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유출 주범 ‘소셜 네트워크’
정보유출 주범 ‘소셜 네트워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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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프레드 드보르샥 Manfred Dworschak <슈피겔> 객원 편집위원
광고업계는 고객의 미래를 엿보려고 온 힘을 다하고 있다. 가계 수입이나 거주 지역, 교육수준 등의 자료로 목표 대상의 디지털 시뮬레이션 같은 행동모델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나머지는 수학적 주사위 놀음이다. 이 사람이 다음에 고가의 자전거를 살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는 어디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어할까, 이 사람의 행동이 대출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인가 등을 알아낼 수 있다. 정보량이 많기로는 뭐니 뭐니 해도 정보 교류의 장인 소셜 네트워크다. 약 5억 명의 페이스북 회원들은 한 달에 300억 개 이상의 댓글과 사진, 기타 표현을 남긴다. 1명당 60개에 해당한다. 사람들이 교류를 원하고 모임을 가지려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라도 생산량이 증가한다. 트위터 이용자만 하더라도 현재 매일 9500만 개의 ‘트위츠’라고 불리는 짧은 글을 올린다. 이 모든 농담과 습득물, 작은 지혜, 재치 있는 발언 등이 모여 여론과 경향, 유행의 최신 핵심 기록을 형성한다. 사람들이 매일같이 남기는 삶의 흔적과 디지털 파편들도 어딘가의 데이터 저장소에 쌓인다. 개인정보 보호주의자들은 특히 페이스북에 대해 우려를 표명한다. 페이스북은 항상 사생활을 들춰볼 수 있는 새로운 장치를 발명해낸다. 최근에 만든 것으로는 ‘좋아요’ 버튼이 있다. 회원은 이 버튼으로 토론 사이트의 정치적인 글, 온라인 마켓에서 본 멋진 상품, 마이비디오(MyVideo)에 올라온 여자친구의 동영상 등 인터넷상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 클릭할 때마다 이 내용이 이용자의 프로필에 추가되고, 대개는 친구들에게 전해진다. 지난해 4월 이 조그만 파란색 버튼이 도입됐는데, 이미 인터넷 세상은 이 버튼으로 도배가 되었다. 수십만 개의 사이트가 방문자에게 유용한 이 버튼을 제공하고 박수를 보낸다. 사이트 운영자들은 마우스 클릭을 통해 자동으로 입소문이 나기를 바란다. 하지만 가장 큰 이득을 챙기는 쪽은 페이스북이다. 이렇게 해서 절반에 달하는 인터넷 세상이 페이스북의 레이더 화면에 잡히는 것이다. 페이스북은 서비스 이외의 부분에 대해서도 회원의 취향에 대해 은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때때로 배우자조차 내 남편이나 아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렇게 정확하게 말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누리꾼은 자신이 어디서 누구에게 무엇을 말했는지 점점 기억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정보보호주의자인 바이헤르트는 “서비스 제공자가 거대한 시장권력을 가지고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웹사이트를 장악하려고 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한다. 휴식 시간은 기대할 수도 없다. 페이스북은 ‘좋아요’ 버튼이 자리를 잡자마자 인터넷을 넘어 회원들의 실제 삶까지 함께하려고 한다. 새로운 서비스인 ‘장소’는 이용자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 언제라도 알려줄 수 있게 한다. 이것은 민감한 정보다. 사람들은 이 서비스를 통해 절약하는 법을 배우게 될까? 아니면 도대체 종잡을 수 없기로 유명한 업체에 자신이 어디에서 일하고, 어디에 살고 있으며, 어디서 휴가를 보내는지 다 털어놓는 시대에 익숙해질까? 이동 경로는 아주 개인적인 사안에 속한다. 모바일 인터넷에서는 이 매혹적인 보물이 정보수집가들의 사정거리로 들어왔다. 누구든지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이름과 주소를 추정할 수 있다.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정보업체 오늘날의 이동전화는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있다. 전화기에 위치를 추적하는 위성항법장치(GPS)가 있든지, 아니면 정보를 받고 있는 근처 무선 인터넷으로 위치를 안다. 하지만 전화기를 켠 소유자는 누가 자신의 위치를 알아내는지 통제할 길이 거의 없다. 누구라도 쉽게 그런 위치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기 있는 아이폰 앱의 절반이 전화기 소유자의 위치정보를 스파이 업체에 알리고 있다. 독일에서는 10여 개 업체가 아이의 위치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부모를 위해 휴대전화 위치추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기술이 폭력 남편에게 자신의 부인을 몰래 추적할 수 있도록 한다. 물론 법에서 위치추적 대상자의 동의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요청에 따라 문자메시지를 발송한다. 그러나 전화기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소식을 낚아채고 답장을 할 수 있다.
