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공사를 할 때에는 「소음ㆍ진동관리법」에 따른 생활소음ㆍ진동의 규제기준을 준수해야 하며, 생활소음ㆍ진동이 발생하는 공사로서 특정 기계ㆍ장비를 5일 이상 사용하는 공사를 하려는 자는 관할 특별자치도지사 또는 시장ㆍ군수ㆍ구청장에게 특정공사의 사전신고를 해야 합니다.
생활소음과 진동의 규제
규제 대상 및 기준
-
특별자치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이하 “시장·군수·구청장”이라 함)은 주민의 정온한 생활환경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업장 및
공사장 등에서 발생하는 소음·진동[생활소음·진동이 발생하는 공장·사업장 또는 공사장의 부지 경계선으로부터 직선거리 300미터
이내에 주택(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는 제외), 운동·휴양시설 등이 없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진동은 제외하며, 이하
“생활소음·진동”이라 함]을 규제해야 합니다(「소음·진동관리법」 제21조제1항 및 「소음·진동관리법 시행규칙」 제20조제1항제4호).
- 위 규정에 따른 생활소음·진동의 규제 대상은 확성기, 공장, 공사장 등이며, 공사장의 규제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소음·진동관리법」 제21조제2항 및 「소음·진동관리법 시행규칙」 별표 8).
1. 생활소음 규제기준
대상지역
시간대별
소음원
아침, 저녁
(05:00 ~ 07:00,
18:00 ~ 22:00)
주간
(07:00 ~ 18:00)
야간
(22:00 ~ 05:00)
주거지역, 녹지지역, 관리지역 중 취락지구·주거개발진흥지구 및 관광·휴양개발지구, 자연환경보전지역, 그 밖의 지역에 있는 학교·종합병원·공공도서관
라. 공사장의 진동 규제기준은 주간의 경우 특정공사의 사전신고 대상 기계·장비를 사용하는 작업시간이 1일 2시간 이하일 때는 +10㏈을, 2시간 초과 4시간 이하일 때는 +5㏈을 규제기준치에 보정합니다.
마. 발파진동의 경우 주간에만 규제기준치에 +10㏈을 보정합니다.
위반 시 제재
- 이를 위반해서 생활소음·진공 규제기준을 초과해서 소음·진동을 발생하게 하면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소음·진동관리법」 제60조제2항제2의2호).
특정공사의 사전신고 의무
신고 대상
-
생활소음·진동이 발생하는 공사로서 「소음·진동관리법 시행규칙」 별표 9의 기계·장비를 5일 이상 사용하는 공사로서 다음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공사(다만, 별표 9의 기계·장비로서 환경부장관이 저소음·저진동을 발생하는 기계·장비라고 인정하는 기계·장비를
사용하는 공사와 「소음·진동관리법」 제20조제1항에 따른 지역에서 시행되는 공사는 제외)를 시행하려는 자는 관할 특별자치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신고해야 합니다(「소음·진동관리법」 제22조제1항 및 「소음·진동관리법 시행규칙」 제21조제1항).
1. 연면적이 1천제곱미터 이상인 건축물의 건축공사 및 연면적이 3천 제곱미터 이상인 건축물의 해체공사
2. 구조물의 용적 합계가 1천 세제곱미터 이상 또는 면적 합계가 1천 제곱미터 이상인 토목건설공사
3. 면적 합계가 1천제곱미터 이상인 토공사(土工事)·정지공사
4. 총연장이 200미터 이상 또는 굴착 토사량의 합계가 200세제곱미터 이상인 굴정공사
5. 다음의 지역에서 시행되는 공사
가. 「의료법」 제3조제3항에 따른 종합병원의 부지 경계선으로부터 직선거리 50미터 이내의 지역
나. 「도서관법」 제2조제4호에 따른 공공도서관의 부지 경계선으로부터 직선거리 50미터 이내의 지역
-
특정공사를 시행하려는 자(도급에 의하여 공사를 시행하는 경우에는 발주자로부터 최초로 공사를 도급받은 자를 말함)는 해당 공사
시행 전(건설공사는 착공 전)까지 특정공사 사전신고서(「소음·진동관리법 시행규칙」 별지 제10호서식)에 다음의 서류를 첨부하여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제출해야 합니다(「소음·진동관리법」 제22조제1항 「소음·진동관리법 시행규칙」 제22조제1항 본문).
1. 특정공사의 개요(공사목적과 공사일정표 포함)
2. 공사장 위치도(공사장의 주변 주택 등 피해 대상 표시)
3. 방음·방진시설의 설치명세 및 도면
4. 그 밖의 소음·진동 저감대책
※ 다만, 둘 이상의 시·군·구(자치구를 말함)에 걸쳐있는 건설공사의 경우에는 해당 공사지역의 면적이 가장 많이 포함되는 지역을 관할하는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신고해야 합니다(「소음·진동관리법 시행규칙」 제22조제1항 단서).
신고사항의 변경
- 특정공사 신고를 한 자가 그 신고한 사항 중 다음에서 정하는 중요한 사항을 변경하려면 특별자치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에게 변경신고를 해야 합니다(「소음·진동관리법」 제22조제2항 및 「소음·진동관리법 시행규칙」 제21조제4항).
1. 특정공사 사전신고 대상 기계·장비의 30퍼센트 이상의 증가
2. 특정공사 기간의 연장
3. 방음·방진시설의 설치명세 변경
4. 소음·진동 저감대책의 변경
5. 공사 규모의 10퍼센트 이상 확대
- 변경신고를 하려는 자는 특정공사 변경신고서(「소음·진동관리법 시행규칙」 별지 제12호서식)에 다음의 서류를 첨부해서 시장·군수·구청장에게 제출해야 합니다(「소음·진동관리법」 제22조제2항 및 「소음·진동관리법 시행규칙」 제21조제5항).
1. 변경 내용을 증명하는 서류
2. 특정공사 사전신고증명서
3. 그 밖의 변경에 따른 소음·진동 저감대책
※ 다만, 「소음·진동관리법 시행규칙」 제21조제4항제2호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이를 변경한 날부터 7일 이내에 제출해야 합니다(「소음·진동관리법 시행규칙」 제21조제5항 단서).
위반 시 제재
- 이를 위반해서 신고 또는 변경신고를 하지 않거나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신고 또는 변경신고를 하면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소음·진동관리법」 제60조제2항제2의3호).
특정공사 시행자의 준수사항
방음시설의 설치
- 특정공사를 시행하려는 자는 다음의 사항을 모두 준수해야 합니다(「소음·진동관리법」 제22조제3항제1호 본문 「소음·진동관리법 시행규칙」 제21조제6항).
1. 다음에서 정하는 기준에 적합한 방음시설을 설치한 후 공사를 시작할 것
가. 방음벽시설 전후의 소음도 차이(삽입손실)는 최소 7㏈ 이상 되어야 하며, 높이는 3m 이상 되어야 합니다.
나. 공사장 인접지역에 고층건물 등이 위치하고 있어, 방음벽시설로 인한 음의 반사피해가 우려되는 경우에는 흡음형 방음벽시설을 설치해야 합니다.
다. 방음벽시설에는 방음판의 파손, 도장부의 손상 등이 없어야 합니다.
라. 방음벽시설의 기초부와 방음판·지주 사이에 틈새가 없도록 하여 음의 누출을 방지해야 합니다.
※ 참고
가.
삽입손실 측정을 위한 측정지점(음원 위치, 수음자 위치)은 음원으로부터 5m 이상 떨어진 노면 위 1.2m 지점으로 하고,
방음벽시설로부터 2m 이상 떨어져야 하며, 동일한 음량과 음원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기준위치(reference position)의
측정은 생략할 수 있습니다.
나. 그 밖의 경우에 있어서의 삽입손실 측정은 '음향-옥외 방음벽의 삽입손실측정방법'(KS A ISO 10847) 중 간접법에 따릅니다.
- 다만, 공사현장의 특성 등으로 방음시설의 설치가 곤란한 경우로서 다음에서 정하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소음·진동관리법」 제22조제3항제1호 단서 및 「소음·진동관리법 시행규칙」 제21조제7항).
가. 공사지역이 협소하여 방음벽시설을 사전에 설치하기 곤란한 경우
나. 도로공사 등 공사구역이 광범위한 선형공사에 해당하는 경우
다. 공사지역이 암반으로 되어 있어 방음벽시설의 사전 설치에 따른 소음 피해가 우려되는 경우
라. 건축물의 해체 등으로 방음벽시설을 사전에 설치하기 곤란한 경우
마. 천재지변·재해 또는 사고로 긴급히 처리할 필요가 있는 복구공사의 경우
※ 방음시설의 설치가 곤란한 경우에 수립·시행해야 할 별도의 저감 대책은 다음과 같습니다(「소음·진동관리법 시행규칙」 제21조제8항).
