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특집! 한창기
ysl* 컨텐츠/ysl*book or url / 2008. 1. 27. 02:22
중고등학교 시절은 뿌리깊은 나무, 대학시절은 샘이 깊은물을 보고 자란 나로서는 나이가 들어서야 그 잡지 뒤에 서 있는 한창기 라는 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일을 할 수 있었던 행운이 있는 이들은 또 얼마나 그분을 좋아했는지! 결국 여러 권의 책들이 자꾸 나오는데, 이처럼 한 사람을 위해서 내노라하는 분들이 글을 모아 책을 내게 되는 것을 보면 한창기 라는 분은 역시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아 그리운 사람, ‘잡지계 혁명가’ 한창기
〈특집! 한창기〉
강운구 외 58인 지음/창비·2만3000원
출간일 : 2008-01-20 | ISBN(13) : 9788936471385
반양장본 | 464쪽 | 220*150mm
편집자의 말 / 기억에 대하여
특집! 한창기
뿌리깊은나무— 한국 잡지사를 새로 썼다 / 유재천
샘이깊은물— 당돌하고 발칙한 잡지 / 강준만
한창기 사진 / 글과 사진·강운구
한창기의 잡지
그 정열과 안목과 집념이 산파였다 / 손세일
나의 편집장 시절
열여섯 가지 금기를 무시하고 태어난 위험한 잡지 / 윤구병
베고 자기에는 불편한 잡지의 그 편함과 불편함 / 김형윤
가정 잡지 또는 여성 잡지? 아니… / 설호정
뿌리깊은나무 창간사 도랑을 파기도 하고 보를 막기도 하고
샘이깊은물 창간사 사람의 잡지
한창기와 브리태니커
한국 직판사업의 아비- 설득의 천재 / 윤석금
현대적인 쎄일즈 기법의 틀을 세웠다 / 이연상
쎄일즈 전도사의 선창에 따라 외치던 ‘브리태니커 사람의 신조’ / 박태술
“석달 안에 못 뽑으면 당신이 해야 해” / 김길용
그 유명한 광화문 영어학교의 탄생 / 천재석
중앙우체국 사서함 690호에서 시작한 사업 / 박오규
다시 보고 싶은 한창기의 골동(좌담) / 곽소진, 송영방, 양의숙, 장종민, 설호정
회한 또는 그리움
그를 생각하며, 간절히 간절히 바라는 일 / 곽소진
그 민족의 보배들은 지금 어디에? / 카네꼬 카즈시게
미안함, 그리움, 아쉬움 / 박원순
끝내 나를 울린 그 환자 / 홍기석
그리운 한창기— 바람 부는 날, 또는 잠깐 이성을 놓아버린 날 / 서화숙
뿌리깊은나무-샘이깊은물— 전설로만 떠돌게 할 것이냐? / 장경식 최일남이 만난
사람 토박이 문화는 우리 삶의 뿌리 / 최일남
정말 특별한 사장
가야 토기 한 점과 상아색 필통 / 김정배
관찰자, 그리고 합리주의자 앵보 선생 / 이명현
짧은 ‘두드러기’의 긴 추억 / 이광훈
내가 그분 제삿날 굶는 까닭 / 송현
별난 우리 발행인
닫힌 세상을 열어젖힌 외톨이 / 강창민
'곽씨 부인 상여 나가는 대목'을 언제 다시 불러드리나 / 김명곤
꿈 너머 꿈이 된 그분의 말— "돈을 낙엽처럼 태울 줄 알아야 한다" / 고도원
"걱정 마, 죽을 때까지 먹여살릴 테니까" / 안혜령
'출판사' 뿌리깊은나무
『뿌리깊은나무 민중 자서전』 스무 권— 한국 출판계의 '오래된 미래' / 이상룡
『한국의 발견』 열한 권의 탄생 / 김형윤
우리 현대사가 기억해야 할 이름 / 김형국
푸른 입술의 ‘반중’— 지켜지지 못한 그와의 약속 / 윤후명
하필이면 그분 고향 '전라남도'를 맡았던고 / 이성남
한국 전통음악을 살렸다
다 죽어가는 판소리를 되살린 '뿌리깊은나무 판소리 감상회' 백 회 / 이재성
다시 만나고 싶구나, 활짝 열린 그 비개비 / 백대웅
'불온한' 그를 기린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편집자 / 김당
보편적 불온성의 추억 / 김규항
아직도 안 풀린 세 가지 수수께끼 / 박영률
다시 보는 샘이깊은물 ‘하고’ 짜는 한산 모시 / 글 한창기·사진 강운구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멋쟁이
'패션 한복' 바람에 맞섰던 ‘잘 입은 한복’ / 임선근
일찍이 뜰에 소나무를 옮겨 심은 그 큰 '죄인'을 기리며 / 이덕희
일습을 티없는 전통으로 되살리기 / 목수현
눈이 보배였던 사람
한국 출판문화의 자존심 / 박암종
디자인이 살아야 글이 산다는 상식 / 이영미
디자인, "잘하거나 아예 하지 않아야 한다" / 김신
군더더기를 증오했던 디자인 감시자(좌담) / 강운구, 김형국, 김형윤, 이상철
말과 글
입으로, 글로 국어를 따지고 파고들었다 / 남영신
'키보이스'의 한글 탐험 / 안정효
생동하는 광고 카피의 원조 / 이만재
한국 현대성의 랜드마크 / 선완규 한창기, 십 년 만의 재회(서평) / 장석주
남달랐던 생각, 남달랐던 영어 / 정성희
한창기의 한평생
한창기(1936-1997)
장례를 끝내고 독자들께 / 설호정
==== 한겨레 신문 서평===
한창기.