정보수집가가 점점 더 많이 알아내려고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은 최근 그가 밝혔듯 검색엔진의 미래를 ‘모든 것을 아는 시스템’으로 생각한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구글이 자신의 질문에 대답해 주기를 바란다고 생각지 않는다. 사람들은 구글이 자신에게 다음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말해주기를 바란다.” 이것은 그저 숫자에 미쳐 있는 테크노크라트의 웃기는 비전이 아니다. 그것은 데이터 거대기업인 구글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 결정하는 데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최고경영자(CEO)의 비전이다. 그 목표가 다소 이상하게 들릴지라도 구글은 그 목표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목표를 위해 구글은 알고리즘을 이용해 이용자의 일상 속으로, 그리고 가능하다면 두뇌 속에까지 파고들려 노력할 것이다. 익명의 정보들만 처리되고 있다는 스파이의 주장은 의심이 가는 사안에서는 거의 믿기 어렵다. “익명화된 정보에 대해 논하지 않은 지 이미 오래됐다. 이 정보를 다시 개별화하는 것은 비용 문제일 뿐이다.” 정보 보호주의자 바이헤르트의 말이다. 연구자들은 흩어진 조각을 가지고 어떻게 완전한 정체성을 재구성할 수 있는지 여러 번 보여줬다. 컴퓨터 과학자인 아르빈트 나라야난과 비탈리 슈마티코프는 종종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족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두 과학자는 온라인 영화배급사인 네트플릭스(Netflix)의 익명 고객 50만 명에게서 1억 개의 영화평을 취합했다. 이 고객 중 이미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서 실명으로 영화평을 쓴 적이 있었던 경우에 한해, 3분의 2의 글을 누가 썼는지 알아냈다. 몇 가지 취향 표본은 이미 상당한 신뢰도로 이용자를 알아볼 수 있게 하는 확실한 프로필을 만들어낸다. 대부분의 느긋한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재 진행 중인 개인정보 보호 논쟁에 과민하게 반응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내일 뮌헨에 가고, 어제는 쇠고기 완자 수프 레시피를 검색했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면 왜 안 되는데?” 한마디로 “나는 (떳떳해서) 감출 것이 없다”는 것이다. ‘떳떳하면 감출 게 없다’고 말하는 바보들 미국 법학자 대니얼 솔러브는 이런 견해에 대해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잘못 판단하는 것이라고 한다. 뭔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만이 사생활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은 근본적인 오해다. 솔러브는 모든 활동의 수집과 감청, 감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대개는 평범한 것만 발견된다. 솔러브는 저서 <디지털 인간> 에서 언제 진짜 위협이 시작되는지를 설명한다. 바로 흩어져 있는 수집품이 누구에게도 해명을 허락하지 않는 관청에 의해 가공될 때다. 솔러브는 비교 대상으로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을 인용한다. 이 소설에서 요제프 K는 어느 날 아침 영문도 모른 채 체포된다. 추측하건대, 어느 관청이 그를 조사했고, 정보를 평가했으며,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K는 아무것도, 심지어 그가 무엇 때문에 소송을 당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에겐 어떤 변론도 가능하지 않게 된다. K는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결국 두 남자에게 체포돼 ‘개처럼’ 찔려 죽는다. 