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일 다 하고 가신건지...
두고 두고 살아야 할 사람은 빨리가고
더 사나 안 사나 세상 크게 도움될 것 같지 않은 나는
아직도 바둥바둥 살아있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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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kyang
(2006/03/04)

제목


[가입인사] 양신규입니다. 읽어주세요.


(양 신규씨가 12년 전에 쓴 글입니다. "이 글 양신규 가입인사를 이 게시판 윗쪽에 고정시키면 좋겠습니다. 방마다 소개글이 있는데.. 이 글은 양신규가 어떤 사람인가를, 양신규의 언어로 말하고 있구요. 제가 보기엔, 정말 '신규형다운, 신규형답게 쓴' 글이네요."라는 들레님의 뜻에 따라 이 글을 공지글로 올립니다. - 하종강)

번호 1 날짜 1994년 08월 19일 15시 54분
이름 양신규(skyang)  조회수 6  
제목 [가입인사]양신규입니다. 읽어주세요.

가입인사
안녕하십니까, 신입회원 양신규입니다.
저는 현재 M.I.T. 의 경영대학 (M.I.T. Sloan School of Management 가 정식명
칭이지요.) 박사과정에 재학중입니다. 전북전주산이고 80년에 전주고등학교, 84
년에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했고, 졸업후 (주)SKC 에 입사곧 십주년 근속기념
진짜 금메달을 받을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정보시스템부에서 일해
왔는데 기업 정보시스템부에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회사에서 시키는대로
충성을 다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 92 년에는 드디어 회사측에서 더 이상 시킬 일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미국
유학을 제의 회사빽으로 MIT 경영대의 MBA 과정에 입학 이번 5 월에 졸업하고,
미국 지사에서 2개월 일하다가 지난 10 일에 귀국했습니다. 전공은 물론(?) 정보
기술(Information Technology) 을 했는데, 경제학공부도 조금 곁들였지요. 제가
물리학과 84년 졸업생중 꼴찌인데, 경제학 방법론이 물리학을 많이 닮아 있어서
대학때 노느라 못한 물리공부 10년 재수끝에 해보는 셈치고 좋지않은 머리 혹사
시키느라 흰머리가 많이 늘었습니다.

회사에 돌아와보니 이번에는 제 쪽에서 할일이 없는 것 같아, 노느니 땅덩이 넓
은 쪽에서 놀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MIT 의 정보기술 박사과정에 등
록했습니다. 다음주에는 보스톤으로 가서 �?겨나지 않는다면 한 4 년 더 그 동네
에서 지낼 것 같으니, 혹시 살다가 미국동부 오실일이 생기시면 찾아주십시오.
저 뿐만아니라, 아마 MIT 나 Harvard 의 늙은 학생들이나 재미과학기술자협의회
뉴잉글랜드지부회원들이 반갑게 맞아줄 것입니다.

제 특징은 한 가지도 잘하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리과에서 꼴찌하고 대학원
시험에 떨어져서, 막무가내 통사정으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직업을 찾고, 거
기서도 잘할것 같지않아 경영학으로 돌았습니다. 경영학도 그냥 말로하면 미국
아이들한테 도저히 상대가 안될 것 같아서 이번에는 좀 테크놀로지도 섞고 경제
학도 좀 섞어서 말하는 분야를 선택해 본 것입니다. 혹시 회원분들 중에 정보기
술 자체의 흐름에 대해서나, 정보기술과 경제, 사회 제반현상과의 상호작용에 대
해서, 아니면 순수 경영학적으로 리엔지니어링등 정보기술이 어떻게 기업조직의
변화와 관계가 있는가하는 하는 주제들에 대해 요즈음 미국동부 쪽 말꾼들이 무
슨 애기를 하는가가 궁금하시면, 제 아이디로 연락주십시오. 제가 직접 아는 것
은 없지만, 이 동네 어느분야에 누가 권위인가 하는 것은 귀동냥으로라도 알아내
서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 미국 연락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차제에 회원
정보란에 미국주소랑 전화번호도 입력할 수 있도록 나우컴 프로그램을 좀 수정하
도록 압력을 넣어 주십시오. 국제화시대의 네트웍이 미국주소를 못받아드린대서
야 말이되겠습니까.)

