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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피천득

ysl* 사람들 / 2007. 5. 26. 23:43

수필(隨筆)

피천득

수필은 청자(靑瓷) 연적(硯滴)이다. 수필은 난(蘭)이요, 학(鶴)이요, 청초(淸楚)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女人)이다. 수필은 그 여인이 걸어가는 숲속으로 난 평탄(平坦)하고 고요한 길이다. 수필은 가로수 늘어진 페이버먼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길은 깨끗하고 사람이 적게 다니는 주택가에 있다.

수필은 청춘(靑春)의 글은 아니요, 서른 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정열(情熱)이나 심오(深奧)한 지성을 내포한 문학이 아니요, 그저 수필가가 쓴 단순한 글이다.수필은 흥미를 주지마는 읽는 사람을 흥분시키지는 아니한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散策)이다.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는 것이다.

수필의 색깔은 황홀.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 않고 퇴락(頹落)하여 추(醜)하지 않고, 언제나 온아우미(溫雅優美)하다. 수필의 빛은 비둘기 빛이거나 진주빛이다. 수필이 비단이라면 번쩍거리지 않는 바탕에 약간의 무늬가 있는 것이다. 그 무늬는 읽는 사람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한다.

수필은 한가하면서도 나태(懶怠)하지 아니하고, 속박(束縛)을 벗어나고서도 산만(散漫)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優雅)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한 문학이다.수필의 재료는 생활경험, 자연관찰, 또는 인간성이나 사회 현상에 대한 새로운 발견, 무엇이나 다 좋을 것이다. 그 제재(題材)가 무엇이든지간에 쓰는이의 독특한 개성과 그때의 무드에 따라 <누에의 입에서 나오는 액(液)이 고치를 만들 듯이> 수필은 써지는 것이다. 수필은 플롯이나 클라이막스를 필요로하지 않는다. 저자가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이 수필의 행로(行路)이다. 그러나 차를 마시는 거와 같은 이 문학은 그 방향(芳香)을 갖지 아니할 때에는 수도물같이 무미한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수필은 독백(獨白)이다. 소설가나 극작가는 때로 여러 가지 성격을 가져 보아야 한다. 셰익스피어는 햄릿도 되고 폴로니아스 노릇도 한다. 스러나 수필가 햄은 언제나 차알스 램(C. Lamb)이면 되는 것이다. 수필은 그 쓰는 사람을 가장 솔직히 나타내는 문학 형식이다. 그러므로 수필은 독자에게 친밀감을 주며,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와도 같은 것이다.덕수궁 박물관에 청자 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 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破格)이 수필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잎을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를 필요로 한다.이 마음의 여유가 없어 수필을 못 쓰는 것은 슬픈 일이다. 때로는 억지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 하다가 그런 여유를 갖는 것이 죄스러운 것 같기도 하여 나의 마지막 십분지일까지도 숫제 초조(焦燥)와 번잡(煩雜)에 다 주어 버리는 것이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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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같았던 '아빠' 피천득">|연합뉴스|2007-05-26
    유족이 전하는 아버지 피천득

    (서울=연합뉴스) 이준삼 기자 = "아버님은 자상하면서도 엄한 사람이셨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식들을 친구처럼 허물없이 대할 줄 아는 분이셨습니다."

    25일 97세로 세상을 떠난 국내 최고령 문인 피천득 서울대 명예교수. 벌써 수십 년 전에 분가한 자식들이지만 그들의 기억에는 여전히 "친구같이 편하고 허물없는 부친"의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큰아들 세영(사업)씨는 "특이하게도 아버님과 우리 사이에는 어떤 비밀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며 "항상 친구처럼 대해주셔서 무엇이든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작은아들 수영(서울 아산병원 소아과 의사)씨도 "우리는 '아버지'라는 호칭보다는 '아빠'라고 불러왔다"며 고인이 상당히 소탈하고 탈권위적인 부친이었음을 전했다.

    생전 부친의 인상 깊었던 모습에 대해 세영씨는 "여름철 학교에서 강의하고 지친 모습으로 돌아온 뒤 찬밥을 물에 말아 맛있게 잡수시던" 모습을, 수영씨는 "한국전쟁 당시 추운 겨울날 잡곡밥을 먹고 있던" 장면을 떠올렸다.

    세영씨는 "누구나 가난했던 그 시절 체구도 작은 아버님이 그렇게 식사를 하는 모습이 무척 안타깝게 보였던 것 같다"며 씁쓰레했고, 수영씨도 "바로 얼마 전 아버님을 모시고 코엑스 근처 목욕탕에 모시고 가 때도 밀어드리고 했었는데…"라며 생전 부친의 모습을 그렸다.

    평소 고인이 "내 일생에는 두 여성이 있었다. 하나는 나의 엄마고 하나는 서영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애지중지 사랑한 딸 서영씨. 부친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22일 부랴부랴 미국에서 귀국한 그는 아버님에 대한 기억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느냐"며 깊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1910년 5월29일 태어난 고인의 장례 날짜는 29일로 잡혔다. 공교롭게도 고인이 세상에 태어난 날 다시 세상을 떠나게 된 것. 유족들에 따르면 고인은 어떤 유언도, 유고집도 남기지 않았다. 다만 평생 입버릇처럼 말해오던 "항상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라"는 한 마디를 자식들 가슴 속에 심어주고 떠났다.

    세영씨는 부친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돌아가시기 1-2시간 전까지도 의식이 남아있었다"며 "편안하게 돌아가셨다"고 전했다.

    고인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까닭에 29일 오전 7시 장례식장인 서울아산병원에서 천주교 조규만 주교 주례로 장례미사가 열릴 예정이다.

    js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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