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즘을 창시한 김흥수 화백.
(1919.11.17. 함경남도 함흥 출생)
(1919.11.17. 함경남도 함흥 출생)
(김흥수 화백 2010년. 사진출처 - 주간조선)
주간조선 인터뷰 기사 중에서 하모니즘에 대해 인용한다.
... 김 화백은 새로운 회화형식인 ‘하모니즘’의 창시자다. 김 화백은 1977년 미국 워싱턴DC ‘IMF 미술관’에서 반쪽은 구상, 반쪽은 추상으로 된 작품을 들고 ‘하모니즘’을 선언한 이후 세계 화단에서 “현대미술의 새 장을 열었다” “서양화가가 해내지 못한 일을 한국의 김흥수가 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화백에 대한 세계화단의 평가에 비하면 국내의 평가는 사실 인색하기 그지없었다.
김 화백이 거의 평생을 바친 ‘하모니즘’은 어떻게 시작이 됐을까. 김 화백은 ‘하모니즘’을 생각한 것이 한국전쟁 와중이라고 말했다. “권옥연 등 화가 몇 명이 다방에 앉아서 신문을 보다가 ‘프랑스 파리에서 추상화가 시작됐다’는 기사를 읽고 ‘우리도 추상을 시작하자’는 말을 했다. 내가 반대하면서 ‘남의 것 모방하지 말고 우리 것을 하자’고 했다. 그런데 방법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김 화백은 중간 중간 말을 멈추고 “미안합니다. 그동안 인터뷰를 안 했더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하기도 하고 “아! 이제 생각이 났다”고도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김 화백의 말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리얼리즘은 객관을 객관적으로, 인상파는 객관을 주관적으로, 추상은 주관을 주관적으로 그린 것이다. 그런데 주관과 객관을 합친 것이 없었다. 모델의 정신세계까지 그리려면 객관과 주관을 함께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그리고자 한 것이 하모니즘이다.”
이 같은 하모니즘에 대한 개념을 생각해낸 것이 1953년이었다. 하모니즘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것이 1977년이니 하모니즘을 완성하기까지 20년이 넘게 걸린 셈이다. 이번 전시에 나온 모자이크 작품 ‘강강수월래’(1966년)와 추상시대의 마지막 작품 ‘광상곡’(1973년)은 하모니즘의 단초를 제공한 작품이다. 이 시기의 작품도 많지 않다. 김 화백은 “예술은 창조다. 자꾸 새로운 것을 그려야 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다 보니 비슷한 작품이 많지 않다”며 “그 정신이 나를 살린 것”이라고 했다. ....
그는 두 번의 결혼, 그것도 마흔세 살 연하의 제자이자 부인인 장수현(49·김흥수미술관 관장)씨와 1992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며 결혼을 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장 관장도 최근 난소암에 걸려 큰 수술을 했고 몇 달간의 항암치료를 견뎌야 했다. 2008년 김 화백이 폐렴으로 쓰러진 후 건강을 미처 회복하기도 전이었다.
[참고자료]
주간조선 인터뷰 기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17/2010091701498.html
화가 류은자 님의 블로그
개인적인 인연과 함께 노화백의 말년에 대한 안타까움이 코멘트 되어 있고
김종근 님의 화백 인물스케치를 옮겨 놓았다.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art4me&folder=1&list_id=9836638
즐거운 자유 - 블루노매드 님의 이글루스 블로그
젊은 작가 김흥수와 그의 연인 장수현. 사진과 스케치.
http://blunomad.egloos.com/6553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