사건의 발단부터 보면 누리꾼에게 그것은 전혀 낯선 일이 아니다. 사소한 일들이 결합되고 비교돼 예측이 가능해지고 결론이 난다. 이것이 틀렸는지 혹은 옳은지 검증하는 과정에서 분석 대상인 국민은 단 한마디도 참여할 수 없다. 자신에 대한 재량권의 박탈은 사람과 기업 간의 권력 균형을 변화시켰다. 감시에 관한 것이라면 국가도 마찬가지로 항상 경계해야 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데이터 보존이다. 하지만 그것은 비교적 명료하고 혼란스럽게 진행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행위자가 누군지 알고 있고, 그가 너무 심하다 싶으면 들고 일어나 시위를 하거나 문제를 법정으로 가져간다. 반면 상업적 정보 수집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전문가들조차 익숙해지기 힘들다. 오늘날 누가 지속적으로 인터넷 없이 지내는 선택을 한단 말인가? 사람들은 정보를 빼내는 쿠키에도 쉽게 떨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쿠키는 유용한 목적에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온라인 마켓에서 ‘장바구니에 저장하기’ 등의 기능 말이다. 쿠키를 일괄적으로 금지해버리면 많은 인터넷 사이트를 더 이상 제대로 이용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사회적 압력은 훨씬 강하게 사람들이 스스로 포기하도록 하고, 이웃들도 궁금해하게 만든다. 소셜 네트워크에 등장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괴짜 취급을 당한다. 동시대 사람들은 언제나 누리꾼이 열린 마음으로 동참하기를 기대한다. 인터넷은 호기심 많은 사람에게는 천국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새로운 가능성의 열광 속에서 사생활에 대한 우리의 욕구가 점점 발산됐다고 믿는다. 그가 최근의 한 인터뷰에서 그 내용을 표현하려 했을 때 큰 소란이 일어났다. 그는 ‘사생활의 종말’(완전히 맞지는 않지만)을 언급한 것이다. 실제로 그 지경에까지 이르렀단 말인가? 방해받지 않는 존재의 최소 기준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단 말인가? 아니, 만일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 보호할 수 없단 말인가? 문제는 오히려 이런 운명론에서 이득을 볼 몇몇 대기업이 결정적 작용을 하리라는 점이다. 누가 얼마나 깊숙이 자신의 디지털 정보를 들여다보는지 사람들은 왜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가? 감시당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정보가 어디에서 떠돌고 있는지 왜 한 번도 들을 수 없나? 인터넷은 더 이상 현실과 다르지 않고, 오히려 그 일부가 되었다. 사람들은 숨으려 하지 않고 발견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실제 삶에서처럼 대부분 실명으로 등장한다. 아마존의 서평조차 점점 더 많이 실명으로 올라온다. 아마존은 그렇게 하기를 분명하게 권한다. 바보 같은 상황은 단지 개인이 인터넷 세상에 구축해놓은 자기 이미지에 대한 통제권을 쉽게 놓친다는 것이다. 인터넷은 뒤틀린 거울이다. 부정적 면을 강조하고 확대한다. 피츠버그 카네기멜론대학의 경제학자 알레산드로 아퀴스티는 최근 좋은 정보와 나쁜 정보 간의 유효기간이 어떻게 차이 나는지를 연구했다. 첫 번째 연구 결과는 놀라웠다. 누가 상을 받았다는 소문은 금세 사라진다. 반면 그 사람이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됐다는 쑥덕거림은 끈질기게 떠돌아다닌다. 치명적이게도 대중은 놀라울 정도로 쉽게 믿는 걸로 나타난다. 대중은 새 미디어에서 대부분 검증되지 않은 것들을 받아들인다. 