1) 소음이 적게 발생하는 공법과 건설기계의 사용
2) 이동식 방음벽시설이나 부분 방음시설의 사용
3) 소음발생 행위의 분산과 건설기계 사용의 최소화를 통한 소음 저감
4) 휴일 작업중지와 작업시간의 조정
2. 공사로 발생하는 소음·진동을 줄이기 위한 저감대책을 수립·시행할 것
위반 시 제재
- 이를 위반해서 방음시설을 설치하지 않거나 기준에 맞지 않은 방음시설을 설치한 자 및 저감대책을 수립·시행하지 않은 자는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소음·진동관리법」 제60조제2항제2의4호 및 제3호).
방음·방진시설의 설치
작업시간의 조정 등
-
시장·군수·구청장은 생활소음·진동이 「소음·진동관리법 시행규칙」 별표 8에 따른 규제기준을 초과하면 소음·진동을 발생시키는
자에게 작업시간의 조정, 소음·진동 발생 행위의 중지, 방음·방진시설의 설치, 다음에서 정하는 소음이 적게 발생하는 건설기계의
사용 등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습니다(「소음·진동관리법」 제23조제1항 및 「소음·진동관리법 시행규칙」 제22조).
2. 「소음·진동관리법」(법률 제7293호에 의하여 개정되기 전의 것을 말함) 제49조의2에 따른 소음도표지를 부착한 건설기계
※ 이를 위반해서 작업시간 조정 등의 명령을 위반하면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소음·진동관리법」 제58조제4호).
공사의 중지 또는 폐쇄 명령
- 시장·군수·구청장은 위 규정에 따른 조치명령을 받은 자가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해당 규제대상의 사용금지, 해당 공사의 중지 또는 폐쇄를 명할 수 있습니다(「소음·진동관리법」 제23조제2항).
※ 이를 위반해서 사용금지, 공사중지 또는 폐쇄명령을 위반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소음·진동관리법」 제57조제4호).
이 정보는 2011년 06월 15일 기준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생활법령정보는 국민이 실생활에 필요한 법령을 쉽게 찾아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생활법령정보는 법적 효력을 갖는 유권해석(결정, 판단)의 근거가 되지 않고, 각종 신고, 불복 청구 등의 증거자료로서의 효력은 없습니다. 구체적인 법령에 대한 질의는 담당기관이나 국민 신문고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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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산 산사태로 황토뻘이 돼 버린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내 한가람미술관에서는 ‘고흐의 별밤과 화가들의 꿈’이란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반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비롯해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대여해 온 세잔, 밀레, 모네, 고갱 등의 진품
130여 점이 전시된 한가람미술관은 예술의전당 내에서 상대적으로 아래쪽에 위치해 있어 토사가 조금만 더 쏟아져 내렸으면
기념비적인 명화들이 몽땅 훼손될, 아찔한 상황이었다. 정말이지 산사태 못지않은 엄청난 문화적 재난이 발생할 뻔했던 것이다. 물론
사람들이 죽어나갔는데 그깟 그림이 대수냐고 되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진품의 위력’을 알면 그런 소리 못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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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년 전인 1890년 7월 27일 파리에서 교외선 기차로 한 시간 반 거리에 있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의 고요한 들녘에서
적막을 깨는 총성이 울렸다. 한 사내가 자신의 가슴에 권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하지만 그 사내는 그 즉시 죽지 않았다.
오후 내내 숨이 붙어 있었다. 그날 해가 져서 어슴푸레해지자 사내는 놀랍게도 스스로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자신이 머물던
라부여인숙의 3층 다락방으로 돌아와 쓰러졌다. 평소 그를 돌봐주던 의사 가셰가 급히 달려왔다. 총알이 심장 가까운 부위에 박혀
있었다. 하지만 수술을 하기엔 너무 위험한 부위였고 당장 큰 병원으로 이송하기도 불가능했다. 결국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자기
가슴에 스스로 총상을 입혔던 사내는 하루를 꼬박 그 상태로 지내고 그 이튿날인 29일 오전 1시30분쯤 숨을 거뒀다. 유서는
없었다.
# 그 사내의 이름은 ‘빈센트 반 고흐’다. 그는 죽기 두 달 정도 전인 5월 21일 그 여인숙에 들어와
숨을 거두기 사흘 전까지 미친 듯이 그림만 그렸다. 그는 매일 눈을 뜨고 나서 움직이는 시간의 거의 대부분을 그림 그리는 데
쏟아부었다. 그 덕분에 그는 두 달가량의 기간 동안 자그마치 53점의 그림을 그렸다. 또다시 발작을 일으키기 전까지 스스로에게
시시각각 다가오는 삶의 마감시간을 처절하리만큼 직시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리고 또 그렸던 것이다. 정말이지 놀라운 몰입이요,
투혼이었다. 그래서일까. 반 고흐의 진품 그림에는 결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묘한 힘이 있다. 세계 어느 곳에서든 그의 그림이
걸려 있는 곳에서 사람들은 발길을 멈춘다. 심지어 사람들이 밀려서 병목현상마저 일으키기 일쑤다. 왜 사람들은 그의 그림 앞에서
꼼짝할 수 없는 것일까? 아마도 그의 그림에 담긴 ‘혼의 위력’ 때문이리라. 그것은 평생을 세상에 떠밀리다시피 하며 살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그림세계에서만큼은 결코 떠밀리지 않고 자신의 것을 고집스럽게 밀고 간 이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조용하지만 위대한 투혼의 응결이다.
# 이번 수마(水魔)와 우면산 일대의 산사태에서도 유독 예술의전당 건너편만은
안전했다. 예술의전당이 막아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예술의전당의 건물군이 흘러내리는 토사를 막아준 것만이 아니리라.
엉뚱한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거기 전시돼 있던 명화들에 담긴 진품의 위력, 특히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이 지닌 위대한 투혼의 힘
앞에 토사마저 멈춰 선 것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 반 고흐의 서른일곱 생애는 비록 자살로 마감했지만 결코
절망의 대명사가 아니다. 그는 오히려 절망을 뚫고 나온 또 다른 희망의 상징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자기 삶의 마지막이 다가오는
그 시간까지도 치열하게 그렸다. 화가에게 진짜 절망은 물감값이 없는 것이 아니라 더 이상 그릴 것이 없다는 것이리라. 비록 그는
늘 생활고에 시달렸고 그림 그릴 재료값도 없었지만 그리고 또 그렸다. 그토록 싸우며 견뎌낸 고통 어린 삶의 위대한 흔적들이 지금
우리에겐 위로가 된다. 거듭 수마를 당한 이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빈센트의 이름으로….
<스타크래프트>는 몰라도 홍진호는 안다. 잘 아는 건 아니고 그가 만년 2등이었다는 것, 저그 플레이어라는 것,
별명이 ‘콩’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 남자친구 따라 울며 겨자 먹기로 미네랄만 캐본 여자, 남동생이 틀어놓은
<스타크래프트> 게임 중계를 끔찍해하는 여자라도 홍진호의 이름은 들어본 적 있으리라. 일반 프로스포츠에 비해 새로운
스타의 등장도 패러다임의 변화도 몇 배 빠르다는 e스포츠계에서, 1등의 이름은 들어본 적도 없는 문외한에게까지 이름을 알렸다는
점에서 확실히 홍진호는 대단한 데가 있다. 그런 그가 지난 6월25일 2시22분 2세트 경기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화려하거나
충격적인 마지막이 아니라 팬들의 애정이 느껴지는 따뜻한 은퇴였다.
