 벤틀리는 콘티넨털2, BMW는 BMW 650 등의 쿠페 모델을 판매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진정한 멋쟁이들은 투 도어 쿠페(Two Door Coupe)를 좋아한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 멋쟁이가 많은가를 가늠해 보려면 그 나라에 쿠페가 몇 대나 되는지를 알아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참에 국내에는 쿠페가 몇 대나 굴러다니는지 알아봤다. 1996년 현대자동차는 티뷰론이라는 이름으로 쿠페를 내놓았다가 2001년 리모델링해서 투스카니를 출시했다. 2008년 제네시스 쿠페가 선보일 때까지 투스카니는 리모델링 없이 7년 동안 한 가지 모델로 꾸준히 판매돼 왔는데, 그동안 판매된 쿠페의 수가 2만2000대밖에 안 된다. 국내에선 쿠페가 잘 팔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엔 멋쟁이가 그리 많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과연 맞는 말일까.
현대자 동차의 쿠페 티뷰론이 1996년 출시됐을 때 필자는 남성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월간지 ‘에스콰이어’를 발행하고 있었다. 국내 최초로 남성 라이프스타일 잡지를 창간했는데 시사지에 익숙한 독자에겐 라이프스타일 잡지가 낯설었다. 창간호엔 그래도 캔맥주 4개를 부록으로 붙여 8만 부 전량을 매진시켰지만 그 후엔 1만 부도 채 팔리지 않았다. 당시에는 남성을 위한 화장품, 패션 제품도 별로 없어 광고 매출도 매우 낮았다. 그런 남성지가 2002년에 들어오면서 잡지 판매 부수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남성용 패션 제품, 화장품의 등장으로 광고 매출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쿠페 자동차도 남성 잡지와 마찬가지로 주변 문화가 성숙해야 구입하는 사람이 늘어난다고 본다. 아직까지 국내에서 자동차는 부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배기량 몇 ㏄짜리 승용차를 소유하고 있으며, 외국산이냐 국내산이냐에 따라 차주의 인격과 대우가 달라지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대리주차를 할 때 차종에 따라 차별을 받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것도 그렇거니와 차주 자신도 경차일 경우 계면쩍어하기도 한다.
옛 도심의 좁은 도로가 많은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경차에서부터 쿠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차종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형편과 사정에 맞게 또는 취향과 멋에 따라 차를 선택할 수 있는 그 나라의 풍토가 부러울 따름이다. 우리나라 자동차 문화가 선진화될 때까지는 비싼 차 또는 덩치 큰 고급차를 타는 것으로 멋을 부릴 수밖에 없는 걸까.
김영철 가야미디어 회장 (에스콰이어·바자·모터트렌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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