마음만 먹으면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망받는 정보기술(IT) 전문 블로그 테크크런치의 설립자 마이클 애링턴은 재미 삼아 페이스북에 구글 회장 에릭 슈미트로 가입했다. 그는 거기서 24시간 내에 수많은 ‘친구’를 얻었다. 먼저 친구가 된 이들로는 페이스북의 부회장과 비디오 포털 유튜브의 창업자가 있었다. 멀리 흩어져 있는 듯 보이는 세부 사항들을 결합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문제 가운데 하나다. 전에는 사람들이 직장 동료에게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준다든지, 친구에게 재수 없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든지 혹은 제3자에게 휴가 계획을 말하는 식으로 자신의 신분을 어느 정도 통제한 상태에서 넘겨줄 수 있었다. 이는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그렇게 아는 사실들은 흩어져 있고 사람들이 조금씩만 알기 때문이다. 지금은 점과 점이 이어져 선이 그려지고 있다. 컴퓨터가 기계로 읽을 수 있는 모든 흔적을 연결해 실제 인물과 더욱 비슷해지는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그림은 이 사람이 온라인 도박 성향이 있다거나, 그가 가짜 행사에 너무 쉽게 속는다는 등 아무도 알지 못하는 모습까지 포함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의 작은 회사 카타포라의 예에서 자동화된 행동분석의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다. 카타포라는 다른 회사를 위해 직원들의 행동을 조사하는 서비스를 한다. 조사를 위해 모든 디지털 흔적을 평가한다. 전화통화 연결정보, 전자달력에 기입한 것, 특히 저장된 전자우편 등. 대기업의 경우 전자우편 수가 100만 개를 훌쩍 뛰어넘는다. 카타포라의 컴퓨터는 이렇게 모은 정보들을 수상한 행동표본에 따라 샅샅이 조사한다. 기업은 종종 직원들이 사업 기밀을 빼내어 팔지 않는지 의심한다. 정밀한 분석을 통해 서로 긴밀히 협력하지 않았더라도 전자우편을 자주 주고받는 직원들의 파벌을 폭로할 수 있다. 사람들이 갑자기 전화 통화로 전환하는 것- ‘우리 전화로 얘기합시다’ 등 -도 수상하다. 8년 전에 사업을 시작한 카타포라는 원래 기업을 상대로 하는 법정 소송 전문이었다. 미국에서는 그런 소송일 경우 종종 소송 단계마다 수백만 개의 전자우편을 조사해야 한다. 화학기업 다우케미컬에서 손해배상 소송 전문가로 오랫동안 활동한 법학자 윌리엄 헤어는 카타포라와 자주 협력했다. 그는 “오래된 전자우편으로 무슨 일을 벌일 수 있는지 처음 알게 됐을 때, 앞으로는 절대로 전자우편을 쓰지 않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독일법에서는 그런 일이 그렇게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 기업과 협력하는 독일 기업들도 사업 파트너가 미국 법원에 소송당할 경우를 대비해 전자우편을 보존하도록 의무화했다. 인터넷 ‘개인파산제도’가 필요한 이유 미국 인물 검색엔진 인텔리우스는 다시 ‘데이트 체크’라는 이름의 응용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이 프로그램으로 바에서 만난 친절한 이방인의 신원을 신속하게 조회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서비스당 약 15달러의 가격을 지급한 뒤 인터넷으로 전과 여부, 부동산 소유, 현재 생활 상태(아직 부모에게 얹혀 사는지), 관심 목록 등을 해당 소셜 네트워크와 직장인 네트워크를 통해 조사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정보 보호가 허술한 미국 시장에서만 기능한다. 하지만 개인을 요리조리 분석하고 평가하는 것은 독일에서도 유행한다. 사람들은 이미 인터넷에서 이베이의 구매자로서, 아마존의 북리뷰어로서, 페이스북의 ‘좋아요’ 버튼을 통해 서로 끊임없이 평가하는 데 익숙하다.