홍진호에 관한 엉뚱한 일화가 하나 있다. 경성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그림자 살인>에서 황정민이 맡은 주인공의
이름이 ‘홍진호’였다. <스타크래프트> 팬들이 짓궂게도 우르르 몰려가 개봉하기도 전인 <그림자 살인>의
네이버 평점을 ‘2.0’으로 맞췄다는 그런 얘기다. 그저 만년 2등이라고 조롱하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홍진호는 10년간
‘임진록’이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임요환과 경쟁 구도를 형성하며 팬들을 끌어들였고, ‘폭풍 저그’라는 별명을 준, 몰아치는 경기
스타일로 자신만의 세계를 다졌다. 오랜 세월이 쌓이자 팬들은 1등을 바라고 2등 했다고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홍진호의
‘2등’을 캐릭터로 만들어 그와 함께 즐기기로 작정한 듯 보였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여자핸드볼 결승전에서 아쉽게 패배한 여자핸드볼 국가대표팀의 경기 역시 ‘2등의 전설’로 남을 만하다.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모티브가 된 이 경기에서, 80분 동안 사투를 벌이다 결국 패한 뒤 엉엉
울던 선수들을 보고 따라 울었던 사람이 많을 것이다. TV 화면을 거쳤는데도, 단지 슬픔이나 억울함이 아니라 그동안의 노력과 모든
걸 쏟아낸 데서 오는 후련함이 한순간에 몰아쳐온 듯한 감동이 생생하게 전해졌으므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홍수 속에서, 이주의 탈락자와 오늘의 1등을 일상적으로 이야기하는 나날 가운데, 기억할 만한 2등이 있다는 건
우리에게 축복이다. 경쟁에서 이기려고, 좁은 문을 통과하려고 죽도록 노력해본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한계와 맞닥뜨리게 되어
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나보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노력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를 이길 수 있단 말인가. 뒤늦게 잘하고
싶은 일이 생겼지만 경험치와 재능이 욕망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면 그 일을 포기해야 하는가. 좌절 속에서 피어난
수많은 질문이 마음을 어지럽게 할 때 우리가 사랑하는 2등이 말해준다. 이길 수 없더라도 최선을 다하라. 1등의 자리는 앞으로도
매번 바뀌고 사람들은 현재의 1등에 주목하겠지만, 너는 등수가 아니라 대체 불가능한 너만의 세계로 기억될지니.
김지현 시나리오작가 지망생
[참고자료]
한겨레21 레드 > 스포츠 기억할 만한 2등이 있다는 것 [2011.07.11 제868호]
나를 "천사"나 "키다리 아저씨"라고 부르던 사람이 있었다.
또 지금도 내가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매우 흐믓한 일이었지만,
한겨레21의 <천사는 옵션, 권리는 기본> 이라는 글을 읽으며
기본으로 되어야 할 것을 내가 옵션으로 해결하려 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누군가처럼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 사회 전체에 대한 분노로 바뀌는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하지만
"쉽게 내주기 어려운 것을 조건 없이 내주는 것,
쉽게 받을 수 없는 것을 받을 수 있게 되는 사람들의 감동"을
만들었을 때의 기쁨은 글로 설명하기 힘들다.
권리에는 그런 감동이 들어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옵션과 기본은 구분하되,
나는 아직도 누군가에게는 천사가 되어보고 싶은 꿈을 꾼다.
다음은 한겨레 21, 2011년 6월에 실린 글이다.
“나는 중국 사람한테도 집을 빌려줍니다!” 인권운동사랑방 사무실을 찾아온 한 분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살아야 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말이다. 아, 네. 그 ‘선행’에 감동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인종·출신국가·장애·가족상황 등등을 이유로
임대를 거부하는 건 차별이라고 대꾸할 수도 없고, “다들 그래야 할 텐데요”라며 얼버무렸다. 집주인이 임대료를 마음대로 정하고
세입자더러 나가라 하는 일이 식은 죽 먹기인 현실에서 ‘착한’ 집주인을 만나는 건 세입자들의 공통된 소망이다. 하지만 세입자가
천사를 만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쉽다고 해도 행운일 뿐이다.
행운을 복권으로 남겨둘지 인권으로 만들어갈지는 사회의 선택이다. 행운을 복권으로 남겨두고 싶은 사회는 복권 당첨자들의 감격에
주목할 것이고, 인권으로 만들고 싶은 사회는 당첨되지 못한 사람들의 우울한 냉소에 주목할 것이다. <한겨레21>이 천사
이야기를 공모한다고 했다. 작은 기적들이 ‘믿을 수 없는 세상’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좋은 세상’으로 바꾼다며 천사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마음이 복잡했다.
온갖 어지러운 마음이 뭉클해지는 마음을 자꾸 밀어냈다. 10년 동안 나가라 하지 않고 임대료도 올리지 않은 집주인이 천사가 되는
한국의 주거권 현실에 마음이 타고, “식사하셨어요?”라는 한마디로도 의사와 환자가 사람으로 만날 수 있는데 그게 어려운 병원이
떠올랐다. 만약 천사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후의 이야기들은 어떻게 달라졌을지 떠올라 아찔했고, 천사를 만나게 된 순간까지 겪었을
괴로움에 한몫한 사회 현실에 화가 났다. 이러니 사는 게 늘 팍팍한가.
기적에는 분명 감동이 있다. 공무원이 자신을 숨기고 정부지원금이라며 기꺼이 내준 등록금에는 ‘반값 등록금’에 없는 감동이 있다.
한 에이즈 환자의 의약품을 마련하기 위해 모인 후원금에는 ‘무상의료’에 없는 감동이 있다. 백청강이 오랜 노력 끝에 받은 거액의
상금을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한 것에는 ‘사회복지 예산 확충’에 없는 감동이 있다. 쉽게 내주기 어려운 것을 조건 없이 내주는
사람과, 쉽게 받을 수 없는 것을 받게 된 사람이 만들어낸 감동 말이다. ‘권리’에는 이런 감동이 선뜻 들어서지 못한다. 받아야
마땅한 것과 받게 될 줄 몰랐던 것, 주어야 마땅한 것과 주고 싶은 것은 다르니 말이다.
그러나 이 감동의 속살은 기적이 아니다. 기적 말고는 기댈 곳이 없던 사람들의 절박함이야말로 기적에 감동을 입힌다. 누군가에게
정말 소중한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 소중한 것이 되었을 때, 그렇게 서로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 소중한 존재로 존중받게 되는 시공간의
감동.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기적이 아니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도 기적이 아니다. <한겨레21>은 이 감동을 천사가
만드는 좋은 세상의 그림으로 액자에 담을 수밖에 없었을까.
하필, 세입자라니 “집도 없으면서 왜 설치냐”는 말을 들은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필, “긍정적 사고는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가”를 보여주는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긍정의 배신>을 읽은 직후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도 감동을
원한다. 하지만 나는 천사가 아니다. 그리고 천사는 어디에나 있지 않다. 누구나 누려야 할 것들을 두고 천사를 기다리게 하면 안
된다. 무언가 받는 것‘만’으로도 감동하게 하는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 천사는 그저 옵션이면 충분하다.
이 땅의 대학생들이여! 대학 4년을 고학으로,그 중 2년을 결핵환자로 지냈던 사람으로서 등록금이 주는 그 엄청난 고통을 십분 이해합니다. 당신들의 그 외침에 대해 누구도 돌을 던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외침을 관철하기 위해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기 전에 잠깐 생각해 봅시다.
무엇보다 당신들은 이 나라의 가장 큰 부자들임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당신들은 아직 젊고 건강합니다. 뿐만 아니라 얼마든지 밝고 찬란한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을 한 번 둘러봅시다. 이 세상에는 당신들보다 몇 배나 더 가난하고 몇 배나 더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돈은 물론 여러분들이 향유하고 있는 그 젊음,건강,그리고 꿈조차 없는 사람들입니다. 병들고 나이 들어 일하고 싶어도 못하고 배고픔과 가난과 외로움에 고통 받고 신음하는 수많은 사람,하루 몇 천원으로 생활하는 그 수많은 독거 노인들,고아들,미혼모들,홈리스들,실업자들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아니 도와야 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당신들도 포함된 우리입니다. 우리가 힘을 합쳐 도와야 합니다. 십시일반으로 돕고,세금으로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돈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나라가 세금으로 등록금을 반으로 줄여 주기를 바랍니까? 이 불행한 사람들을 도외시하고 젊고 진정한 의미에서 '삶의 부자'인 당신들의 안락을 위해서 그 돈을 쓰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요? 젊음은 어디에 갔습니까? 이상은 어디로 가버렸습니까?
나도 학창시절에 참 힘들었습니다. 유학시절에는 공장직공,택시기사,수위,웨이터 등 온갖 일들을 다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고생스러웠던 만큼 나에게는 젊음과 꿈이 있었습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런 면에서 그때 나는 부자였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었던 그 젊음과 꿈은 나의 그 고생들을 값지고 소중한 경험으로,나를 더 단련하고 더 강하게 만드는 너무나 훌륭한 자양분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신들도 지금 부자입니다. 그 부자들이 그 빈자들에게 가야 할 몫을 챙기겠다고 나서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당신들의 자부심에 먹칠하는 일입니다.
이번에 반값 등록금 동맹휴학에 참여하지 않은 그 수많은 학생들의 마음 속에는 아마도 '내가 이 나이에 벌써 나라에 손을 벌려?' 하는 자부심이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반값 등록금'이라는 발상은 정말 황당한 것입니다. 나랏돈으로 등록금을 반으로 줄일 수 있으면 버스 요금,전기 요금,비행기 요금,기차 요금,아파트값도 다 반으로 줄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들의 미래를 탕진하는 일입니다.