시인 황지우씨는 선배 시인 김수영의 20주기 추도식에서 “씹어먹고 싶도록 그리운 사람이여!”라고 외쳤지만, 어떤 이들에겐 한창기(1936~1997)야말로 그렇게 외쳐 부르고 싶은 사람일 것임에 틀림없다. 인간 한창기에 대한 그런 목마른 그리움을 품은 사람들이 열한 해 전 세상을 뜬 그를 기리며 책을 펴냈다. 〈특집! 한창기〉에는 사진가 강운구씨를 비롯해 일로, 뜻으로 생전의 그와 인연을 맺었던 쉰아홉 사람의 글이 실렸다. 지난해 10월 휴머니스트 출판사에서 세 권으로 펴낸 그의 글 모음 〈배움나무의 생각〉 〈뿌리깊은 나무의 생각〉 〈샘이 깊은 물의 생각〉과 짝을 이루는 책이다. 그의 육필의 산물은 세 권의 책으로 모였고, 그와 더불어 한 시대를 보낸 사람들의 기억은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도대체 한창기는 어떤 사람이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글로써 그를 기리려 모여든 것일까. 가까이 사귀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한창기가 바로 이 말의 진실됨을 증언하는 사람이다. 〈특집! 한창기〉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의 다채로움은 한창기 삶의 다채로움을 보여준다. 사진가·언론학자·편집자에서부터 디자이너·사업가·국어학자·화가·음악인·출판인까지 참 많은 직종의 사람들이 다 여기 모였다. 그는 “국어학자가 울고 가는” 재야 국어학자였고, 안목이 빼어난 문화재 수집가였고, 전통문화의 부활을 이끈 문화운동가였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이라는 특별한 잡지의 편집인-발행인이었다. 한창기라는 이름에 따라붙는 수많은 별칭도 그가 이 잡지들을 창간하고 만든 사람이라는 사실과 깊이 관계돼 있다. 그의 모든 관심의 물줄기는 이 잡지들로 모여들었고, 이 잡지들을 거쳐 다시 뻗어나갔다. 그를 회상하고 추모하는 글들을 모은 〈특집! 한창기〉가 잡지 형식으로 편집된 것도 잡지 편집인으로서 그의 삶을 기억하려는 뜻의 결과다.
말하자면 한창기는 그대로 〈뿌리깊은 나무〉였고 〈샘이깊은물〉이었다. 세상에 잡지는 많고도 많지만, 〈뿌리깊은 나무〉가 구현한 독보성과 독창성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언론학자 강준만 교수는 〈뿌리깊은 나무〉의 특별함을 이렇게 묘사한다. “한국 잡지사는 〈뿌리깊은 나무〉 이전과 〈뿌리깊은 나무〉 이후로 구분된다.” 다른 언론학자 유재천 교수도 단언한다. “〈뿌리깊은 나무〉는 1970년대 정신사적 변혁운동의 주역이면서, 특히 문화사적 변혁운동의 주역이었다.”
