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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저물고 있다. 버들개지에 물 오르는 봄 기운도 좋지만 스키어들에겐 하나 둘 문 닫는 은빛 설원이 못내 아쉽다. ‘여한(餘恨)’을 달래려 해외로 눈돌리는 매니어들도 적지 않다. 이들에게 캐나다 밴쿠버의 휘슬러 스키장은 ‘로망’과 이음동의어다. 울울창창 하늘을 찌르는 삼나무 숲을 배경 삼은 질주는 더께처럼 쌓인 스트레스조차 단박에 날릴 만큼 짜릿하다. 게다가 6월까지 즐길 수 있다니 스키어들에겐 꿈의 슬로프가 따로 없다. 2년 후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그곳. 2018년엔 평창의 꿈이 꼭 이뤄지길 바라며 기자가 다녀왔다.

슬러 마운틴 곤돌라 앞은 어스름한 새벽부터 각국에서 온 스키어들로 붐빈다. 곤돌라 운행은 보통 오전 8시 30분에 시작되지만 아무도 밟지 않은 그날의 첫 눈을 누비는 ‘프레쉬 트랙(Fresh Trecks)’을 즐기려는 스키어들의 마음은 이미 들떠있다. 아침 식사 쿠폰(C$17)을 구입한 선착순 650명만이 매일 오전 7시에 운행하는 곤돌라를 타고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콜럼버스처럼, 스키를 신은 탐험가들이 순백의 설원을 질주한다. 어제 스키어가 남긴 날렵한 흔적들은 밤사이 하얀 눈으로 덮이고, 슬로프는 다시 말쑥한 모습으로 오늘의 스키어를 맞는다.

 

200개 슬로프, 정상 오르는 데만 40~50분

휘슬러 빌리지쪽 베이스에서 휘슬러 또는 블랙콤으로 올라가는 곤돌라를 탈 수 있다. 물론 하나의 리프트 티켓만 있으면 된다. 정상까지 40~50분은 족히 걸린다. 휘슬러 마운틴과 블랙콤 마운틴 모두 고속 곤돌라로 3분의 2지점까지는 한 번에 오를 수 있지만(30분쯤 소요) 여기에서 정상까지는 한두 번 더 리프트를 갈아타며 올라가야 한다. 꼭 스키를 타지 않더라도 정상에 올라 전망을 감상하거나 식사하는 즐거움도 이에 못지 않다.

휘슬러블랙콤 스키장은 총 200여 개의 슬로프를 자랑한다. 각각 100여개의 슬로프를 갖춘 휘슬러 마운틴(2182m)과 블랙콤 마운틴(2284m)이 휘슬러 빌리지를 둘러싸고 나란히 서 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사방천지가 슬로프다.

연 평균 강설량이 9m가 넘으니 폭신하게 깔린 눈이 보송보송한 솜이불 같아 넘어지는 것조차 호사스럽다. 2~3일 동안 200여개 슬로프를 모두 누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거미줄 같이 얽히고설킨 슬로프에서 길이라도 잃지 않으면 다행이다. 미로인 듯 헤매는 일이 다반사고 한참을 내려와도 어디쯤인지 감이 안잡히는 난감함. 이런 슬로프일수록 스키 매니어에게는 환상의 코스가 된다. 정상에서 베이스까지 내려 오는데 중급자의 경우도 1시간 이상 걸리는 게 보통이다.

스키 초보, 그린라인만 타면 OK!

휘슬러블랙콤 스키장이 매니어에게만 활짝 열린 것은 아니다. 스키 초보라도 다양한 슬로프를 누빌 수 있다. 정상 인근까지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면 그린 라인을 따라 완만한 코스가 천혜의 자연을 둘러싸고 펼쳐져 있다. 초급자가 아니더라도 휘슬러의 경치를 천천히 즐기고 싶다면 그린라인을 권하고 싶다.