모두가 떡을 더 달라고 외칠 때 진정한 의미에서 부자인 당신들만은 도리어 당당하게 "우리에게 줄 그 떡을 저 불쌍한 사람들에게 먼저 나눠 주라!"고 외칠 수 있는 그런 용기 넘치는 젊은이의 모습을 꿈꾸어 보는 것은 과욕일까요? 표에 눈이 어두워 영혼이라도 팔겠다고 설치는 이 한심한 정치인들에게 도리어 "정신 차려라!"라고 호통칠 수 있는 젊은이가 전쟁과 독재에 앞장서 싸운 이 나라 젊은이의 모습 아닙니까?
대학 운영의 비합리성,그 비싼 등록금을 받으면서 형편없는 교육의 질,장학금 기탁을 어렵게 만드는 그 수많은 잘못된 제도들,호의호식하면서 교육 기여에는 인색한 이 나라의 부자들에 대해 여러분은 얼마든지 소리 높여 항의하십시오.그러나 그 젊은 나이에 벌써부터 나라에 떡 더 달라고 촛불을 들고 나서는 그 행태는 제발 좀 그만둬 주십시오.이 땅의 우리 그 자랑스러운 젊은이의 모습을 잃지 말아 주십시오!
높은 목표를 달성하려면
간절한 바람이 잠재의식에까지 미칠 정도로 곧고 강해야 한다.
주위의 시선에 우왕좌왕하지 말아야 한다.
하고 싶다면, 하고자 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길을 가겠다고 굳게 다짐하라.
그리고 반드시 이룰 수 있다고 굳게 믿어라.
그런 간절함이 없다면 처음부터 꿈도 꾸지 마라.
최근 몇 주는 참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2백30쪽이 넘는 故 장자연 씨의 편지를 몇 차례나 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암담해지고 '이 세상이란 살만한 곳이 못되는 구나'라는 생각만 짙어졌습니다. 그만큼 그녀의 아픔과 고통의 무게가 무거웠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꿈이 많았습니다. 스타가 돼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싶어 했습니다. 그녀는 몹시 순진했습니다. 어수룩하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리고 외로웠습니다. 그녀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줄 그 누구도 주변에 없었습니다. 그녀를 지켜줄 수 있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연예기획사에 들어간 것입니다. 자신을 위한 사다리가 돼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은 덫이었습니다. 수렁이었습니다. 몸과 영혼을 철저히 파괴해버렸습니다. 유력 인사에게 소개해준다는 핑계로 자신의 잇속을 위한 접대에 내몰았습니다.
장 씨는 그런 내막을 금방 알아차렸습니다. 하지만 거부할 수도, 뛰쳐나올 수도 없었습니다. 혈혈단신 온 몸으로 연예계라는 정글을 뚫고 나가야 했던 그녀에게는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그저 언젠가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희망 하나만 움켜쥐고 이를 악물고 버텼습니다. 지금은 톱스타인 누구, 누구도 이런 과정을 버텨내고 성공했다는 사실만을 스스로에게 되뇔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러나 마음이 너무 여렸습니다. 거의 매일 같이 가해지는 상처에 몸부림치며 아파했습니다. 굳은살이 생길 만도 한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전에 입은 상처까지 더 커지고 깊어졌습니다. 그러면서 몸도 마음도 서서히 지쳐갔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런 상처가 언젠가 가족을 비롯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대중에게 노출될까 무서워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떠올리는 빈도가 점점 늘어갔습니다. 지옥 같은 생활을 버티게 해준 꿈도 점점 희미해졌습니다. '마음을 채우기보다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하나하나 포기하면서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과연 누가 장자연 씨를 죽인 것입니까? 우선적으로는 장 씨를 돕기는커녕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한 기획사 대표부터 꼽아야겠죠. 한 사람의 꿈을 미끼로 극단적 상황으로 몰아넣은 책임은 태산만큼 무겁습니다.
이 기획사 대표로부터 접대를 받은 이른바 힘 있는 사람들도 같은 무게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아니 더 큽니다. 나라와 우리 사회를 위해 막중한 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자부했던 분들입니다. 그래서 어디서나 대접 받고, 막대한 보수를 받고, 존경도 받습니다. 그런데 뒤로는 부도덕한 특별 접대도 받아왔습니다. 아름답고 젊은 여성이 꿈을 이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웃음을 팔고 술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 있었을 텐데… 오히려 그런 특별한 접대를 받는 것을 자랑스러워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돈도 많으신 분들이 굳이 직업여성 대신 연예인의 접대를 찾은 것 아니겠습니까. 한 젊은이의 꿈과 영혼을 무참히 짓밟고 있으면서도 그에 대한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악마들'은 그 명성의 크기만큼 장 씨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장 씨의 편지는 반드시 보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장 씨의 편지를 입수하게 된 것도 장 씨가 하늘로부터 보내온 탄원서라 여겨졌습니다. '복수해 달라'는 문구는 저에게 주는 명령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장자연의 죽음에 책임이 없나. 나는 그들만큼 돈이 많지 않고 지위가 높지 않아서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만약 그런 자리에 초대 받았다면 나는 장 씨의 꿈을 지켜줄 수 있었을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기획사 대표를 향해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냐. 당신이 그러고도 연예인들을 키우는 매니저라 할 수 있나"하고 호통을 쳐줄 수 있었을까요. 그가 건네는 술잔을 거부하고, 그의 잘못을 따질 수 있었을까요.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도 장 씨의 미모를 훔쳐보며, 이런 특별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자신의 위치를 자랑스러워하며, 따라주는 술을 기쁘게 받아 마시지 않았을까. 정말 자신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그래서 저도 고 장자연 씨를 죽인 책임자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평소에 장 씨와 같은 피해자가 많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무심하게 넘겼던 저는 책임이 있습니다. 어쩌면 장 씨와 같은 연예인이 아니지만 꿈을 쫓아가고 있는 어떤 젊은이를 알게 모르게 좌절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었기에 저도 장 씨의 죽음을 책임져야 합니다.
15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전철을 타고 가는데 전철 내부 벽 광고란에 모 대학의 신입생 유치를 위한 광고가 실렸다. 카피는
“우리 학교로 오세요” 정도였을 거다.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대학이 광고를 하다니. 대학이 그야말로 대중을 상대로 호객!을 하는 그
모습에 상아탑이란 말이 무색해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황지우 시인의 시구가 떠올랐다. “대학은 중산층의 여과기다.”
대학이 취업을 위한 자격증을 따러 가는 학원 중 기간이 제일 긴(그리고 학원비도 엄청나게 비싼) 학원이 됐을 뿐이라는 사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몇년 전 서울 시내의 유명한 대학에 교양강좌 특강을 할 기회가 있었다. 소위 일류대학이란 곳이었지만 교양필수과목이
란 수업이 대부분 그렇듯 많은 학생들이 들어오긴 했으나 수업에 그닥 관심이 없었고 수업 태도도 영 한심했다. 하지만 그 좋은
봄날에 원하지도 않는 수업을 들어야 하는 청춘을 이해하기에 듣고자 하는 소수의 학생들하고만 눈을 맞추며 나름 즐겁게 수업을
마쳤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그 수업을 진행했던 담당 교수라는 사람이 따라 나오면서 학생들의 불량한 수업 태도가 민망했던지
연신 내 눈치를 보면서 미안해했다. 난 신경쓰지 말아라, 나라도 그럴 거다, 했지만 외부 강사에게마저 들켜버린 자기 학생들의
태만한 학업 자세가 창피했던지 좀 과하게 학생들 흉을 늘어놓았다.
수업 시작 전에 마치 초등학생에게 주의 주듯이 잔소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말이 먹히지 않았다는 사실이 제일 견디기 힘들어
보였던 그 교수의 자기 학생 흉보기는 급기야 본인의 신세 한탄으로 이어졌다. 요즘 아이들은 무섭다, 조금만 뭐라 하면 게시판에
뭐라뭐라 떠들어 놓으니 그거 겁나서 야단도 못 친다는 거다. 어차피 그의 누워서 침 뱉기는 나를 위로하는 쪽보단 제자 깎아내리기
쪽에 무게가 실렸기에 한마디 해줬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제자로 대하지 않고 고객으로 대하니까 학생들이 그렇게 나오는 거겠죠.”
홍익대 미화원 아주머니들의 힘겨운 싸움이 49일 만에 타결됐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용역업체와의 협상이 타결된 것일 뿐 용역회사의 원청인 대학과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고용승계 문제나 처우 개선 같은 것들이 얘기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대학이라는 거대한 교육기관을
세우고 운영하는 사람들의 천박한 세계관이 개선되지 않는 한 이런 문제는 홍대의 문제만이 아닐 것이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학교 측은 기본 생존권을 위해 차가운 길바닥에 앉은 학생들 어머니 또래인 그들을 “면학 분위기를 망친다”며 창피해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교정에서 책을 펴든 아주머니를 “학생들 보는 데서 왜 그러냐”며 황급히 쫓아냈다고 한다.