한창기가 〈뿌리깊은 나무〉를 창간한 것은 박정희 유신정권의 패악이 극에 달했던 1976년이었다. 그는 그 거친 세상에 자태 고운 잡지를 내놓았다. 그것이 조용한 싸움의 시작이었다. 모든 것을 ‘외화벌이’로 귀결시킨 박정희 독재는 그 살벌한 체제의 보완물로서 ‘민족문화’와 ‘민족주체성’을 내세웠다. 그러나 거기에 진정한 민족도 문화도 주체도 없었다고 강준만 교수는 말한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군사작전식으로 추진된 ‘우리 것 사랑하기’는 실은 ‘우리 것’에 대한 모독이었다. 박정희식 히스테리만 계속되었더라면 ‘우리 것’은 오히려 경멸의 대상이 되었으리라.” 그 ‘박정희식’에 대항하여 참다운 ‘우리 것’을 제시한 사람이 한창기였다. “한창기의 ‘우리 것 사랑하기’는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박정희의 방식과는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강요할 힘도 없었지만, 그는 강요할 꿈조차 꾸지 않았다. 계몽도 아니었고 설교도 아니었다. 그는 세련된 포장과 알맹이로 ‘우리 것’의 값어치를 높여버리는 방식을 택했다.”
그 시대에 ‘우리 것’ 곧 전통의 생활과 문화는 ‘낡은 것’ ‘추한 것’ 취급을 받았다. 서구식 교양의 세례를 받은 사람일수록 그런 의식이 강했다. 그 자신 교양인이었던 한창기는 바로 이런 생각을 뒤엎었다. 그는 ‘우리 것’의 지극한 아름다움을 재발견한 놀라운 심미안의 소유자였다. 그는 아름다움을 꿰뚫어보는 눈으로 시대의 뒷길에 팽개쳐졌던 전통을 살려냈다. ‘뿌리깊은 나무’라는 제호가 벌써 그런 의식과 의지를 품고 있었다.
한창기는 독특한 의식과 의지는 잡지의 형식에서도 관철됐다. 〈뿌리깊은 나무〉 창간호는 잡지계의 오랜 금기를 모조리 깨뜨린 위반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위반은 머잖아 한국 잡지의 새로운 전범이 됐다. 〈뿌리깊은 나무〉 초대 편집장이었던 윤구병(변산공동체 대표)씨는 그 금기 위반을 열여섯 가지로 정리한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한글 전용 가로쓰기’다. 〈뿌리깊은 나무〉는 권위 있는 교양지들이 고수했던 ‘국한자 혼용’과 ‘세로쓰기’를 모두 버렸다. 그 사실을 두고 어떤 이는 “19세기 말 서재필 박사가 순한글로 〈독립신문〉을 창간한 이래 가장 혁명적으로 한국 고유의 언론 매체를 창간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하기도 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민족을 민중의 관점에서 보았다는 것이다. 민중을 발견한 사람이 한창기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민족 문화를 민중의 눈으로 보고 민중의 삶으로 이해했다는 점에서는 그는 문화적 전위투사였다. 잡지의 민중적 관점은 문화·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정치·사회 분야로까지 점차 퍼졌다. 1980년 광주를 짓밟고 권력을 틀어쥔 신군부가 그 불온함을 그냥 두지 않았다. 그해 8월호로 〈뿌리깊은 나무〉는 폐간당했다. 민중의 삶에 뿌리를 두고 우리 것의 가치를 키웠던 그 나무는 밑동이 잘렸다.
그러나 한창기의 투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84년 전두환 정권의 위세가 한창이던 시절 〈샘이 깊은 물〉을 창간한 것이다. ‘여성용 가정잡지’로 등록됐지만 〈샘이 깊은 물〉은 〈뿌리깊은 나무〉의 정신을 올곧게 이은 또 하나의 〈뿌리깊은나무〉였다. 이 잡지에서도 한창기는 ‘당돌하고 발칙한’ 꼿꼿함을 한순간도 굽히지 않았다.
한창기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1남1녀’를 두었다고 말한다. 그 1남이 〈뿌리깊은 나무〉였다면 1녀는 〈샘이 깊은 물〉이었다. 두 잡지를 자식으로 둔 그는 자신의 정신을 온전히 그 자식들에게 쏟았다. 〈샘이 깊은 물〉이 태어난 지 13년 되던 1997년 그는 간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그는 특별한 심미안으로 삶의 후미진 곳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창조한 사람이었다.
그의 11주기를 맞아 오는 2월1일 저녁 6시30분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뮤지엄카페 ‘고궁뜨락’에서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모여 추모식을 연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사진 ‘창비’ 제공.