독일 인물 검색엔진 ‘Yasni.de’는 이런 역할하려 한다. 이미 Yasni.de에서는 자신의 이름에 대한 검색 결과 목록을 새로 정렬할 수 있다. 원하는 링크는 위쪽으로 올리고, 설명이 필요한 검색 결과는 댓글을 달며, 동명이인을 골라낸다. 인터넷에서 좋은 인상을 보장한다. 사실 인터넷에서 개인의 평판을 자유롭게 해서는 안 될 이유가 있다. 어떤 검색엔진이 검색 요청을 받고 검색하는 것은 알고리즘의 우연성과 인터넷 세상의 기분에 달려 있다. 검색 결과가 잘 표시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여기에서 큰 문제는 인터넷에서는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서툰 짓이나 멍청한 일도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더불어 산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억이 사라지고 풍화되고 희미해짐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심한 과오를 저질렀어도 누구나 새로운 시작을 꿈꿀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디지털 자아에게 삶은 영원한 시험이고, 모든 행위는 최종 점수를 받는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사람은 그 실체에 경악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제 정치가들도 관여하기 시작했다. 토마스 데메지에르 내무장관은 개인정보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삭제하는 ‘디지털 지우개’법을 논의에 부쳤다. 하지만 어떻게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 말하지 않았다. 가장 독창적인 제안은 구글 회장 슈미트가 인터뷰에서 한 발언이다. “젊은이들은 미래에 성인의 삶으로 들어갈 때 아예 새로운 신분을 부여받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젊은이들은 자신이 소셜 네트워크에 남겨놓은 창피스러운 일들과 상관없어질 것이다.” 이 발언이 논란을 낳자, 나중에 슈미트 회장은 “농담이었다”고 해명했다. 신분을 확인하는 데 이름이 필요 없게 되는 날이 오면 어차피 이름을 새로 만든다고 해도 소용없을 것이다. 컴퓨터는 얼굴을 점점 더 잘 알아보게 되고, 얼굴은 쉽게 바꿀 수 없다. 당신 정보의 가치는 얼마? 미래를 위해서는 분명히 진보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하버드 로스쿨의 조너선 지트레인 교수는 인터넷상의 나에 대해 개인 파산과 같은 권리를 요구한다. 지트레인은 ‘평판 파산’을 이야기한다. 그는 한 10년마다 원하는 사람은 체면을 손상시켰던 데이터를 삭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트레인의 동료인 마이어 쇤베르거 옥스퍼드대학 교수는 저서 <삭제>에서 이미 망각에 대한 그런 권리가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그렸다. 모든 컴퓨터는 각각의 정보가 미리 입력한 만료일에 자동으로 지워지도록 만들어져야 한다. 기술적으로 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나 과연 실행이 가능할까? 잊어버리기가 어렵다면 어쩌면 미래는 서로 용서하는 문화가 일반적일 수도 있겠다. 모두가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세상에서는 아마 스캔들에 대한 관심도 시들할 것이다. 네덜란드의 거리에는 커다란 창문으로 거실을 자유롭게 들여다볼 수 있는 건물들이 있다. 누구나 모든 것을 안다면 스캔들에 대한 관심도 소진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공격적인 재량권이 최선책이 아니라면, 과다 제공으로 동시대 사람들의 호기심을 소진시켜야 할까? 정보 보호주의자들은 그걸로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대신 엄격함을 강하게 요구한다. 소셜 네트워크 전문가인 미국의 대나 보이드는 페이스북을 공공 업체처럼 감독할 것을 제안한다. 유럽에서도 인터넷 기업의 수집에 대한 저항이 일어났다. 비비앤 레딩 유럽연합 집행위원은 정보 보호를 새로 규정하려고 한다. 지난해 11월 초 ‘망각될 권리’를 포함한 새로운 입법안을 제출했다. 개인은 언제라도 자신의 정보 삭제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이 문제에 무심했다. 정보 보호주의자 바이헤르트는 “왜 네티즌의 90%가 검색하는 데 구글을 사용하는지 모르겠어요. 생각해보면 이미 사용자 정보를 저장하지 않는 아이엑스퀵(Ixquick) 같은 더 안전한 검색엔진이 있잖아요”라고 묻는다. 미국 경제학자 알레산드로 아퀴스티가 한 실험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먼저 연구자가 한 쇼핑센터에서 10달러짜리 상품권을 나눠준다. 그 뒤 상품권을 받은 사람은 연구자에게서 ‘이름과 주소를 알려주면 12달러짜리 상품권으로 교환해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그렇게 싸게 자신을 판 사람은 2명 중 1명꼴이었다. 그러고 나서 연구자들이 교활하게 순서를 뒤집었다. 먼저 이름과 주소를 말하면 12달러짜리 상품권을 나눠준다. 이어서 상품권을 10달러짜리와 바꾸는 대신 자신의 정보도 되돌려받는다. 실험 대상 10명 가운데 오직 1명만 자기 정보를 되찾지 않았다. 출발점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은 달라진다. 사생활이 보호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사람들은 사생활을 높게 평가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사생활은 그들에게 아무 가치도 없다. Tip & Tap 디지털 거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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