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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건이 한국인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들은 엄중하다. 우리는 누구인가? 수백의 인명을 실은 배가 물속으로 가라앉는 동안 전신마비 환자처럼 그 침몰을 지켜보는 것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그리고 희생자들에 대해서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국가는 또 무엇인가? 재난 앞에서 국민의 인명 하나 구해내지 못한 국가는 어떻게 국가이고 나라인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비슷한 인재성 사고를 수없이 겪고도 사고공화국이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사회는 도대체 어떤 사회인가? 2014년 4월16일 사건 이후 진도 팽목항에는 죽어간 아이들을 향한 절절하고도 가슴 아픈 절규의 쪽지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얘들아, 이 사회를 절대로 용서하지 말라.” “누가, 무엇이, 너희들을 죽였는가?” “이것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지고 가야 할 죄다.”


이런 질문과 절규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디서부터 무슨 일을 시작하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관한 요청과 명령들을 제시하고 있다. 해야 할 일은 많다. 그러나 일의 목록을 누가 어떻게 짜건 간에 거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실패를 성찰하고 그 실패의 재연을 막아낼 방법을 모색하는 일이다. 사회는 어느 때 실패하고 왜 실패하는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살피는 것이 성찰이고 문제 해결의 방법과 비전을 찾아보는 것이 모색이다. 세월호 사건은 우리가 성찰과 모색이라는 두 가지 작업부터 진지하고 성실하게 수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가 재난의 가능성 앞에서 자기를 지켜낼 원천적 능력은 거기서부터 키워진다.


<한겨레> 창간 26돌 기념 특집의 하나가 ‘고전 선정’과 ‘고전 읽기’에 바쳐진 것은 세월호 사건이 제기하는 이런 성찰과 모색의 요청에 응답하기 위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시도는 절대로 한가한 것이 아니다. 기본은 번쩍거리지 않고 화려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그 기본을 내팽개치는 순간 사회는 실패를 예약한다. 돌아보면 우리 사회는 기본을 소홀히 함으로써 끊임없이 실패를 예약해 오지 않았는가? 그 기본 중에서도 기본적인 것이 ‘생각할 줄 아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생각이 없고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사회는 거기서부터 이미 재난을 내장한 위험사회다. 그런 사회에서 아이들은 끊임없이 죽고 어른들은 병들고 사회적 삶의 고통은 늘어난다. 생각할 줄 아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고자 할 때 거기 요구되는 중요한 시민적 프로그램의 하나가 고전 선정과 고전 읽기다.


고전이란 무엇인가? 세월호 참사는 한국인들에게 어떤 텍스트가 고전으로 선정될 만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볼 것을 요구한다. 우리가 잊고 있었던 질문들 앞으로 사정없이 우리를 소환하는 책이 지금 우리에게 고전이다. “너라면 이런 배를 타겠느냐?” “너라면 이런 나라에 살겠느냐?” “너라면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 오래된 질문들을 마치 처음인 것처럼 대면하게 하는 책이 지금 우리에게 고전이다. “가치가 물구나무설 때 사회는 어찌 되는가?” “무엇이 가치인가? 삶은 어느 때 의미를 획득하는가?” “문명의 목표는 무엇이겠는가?” “너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아직 다 하지 않은 책, 자기 발언의 의미를 자기 시대에 다 소진시키지 않은 책, 어둠 속의 섬광처럼 한순간 우리를 전율하게 하는 책, 그런 책이 지금 우리에게 고전이다. 우리를 향해 얼음을 깨는 도끼처럼 불편하고 불안한 질문 던지기를 멈추지 않는 책,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질문들에 정답을 주고자 하지 않고 다만 길을 안내하는 책, 생각을 자극하고 생각과 생각을 연결하게 하는 책이 지금 우리에게 고전이다.


<논어>에는 마구간에 불이 났을 때의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대목이 한군데 나온다. 마구간에 불이 났는데 공자가 퇴근하여 그 이야기를 듣고 묻기를 “사람이 다쳤느냐?” 그러곤 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참 멋대가리 없는 이야기다. 그래서 뭐가 어찌 되었다는 거냐? 공자의 제자들은 왜 그런 맹물 같은 이야기를 <논어>에 기록해 두었는가? 사람 값보다 말(馬) 값이 더 비쌌던 것이 공자 시대의 가격체계이고 가치서열이다. 그 시대에 사람의 안위부터 먼저 걱정한 것이 공자다. 세상의 가치서열을 무시한 그는 바보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에서 한국인이 뼈에 사무치도록 절감한 것은 사람보다 돈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의 ‘비참’이다. “인간들아, 인간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것은 <사회계약론>의 저자 장 자크 루소가 21세기 한국 사회에 던지는 절절한 당부다. 권력을 가진 자들과 부유한 자들은 어째서 동료 인간들의 불행에 그토록 무감각한가? 그 루소가 한국인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한겨레> 창간 26돌 기념 특집은 26권의 책을 이 시대 한국인의 사유의 식탁에 올릴 텍스트로 선정하고 텍스트 하나하나로부터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역사, 문명, 인간 등에 관한 질문 하나씩을 뽑아내고 있다. 물론 26권이라는 숫자는 은유적인 것이며 질문 26개도 그러하다. 그러나 이것은 고전의 의미와 그 선정방식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다. 고전은 통상적인 고전 반열에 오르는 책들이어서 고전인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 한국인의 삶에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라는 관점에서 선정되고 있다. 질문은 텍스트가 명시적으로 던지는 것일 때도 있고 암시적 잠재적인 것일 때도 있다. 독자가 텍스트를 향해 던지는 질문도 중요하다. 시민은 누구인가? 세월호 이후 한국인에게 이 질문이 중요해졌다면 사회의 몰락을 막아내는 자가 바로 시민이라는 생각이 그에게 절절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3기니>에서 어떤 인간형을 길러내는가라는 질문이 교육의 핵심부에 놓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지금의 한국인, 한국 사회에 너무도 필요한 질문이고 지적이다.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과 “어떤 인간을 길러낼 것인가”라는 것은 지금의 우리에게 불가분으로 연결된 질문들이다. 어떤 나라를 만들고 어떤 문명의 문법을 구축해 나갈 것인가라는 질문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생각을 거부하는 것이 유행처럼 된 시대다. 사회는 생각하지 않고 비판은 냉소의 대상이 되고 윤리적 사유에는 모라토리엄이 걸려 있다. 생존의 공포에 짓눌린 사람들은 짜증내며 반문한다. 누가 모르나? 그래서 어쩌라고? 생각이 밥 먹여 주나? 그런데 이런 짜증과 함께 우리는 죽어간다. 그 ‘우리’에게 함석헌 선생은 말한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도정일/문학평론가·책읽는사회문화재단 대표

Posted by wizy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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