상급자와 초·중급자가 함께 정상을 누빌 수 있다는 얘기다. 슬로프 이름이 낯설고 루트를 몰라도 기본적으로 초급자는 그린 라인을, 중급자는 블루 라인을, 상급자는 블랙라인을 따라 내려오면 된다. 정상에서 초급 슬로프로 가장 완만하게 내려오는 코스는 최장 11km. 국내 최장인 무주리조트의 실크로드 슬로프가 6.1km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 길이를 짐작할 수 있다.

루스츠 스키장 등 일본 홋카이도의 스키장과 비교하면 주 베이스를 찾아 내려오기도 쉽다. 홋카이도의 대규모 스키장은 베이스와 빌리지가 여러 개로 나뉘어 있어 자칫 엉뚱한 베이스로 내려와 곤란할 수 있지만, 휘슬러는 모든 슬로프가 하나의 베이스로 모아지는 구조라 편리하다.

수준에 따른 슬로프 색만 유념한다면 마음 내키는 대로 적당한 슬로프를 선택하면 된다. 휘슬러 마운틴은 초·중급자가 이용하기에 편리하고 블랙콤 마운틴은 중·상급자가 익스트림 라이딩을 즐기기에 좋은 코스가 많다.

 

작은 스위스, 휘슬러 빌리지

휘슬러 빌리지는 동화 속 마을 같다. 걷는 것만으로 작은 여행이 시작된다. 휘슬러 마운틴의 베이스는 휘슬러 빌리지, 블랙콤 마운틴의 베이스는 어퍼 빌리지로 충분히 걸어 다닐 만큼 아담하다. 휘슬러 빌리지 베이스 옆에는 몇 개의 렌탈 숍이 있어 스키나 스노보드 장비를 빌리고 보관할 수 있다. 보관은 무료. 힐튼이나 웨스틴 호텔의 경우는 호텔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곤돌라를 탈 수 있다.

스위스의 작은 시골 마을을 연상케 하는 건물들 안에는 호텔이며 롯지·레스토랑·바·상점이 즐비하다. 광대한 슬로프 구성과는 대조적으로 편의시설은 올망졸망 모여 있다. 음식 종류는 패스트푸드부터 오리엔탈·웨스턴 스타일 등 90여개의 레스토랑 수 만큼 다양하다. 숙박시설도 호텔은 물론 조리가 가능한 콘도미니엄, 저렴한 롯지와 유스호스텔까지 100개가 넘는다.

호텔 쪽은 조용하지만 바와 레스토랑이 밀집된 빌리지 한가운데는 다국적 시민들로 새벽까지 요란하게 들뜬다. 휘슬러의 밤은 낮처럼 활기차다.

글·사진= 프리미엄 이송이 기자 song@joongang.co.kr

취재협조= 브리티시컬럼비아 관광청 HelloBC.co.kr / 캐나다 관광청 canada.travel

개장기간: 11월 중순~6월초

개장시간: 오전 8시30분~오후 4시

슬로프: 200여개

(초급20% 중급50% 상급30%)

고속곤돌라: 3기 / 리프트: 22기

요금: 리프트 C$83 / 렌탈 C$40~60

(C$1= 한화 약 980원)

www.whistlerblackcomb.com 

■ 휘슬러는 지금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주 무대가 될 휘슬러는 이미 축제 분위기다. 연일 동계올림픽 관련 방송이 전파를 타고 올림픽 마스코트와 상징물이 거리에 넘쳐난다. 휘슬러는 스키점프와 크로스컨트리·봅슬레이 경기장을 완비하고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이곳은 196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지어진 스키리조트였다. 규모와 시설을 감안하면 아직 동계올림픽을 치러낸 적이 없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휘슬러를 뜨겁게 달구는 또 하나의 이슈는 세계 최초의 특별한 곤돌라 건설이다. 올해 말 중간 지지대 없이 바로 휘슬러 마운틴과 블랙콤 마운틴의 정상을 잇는 4.4km의 피크 투 피크(Peak to Peak) 곤돌라가 완공된다. 내리고 오르는 수고 없이 양쪽 산을 직행으로 오갈 수 있어 스키어들의 각광을 받을 전망이다.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com/center/journalist.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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