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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 10월 10일 서울 그랜드 인터컨티넨털 호텔. 소문만 무성하던 구글의 한국 R&D 센터 설립이 공식 발표됐다. 이
자리에서 정세균 당시 산업자원부 장관은 "어떤 언어를 쓰는 누구라도 세계의 모든 정보에 접근하도록 한다는 구글의 기술은 15세기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만큼이나 역사적인 발견"이라고 구글을 치켜세웠다. 아울러 한국 정부는 1년간 12억5000만원을 지원하고
행정편의를 최대한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동석한 구글의 로버트 앨런 유스타스 수석부사장은 환하게 미소지었다.
R&D 센터 건설은 어떤 의미일까. 구글이 한국 시장에 본격 진출한다는 뜻일까. 언론과 주식시장은 잔뜩 촉각을
곤두세웠다. 창업 8년 만에 미국 검색시장의 63%를 점유하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아성을 위협한 IT업계의 괴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글이 어떤 R&D 센터를 세울지는 아직도 미지수다. 처음 두루뭉술하게 밝힌 계획 말고는 예산이나 인력 규모,
활동 계획 등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속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밝힐 내용이 아예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구글의
R&D 센터 유치라는 말을 꺼낸 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나 산자부는 물론, 구글조차 면밀한 준비 없이 일단
'저질렀다'는 얘기다. 현 단계에서는 그 전부터 물밑작업을 벌여온 구글의 한국 인력 채용만 더욱 본격화됐을 뿐이다.
R&D 센터 발표 당일 구글은 비공개 채용설명회를 열었고, 누가 면접을 봤다, 누구는 벌써 뽑혔다더라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실리콘 밸리에서도 공격적 스카우트로 유명했던 구글이기에 업계 관계자들은 긴장했다.
하지만 국내
포털들은 구글이 국내 검색시장까지 쉽게 잠식하지는 못하리라고 봤다. 구글의 기술력은 의심의 여지 없이 세계 최고지만,
국내시장에서는 네이버나 다음이 제공하는 한국형 맞춤 서비스가 한수 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한국 시장에서 구글의
성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구글은 2001년 한글검색 서비스를 시작했다. 2004년께엔 한국에 소규모 영업사무소를 열고 버스
홍보와 옥외 광고까지 했다. 그러나 여전히 상당수의 한국인은 구글이 뭔지도 몰랐다. 구글을 아는 사람들도 네이버나 다음 등 토종
포털에 만족했다(구글은 줄곧 포털 방문자 수 20위권 밖이었다). 구글의 한 관계자가 "이렇게 안 먹히는 곳은 처음 봤다"며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웹사이트 분석업체 랭키닷컴에 따르면 2006년 한국의 인터넷 인구 중 93%가 네이버, 78%가 다음을
방문할 동안 10%만이 구글(google. co. kr)을 방문했다.
구글 마음만 먹으면 국내시장 장악한다
그러나 구글이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한국 시장에서 맥을 못 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국내시장을 치고 들어오지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할 뿐이다. IT 칼럼니스트 김중태문화원의 김중태 원장은 구글은 거대 자본을 보유한 다국적기업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시가총액이 150억 달러(143조원)가 넘는 초우량기업 구글이 한국 시장에서 1위를 하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능하다(국내 포털 1위인 네이버의 시가총액은 4조원이 조금 넘는다). 번거로운 현지화 작업 대신 국내 (한국형) 검색엔진 하나
인수하고, TV 광고 내고, 무료 서비스 제공하면 게임 끝난다고 김 원장은 말했다. "일례로 만약 구글 메신저가 무료 SMS를
한 달에 300건씩 준다고 하면, 당장 네이트온 메신저 이용자들이 구글로 이동한다. 네이트온이 무료 SMS 100건으로 MSN
메신저 이용층을 흡수했듯이." 김 원장은 "지난해 10월 방한한 유스타스 구글 부사장도 [한국 시장에 진출하려고] 공격적인
투자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구글 경영진이 열의가 없기 때문에 한국 시장 진출에 미지근할 뿐이라는 말이다.
구글이 한국 시장에 큰 관심이 없고, 한국 사람들도 구글식 검색엔진에 별 흥미를 못 느낀다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R&D 센터를 세운다는 말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구글이나 한국이나 서로 얻을 게 많다. 우선 구글은 이미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인재 발굴"이 최우선 목표다. 미국 오펜하이머 & 컴퍼니의 분석가 사샤 조르빅은 "구글이 전 세계에
R&D 센터와 사무소를 세우는 건 세계 최고의 인재를 찾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최고 경영진 10명 중 8명이 개발자
출신인 구글은 기술과 인재에 최고 가치를 둔다. 최고만을 엄선하는 과정이 간단할 리 없다. 세계일보에 따르면 지난해 3월에
개장한 대만의 R&D 센터는 10명의 엔지니어를 뽑는 데 8개월이 걸렸다. 한국이라고 달라야할 이유가 없다.