[참고자료]
한겨레신문 2008.1.25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65739.html
한국일보 2008.1.21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801/h2008012118131884330.htm
알라딘 서점 다시읽기
http://www.aladdin.co.kr/shop/book/wletslook.aspx?ISBN=8936471384&curPageNo=1#letsLook
아 그리운 사람, ‘잡지계 혁명가’ 한창기
〈특집! 한창기〉
강운구 외 58인 지음/창비·2만3000원
출간일 : 2008-01-20 | ISBN(13) : 9788936471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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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양장본 | 464쪽 | 220*150mm
편집자의 말 / 기억에 대하여
특집! 한창기
뿌리깊은나무— 한국 잡지사를 새로 썼다 / 유재천
샘이깊은물— 당돌하고 발칙한 잡지 / 강준만
한창기 사진 / 글과 사진·강운구
한창기의 잡지
그 정열과 안목과 집념이 산파였다 / 손세일
나의 편집장 시절
열여섯 가지 금기를 무시하고 태어난 위험한 잡지 / 윤구병
베고 자기에는 불편한 잡지의 그 편함과 불편함 / 김형윤
가정 잡지 또는 여성 잡지? 아니… / 설호정
뿌리깊은나무 창간사 도랑을 파기도 하고 보를 막기도 하고
샘이깊은물 창간사 사람의 잡지
한창기와 브리태니커
한국 직판사업의 아비- 설득의 천재 / 윤석금
현대적인 쎄일즈 기법의 틀을 세웠다 / 이연상
쎄일즈 전도사의 선창에 따라 외치던 ‘브리태니커 사람의 신조’ / 박태술
“석달 안에 못 뽑으면 당신이 해야 해” / 김길용
그 유명한 광화문 영어학교의 탄생 / 천재석
중앙우체국 사서함 690호에서 시작한 사업 / 박오규
다시 보고 싶은 한창기의 골동(좌담) / 곽소진, 송영방, 양의숙, 장종민, 설호정
회한 또는 그리움
그를 생각하며, 간절히 간절히 바라는 일 / 곽소진
그 민족의 보배들은 지금 어디에? / 카네꼬 카즈시게
미안함, 그리움, 아쉬움 / 박원순
끝내 나를 울린 그 환자 / 홍기석
그리운 한창기— 바람 부는 날, 또는 잠깐 이성을 놓아버린 날 / 서화숙
뿌리깊은나무-샘이깊은물— 전설로만 떠돌게 할 것이냐? / 장경식 최일남이 만난
사람 토박이 문화는 우리 삶의 뿌리 / 최일남
정말 특별한 사장
가야 토기 한 점과 상아색 필통 / 김정배
관찰자, 그리고 합리주의자 앵보 선생 / 이명현
짧은 ‘두드러기’의 긴 추억 / 이광훈
내가 그분 제삿날 굶는 까닭 / 송현
별난 우리 발행인
닫힌 세상을 열어젖힌 외톨이 / 강창민
'곽씨 부인 상여 나가는 대목'을 언제 다시 불러드리나 / 김명곤
꿈 너머 꿈이 된 그분의 말— "돈을 낙엽처럼 태울 줄 알아야 한다" / 고도원
"걱정 마, 죽을 때까지 먹여살릴 테니까" / 안혜령
'출판사' 뿌리깊은나무
『뿌리깊은나무 민중 자서전』 스무 권— 한국 출판계의 '오래된 미래' / 이상룡
『한국의 발견』 열한 권의 탄생 / 김형윤
우리 현대사가 기억해야 할 이름 / 김형국
푸른 입술의 ‘반중’— 지켜지지 못한 그와의 약속 / 윤후명
하필이면 그분 고향 '전라남도'를 맡았던고 / 이성남
한국 전통음악을 살렸다
다 죽어가는 판소리를 되살린 '뿌리깊은나무 판소리 감상회' 백 회 / 이재성
다시 만나고 싶구나, 활짝 열린 그 비개비 / 백대웅
'불온한' 그를 기린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편집자 / 김당
보편적 불온성의 추억 / 김규항
아직도 안 풀린 세 가지 수수께끼 / 박영률
다시 보는 샘이깊은물 ‘하고’ 짜는 한산 모시 / 글 한창기·사진 강운구
이 세상에 둘도 없는 멋쟁이
'패션 한복' 바람에 맞섰던 ‘잘 입은 한복’ / 임선근
일찍이 뜰에 소나무를 옮겨 심은 그 큰 '죄인'을 기리며 / 이덕희
일습을 티없는 전통으로 되살리기 / 목수현
눈이 보배였던 사람
한국 출판문화의 자존심 / 박암종
디자인이 살아야 글이 산다는 상식 / 이영미
디자인, "잘하거나 아예 하지 않아야 한다" / 김신
군더더기를 증오했던 디자인 감시자(좌담) / 강운구, 김형국, 김형윤, 이상철
말과 글
입으로, 글로 국어를 따지고 파고들었다 / 남영신
'키보이스'의 한글 탐험 / 안정효
생동하는 광고 카피의 원조 / 이만재
한국 현대성의 랜드마크 / 선완규 한창기, 십 년 만의 재회(서평) / 장석주
남달랐던 생각, 남달랐던 영어 / 정성희
한창기의 한평생
한창기(1936-1997)
장례를 끝내고 독자들께 / 설호정
==== 한겨레 신문 서평===
한창기.
