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찬송가의 역사
한국 찬송가 역사
1892년 감리교선교사 존스와 로스와일러가 공편한 '찬미가'
1894년 장로교선교사 언더우드가 악보찬송가인 '찬양가(1894)' 발간
1895년 감리교에서는 '찬미가'를 수정 보완하여 '찬미가 증보판(1895)' 발간
1905년 장로교에서는 하나님 호칭을 '여호와'로 사용한 언더우드의 '찬양가'를 인정하지 않았고, 북장로교 선교사 리와 기포드 부인이 공편한 '찬셩시(1895)'를 1905년에 장로교 공인 찬송가로 정하였다.
1908년 감리교와 장로교의 6개 선교부대표들이 모여 '재한 복음주의선교부 통합공의회'를 결성하고 그 첫 사업으로 '찬숑가(1908)' 발간
1930년까지 22년간 감리교, 장로교 연합 찬송가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요꼬하마의 복음인쇄소에 보관되어 있던 '찬숑가' 지형이 불타 없어져 버렸다.
1924년에 감리교 장로교 연합공의회가 체제를 개편하며 그 첫 사업으로 '찬숑가'를 새로 개정하여 발간하기로 하고 조선예수교서회 발행으로 '신뎡 찬숑가(1931)' 발간. 장로교 총회에서는 사실상의 거부의사를 나타냈는데, '조선예수교서회'가 장로교총회와 상의 없이 찬송가를 출판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1935년 장로교에서는 '신편 찬송가(1935)'를 발간
1949년 1945년 해방될 당시에 감리교는 '신정 찬송가', 장로교는 '신편 찬송가', 성결교는 '부흥성가'를 각각 사용하고 있었는데, 해방 후 서둘러 이 3개의 찬송가를 다시 합쳐서 '합동 찬송가(1949)'를 발간
그러나 대한예수교장로회의 1차 분열로 1951년에 예장 고신측 경남법통노회를 결성하며 '신편 찬송가'를 채택했고, 1959년에 예장이 '통합'과 '합동'으로 2차 분열되면서 합동측은 합동찬송가의 사용을 거부하고 별도의 찬송가편찬위원회를 만들었는데, 합동측과 고신측이 1960년에 합하여 총회를 구성하면서(나중에 다시 갈라짐) 찬송가편찬위원회를 합쳐서 '새찬송가위원회'를 통하여 '새찬송가(1962)'를 발간하였다.
한편 감리교(기감), 예장통합, 기장, 성결교(기성) 연합으로 '한국찬송가위원회'를 조직해 '개편 찬송가(1967)'를 발간했다.
또다시 한국교회는 '새 찬송가', '개편 찬송가', '합동 찬송가'로 분열되었다.
1975년에 이르러 찬송가의 통일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면서 한국찬송가위원회와 새찬송가위원회가 '찬송가합동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켰고 1981년에 '한국찬송가공회'를 출범시켜 '통일 찬송가'라고 불리는 '찬송가(1983)'가 탄생, 20년 넘게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이후 10여년의 작업을 거쳐 '21세기찬송가'로 이름 지은, 한국찬송가가 128곡이 수록된 '찬송가(2006)'를 발간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재단법인 한국찬송가공회 사건'이 발생하여 결국 2011년에 새로운 찬송가를 내자는 찬송가위원회와 비법인 공회에서의 결의들이 나오게 됐다.
[참고자료]
포럼-이보철, 한국교회 찬송가의 역사와 당면문제 - 들소리신문
www.deulsori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193
오소운, 누구나 알기 쉽게 쓴 21세기 찬송가 연구
이천진, 이천진 목사가 쉽게 쓴 찬송가 이야기, 신앙과 지성사
'ysl* 컨텐츠 > ysl* music' 카테고리의 다른 글
[song] 내 사랑 투유 (0) | 2016.05.25 |
---|---|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0) | 2016.04.10 |
서울시향 정기공연 2016.1.9. (0) | 2016.01.10 |
브루크너 교향곡 9번 (0) | 2016.01.06 |
[song] love lifted me (0) | 2015.10.19 |
거북이 터틀맨 임성훈 (0) | 2015.07.25 |
[song] 메모리 (0) | 2015.06.13 |
[song] 스킴블샹크스 Skimbleshanks: The Railway Cat (0) | 2015.06.13 |
소리얼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 (2015.6) (0) | 2015.06.02 |
아이튠즈의 80년대 히트 팝송 21곡 (0) | 2015.05.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