둘째는 실험 시장으로서의 가치다.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 산업 기반이 일찍 발달했고, 소비자들이 신기술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반면
미국은 최근에야 인터넷 회선이 한국처럼 빨라졌다. 미국판 싸이월드격인 '마이스페이스'가 인기를 얻고 '댓글'이 활성화된 지도
얼마 안 됐다. 거즈맨 & 컴퍼니의 분석가 필립 리마크는 한국 R&D 센터가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의 소비자 반응을
연구하고 미국 시장의 변화 양상을 미리 점쳐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실험실"과 같은 역할을 할 거라고 예측했다. 구글의
국제엔지니어링 운영 본부장인 캐넌 파슈파티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시장의 실험시장 역할을 언급하며 모바일 인터넷이나
동영상 공유 서비스 등 한국에서 이미 활성화된 분야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지리.문화적 여건상 한국은 13억 중국
시장의 교두보 역할을 한다. 그동안 구글은 유독 아시아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일본은 야후 재팬이 부동의 1위고, 중국은 토종
검색엔진인 바이두닷컴이 검색시장의 60%를 장악했다. 전문가들은 일부 유럽 국가에서 미국보다도 높은 시장 점유율을 보이는
구글이(독일의 경우 전체 웹검색의 80%를 구글이 점유한다) 아시아에서 기를 펴려면 현지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전종홍 선임연구원은 "규모가 작은 한국 시장에서 비교적 적은 투자로 다양한 현지화 방안을 시험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구글 전문 블로그 팔글을 운영하는 이삼구씨는 구글이 한국 시장에 진출하는 방법의
하나로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얼마 전 다음과 구글이 키워드 광고 제휴를 맺었다. 이씨는 다음이 아직 국내 광고주를 많이
확보하지 못한 구글에 굳이 키워드 광고를 맡긴 까닭은 단기수익보다 장기적인 협력을 위한 전략적 제휴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예컨대
다음 카페나 신지식인 등의 콘텐트를 구글 검색 결과에 노출시키면서 광고 수익을 공유하는 새로운 공존방식을 모색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양측 모두에 득이 되는 방법이라고 이씨는 말했다.
구글 한국사무소의 김경숙 홍보팀장은 "지금은 조직의
틀을 서서히 갖춰가는 단계며, 현재 마무리 단계에 있는 R&D 센터장 선임을 늦어도 상반기 내에 완료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 2월부터 구글 본사 관계자 초청 인터뷰 등 언론을 통해 구글 한국의 사업을 홍보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얼마간 일반 인터넷 이용자는 큰 변화를 느끼기 어려울 전망이다(박스 참고). 그러나 "인터넷 업계는 직간접으로 구글의
큰 영향을 받는다"고 이삼구씨는 분석했다. 구글이 한국 시장에서 얼마나 선전하느냐가 아니라, 구글 때문에 한국의 웹서비스 업계가
어떻게 변화하느냐를 더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네이버나 다음 등 국내 포털들은 위험관리 차원에서 계속 구글의 행보를
주시하며 대응 전략을 세워왔다. 구글의 한국 진출설이 떠돌던 지난해 한 해 국내 포털들은 무척 바빴다. NHN(네이버)은 신흥
검색엔진 '첫눈'을 인수하고 기술 강화에 주력했다. 익명의 한 구글 전문가는 네이버가 첫눈을 인수하고 최근 대규모의 경력인력
채용을 진행하는 까닭은 당장의 필요 때문이 아니라 구글 등에 맞서 "유능한 인재를 선점해 놓겠다"는 의도가 강하다고 말했다.
네이트와 싸이월드를 보유한 SK 커뮤니케이션스는 블로그 전문툴 이글루스에 이어 '열린 검색' 엠파스를 인수하며 검색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한편 다음은 UCC 동영상 공유 서비스에 주력하면서 설치형 블로그로 매니어들에게 각광받던 태터툴즈와
제휴해 좀 더 대중적인 블로그 티스토리를 만들었다. 또 NHN과 SK 커뮤니케이션스는 올 1월에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각각 차세대
블로그 서비스를 공개했다. 네이버 블로그 시즌 2, 싸이월드 시즌 2(C2), 그리고 다음의 티스토리까지 모두 이용자들에게
무한한 옵션을 제공하고 각 포털 간의 경계를 조금씩이나마 허물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내 포털들이 새로 도입한
서비스의 핵심 목표는 개방.참여.공유.분산이며 이는 구글의 기본 철학이자 성공 비결이다. 구글만이 아니라 닷컴 거품 붕괴 이후
살아남은 웹서비스 기업들엔 모두 그런 특징이 있었다. 2004년 어떤 회의에서 IT 관련 미디어그룹 오라일리 미디어의 팀
오라일리 회장은 이 새로운 변화를 웹2.0이라고 이름붙였다. 다음 커뮤니케이션스의 윤석찬 R&D 팀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구글이나 아마존, e베이를 보면 하나의 핵심기술로 개방형 플랫폼을 구성해 '생태계'를 이룬다. 그 생태계에서 개개인의 자발적인
참여와 집단지성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경제권이 형성된다." 구글의 생태계는 페이지랭크(PageRank)라는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무작위로 널려있던 웹페이지들을 링크가 많이 걸린 순서대로 정렬해 의미를 부여한다. 링크가 많다는 점은 그만큼 사람들이 그
웹페이지의 유용성을 인정했다는 뜻이므로, 구글의 검색 결과에는 수많은 사람의 의견, 즉 집단지성이 반영된다. 이때 검색 결과
옆에 검색어와 관련 있는 광고를 띄워 수익을 만든다. 광고는 구글 울타리 내에서만 머무르지 않는다. 웹사이트를 보유한 개인이면
누구나 구글 광고를 설치해 내용 문맥에 맞는 광고를 띄우도록 했다. 이 분산화 전략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구글, 광고주, 광고를
설치한 수많은 개인까지 구글 생태계 안에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매출이 껑충 뛰었다. "웹2.0이
주목받는 이유는 제대로 구현만 하면 엄청난 성공을 담보하기 때문"이라고 윤 팀장은 말했다.