시인 황지우씨는 선배 시인 김수영의 20주기 추도식에서 “씹어먹고 싶도록 그리운 사람이여!”라고 외쳤지만, 어떤 이들에겐 한창기(1936~1997)야말로 그렇게 외쳐 부르고 싶은 사람일 것임에 틀림없다. 인간 한창기에 대한 그런 목마른 그리움을 품은 사람들이 열한 해 전 세상을 뜬 그를 기리며 책을 펴냈다. 〈특집! 한창기〉에는 사진가 강운구씨를 비롯해 일로, 뜻으로 생전의 그와 인연을 맺었던 쉰아홉 사람의 글이 실렸다. 지난해 10월 휴머니스트 출판사에서 세 권으로 펴낸 그의 글 모음 〈배움나무의 생각〉 〈뿌리깊은 나무의 생각〉 〈샘이 깊은 물의 생각〉과 짝을 이루는 책이다. 그의 육필의 산물은 세 권의 책으로 모였고, 그와 더불어 한 시대를 보낸 사람들의 기억은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도대체 한창기는 어떤 사람이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글로써 그를 기리려 모여든 것일까. 가까이 사귀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한창기가 바로 이 말의 진실됨을 증언하는 사람이다. 〈특집! 한창기〉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의 다채로움은 한창기 삶의 다채로움을 보여준다. 사진가·언론학자·편집자에서부터 디자이너·사업가·국어학자·화가·음악인·출판인까지 참 많은 직종의 사람들이 다 여기 모였다. 그는 “국어학자가 울고 가는” 재야 국어학자였고, 안목이 빼어난 문화재 수집가였고, 전통문화의 부활을 이끈 문화운동가였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이라는 특별한 잡지의 편집인-발행인이었다. 한창기라는 이름에 따라붙는 수많은 별칭도 그가 이 잡지들을 창간하고 만든 사람이라는 사실과 깊이 관계돼 있다. 그의 모든 관심의 물줄기는 이 잡지들로 모여들었고, 이 잡지들을 거쳐 다시 뻗어나갔다. 그를 회상하고 추모하는 글들을 모은 〈특집! 한창기〉가 잡지 형식으로 편집된 것도 잡지 편집인으로서 그의 삶을 기억하려는 뜻의 결과다.
말하자면 한창기는 그대로 〈뿌리깊은 나무〉였고 〈샘이깊은물〉이었다. 세상에 잡지는 많고도 많지만, 〈뿌리깊은 나무〉가 구현한 독보성과 독창성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언론학자 강준만 교수는 〈뿌리깊은 나무〉의 특별함을 이렇게 묘사한다. “한국 잡지사는 〈뿌리깊은 나무〉 이전과 〈뿌리깊은 나무〉 이후로 구분된다.” 다른 언론학자 유재천 교수도 단언한다. “〈뿌리깊은 나무〉는 1970년대 정신사적 변혁운동의 주역이면서, 특히 문화사적 변혁운동의 주역이었다.”
