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홍규 칼럼]대학, 자유, 청춘
ysl* 컨텐츠/그한마디 / 2009. 3. 26. 15:00
대학, 자유, 청춘
박홍규 영남대교수·법학
오로지 자유의 청춘인 대학은 그 형식이나 내용이 모두 확 트이고, 매임이나 구속됨이 전혀 없이 언제나 썩지 않아 끝없이 흐르는 물처럼 맑고 신선하며, 생명력으로 펄펄 뛰며 매일 새롭게 빛나는 태양빛처럼 찬란한 곳이어야 하는데도, 언젠가부터 썩은 피라미 같은 자유 없는 망령들만이 우글거리는, 앞뒤가 꽉 막혀 빛 한 줄기 들지 않고 온통 썩은 냄새밖에 나지 않는, 폐쇄되고 응고된 제도의 자유 없는 죽음의 묘지로 변했다. 영원한 나그네인 청춘이 있어 비로소 청춘인 대학은 그 청춘이 자유롭기에 청춘인데도, 언제부턴가 그 청춘은 자유의 참맛을 모르고 대학에 들어서자마자 취업이라는 식권을 챙기는 노예 되기에만 바빠졌다. 아니 그 전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부질없는 죽음의 공부에 노예처럼 휘몰린 탓에 자유라는 걸 알 수도 없는 청춘 아닌 청춘은 대학에 와서 더욱 철저한 노예가 되어버렸다. 스스로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자유로운 삶에 반드시 필요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진선미를 자유롭게 탐구하는 시도를 단 한 번이라도 감행해보지도 못하고, 오로지 규격화된 교과서나 영어교재의 암기를 진리라고 착각하고, 부모나 교사가 부여한 기성 규범에 기계적으로 따르는 것만이 윤리라고 착각하며, 대중매체가 부추기는 얼짱이나 몸짱 따위 허상을 유일한 아름다움으로 착각하는 이 자유 없는, 청춘 아닌 청춘만이 가득한 대학은 이제 완전히 썩어버렸다.
대학, 자유, 청춘이 썩은 땅에 무슨 희망이 있을까? 대학이 언젠가부터 취업 노예화 대학을 수채처럼 더욱 더 썩게 만드는 원흉은 어쩌면 처음부터 자유를 모르고 노예제도로 인식한, 대학이라는 제도를 전혀 자유롭지 못하게 운영하는 대학관료와 교수들이다. 대학을 훈련소나 사관학교 정도의 국가기관, 또는 돈벌이 사설학원이나 위험한 투기 대상 정도, 또는 사회계급을 조장하는 원초적 학벌의 계급양산기구로 오해하는 대학관료에 대해서는 아예 대학의 자유나 청춘을 말할 흥미조차 없으나, 명색이 진선미를 탐구하고 가르친다는 교수라는 자들이 그 어떤 고뇌나 시행착오의 탐구도 없이 기계적인 도제훈련에 철저히 부응해 어쩌다 운이 좋아 교수가 된 뒤에는, 알량한 월급과 연구비 챙기기에만 혈안이 되어 죽은 지식이나 끝없이 나열하는 논문이라는 걸 양산하는 데에 노예처럼 휘몰리거나, 더 큰 돈벌이를 위해 정치판이나 장사판에나 거지처럼 기웃거려 노망하게 하는 데에 앞장서고 있다. 이미 요령 있게 가르치고 학점이나 잘 주면 성능 좋은 기계로 크게 평가받는 정도에 불과한 교수는 스승은커녕 선생은커녕 인간도 아닌 지식 재생산의 노예에 불과하다. 아니 창조적 지식 생산의 능력도 전혀 없이 학생의 개성과 인격을 가장 먼저 존중해야 하는 교육의 기본조차 모르는 교수는, 연구자로서는 물론 교육자로서도 아무런 쓸모가 없는 낡은 기계에 불과하다. 단지 그런 기계의 교체에 불과한 대학에 무슨 자유와 청춘이 있을까? 각종 철학의 최고 전문가라는 철학교수는 우글거리되 정작 자신의 철학을 하는 철학자는 하나도 없는 대학이 아닌가? 최소한 다음과 같은 공부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도 우리 대학에서는 정말 불가능한 사치일까? 등록금이나 강의료 없이 돈으로부터 자유롭고, 학점이나 취업이나 시험으로부터 자유롭고, 출석이나 결석으로부터 자유롭고, 학생이건 아니건 누구나 참여에 자유롭고, 나이, 성별, 직업, 지위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에 자유롭고, 어떤 형식도 없이, 절차도 없이 자유로운 공부 말이다.
자유로운 청춘의 대학 보고싶다 아니 그런 형식이나 절차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내용이다. 즉 교수가 가르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가르치고, 학생이 배우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배우고, 교수의 권위나 학생의 복종도 없이 자유롭고, 지식의 권위나 전통의 억압도 없이 자유롭고, 어떤 기존 가치에도 구속되지 않고 비판하여 자유롭고, 교수와 학생이 자유롭게 강의하고 토론하여 자유롭고, 지금까지의 연구를 철저히 비판하고 새로운 관점을 검토하고 그 내용은 강의 전후로 출판되어 공개되는 공부 말이다. 이러한 자유로운 청춘의 대학이 우리 사회의 기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할까? 인간을 상업적 기계로 만들지 않는 대학과 사회는 어디에도 없는 유토피아에 불과한 것일까? 지옥의 묘지 같은 대학을 닫고 자유로운 청춘의 대학을 열 수는 없는 것일까?
<박홍규 영남대교수·법학>
[참고자료]
경향닷컴 2009.3.25.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3251800125&code=99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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