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에프게니 키신(Evegeny Kissin)
ysl* 사람들 / 2009. 4. 5. 00:12
2006년의 키신 열풍이 2009년에도 재연되었다. 1월 8일 오후 2시 인터넷에서 팔기 시작한 예브게니 키신(38)의 피아노
독주회(4월2일 예술의전당) 티켓 2300장이 6시간 만에 동이 나 화제가 되고 있다. 예약을 받던 두
사이트(클럽발코니,인터파크) 중 하나가 다운됐고, 공연 주최사인 크레디아에는 전화가 빗발쳤다. 결코 만만치 않은
가격(17만~6만원)임에도 키신열풍을 식히지는 못했다.
두
살 때 처음 피아노를 연주. 모스크바 그네신 음악학교 신동 코스에 6세 때 입학. 모짜르트 협주곡으로 데뷔 공연을 가진 것이
겨우 10세 때. 그 다음해 첫 독주회. 여느 연주자이면 콩쿠르 참가를 위해 맹훈련을 할 10대 후반의 나이에는 이미 세계적인
프로페셔널 아티스트. 물론 어릴 때부터 예능이나 체육등에 소질이 있는 신동들이 일찌감치 국가에 의해 발굴되고, 최고의 지위에
오르기까지 국가적인 투자와 교육을 아끼지 않았던, 이제는 사라진 구 소련의 시스템이 발굴하여 탄생시킨 러시아 신동 연주자의
계보의 마지막 불꽃을 장식하는 에프게니 키신의 약력이다.
에프게니 키신은 1971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키신이 태어날 무렵 그의 어머니는 이미 열살 위인 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었고 그런 만큼 어린 키신에게 무리하게 피아노 레슨 장면을 보며 나름의 음악적 감각을 익혀갔던 것이다. 아들의 재능이 예사롭지 않음을 깨달은 부모가 키신을 그 내신 중등음학학교로 데려간 것은 여섯 살 때, 여기서 키신의 재능은 영재음악 교육의 대가 안나 칸토르 교수에 의해 섬세하게 다듬어져 갔다.
팔꿈치로부터 손가락 끝까지를 거의 일자가 되게 내리 누르듯 연주하는 독특한 운지법은 어린아이의 우스꽝스런 버릇 같아 보였지만 칸토르 여사는 이 마저도 키신이 느끼는 가장 자연스런 표현법임을 알고는 억지로 교정하지 않았다. 지금 키신은 가장 독특한 운지법을 구사하는 피아니스트로 여겨지지만 누구도 그 보통스럽지 않은 자세에서 흘러나오는 연주가 어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바흐에서 슈만, 리스트, 쇼팽, 스크리아빈, 프로코피에프, 라흐마니노프 그리고 바흐를 연상시키는 자작의 인벤션에서 키신의 경이로운 테크닉과 해석의 깊이를 가늠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건강한 감미로움으로 촉촉히 젖어드는 쇼팽, 지나친 엄숙함 보다는 중용적인 템포감을 유지하는 바흐, 얽힌 실타래를 풀 듯, 정연하면서도 풍부한 감성으로 넘치는 스크리아빈, 어느 곡에서도 키신은 이미 솜씨 좋은 테크니션은 넘어있는 것이다.
180센티가 넘는 훤칠한 청년으로 자라버린 키신에게 신동이란 별명은 이제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다가올 그의 청년기는 한창 때 무기력하게 주저 앉아버린 수많은 신동들을 보아온 음악 팬들에게 그의 비전과 저력을 펼쳐보이는 의미로운 시련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에프게니 키신은 신세대 피아니스트계의 선두주자다. 12살 때인 84년 모스크바 필하모닉(지휘 드미트리 키타옌코)과 쇼팽이 남긴 2개의 피아노협주곡을 협연한 이후 세계음악계의 주목을 받으며 명성을 쌓고 있다.
두 살 때 피아노를 연주해 열살 때 정식 데뷔무대를 가졌고, 열 두 살 때 국제 무대에 나오면서 그의 험난한 운명은 시작됐다. 그는 매번 뭔가를 끊임없이 보여줘야 했고 연주 속에서 천재성을 드러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연주가로서 그의 수명은 곧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1990년대 초반 그는 대중 스타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세계 유수의 언론이 앞다퉈 그를 소개했고, 클래식 음악계의 불황도 그의 음반과 연주회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또 그는 세계 음악계가 찬탄해 마지 않았던 마우리치오 폴리니 보다 대중들에게 더 큰 대우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키신은 자만하지 않았다. 인기에 편승해 다른 연주가들처럼 낭만적인 소품 모음집을 남발하지 않았고, 매번 일정한 실력으로 완성도 높은 연주를 들려주며 전설을 만들어갔다. 대중들의 천박한 심리에 휩쓸려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우를 범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차분하게 실력을 가다듬어 안절부절 못하는 대중들을 만족시킬 줄 알았다. 급기야 이런 모습을 보고 대중들은 키신을 거장적 연주가의 반열에 올려놓기에 이르렀다.