한창기가 〈뿌리깊은 나무〉를 창간한 것은 박정희 유신정권의 패악이 극에 달했던 1976년이었다. 그는 그 거친 세상에 자태 고운 잡지를 내놓았다. 그것이 조용한 싸움의 시작이었다. 모든 것을 ‘외화벌이’로 귀결시킨 박정희 독재는 그 살벌한 체제의 보완물로서 ‘민족문화’와 ‘민족주체성’을 내세웠다. 그러나 거기에 진정한 민족도 문화도 주체도 없었다고 강준만 교수는 말한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군사작전식으로 추진된 ‘우리 것 사랑하기’는 실은 ‘우리 것’에 대한 모독이었다. 박정희식 히스테리만 계속되었더라면 ‘우리 것’은 오히려 경멸의 대상이 되었으리라.” 그 ‘박정희식’에 대항하여 참다운 ‘우리 것’을 제시한 사람이 한창기였다. “한창기의 ‘우리 것 사랑하기’는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박정희의 방식과는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강요할 힘도 없었지만, 그는 강요할 꿈조차 꾸지 않았다. 계몽도 아니었고 설교도 아니었다. 그는 세련된 포장과 알맹이로 ‘우리 것’의 값어치를 높여버리는 방식을 택했다.”
그 시대에 ‘우리 것’ 곧 전통의 생활과 문화는 ‘낡은 것’ ‘추한 것’ 취급을 받았다. 서구식 교양의 세례를 받은 사람일수록 그런 의식이 강했다. 그 자신 교양인이었던 한창기는 바로 이런 생각을 뒤엎었다. 그는 ‘우리 것’의 지극한 아름다움을 재발견한 놀라운 심미안의 소유자였다. 그는 아름다움을 꿰뚫어보는 눈으로 시대의 뒷길에 팽개쳐졌던 전통을 살려냈다. ‘뿌리깊은 나무’라는 제호가 벌써 그런 의식과 의지를 품고 있었다.
한창기는 독특한 의식과 의지는 잡지의 형식에서도 관철됐다. 〈뿌리깊은 나무〉 창간호는 잡지계의 오랜 금기를 모조리 깨뜨린 위반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위반은 머잖아 한국 잡지의 새로운 전범이 됐다. 〈뿌리깊은 나무〉 초대 편집장이었던 윤구병(변산공동체 대표)씨는 그 금기 위반을 열여섯 가지로 정리한다. 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한글 전용 가로쓰기’다. 〈뿌리깊은 나무〉는 권위 있는 교양지들이 고수했던 ‘국한자 혼용’과 ‘세로쓰기’를 모두 버렸다. 그 사실을 두고 어떤 이는 “19세기 말 서재필 박사가 순한글로 〈독립신문〉을 창간한 이래 가장 혁명적으로 한국 고유의 언론 매체를 창간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하기도 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민족을 민중의 관점에서 보았다는 것이다. 민중을 발견한 사람이 한창기였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민족 문화를 민중의 눈으로 보고 민중의 삶으로 이해했다는 점에서는 그는 문화적 전위투사였다. 잡지의 민중적 관점은 문화·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정치·사회 분야로까지 점차 퍼졌다. 1980년 광주를 짓밟고 권력을 틀어쥔 신군부가 그 불온함을 그냥 두지 않았다. 그해 8월호로 〈뿌리깊은 나무〉는 폐간당했다. 민중의 삶에 뿌리를 두고 우리 것의 가치를 키웠던 그 나무는 밑동이 잘렸다.
그러나 한창기의 투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84년 전두환 정권의 위세가 한창이던 시절 〈샘이 깊은 물〉을 창간한 것이다. ‘여성용 가정잡지’로 등록됐지만 〈샘이 깊은 물〉은 〈뿌리깊은 나무〉의 정신을 올곧게 이은 또 하나의 〈뿌리깊은나무〉였다. 이 잡지에서도 한창기는 ‘당돌하고 발칙한’ 꼿꼿함을 한순간도 굽히지 않았다.
한창기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가 ‘1남1녀’를 두었다고 말한다. 그 1남이 〈뿌리깊은 나무〉였다면 1녀는 〈샘이 깊은 물〉이었다. 두 잡지를 자식으로 둔 그는 자신의 정신을 온전히 그 자식들에게 쏟았다. 〈샘이 깊은 물〉이 태어난 지 13년 되던 1997년 그는 간암으로 세상을 등졌다. 그는 특별한 심미안으로 삶의 후미진 곳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창조한 사람이었다.
그의 11주기를 맞아 오는 2월1일 저녁 6시30분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뮤지엄카페 ‘고궁뜨락’에서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모여 추모식을 연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사진 ‘창비’ 제공.
[참고자료]
한겨레신문 2008.1.25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65739.html
한국일보 2008.1.21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801/h2008012118131884330.htm
알라딘 서점 다시읽기
http://www.aladdin.co.kr/shop/book/wletslook.aspx?ISBN=8936471384&curPageNo=1#letsL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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