구글의 중요한
개방정책 중 하나가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 공개다. 구글
맵 같은 서비스의 API를 공개해 누구나 원하면 자신의 공간에서 구글 맵 서비스를 설치하도록 했다. API 공개는 기업의 중요
경쟁력을 노출한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일반 상식과 맞지 않는다. 하지만 기업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자사 서비스가 보급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시장 지배력이 늘어나게 된다고 김중태 원장은 말했다. 결국 언제나 발상의 전환이 기회를 만든다. 국내 포털들도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네이버는 지난해 3월 지식In과 검색 관련 API를 공개했다. 다음도 곧이어 신지식, 디앤샵 등의
API를 공개했다. 웹2.0 전문가이자 유명 블로거인 김태우씨는 "개발자 저변이 부족한 한국의 실정상 API 공개가 당장은
실효성이 없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2월 6일 다음과 네이버가 손을 잡고 시작한 '2007 대한민국
매시업(오픈 API를 적절히 섞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드는 작업) 경진대회'는 API 공개의 효과를 높이고 개발인재를 발굴하려는
국내 포털의 의미 있는 행보라 하겠다.
기술이 강조되면서 개발자들의 입지도 눈에 띄게 개선됐다. 윤석찬 팀장은
그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포털은 서비스라는 인식이 강했다. 때문에 개발자보다 웹 기획자 중심으로
사업이 진행됐다. 하지만 최근 구글처럼 핵심기술에 기반한 회사들이 성공을 거두자 개발자들의 역량이 강조된다. 다음의 경우 개발자
네트워크(DNA)를 만들어 콘퍼런스나 포럼을 열고, 기술문서를 지식베이스(Knowledge base)에 공유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낸다."
니모를 찾아서
물론 국내 포털들의 정보 독점은 여전하고, 수익이
크게 저하되지 않는 이상 현재의 닫힌 구조를 당분간은 유지하리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전망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개방과 공유가
정답이다. 한 명의 블로거가 수만 명의 독자층을 거느리는 1인 미디어 시대에 사람들이 언제까지나 포털 안에만 머문다는 보장이
없다. 정보의 민주화와 강력해진 개인의 힘은 세계화의 핵심 요소다. 즉, 웹2.0은 IT업계만의 흐름이 아니라 세계화라는 사회
전반의 변화에 따른 필연적인 흐름이다. 경제학자 조셉 스티글리츠가 "문제는 세계화에 있지 않고 그것이 어떻게 관리되느냐에
있다"고 말했듯, 웹2.0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웹2.0이라는 거대한 흐름 안에서 어떻게 이윤을 창출하는 상품을
개발해내느냐가 문제다. 김태우씨는 API 공개나 사용자의 자유도를 대폭 향상시킨 블로그 등 최근 포털들의 변화 노력을 높이
산다며, 개방이 상생으로 거듭나려면 "API 제공 업체의 개발 육성이나 지원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종홍 연구원도 열린
생각을 강조했다. "싸이월드, 지식In, 오마이뉴스 모두 새로운 서비스 모델이었지만 단편적인 서비스로 성공했을 뿐, 이를 이용해
산업적 효과들이 생기도록 '열린' 협업 구조를 제공하지 못했다. 새로운 서비스와 함께 개방형 구조, 서비스 플랫폼, 그리고 이를
활용할 개발자 지원체계 등이 있어야 한다." 이제 한국의 검색 포털들도 굳게 쳐놓은 울타리를 내리고 변화의 물결에 몸을 맡기기
시작했다. 안락했던 어항이 언제 어떻게 깨져버릴지 모르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누가 먼저 더 큰 바다로 헤엄쳐 나갈까.
류지원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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