학생들이 그 시간에 학교 건물 안에서 ‘진리’랍시고 배우는 수많은 책들과 수업 내용들은 다 헛공부한 게 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잘 차려입은 학부모가 교정 벤치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고 해도 학생들 보는데 왜 이러냐며 쫓아냈을까? 장사를 하는 학교
측은 둘째 치고라도 진리와 인간에 대한 학업을 하는 곳이라면 아주머니들의 생존을 위한 타당한 투쟁과 휴식시간에 대학 교정에서
책을 보는 노동자의 모습을 오히려 훌륭한 학습의 장으로 삼았어야 했다.
그 비싼 돈을 들여가며 그 긴 시간 동안 그 많은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건 정작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인지, 우리 사회에 대학이
대체 무슨 기능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는 대학은 이미 그 기본 정체성마저 상실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학문의 목적은 사람이다.
6월 25일, 미국의 Coxsackie-Athens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수석 졸업생인 Erica Goldson양의 연설 전문
예전에 선(禪)을 공부하는 수도자가 있었는데, 하루는 스승을 찾아가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제가 지금부터 열심히
노력하면 도를 깨우치는 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스승은 곰곰이 생각한 후, “10년 정도?”라고 대답했습니다. 제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제가 빨리 깨우침을 얻기 위해 진짜 많이 노력하면 얼마나 걸릴까요?” 그러자 스승은 “그렇다면 20년 정도
걸리겠군”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제자가 또 물었습니다: “제가 진짜, 진짜, 무진장 노력하면 어떨까요?” 스승은 이 질문에 대해
“30년”이라고 묵묵히 대답했습니다. 실망한 제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열심히 노력할수록 오래 걸린다니요? 왜
그런 말씀을…”. 그러자 스승이 말했습니다: “하나의 목표를 세워놓고 정진하면, 하나의 길만 바라보며 걸어야 하기 때문이니라…”
(즉, 목표에 연연할 수록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을 고찰하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
저도 미국의 교육 시스템을 직접 체험하면서 비슷한 딜레마에 부딪혔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시험이니, 석차니, 모두들 어떤
목표를 세워 놓고 학습에 임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진정한 배움을 얻을 수 없습니다. 단지 목표 달성만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할 뿐이니까요.
아마 이런 생각 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아니, 시험도 무사히 통과하고 졸업생 대표까지 맡게 되었으면 뭔가 배웠을 것
아니냐?”. 네, 뭔가 배우긴 했겠죠. 하지만 잠재력을 발휘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 지명, 역사적인
사건의 발생일자 같은 것들을 외우고, 시험이 끝나면 또 다음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머리 속에 입력된 지식을 지우고… 학교 역시 제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부분의 학생들은 “최대한 빨리 이 곳에서 벗어나자”라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는 이제 그 목표의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번에 졸업하거든요. 게다가 수석이라는 영예까지 얻었으니, 즐거워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동기생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결코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저 시스템이
요구하는 것들을 잘 해냈을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 학교의 세뇌 프로그램을 충실하게 이행했다는 공로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걸 자랑스러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제 가을이 오면 저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제가 직장에 들어가서도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증서(대학 졸업장)를 따내기 위해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일꾼이기 이전에 하나의 인간, 사고하는 인간, 그리고 모험을
하고 싶은 인간입니다. 일꾼이라는 것은 반복적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을 일컫습니다. 시스템이 준비해 놓은 체제에서 노예처럼 일하는
사람 말입니다. 저는 이 노예들 중에서도 최고라는 사실을 인정받았습니다. 저는 시스템에서 요구하는 일들을 아주 잘 해냈습니다.
수업시간에 경청하지 않고 노트에 그림 연습을 했던 동기생들은 나중에 위대한 화가가 될 지도 모르지만, 수업시간에 열심히 필기를 한
저는 어느 누구보다 시험을 잘 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방과 후 자신이 읽고 싶은 책들을 읽느라 바빴던 동기생들은 다음 날
숙제를 해오지 못해 혼났지만, 저는 한 번도 숙제를 빼먹은 적이 없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작곡과 작사에 열중하는 동안 저는 학과
점수를 조금이라도 더 따기 위한 특별활동까지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도 없었는데 말이죠. 그래서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왜 수석이 되기 위해 그리도 발버둥을 쳤을까? 네, 물론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이긴 합니다만,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제가 고등교육을 마치고 나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영원히 헤매게 될 지, 잘 모르겠습니다. 제
인생을 앞으로 어떻게 설계해야 할 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특별한 관심분야도 없어요. 저는 학교에서 배운 모든 분야에서 남보다 앞서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 분야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매달렸던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지금 두렵습니다.
교육학자인 John Taylor Gatto씨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수업시간, 교과목, 시험 같은 것들을 보다 덜
엄격하게 관리하고, 학생들에게 뛰어난 스승들을 붙여 주고, 학생들에게 자율을 허용하고 때로는 모험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치면
젊음의 특권이라 할 수 있는 호기심, 모험심, 활력을 얼마든지 이끌어 낼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게 문제다”.
시스템은 우리 학생들이 모두 똑같아지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표준화된 시험을 통과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고 있으며,
학교가 정한 룰에서 벗어나 색다른 시각을 가지는 학생들은 실패한 자들로 평가되고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H.L. Mencken은 1924년 4월, The American Mercury에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공교육의 목적은
젊은이들에게 지식을 제공하고 지적 잠재력을 일깨워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공교육의 진정한 목적은… 가급적 많은 학생들을 안전한
수준으로 획일화시키고, 모범 시민이 될 수 있도록 훈련시키고, 불만의 요소들을 제거하고, 개성을 없애는 것이다. 이게 바로 미국
공교육의 목적이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다들 “비판적 사고”를 해야 한다고들 강조하는데, 그렇다면 비판적이지 않은 사고도 존재한다는
겁니까? 사고라는 것은 정보를 처리하여 개인적인 의견을 형성한다는 뜻입니다.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비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이걸 진정한 사고라 할 수 있습니까? 단지 남의 의견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행위에 불과한 것 아닙니까?
저도 이런 식으로 남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하지만 10학년 때 Donna Bryan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 사고의 폭을 넓히고, 남의 말을 무조건 받아들이기 전에 스스로 질문해보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Bryan 선생님을 알게
되지 못했더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저는 예전에 비해 많이 깨어났지만, 아직도 제 정신은 약하게 느껴집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학교라는 곳이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달리, 얼마나 정신 나간 곳인지 매일매일 스스로에게 다짐해야 합니다.
저는 이제 두려움이 지배하고 있는, 우리 모두가 간직하고 있는 개성을 억누르는 세상 속으로 몸을 던져야 합니다. 기업과
물질주의가 요구하는 비인간적인 난센스에 순응하거나, 아니면 변화를 요구하거나, 둘 중 하나의 길을 택해야 합니다. 나중에 자동화될
수도 있는 일, 불필요한 일, 열정도 없고 의미도 없는 노역과도 같은 일을 하도록 학생들을 준비시키는 교육 시스템은 우리에게
열정을 불어넣을 수 없습니다. 돈이 동기부여가 되는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도 없습니다. 열정이 동기부여가 되어야 하지만, 우리를
격려하기 보다는 훈련시키려고만 하는 시스템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열정은 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주입 받은 내용들을 자동적으로 내뱉도록 훈련된 로봇이 아닙니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특별합니다. 우리 모두 이보다는 더 나은 취급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암기보다는 혁신을, 쓸모 없는 일보다는 창의성을,
정체보다는 숙고를 위한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단지 졸업장을 받고, 취직을 하고, 업계에서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반복적인 소비를 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학교를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보다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합니다.
가장 슬픈 것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저처럼 현실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기업과 정부로부터 권위에 순종하는 사회의 일꾼들이 되기 위한 세뇌교육을 충실하게 받고 있으며, 이 사실을 자각하지도 못합니다.
제가 살아온 지난 18년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보다 나은 교육 시스템을 가진 나라로 도망가서 다시 배울 수도 없습니다. 제
유년 시절은 이미 막을 고했고, 다음 세대의 아이들이 저랑 똑같이 권력을 가진 자들의 손에 놀아나 잠재력을 억압당하는 일을 당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는 인간입니다. 우리는 철학자이고, 꿈꾸는 자이고, 탐험가고, 예술가고, 작가이고, 엔지니어입니다.