"예술인은 언제 어디서나 감정을 쏟아 분위기를 창조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순간적인 심적 변화로 연주를 망치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연주가는 어떤 기분에 지배를 받아서는 안됩니다. 매번 자신의 연주를 최상으로 만들 수 있는 평상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죠."
피아노 콩쿠르를 거치지 않고 성공한 몇 안 되는 연주자인 그는 한 번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실을 닦아왔다. 이 모습은 오랜만에 선보인 신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바흐-부조니의 토카타, 아다지오와 푸가,' 글린카의 '종달새,'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는 이 음반에는 키신의 매력이 잔뜩 배어있다. 기교와 비르투오시티의 뛰어남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고, 음악에 대한 성찰 또한 전보다 한 걸음 더 깊어진 듯하다.
수 많은 연주가들이 '신동'이니 '천재'니 하는 소리를 들으며 금세기 연주사 속에서 명멸해 갔지만 키신 만큼 '신동' 이라는 별명이 자신의 이미지와 극적으로 어우러지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전쟁 전의 소련 음악계를 혜성처럼 휩쓸었던 에밀 길렐스 이후 이렇다 할 '신동형' 피아니스트를 배출해내지 못했던 러시아 음악계가 세계 무대를 향해 무서운 아이들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한 것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바람이 한창 기세를 드높일 무렵이었다.
쇼팽 콩쿠르의 영웅 부닌을 필두로 바이얼린의 바딤 레핀과 막심 벵게로프, 피아노의 키신과 루간스키 등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에 출생한 젊은이들이 신세대 연주자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세계 무대에 문을 두드렸다.
그 중에서도 키신의 이름은 각별한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열 다섯 살도 되기 전에 세계 음악 팬들의 마음을 뺏어버린 급속하고도 경이로운 성취는 그가 '타고난' 천재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만들었다.
우리는 흔히 어린 연주자가 재능이 있다고 하면 나이를 고려해 그 수준에 맞는 연주 내용을 받아들이려고 준비하기 쉽다. 하지만 키신의 연주를 대할 때 이런 준비는 불필요하다. 경이롭게도 그는 수 십년 각고의 세월을 바친 중견 피아니스트들의 피와 땀을 가볍게 뛰어 넘어 버리는 기교와 해석을 구사한다. 이런 느낌은 어떤 면에서 차라리 전율에 가깝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레코딩을 통해 듣는 키신의 음악은 이미 소년의 것은 아니다. 테크닉의 문제는 이미 논의의 대상이 아니며, 그 해석 또한 스승의 가르침을 교법적으로 따르는 수준은 예전에 넘어서고 있다. 강렬한 타건과 미묘한 뉘앙스, 건강한 생동감과 자유자재의 루바토 - 이 여러 요소들은 각기 그 역할을 다 하면서도 탄탄한 유기적인 결합을 보인다. 키신은 “천재의 모든 조건을 갖췄다”는 평을 들었던 10대 시절부터 현재까지 45장에 이르는 음반을 녹음했다.
[참고자료]
상상's memory, meditation & music 블로그
http://jsksoft.tistory.com/2503
에프게니 키신(Evegeny Kissin)에 대하여
에프게니 키신은 1971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키신이 태어날 무렵 그의 어머니는 이미 열살 위인 누이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었고 그런 만큼 어린 키신에게 무리하게 피아노 레슨 장면을 보며 나름의 음악적 감각을 익혀갔던 것이다. 아들의 재능이 예사롭지 않음을 깨달은 부모가 키신을 그 내신 중등음학학교로 데려간 것은 여섯 살 때, 여기서 키신의 재능은 영재음악 교육의 대가 안나 칸토르 교수에 의해 섬세하게 다듬어져 갔다.
팔꿈치로부터 손가락 끝까지를 거의 일자가 되게 내리 누르듯 연주하는 독특한 운지법은 어린아이의 우스꽝스런 버릇 같아 보였지만 칸토르 여사는 이 마저도 키신이 느끼는 가장 자연스런 표현법임을 알고는 억지로 교정하지 않았다. 지금 키신은 가장 독특한 운지법을 구사하는 피아니스트로 여겨지지만 누구도 그 보통스럽지 않은 자세에서 흘러나오는 연주가 어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바흐에서 슈만, 리스트, 쇼팽, 스크리아빈, 프로코피에프, 라흐마니노프 그리고 바흐를 연상시키는 자작의 인벤션에서 키신의 경이로운 테크닉과 해석의 깊이를 가늠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건강한 감미로움으로 촉촉히 젖어드는 쇼팽, 지나친 엄숙함 보다는 중용적인 템포감을 유지하는 바흐, 얽힌 실타래를 풀 듯, 정연하면서도 풍부한 감성으로 넘치는 스크리아빈, 어느 곡에서도 키신은 이미 솜씨 좋은 테크니션은 넘어있는 것이다.