Yang, Shin-Kyu tel: (001-1-) 617-494-6553
60 Wadsworth st. #26A fax: 617-494-1504
Cambridge, MA 02142 internet: skyang@mit.edu
U.S.A. 나우컴: skyang

더 궁금한 내용이 있는 분만 아래를 읽어 보십시오.

저는 학교다닐 때, 당시 학생운동권의 주된 방향에 대해 약간 회의(?)가 있었습
니다. 그것은 당시 제 판단에 가장 고상한 학습과 이론을 추구하던 경제법학회,
사회복지회 등의 학회에 주제도 모르고 가입신청했다가 거절당한 쓰라린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선배들은 제가 형이상학을 연구하는 인문사회대에 다니지
못하고, 형이하학적인 자연과학대에 다닌다고 가입을 거부한 것인데 당시 저로서
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 선배님들에게 드린 항의는 다음과 같습
니다.

저는 대학입시 체력장 시험때 세미프로 야구선수들이 1.5% 가 되는 학교에서
1%에 들었습니다. 던지기도 잘하고 달리기도 잘하며, 태권도와 유도 도합 2단입
니다. 가입시험을 치룹시다. 데모하는데 뭐 다른것이 필요합니까?

지금 생각하면 제 세계관이 너무 형이하학적이어서, 그 선배들이 저를 거절한 것
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 거절을 시작으로 저는 숱한 거절당하는 쓰라림을 맞
보았습니다. 짝사랑이 아예 체질화 된걸로 스스로 여기기 시작했지요.

아마 제가 자신감을 좀 가지려면 이제 좀 거절당하지 않고 사랑을 진하게 한번
받아보아야 될 것같은 생각이 듭니다. 한가지 희미한 희망는 미국 교수들은 저처
럼 모자라면서도 황당한 주장을 자주 하는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는다는것을 발
견한 것입니다. 지도교수가 전해준 말에 의하면 제 박사과정 입학 사정때 학부성
적과 영어실력이 문제가 되었댑니다. 한 늙은 교수의 말이 자기가 MIT에 있는 25
년동안 본 점수중 가장 낮은 점수여서 과연 그런 점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
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안되는 일이었는데, 제가 제출한 연구주제가 하도 황당한
것이라 도대체 어떻게 되나 한번 결과를 보자는 주장이 약간 우세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무사히 졸업할 확률은 아주 낮다고 볼 수 있지요.

저는 제 전공(?)인 형이하학을 살려 물리학과 과회장을 했고,당시 민주화 과정
의 학도호국단 자연과학대학 체육부장을 지냈습니다. 철저하게 형이하학으로 나
갔는데 당시 기독교운동도 형이하학적으로 개조해보려는 황당한 꿈을 품고 애를
썼었습니다. 형이하학은 항상 기본단위를 중요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학교에
서도 학과 활동를 중요시했고 교회도 개별교회에서 활동했었습니다. 물론 우수한
(?) 체력을 바탕으로 데모현장에서는 기를 쓰고 던지고 달리고 맞고 때리고 했습
니다. 돌맹이와 몽둥이는 형이하학의 기본이니까요.

다음은 더욱 재미가 없는 얘기니 참을성 강한 분만 읽으십시오.

저는 형이하학에 계속 매달려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는 곧장 과학기술자운동
을 조직하는 데 합류했습니다. 그것도 제가 무슨 전망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당
시 과학기술자운동을 조직할 때 중심축 대부분이 대학원생들이었고 회사에 취직
한 진짜(?) 엔지니어는 저 밖에 없었기 때문에 당시 대학 때부터 꾸준히 준비하
던 친구들이 저를 덤으로 끼워주어서 시작한 것입니다. 87년에는 시류를 따라 청
년과학기술자협의회를 창립하고 제가 회장이 되었습니다. 이것도 제가 무슨 지도
자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고 지도자 자격이 있었던 많은 동료들이 모두 과학기술
원, 전자통신연구소나 데이컴등 과학기술노동현장의 노조조직가로 활동하는 바람
에 남은 사람이 없어서였었습니다. 이 덕분에 무슨 보안사 1300명 사찰대상 명단
을 한겨레신문에서 발표하는 바람에 회사에서는 곤욕을 좀 치루었습니다. 회사에
서는 제가 별 위험한 전파력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을 즉각 인식 어 이상 문제를
삼지는 않았습니다.