우리 모두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학생들의 꿈 실현을 위해 돕기보다는 억압하는 교육 시스템만 없다면 말이죠.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기 위해서는 뿌리가 땅속에 깊게 박혀 있어야 하는 법입니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서 교육 시스템의 요구에 순응해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는 후배들도 절망하지 마세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하고, 자신의 관점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세요. 자신의 지적 능력이 학교에서 요구하는
방향으로 쓰이기보다는, 지적 능력을 확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것을 요구하세요.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이걸 공부해야
해”라는 변명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얘기하세요. 교육이라는 것은 잘 활용하면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적을 올리기
보다는 배움을 위한 목적으로 공부를 하세요.
제가 지금까지 비판한 시스템 안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은 제 얘기에 기분 나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욕하려는 게
아니라 동기를 부여하려고 하는 말이니까요. 여러분들은 이 무능한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학생들이 교실에서 지루해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교육자의 길을 택한 것은 아니잖아요. 여러분들도 위에서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고,
무엇을 가르치라고 지시하는 것과,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경우 벌을 받게 되는 현실에 대해 진저리를 치고 계시잖아요. 젊은이들이
장차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이제 곧 시스템을 떠나시는 동기생들에게는, 지난 몇 년 간 교실 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잊지 않기를 당부합니다.
여러분들의 후배들을 외면하지 마세요. 우리는 세상의 미래이며, 잘못된 전통을 고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부정부패의 벽을
허물고 미국 내에 새로운 지식의 정원을 가꿔나갈 것입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교양과 지혜로 무장한 우리는 이 힘을 좋은 용도로만 쓸 것입니다. 우리는 표면적인 것만 보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악습을
타파할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질문하고, 진실을 요구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제가 섰습니다. 저 혼자서 졸업생들을 대표하여 이 자리에 선 게 아닙니다. 제 주변 환경, 그리고 지금
저를 바라보고 있는 모든 동기생들이 오늘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없었더라면 제가 지금 이 위치에 서 있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덕택에 지금의 제가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과 경쟁했지만, 여러분은 제 피와 살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모두가 졸업생 대표입니다.
이제 이 학교, 학교를 운영하는 모든 분들, 그리고 후배들에게 작별을 고해야 합니다. 하지만 영원한 작별이 아니고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입니다. 우리가 함께, 진정한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나기 위해서 다시 만나야 하니까요. 하지만 일단은, 우리에게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고 인증하는 종이 쪼가리부터 받도록 하겠습니다!
The 2010 Graduating Class of Coxsackie-Athens High School.
Comment: The
following speech was delivered by top of the class student Erica
Goldson during the graduation ceremony at Coxsackie-Athens High School
on June 25, 2010
Here I stand
There is a
story of a young, but earnest Zen student who approached his teacher,
and asked the Master, “If I work very hard and diligently, how long
will it take for me to find Zen? The Master thought about this, then
replied, “Ten years . .” ?The student then said, “But what if I work
very, very hard and really apply myself to learn fast — How long then?”
Replied the Master, “Well, twenty years.” “But, if I really, really
work at it, how long then?” asked the student. “Thirty years,” replied
the Master. “But, I do not understand,” said the disappointed student.
“At each time that I say I will work harder, you say it will take me
longer. Why do you say that?” ?Replied the Master, “When you have one
eye on the goal, you only have one eye on the path.”
This is the
dilemma I’ve faced within the American education system. We are so
focused on a goal, whether it be passing a test, or graduating as first
in the class. However, in this way, we do not really learn. We do
whatever it takes to achieve our original objective.
Some of you
may be thinking, “Well, if you pass a test, or become valedictorian,
didn’t you learn something? Well, yes, you learned something, but not
all that you could have. Perhaps, you only learned how to memorize
names, places, and dates to later on forget in order to clear your mind
for the next test. School is not all that it can be. Right
now, it is a place for most people to determine that their goal is to
get out as soon as possible.
I am now accomplishing that
goal. I am graduating. I should look at this as a positive experience,
especially being at the top of my class. However, in retrospect, I
cannot say that I am any more intelligent than my peers. I can attest
that I am only the best at doing what I am told and working the system.
Yet, here I stand, and I am supposed to be proud that I have completed
this period of indoctrination. I will leave in the fall to go on to
the next phase expected of me, in order to receive a paper document
that certifies that I am capable of work. But I contest that I am a
human being, a thinker, an adventurer – not a worker. A worker is
someone who is trapped within repetition – a slave of the system set
up before him. But now, I have successfully shown that I was the best
slave. I did what I was told to the extreme. While others sat in class
and doodled to later become great artists, I sat in class to take notes
and become a great test-taker. While others would come to class
without their homework done because they were reading about an interest
of theirs, I never missed an assignment. While others were creating
music and writing lyrics, I decided to do extra credit, even though I
never needed it. So, I wonder, why did I even want this position? Sure,
I earned it, but what will come of it? When I leave educational
institutionalism, will I be successful or forever lost? I have no clue
about what I want to do with my life; I have no interests because I saw
every subject of study as work, and I excelled at every subject just for the purpose of excelling, not learning. And quite frankly, now I’m scared.
John
Taylor Gatto, a retired school teacher and activist critical of
compulsory schooling, asserts, “We could encourage the best qualities of
youthfulness – curiosity, adventure, resilience, the capacity for
surprising insight simply by being more flexible about time, texts, and
tests, by introducing kids into truly competent adults, and by giving
each student what autonomy he or she needs in order to take a risk every
now and then. But we don’t do that.” Between these cinderblock walls,
we are all expected to be the same. We are trained to ace every
standardized test, and those who deviate and see light through a
different lens are worthless to the scheme of public education, and
therefore viewed with contempt.
H. L. Mencken wrote in The American Mercury
for April 1924 that the aim of public education is not “to fill the
young of the species with knowledge and awaken their intelligence. …
Nothing could be further from the truth. The aim … is simply to reduce
as many individuals as possible to the same safe level, to breed and
train a standardized citizenry, to put down dissent and originality.
That is its aim in the United States.”
Comment: The
full passage reads: “The aim of public education is not to spread
enlightenment at all; it is simply to reduce as many individuals as
possible to the same safe level, to breed and train a standardized
citizenry, to down dissent and originality. That is its aim in the
United States, whatever pretensions of politicians, pedagogues other
such mountebanks, and that is its aim everywhere else.”
To
illustrate this idea, doesn’t it perturb you to learn about the idea of
“critical thinking.” Is there really such a thing as “uncritically
thinking?” To think is to process information in order to form an
opinion. But if we are not critical when processing this information,
are we really thinking? Or are we mindlessly accepting other opinions
as truth?
This was happening to me, and if it wasn’t for the rare
occurrence of an avant-garde tenth grade English teacher, Donna Bryan,
who allowed me to open my mind and ask questions before accepting
textbook doctrine, I would have been doomed. I am now enlightened, but
my mind still feels disabled. I must retrain myself and constantly
remember how insane this ostensibly sane place really is.
And now
here I am in a world guided by fear, a world suppressing the
uniqueness that lies inside each of us, a world where we can either
acquiesce to the inhuman nonsense of corporatism and materialism or
insist on change. We are not enlivened by an educational system that
clandestinely sets us up for jobs that could be automated, for work that
need not be done, for enslavement without fervency for meaningful
achievement. We have no choices in life when money is our motivational
force. Our motivational force ought to be passion, but this is lost from
the moment we step into a system that trains us, rather than inspires
us.
We are more than robotic bookshelves, conditioned to blurt
out facts we were taught in school. We are all very special, every
human on this planet is so special, so aren’t we all deserving of
something better, of using our minds for innovation, rather than
memorization, for creativity, rather than futile activity, for
rumination rather than stagnation? We are not here to get a degree, to
then get a job, so we can consume industry-approved placation after
placation. There is more, and more still.
The saddest part is
that the majority of students don’t have the opportunity to reflect as I
did. The majority of students are put through the same brainwashing
techniques in order to create a complacent labor force working in the
interests of large corporations and secretive government, and worst of
all, they are completely unaware of it. I will never be able to turn
back these 18 years. I can’t run away to another country with an
education system meant to enlighten rather than condition. This part of
my life is over, and I want to make sure that no other child will have
his or her potential suppressed by powers meant to exploit and
control. We are human beings. We are thinkers, dreamers, explorers,
artists, writers, engineers. We are anything we want to be – but only
if we have an educational system that supports us rather than holds us
down. A tree can grow, but only if its roots are given a healthy
foundation.
For those of you out there that must continue to sit
in desks and yield to the authoritarian ideologies of instructors, do
not be disheartened. You still have the opportunity to stand up, ask
questions, be critical, and create your own perspective. Demand
a setting that will provide you with intellectual capabilities that
allow you to expand your mind instead of directing it. Demand that you
be interested in class. Demand that the excuse, “You have to learn this
for the test” is not good enough for you. Education is an excellent tool, if used properly, but focus more on learning rather than getting good grades.