180센티가 넘는 훤칠한 청년으로 자라버린 키신에게 신동이란 별명은 이제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다가올 그의 청년기는 한창 때 무기력하게 주저 앉아버린 수많은 신동들을 보아온 음악 팬들에게 그의 비전과 저력을 펼쳐보이는 의미로운 시련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에프게니 키신은 신세대 피아니스트계의 선두주자다. 12살 때인 84년 모스크바 필하모닉(지휘 드미트리 키타옌코)과 쇼팽이 남긴 2개의 피아노협주곡을 협연한 이후 세계음악계의 주목을 받으며 명성을 쌓고 있다.
두 살 때 피아노를 연주해 열살 때 정식 데뷔무대를 가졌고, 열 두 살 때 국제 무대에 나오면서 그의 험난한 운명은 시작됐다. 그는 매번 뭔가를 끊임없이 보여줘야 했고 연주 속에서 천재성을 드러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연주가로서 그의 수명은 곧 끝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1990년대 초반 그는 대중 스타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세계 유수의 언론이 앞다퉈 그를 소개했고, 클래식 음악계의 불황도 그의 음반과 연주회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또 그는 세계 음악계가 찬탄해 마지 않았던 마우리치오 폴리니 보다 대중들에게 더 큰 대우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키신은 자만하지 않았다. 인기에 편승해 다른 연주가들처럼 낭만적인 소품 모음집을 남발하지 않았고, 매번 일정한 실력으로 완성도 높은 연주를 들려주며 전설을 만들어갔다. 대중들의 천박한 심리에 휩쓸려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우를 범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차분하게 실력을 가다듬어 안절부절 못하는 대중들을 만족시킬 줄 알았다. 급기야 이런 모습을 보고 대중들은 키신을 거장적 연주가의 반열에 올려놓기에 이르렀다.
"예술인은 언제 어디서나 감정을 쏟아 분위기를 창조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순간적인 심적 변화로 연주를 망치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연주가는 어떤 기분에 지배를 받아서는 안됩니다. 매번 자신의 연주를 최상으로 만들 수 있는 평상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죠."
피아노 콩쿠르를 거치지 않고 성공한 몇 안 되는 연주자인 그는 한 번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실을 닦아왔다. 이 모습은 오랜만에 선보인 신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바흐-부조니의 토카타, 아다지오와 푸가,' 글린카의 '종달새,'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는 이 음반에는 키신의 매력이 잔뜩 배어있다. 기교와 비르투오시티의 뛰어남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고, 음악에 대한 성찰 또한 전보다 한 걸음 더 깊어진 듯하다.
수 많은 연주가들이 '신동'이니 '천재'니 하는 소리를 들으며 금세기 연주사 속에서 명멸해 갔지만 키신 만큼 '신동' 이라는 별명이 자신의 이미지와 극적으로 어우러지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전쟁 전의 소련 음악계를 혜성처럼 휩쓸었던 에밀 길렐스 이후 이렇다 할 '신동형' 피아니스트를 배출해내지 못했던 러시아 음악계가 세계 무대를 향해 무서운 아이들을 마구 쏟아내기 시작한 것은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바람이 한창 기세를 드높일 무렵이었다.
쇼팽 콩쿠르의 영웅 부닌을 필두로 바이얼린의 바딤 레핀과 막심 벵게로프, 피아노의 키신과 루간스키 등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에 출생한 젊은이들이 신세대 연주자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세계 무대에 문을 두드렸다.
그 중에서도 키신의 이름은 각별한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열 다섯 살도 되기 전에 세계 음악 팬들의 마음을 뺏어버린 급속하고도 경이로운 성취는 그가 '타고난' 천재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만들었다.
우리는 흔히 어린 연주자가 재능이 있다고 하면 나이를 고려해 그 수준에 맞는 연주 내용을 받아들이려고 준비하기 쉽다. 하지만 키신의 연주를 대할 때 이런 준비는 불필요하다. 경이롭게도 그는 수 십년 각고의 세월을 바친 중견 피아니스트들의 피와 땀을 가볍게 뛰어 넘어 버리는 기교와 해석을 구사한다. 이런 느낌은 어떤 면에서 차라리 전율에 가깝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레코딩을 통해 듣는 키신의 음악은 이미 소년의 것은 아니다. 테크닉의 문제는 이미 논의의 대상이 아니며, 그 해석 또한 스승의 가르침을 교법적으로 따르는 수준은 예전에 넘어서고 있다. 강렬한 타건과 미묘한 뉘앙스, 건강한 생동감과 자유자재의 루바토 - 이 여러 요소들은 각기 그 역할을 다 하면서도 탄탄한 유기적인 결합을 보인다. 키신은 “천재의 모든 조건을 갖췄다”는 평을 들었던 10대 시절부터 현재까지 45장에 이르는 음반을 녹음했다.
[참고자료]
상상's memory, meditation & music 블로그
http://jsksoft.tistory.com/2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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