청년과학기술자협의회 회원들은 '과학기술혁명론', '지식노동자운동론'으로 무장
하고 지식노동은 생산적노동임을 향후 노동운동의 중심축은 이들 새로운 노동자
층임을 역설하고 다녔지만, 당시 PD 권위 서관모 선생께서 이들을 소자산가 계급
이라 규정하시고, 당시 NL 권위 장명국 선생께서 보조적 노동자로 규정하시는 바
람에 이것도 저것도 아닌 이론으로 취급되어서 힘이 많이 빠졌던 기억이 생생합
니다. 당시 우리가 예비 지식노동자라고해서 중요시하던 학생들이 찾아와 NL 이
냐 PD 냐라고 입장을 물어서, 우리는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다만 지금 현재 한국
사회에서도 옛날얘기가 안 통하게되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니까 우리는 거기에
주목하고 과학기술혁명이 몰고올 새로운 사회에 대한 이해와, 새로운 지식 노동
자층의 조직화에 역점을 두고 있을 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혁명이 눈앞인데 무슨 나약한 과학기술자냐 하는 표정이었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90년대 진보 진영의 실천역량의 쇠락의 큰 원인 중의 하나로 80
년대 말 자생적으로 분출한 과학기술노조, 금융노조, 전교조 등 지식노동자대중
의 노동운동에 대한 몰이해와 무정견을 꼽는데에 아직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결
국 이러한 몰이해와 무정견 덕분에 재벌기업의 지식노동대중의 조직화라는 설정
과제는 우리 회원들 등 자발적 노력에도 불구하고에는 한 건의 성공도 거두지 못
했습니다. 과학기술노조에는 환경이나 과학기술정책들을 기대했고 전교조에게는
참교육을 기대한게 진보진영의 생각이었는데, 사실 이는 연목구어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식노동대중은 사실 훨씬 근본적인 것, 즉 사회속에서 자신들의 세계관
을 펴고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분석이었습니다. 지위향상요구는
그러한 바람의 가장 원초적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거기서 출발했어야 했
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무슨 바람인지 불어서 Harvard의 Kennedy School 에 공부하러 와
있는 김 민석 위원장에게 21세기 프론티어 모임 얘기를 듣고 찾아와 가입한 건데
와서보니 너무나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신 분들이 많아 기분이 아주 좋아진 상태입
니다. 저는 이 모임이 잘되게 하는데 제 모자라지만 황당한 주장을 지치지않고
하는 기질을 최대한 살려 노력해 보려고 마음 먹었습니다. 제가 귀국해 있는 동
안 한 일 중 가장 보람된 일이 이 모임에 가입하고, 가입한 날 말복파티에가서
뒤풀이까지 간 것입니다.

존경스러운 회원님들, 많이 사랑해 주십시오. 아니면 조금이라도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마 저랑 같이 청년과학기술자협의회를 했던 친구들도 (윤재근 회원
은 이미 가입했습니다만) 앞으로 많이 가입할 것 같습니다. 또 미국에서 사귄 친
구들도 많이 가입할 것입니다. 저한테만큼은 아니라도 :-) 그들도 많이 사랑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 표시는 미소입니다. 시계방향으로 90 도 돌려서 봐 주
십시오. 미국에서 친구들이랑 인터넷으로 연락할때 한 언니한테서 배운 기호입니
다. 온라인으로 자주뵙고 겨울에 귀국하면 다시 뵙겠습니다. 두루 안녕하십시오.
:-) :-) :-)


[참고자료]
양신규 추모 게시판 @ 하종강의 노동과 꿈
http://www.hadream.com/zb40pl3/zboard.php?id=skyang&PHPSESSID=92ecc799000f517d5c11692027b410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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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izys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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