For
those of you that work within the system that I am condemning, I do
not mean to insult; I intend to motivate. You have the power to change
the incompetencies of this system. I know that you did not become a
teacher or administrator to see your students bored. You cannot accept
the authority of the governing bodies that tell you what to teach, how
to teach it, and that you will be punished if you do not comply. Our
potential is at stake.
For those of you that are now leaving this
establishment, I say, do not forget what went on in these classrooms.
Do not abandon those that come after you. We are the new future and we
are not going to let tradition stand. We will break down the walls of
corruption to let a garden of knowledge grow throughout America. Once
educated properly, we will have the power to do anything, and best of
all, we will only use that power for good, for we will be cultivated
and wise. We will not accept anything at face value. We will ask
questions, and we will demand truth.
So, here I stand. I am not
standing here as valedictorian by myself. I was molded by my
environment, by all of my peers who are sitting here watching me. I
couldn’t have accomplished this without all of you. It was all of you
who truly made me the person I am today. It was all of you who were my
competition, yet my backbone. In that way, we are all valedictorians.
I
am now supposed to say farewell to this institution, those who
maintain it, and those who stand with me and behind me, but I hope this
farewell is more of a “see you later” when we are all working together
to rear a pedagogic movement. But first, let’s go get those pieces of
paper that tell us that we’re smart enough to do so!
대차(大車)씨는 잘난 남자입니다. 이름에서 드러나듯 차로 성공한 사람이죠. 성이 현(玄)가인 그는 만인의 연인입니다. 지난해
국내에서 그를 파트너(버스·트럭 제외)로 삼은 사람이 48만 명에 달했습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여기엔 그의 용모 덕도 있지만 다른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 땅에 달리 쓸 만한 남자가 없었기 때문이죠. 부모님들은
“우리가 그를 아껴야 나라가 잘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자연 그는 도도해졌습니다. 자기보다 멋진 사람은 없는 듯 행동했습니다.
나라 밖 사정은 전혀 달랐습니다. 잘생기고 근육질 몸매를 가진 장정들이 넘쳐났습니다. 중후한 벤씨, 날렵한 B씨, 엉덩이가
잘빠진 아씨, 경제적인 폴씨와 탄탄한 볼씨, 그리고 J가문의 토·혼·닛 삼형제 등 얼마든지 꼽을 수 있습니다.
정부
가 오랫동안 빗장을 닫아 건 덕분에 대차씨는 이들의 존재를 무시하면서 호의호식했습니다. 그러던 시장이 조금씩 열렸습니다. 멋진
외국 남정네들이 거리를 활보했습니다. 저는 대차씨가 잘빠진 그들을 보면서 긴장하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그를 흠모하는 이들이 넘쳐났기 때문이죠. 대차씨는 옷을 센스 있게 입거나 헬스에서 몸을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라이벌들은 점점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대차씨도 마침내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근력을 기르기 시작하더군요.
디자인에도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가 정신을 차리자 평판이 금세 좋아졌습니다. 그러자 그의 콧대는 다시 높아졌습니다.
업그레이드된 자신을 만나려면 데이트 비용을 10%는 더 내야 한다는 겁니다. 사실 대차씨는 장점이 많습니다. 헬스를 다닐 때마다
회비를 우리에게 전가하긴 했지만 몸값이 그리 비싼 편은 아닙니다. 원할 때 데이트하기 쉽고, 아파도 금방 치료받을 수 있는 것도
그의 강점입니다. 유럽의 경쟁자들은 잘생기고 힘도 좋지만 너무 비싼 게 흠이죠. 무엇보다 관리비용이 엄청 들어갑니다.
그럼에도 대차씨의 경쟁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습니다. 물 건너온 그의 라이벌을 선호하는 이들이 급증하는 게 증거입니다. 지난해
국내에서 그런 사람은 전년보다 50%나 늘어나 9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2011년 첫 달에도 36%(전년 동기비)나 증가했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12만 명을 쉽게 넘길 것으로 보입니다. 대차씨를 선택한 48만 명에 비하면 약소하다고요? 하지만 48만이란
숫자가 전년보다 6만6000이나 줄어든 사실을 안다면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보다 해외 라이벌과 같은 체급에서 싸운
대차씨네 선수들은 크게 깨졌습니다. 벤300·B528은 휘파람을 불었지만 그와 맞붙은 제네시스는 전년보다 판매가 27%
줄었습니다. 그랜저도 J가문의 삼형제에게 당했습니다. 신형 에쿠우스는 잘나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거야말로 ‘어쩔 수 없이
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웃집 사장님 말씀이 “같은 돈을 주고 물 건너온 친구를 쓰고 싶지만 아직도 눈치 봐야 할 곳이 많아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대차씨가 아직도 많은 사랑은 받는 것은 해외 라이벌이 별로 없는 중소형 덕분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미국·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이것도 쉽지 않습니다.
대차씨는 지난해 해외에서 약 300만 대를 팔았습니다. 국내의 여섯 배에 달합니다. 그런데도 대차씨의 지갑은 우리들이
60~70%를 채워줬습니다. 나라 밖에서 벌어들인 돈은 고작 30~40%였다는 말입니다. 국내에서 새 모델을 낼 때마다 가격을
꼬박꼬박 올린 덕분이지요. 우리는 그동안 잘난 대차씨 앞에서 할 말도 잘 못했습니다. 이제야 묻습니다. “대차씨, 그댄 우릴
사랑하고 있나요? 아니, 우릴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있던가요?”
심상복 논설위원
[자료출처]
중앙일보 입력 2011.02.11 00:26 / 수정 2011.02.11 08:35
TV에 나와서,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 하던데, 나 역시 그게 궁금하다. 그 연하의 남자…….(웃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종교를 바꿀 수도 있다고 했는데, 그 정도면 종교잖나.
“그 정도로 사랑해야 하지 않나? 사랑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알려달라.
“일단 방송에 나온 부분에 대해 할 말이 있다. 방송된 영상은 편집해서 재미있게 만든
부분이 많다. 50분 방송됐지만, 실제로는 서너 시간 촬영했다. 강호동 씨가 ‘사랑하는 사람 있냐’고 묻기에, ‘있다. 예전에 두
명 정도 사랑했었는데, 여전히 사랑한다. 난 쉽게 변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랑이 끝나도 후회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혹시
연하에요?’ 하기에 “이 나이면 다 연하다.(웃음) 법에 안 걸리려면, 연하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게 그렇게 편집된
거다.
사랑을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냐고 하더라. 내 사랑관이 좀 다른 가 보다. 내 얘기를 안 믿는다. 줄 때 주는 걸로 끝내야
되고, 받는 다는 생각은 없어야 된다.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해야 하고, 1초의 한 티끌의 의심도 없어야 한다. 나중에 이 사람이랑
결혼을 할 수가 있을까, 없을까? 이런 의심조차 없는, 그런 사람이 있더라. 그런 사랑은 어마어마한 에너지다. 상대방은 그걸
몰라도 되고. 그 나머지를 원할 때 그 사랑이 깨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깨지는 거 아녜요? 한 치의 의심이 없어서?
“그걸 쉽게 표현을 하기 위해서, 종교에 빗댄 거다. ‘아, 이 사람이, 이런 감정이
왜이렇게 의심이 들지 않지? 다 주고 싶지? 왜 이렇게 세지? 에너지가 되지? 내 일에 즐거움이 되지? 이런 걸 쉽게 표현하기
위해, 종교가 될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그런 사람이 이제껏 두세 명 정도 있었는데, 그만큼의 신선하고 성스러운 감정이 있더라. 두 번 그런 사랑을 느꼈고, 그걸 간직
하고만 있어도 행복하다. 다들 그런 걸 느껴봤으면 좋겠다. 받는 게 아니더라. 모두가 한번 정도는 그런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다.”
외국에서 생활할 때도 현대차만 샀던 나지만
최근 차를 바꿀 때 현대차와 수입차 사이에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수입차가 덤핑으로 들어오지 않는 이상
어떻게 비슷한 옵션과 품질, 성능을 가지고 있는 수입차와 가격차이가 느껴지지 않는지?
그런 느낌이 나 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주변에서 30-40대들이 수입차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신문에는 기자 컬럼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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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국내 고객 고마움 몰랐다” … 현대차의 반성
김태진경제부문 기자
18 일 부산 해운대 웨스틴 조선호텔. 신형 그랜저 시승회에 참석한 현대차 양승석 영업총괄 사장과 간부들의 표정에선 비장함이 느껴졌다. 심혈을 기울인 그랜저가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각오에서다. 하지만 이런 긴장감보다 새로운 변화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껏 현대차가 해외에서 선전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사준 고객들에게 반성하는 모습을 내비친 것이다.
김성환 국내마케팅실장은 “현대차를 사랑하며 꾸준히 사준 고객들의 고마움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며 “현대차가 소비자들의 신뢰를 받지 못하는 측면이 있고 이를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현대차를 서너 대씩 사준 고객들이 수입차만큼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고객 만족 프로그램을 내놓겠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현대차 내수 판매(65만9565대)는 전년 대비 6% 줄었다. 경쟁업체들이 10% 이상 신장했고 수입차가 50% 증가한 것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2000년 이후 내수 점유율 50%를 넘나들었던 현대차에 고객들이 소리 없이 반대표를 던진 셈이다. 게다가 현대차 감소분의 대부분이 수입차로 갔다. 한 임원은 “현대차가 수입차에 발목 잡힐 줄 몰랐다. 앞으로 한·미,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되면 중저가 수입차가 더 쏟아져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했다.
대표적인 게 수입차 베스트셀링카 1, 2위 벤츠 E300과 BMW 528이다. 이들과 경쟁한 현대 제네시스는 전년 대비 27%나 판매가 감소했다. 구형 그랜저도 도요타 캠리, 혼다 어코드, 닛산 알티마에 시장을 내줬다. 문제는 고급차 업체가 현대차와 가격 경쟁을 했다는 점이다. 현대차는 50% 점유율을 믿고 신차를 내놓을 때마다 10% 이상 가격을 올려 왔다. 결국 고급 수입차와 제네시스의 가격차는 수백만원까지 좁혀졌다. 여기에 소비자들은 차를 판 뒤 감사편지 한 장 보내지 않는 현대차 대신 수입차를 선택했다.
지난해까지 현대차의 영업이익 중 내수 비중은 70%를 넘었다. 현대차는 내수에서 벌어 해외에 공장을 짓고 신차를 개발한 셈이다. 반성의 모습을 보인 현대차가 새로운 고객 만족 프로그램을 통해 수입차로 향한 고객의 발길을 되돌릴지 지켜볼 문제다.
숙련 기술자 갈수록 부족…직업교육 투자 확대를
한국에서 교육받은 외국인 적극 채용해야 국가경제 도움
업무 피드백 빠를수록 젊은 직원 이직률 떨어져
과학·음악 등 각 분야 전문가 학교 교육에 활용해야
입력: 2010-10-29 17:06 / 수정: 2010-10-30 02:29
'글로벌 인재포럼 2010'에 참가한 각 분야 전문가들은 "인재의 성격이 과거와 달라진 만큼 교육과 관리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향후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력은 새로 확보한 인재들이 얼마만큼의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며 "인재 등용과 관리 시스템을 '제로 베이스'에서 재검토할 것을 주문했다. 나라 전체의 중 · 고등교육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조언들도 다수 제시했다. "교사의 선정 기준을 바꾸고 최첨단 정보기술(IT) 기기를 수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지적이다. 인재포럼에서 나온 제언을 정리했다.
==
(1) 미래 전략,직원에게 물어라
마이클 잭슨 셰이핑투모로 회장은 "직원들에게 미래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그럼 우리는 뭘 해야 하는가 두 가지만 물어도 놀라운 발견을 할 수 있고 비즈니스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회사의 미래와 발전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은 컨설팅펌이 아닌 직원들"이라며 "이들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수렴해 미래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잭슨 회장은 1994년 한 우체국 직원이 "앞으로 편지는 인터넷을 통해 부쳐질 것"이라며 인터넷의 발달을 예측했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사례로 제시했다.
(2) 대학 졸업장에 연연하지 마라
케네스 그레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육학과 교수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젊은이들에게 무조건 대학을 가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며 "고등교육에 돈을 쏟아붓는 대신 대학 수준의 직업교육에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미국은 실업률이 높지만 숙련된 기술자가 없어 고민하고 있다"며 "이 같은 불균형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대학 졸업장 만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휴 로더 영국 배스대 교수도 "일반 대학 졸업자는 사양 업종을 살리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3) 스타 CEO 영입에 돈 쓰지 마라
제프 리 페퍼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서로를 '동료'라 부르는 평등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기업에서의 직위에 따른 임금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며 "경영자와 사원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하고 얼마를 받는지 면밀히 따지고 임금 차이를 줄여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외부에서 몸값 비싼 최고경영자(CEO)를 영입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이들이 더 나은 성과를 낸다는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4) 한국서 공부한 외국인 잡아라
라인홀트 바이스 독일 연방 직업교육연구원 부원장은 "독일에서 과학기술을 공부한 외국인 대부분이 학위 취득 후 자국으로 돌아간다"며 "규제를 완화해 보다 많은 외국인 학위 취득자가 독일 내에서 직업을 가질 수 있게 해야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원칙은 한국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며 "한국 기업들이 한국에서 교육받은 지한파 외국인들을 적극 채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5) 업적은 즉시 보상하라
주 디 리 휴잇어소시엇츠 다문화컨설팅 리더는 최근 사회생활을 시작한 밀레니엄 세대의 특징을 '스피드'로 요약했다. 업무와 관련한 피드백과 우수한 업적에 대한 보상이 빠르게 이뤄지지 않으면 답답함을 느낀다는 설명이다. 그는 "실시간으로 일의 결과를 확인하는 인터넷 세대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조직 운영의 속도를 한층 높여야 한다"며 "의사결정과 보상이 천천히 이뤄지는 기업은 인력 이탈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니콜라 소바주 NH-CA자산운용 사장은 "신세대들은 금전적 보상 이상으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가치있는 일인지 여부를 따진다"며 "젊은 직원들에게 사회공헌 활동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6) 학교 교육도 아웃소싱하라
토 니 리틀 영국 이튼칼리지 교장은 "창의적인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학교 외부에 있는 각종 산업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각기 다른 재능과 잠재력을 가진 다양한 학생들의 교육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외부 전문가 및 시설을 학교 교육에 이용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공학과 학생들은 기업의 자동차연구소와,항공학과 학생들은 항공산업계와 연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그는 "다양한 방면에 재능을 가진 각계 인사들이 학생들의 롤모델이 돼야 한다"며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 및 관련 자원들을 교육에 적극 활용해야 더욱 효과적인 인재 양성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7) 웹 3.0 시대 맞는 인재 육성하라
바 버라 그라보스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육학과 교수는 "아이패드와 아이폰,갤럭시S 등 ICT(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 · 정보통신기술) 발전은 고등교육에 혁신적인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며 "고등교육은 신기술을 이용해 정보를 구축하고 생산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웹 2.0과 앞으로 다가올 웹 3.0은 학교와 국가라는 전통적인 학습의 경계를 초월하게 한다"며 "교육자는 단순한 지식 전달자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환경 변화를 누구보다 잘 이해해 학생들이 스스로 지식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8) 기존 인력 재교육하라
앤 디 윌슨 영국 웨스트민스터 킹스웨이칼리지 총장은 "녹색산업이 새로운 주류 산업으로 부상하면서 기업들이 이 부문 전문가를 찾아 나서고 있는데 이는 현명한 일이 아니다"며 "엔지니어링 분야의 일부 기술 인력을 제외하면 기존 지식의 활용과 약간의 재교육을 통해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중요한 것은 경영진의 리더십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킹스웨이칼리지는 2012년 런던올림픽에 대비해 호텔의 물소비 패턴,음식쓰레기 관리,식품포장 등 숙박과 관광 분야에 특화한 연구와 교육을 하고 있다"며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기술 교육만으로 훌륭한 녹색인력을 길러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9) 커뮤니케이터를 길러라
피 터 럭스턴 호주 퀸즐랜드주 학습청 원장은 미래 교육이 요구하는 핵심 가치로 의사소통 능력을 꼽았다. 그는 "IT 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교육의 전통적인 지식 습득 기능이 약해지고 있다"며 "앞으로는 정보를 잘 전달하는 교사보다 의사소통을 잘하고 동기 부여에 능한 교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호주 퀸즐랜드주는 2005년부터 학생들에게 다양한 정보와 옵션을 제공하는 방향으로 교육 시스템을 바꾸고 있다"며 "교사는 학생들의 의사결정을 돕는 조언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럭스턴 원장은 "기업에도 이 같은 원칙이 똑같이 적용된다"며 "커뮤니케이터형 인재의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10) 다문화 인력 로드맵 만들어라
다 문화 · 고령화 사회에 맞는 교육 및 인력관리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레바 조시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는 "인종과 연령대 등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교육을 받고 일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긴다"며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아우를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가 제대로 통합되지 않으면 노동 생산성이 둔화할 수 있다"며 "적어도 교육의 기회만큼은 공평하게 제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크리스틴 클라크 국제노동기구(ILO) 이사는 "남자와 여자,장애인과 비장애인 집단 간 갈등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